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97
96화. 대망(大蟒) (3)
사흘간의 예선전.
눈에 띄는 대결은 몇 없었다. 한쪽으로 일방적인 경기가 벌어지거나, 혹은 막상막하라도 어린애들 싸움처럼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본선전이 치러지는 날이 다가왔다.
“오오오오!!”
예선전과는 판이한 대결 수준에 신이 난 관중들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야야, 에이 거기서는 한 치 뒤로 물러섰어야지! 아니, 아니지 임마! 그건 너무 가벼워!”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훈수를 두는 정천.
“…….”
그런 그를 유화가 한숨을 내쉬며 일별했다.
“정천 공자는 대체 왜 이곳에 계신 건가요?”
지금 유화와 정천이 앉아있는 자리는 백도 무림맹 소속의 인사들이 앉는 자리였다. 그런데 정천이 대체 왜 이곳에 와서 앉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유화의 물음에 정천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 사람이 좋은 자리를 준비해 준다길래.”
정천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에는 정무가 있었다.
“하하, 그렇습니다. 정천 공자라면 이 자리에 충분히 앉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 그를 적대하던 정무가 아니었다.
‘무영문의 제자…….’
그는 단지 백도 무림 최고의 기재로 남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천하제일을 꿈꾼다. 그런데 무영문의 제자를 만났다. 그 압도적인 무위에 시기 질투가 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낸다면 그는 절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순수하게 무인으로써 정천을 인정했고, 자연스레 호의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
그때 비무대 위로 오르는 인물을 확인한 정무의 얼굴이 굳었다. 유화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오.”
그를 본 정천 또한 호기심 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 * *
“지금부터 종영관 연진과 원신관 진윤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두 관도는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하필이면 연진의 본선 첫 상대가 바로 진윤이었다.
“원신관…….”
원신관, 원신당. 그리고 화용진가.
드디어 올 게 왔다.
“연진아,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해.”
그녀의 쌍둥이 오라버니, 연원의 말에 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관대전에 출전하는 인원은 총 다섯. 단리우가 오기 전까지라면 그중 한자리는 연원의 것이었겠지만, 아쉽게 마지막에 선발되지 못한 그였다. 이제는 그의 여동생인 연진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나만 믿어.”
그렇게 본선 무대에 오른 연진.
“종영관의 연진입니다.”
“원신관의 진윤이오. 잘 부탁드리오.”
고개를 주억거리며 히죽 웃는 진윤.
“대결, 시작!”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마주 선 두 남녀가 목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 비무에서 진검은 사용할 수 없었다.
“들어오시오.”
마치 하수를 상대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연진이 두 눈을 좁히며 신중하게 그를 탐색했다.
잔뜩 쫄아 먼저 들어오지 않는 연진을 보며 진윤이 피식 웃음 지었다.
“안 들어오면, 내가 가지.”
굳이 무영문의 제자도 아닌 일개 문도 따위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던 진윤이 먼저 달려들었다.
‘기다린다.’
연진은 비영보를 활용해 뒤로 몸을 뺐다. 선공을 내준 만큼, 뒤로 한 발 물러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진윤이 내지르는 검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변칙적인 검도 아닌, 일직선으로 내뻗어진 검이었다. 그녀는 충분히 흘려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그런데 그 검은 연진의 목 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승부는 갈렸다. 그것도 단 한 수에.
“어, 어떻게……!”
연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한 검이라 여겼다. 비영보를 활용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검이었다.
“이게 그대와 나의 차이요.”
그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검을 내지르는 연진.
턱!
그러나 그녀의 검은 그의 왼손에 너무도 허무하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내 검이 진검이었다면 그대의 목은 이미 날아갔겠지. 그런데.”
퍼걱!
연진의 목검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설령 그대의 검이 진검이라도 내 손에 잡힌 이상, 같은 결과였을 거요.”
그것이 그와 그녀의 차이였다. 연진은 절대 좁힐 수 없는 큰 격차에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져, 졌…….”
퍼억!
“꺼억!”
그녀가 패배를 승복하려는 그때, 그의 검이 그녀의 명치를 가격했다.
꽈악!
동시에 그의 왼손이 그녀의 멱살을 쥐고 그를 향해 당겼다. 그리고 귓속에 속삭이는 말.
“아니지. 무영문의 졸개가 그렇게 쉽게 패배를 승복하는 건 아니지.”
그의 입가에 살기 어린 미소가 맺혔다.
‘내 가문이 치욕을 받은 만큼 너희 무영문에 돌려주겠다.’
“더 해볼까? 아니면, 그대로 무영문의 패배를 시인하고 찌그러질 테냐?”
그녀를 도발하는 진윤. 발끈한 연진이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씨익.
진윤의 시선이 진행자를 향했다.
“이 소저께서는 아직 싸울 마음이 있는 것 같구려.”
본선에서 승패를 가르는 두 가지. 스스로 패배를 시인하거나, 진행자의 재량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
“계속…… 하겠습니다!”
연진이 악에 받쳐 외쳤다. 진행자 또한 그녀의 강렬한 의지를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달려드는 진윤. 연진이 검을 휘둘렀을 때, 이미 그의 신형은 그녀의 품속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퍼억!
“꺼억!”
그의 검이 연진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가격했고, 그대로 고꾸라지는 그녀를 왼손으로 붙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퍽! 퍽! 퍼벅 퍽!
