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3)
163_Will you Marry me? (!)
영국에서 온 편지 한 장은 제국을 뒤흔들었다.
“뭐라고? 영국의 여왕이, 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그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한 수 였다.
파격적이다 못해, 정신 상태가 의심되는 제안 말이다.
“아니, 왕자와 여왕이 결혼하는데, 여왕이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비워두고 왕자의 나라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겠다는 건가?”
“그것도, 한창 제국이 시끌시끌한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 말이지!”
제국의 모든 호사가들이 여왕의 파격적인 제안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페르디난트 1세 역시 여왕의 제안에 무척이나 놀란 사람 중 하나였으나, 그의 결정은 빨랐다.
“영국의 여왕이 그걸 원한다면, 마땅히 내가 직접 그 신성한 결혼을 준비하겠노라.”
선언 직후 이어진 말이 그의 속내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이 결혼은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걸린 신성한 것이니, 결혼식 연회 기간 중 그 어떠한 군사적 움직임도 엄금하겠다!”
이 선언은 선제후들에 대한 엄포이자 경고.
아무리 황제 알기를 우습게 아는 선제후들이라고 할지라도, 타국의 여왕이 방문한 도중 멋대로 움직였다간 좋은 꼴을 못 볼 거란 선언이었다.
황제는 이렇게, 여왕의 도움으로 시간을 벌었다.
‘결혼식을 최대한 오래 끌어야겠군. 결혼식 중 만반의 준비를 하고, 결혼식이 끝난 직후에 들이치는 거야.’
황제가 열정적으로 결혼식을 추진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편지를 보낸 지 채 한달이 안 된 시점.
여왕은 허가의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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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동안 나라를 잘 부탁할게. 엘리자베스.”
“맡겨주세요, 언니.”
제국으로 떠나는 배의 앞.
나는 엘리자베스에게 당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임시 섭정을 맡을 테니까.
“언제나 스티븐 주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렴.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메리를 특별히 주의하고.”
“물론이지요, 저는 잘할 수 있어요.”
물론 잘 할 수 있겠지.
그 잘난 ‘엘리자베스’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걱정이 되는 거지만-.’
하지만 난 곧 고개를 저으며 걱정을 내려놓았다.
‘그간 내가 해왔던 것을 믿어보자.’
괜찮다.
저 뒤에서 울며 나를 배웅하는 민중들을 보라.
민심은 나의 편이다.
반란을 일으킬 귀족은 없다.
삿된 마음을 먹을 육군 같은 건 없애둔지 오래.
내가 없는 새 분란을 일으킬 자들은 이미 모두 뿌리 뽑아두었다.
‘그러니 엘리자베스가 정권을 탈취할 순 없어.’
사실, 내 앞에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자베스가 반란을 모의하리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지금의 독신 교수 생활에 진심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스티븐 주교를 바라보았다.
“주교, 내가 없는 동안 엘리자베스를 잘 보좌해주게.”
주교는 언제나 그렇듯 자상한 얼굴로 답했다.
“물론입니다, 여왕 폐하. 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제 책임을 충실히 다하겠습니다.”
그래, 주교라면 믿을 수 있었다.
정치 관록이 뛰어나고, 내 의도를 잘 파악하는 주교이니 훌륭히 엘리자베스를 보좌하리라.
“돌아오실 때는, 두 분이 같이 돌아오겠군요.”
주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째 지나칠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따.
“알잖나, 주교. 그냥 정략 결혼이야. 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건, 두 분이 영원을 맹세한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페르디난트 왕자 전하를 그리 싫어하시지도 않잖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주교는 이 결혼에 푹 빠졌다.
여기서 ‘제국에 가는 목적은 결혼식 때문이 아니라 제국의 분열을 막고 영국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해봐야 들은 척도 안 하겠지.
나는 그냥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웃어보였다.
“무탈히 다녀오겠네.”
“폐하가 돌아오시는 날만을 기다리겟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배에 올랐다.
마침내, 제국으로 향하는 배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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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8월.
제국의 항구 도시, 브레멘.
‘엉망이군.’
페르디난트 왕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단순히 전쟁의 뒷수습이 끝나지 않아, 여기저기 패이고 핏자국이 얼룩진 거리의 모습만 보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걸 제외하고 나서도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황제의 수하들과 선제후의 수하들.
그 사이에 뻔뻔히 서 있는 막시밀리안까지.
모두의 감정이 수습되지 않은 채 부딪혔다.
이곳의 분위기는 정말 엉망 그 자체였다.
‘숨막힐 정도야.’