“그, 그만…….”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말 그대로 구타당하는 연진을 보며 연원이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만! 그만하시오!”
일방적인 구타를 지켜보던 단리우도 분개하여 소리쳤으나,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이잇!”
도저히 참지 못하고 비무대 위로 오르려는 단리우를 강운이 잡아챘다.
“지금은 때가 아니오.”
혹시라도 지금 단리우가 비무대 위로 올라간다면 실격패를 당하고 만다.
“저 위에서 만약 연진이를 죽인다면 저자는 그대로 실격이오. 그런 우를 범할 가벼운 인물은 아닐 테니, 조금만 더 지켜보시지요.”
퍽! 퍼퍽! 퍽-!
털썩!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연진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종영관의 연진 관도는 전투 불능 상태이므로, 원신관 진윤 관도의 승리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연원과 강운, 그리고 단리우가 비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빨리 의무실로!”
다급한 외침과 함께 연원이 그의 쌍둥이 여동생을 들쳐업고 의무실로 향했다.
“준비한 무대는 재미있게 즐기셨소이까, 무영문의 똥개들이여.”
“…….”
강운과 단리우의 눈빛에 차가운 분노가 서렸다. 구차한 대화를 섞을 이유가 없었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그 목 고이 내놓고 기다리고 있도록.”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채 비무대를 내려가는 단리우. 그의 뒤를 강운이 따랐다.
* * *
그 이후로도 비무는 지속됐다.
따악!
단리우의 목검이 상대의 명치를 가격했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종영관 단리우 관도 승!”
쓰러진 상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대로 비무대를 내려오는 단리우. 그의 시선이 대진표를 향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총 네 명. 원신관의 두 명, 진윤과 진호준. 그리고 종영관의 두 명, 단리우와 강운이었다.
“이야, 딱 둘씩 붙었네. 재밌게 됐어.”
여전히 육포를 질겅거리며 비무를 지켜보는 정천. 준결승의 첫 번째 대결 준비가 한창이었다.
“누가 이길 거 같아?”
“글쎄…….”
준결승에서 진윤과 대결을 펼치게 된 강운. 유화 또한 그의 잠재력을 봐왔기 때문에 그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진윤의 수준은 이들과 달랐다.
[이미 느끼고 있을 거 아니야? 저놈, 청룡의 주인이라는 거.]정천의 전음에 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그에게서 느껴지는 사방신의 기운. 유화가 느끼는 것처럼, 정천 또한 알고 있었다.
‘저 목검으로는 청룡기를 사용할 수 없어.’
진검 대결이었다면, 자신의 검을 가지고 승부를 겨뤘다면 강운은 필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누구보다 유화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이라면 승부의 향방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사방기를 활용할 수 없더라도 사실상 실력 차이는 극명했다. 강운이 아무리 동년배 중 뛰어난 성취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진윤은 차원이 다른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저놈이 소당주라고 했지?”
정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화.
“그럼, 당주라는 인간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듣기로, 진윤은 과거 그가 쓰러트렸던 구천검존(究天劍尊) 진완의 장손이었다. 말인즉슨, 진윤의 아비는 당시 그가 손목을 잘랐던 진완의 아들이라는 의미였다.
“저놈의 아비는 아닐 텐데.”
손목이 잘려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었을 테니까. 물론 좌수검(左手劍)의 고수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정천은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화용진가는 좌폐자(左撇子:왼손잡이)를 허용하지 않으니까.’
화용진가는 철저하게 보수적인 집단이다. 좌폐자는 처음부터 아예 불구 취급을 한다. 그런 곳에서 좌수검을 연마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당주는 누구지?’
당주가 이곳에 와 있다면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그에게 할당된 임무는 원신당을 무너트리는 것. 당주만 잡는다면 그가 할 일은 모두 끝나는 것이었다.
정천이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무관대전 최고를 가리기 위한 전초전! 준결승이 시작됩니다!”
“와아아아!”
열띤 함성과 함께 시작되는 준결승전. 진윤과 강운이 비무대 위로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시시했었는데,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겠는가?”
“…….”
강운은 도발에 휩쓸리지 않고 말없이 검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어디 다른 무영문의 똥개들과는 얼마나 다르게 짖는지 한 번 보도록 하지.”
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 *
황량한 바람이 메마른 초원을 휩쓸고 있었다. 수백구에 다다르는 시체가 바닥에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커헉!”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송백림. 검을 바닥에 꽂은 채 어떻게든 일어서려 몸부림쳐 보지만, 꿈틀거림에 불과했다.
“그대가 무영문의 대공자라고? 본좌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가.”
무표정한 사내가 그를 내려다봤다.
“감히…… 감히 화용진가 따위가!”
송백림이 악에 받쳐 소리쳐보지만, 사내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실망이군. 과거 우리 가문을 짓밟았다는 무영문이 고작 이런 지경이라니…… 쯧쯔.”
송백림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있었다. 과거 그들 발아래 있던 화용진가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그대들과 우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송백림이 그를 쏘아봤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사내.
“여기.”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는 사내.
“그리고 여기.”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는 사내.
“그리고…… 여기!”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는 사내.
“너희들은 이 모든 것에서 우리에게 진 것이다.”
높이 든 그의 검신이 햇빛을 반사해 밝게 빛났다.
“그럼, 그 대가를 치르도록.”
그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