왕자가 작게 한숨을 쉬던 그때.
저 멀리, 정박하는 배가 보였다.
마침내 여왕이 도착한 것이다.
저 멀리, 여왕이 서 있었다.
아직 멀었으나, 왕자는 자신이 여왕과 눈이 마주쳤다고 확신했다.
그리 생각하자, 이제는 다른 의미로 숨이 막혀왔다.
시선을 그녀에게 빼앗겨 버렸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느끼지 못할 노릇이었다.
영원같고도 찰나 같은 시간이 흐른 끝에.
여왕이 걸어왔다.
천천히, 그의 앞을 향해서.
그의 코앞으로 다가온 여왕은, 천천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내 사랑.”
그 순간.
날카롭던 분위기는 베네치아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깨져버렸다.
“허억!”
“으음.”
여기저기서 당황스런 침음이 들려왔다.
여왕이, 날아오르듯 왕자에게 안긴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제국의 환영인파였다.
내로라 하는 귀족들과, 왕자들까지 모인 자리.
그곳에서, 영국의 여왕이 왕자를 껴안은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파격적 행동이었다.
‘왜, 꼽냐? 그래서 니들이 어쩔건데?’
···혹은, 철저히 계산이 되었거나 말이다.
‘미친짓 좀 한다고 나한테 다시 돌아가라고 할 수 있어? 나는 여왕인데? 그것도,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무려 영국을 혼수로 가져온 여왕’
여왕 자신이 머리에 꽃을 꽂고 춤을 추더라도, 저들은 이제와 배를 바꿔탈 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환영인파는 뒤늦게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했다.
“여왕 폐하께서 왕자님과 사이가 좋으신 모양이군요.”
“부부가 되어도, 금슬이 좋으실 겁니다. 이거 부럽군요.”
말 같지도 않은 공치사가 오간 뒤, 제후들이 여왕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여왕은 흥미없는 듯 형식적인 대답만 하며 그들과의 대담을 이어갔다.
“소문이 자자한 여왕 폐하를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막시밀리안과의 인사는 조금 달랐다.
다른 제후들이 마지못한 티가 역력한 모습으로 인사를 해오는데 반해, 막시밀리안은 달랐다.
그는 무척이나 반갑단 표정으로 여왕을 맞았다.
‘나한테 무척 호의적으로 구는군. 왜지?’
잠깐 생각하던 여왕은, 이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어지간히도 종교에 헌신적이군.’
막시밀리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여왕은 그야말로 자신의 롤모델 그 자체였다.
구교와 신교의 종교 다툼을 현명히 조율한 자.
대외적으론 카톨릭 이미지를 유지해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면서, 교황과 담판을 지어 나라 안의 신교도들을 지켜내지 않았나.
덕분에, 영국 내에선 종교의 자유가 존재했다.
왕자는 그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잘 써먹을 수도 있겠는데.’
저 막가파 왕자와의 친분을 유용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여왕이 사르르 미소를 지어주었다.
“반갑습니다, 왕자.”
이렇게, 여왕은 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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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단과 합류한 뒤.
우리는 빈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거리는 길었으나, 도중에 머물 숙소는 충분할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어서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휴식 도중 내게 배정된 응접실에서 페르디난트와 단 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간 수고가 많았겠어.”
내 말에, 왕자가 묘하게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진 그렇게 다정하시더니, 지금은 차가워지셨군요.”
‘아니, 조금 전까진 연기였잖아?’
내가 당황하는데, 왕자가 내 속을 읽은 듯이 말했다.
“어차피 수도에 도착한 이후에도 연기를 계속하실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같이 있는 동안에도 아까처럼 편히 말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으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지금은 이 말투에도 익숙해졌지만, 역시 내게 편한 건 한국에서 살 때와 같은 말투였으니까.
어차피 왕자는 그리 경계할 대상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편하게 말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왕자가 당황할 정도로 말이다.
“일 친 놈은 안 나왔던 것 같더라. 놈이 자리잡은 곳이 브레멘의 바로 위쪽인 함부르크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왕자는 한동안 무척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선제후에게 그럴 의무는 없으니까요. 결혼식이 이어질 동안 숨죽인 채 그 도시를 소화하고, 나중에 모른 체할 작정일 겁니다.”
흠, 뭐 그렇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아까 좀 이상하던데? 선제후들 쪽의 인물은 그렇다치고, 황제 쪽 인물들은 왜 저렇게 표정이 안 좋아?”
나는 조금 전 환영단의 얼굴을 생각하며 물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내가 왕자와 사이가 좋아보이면 좋아해야지, 왜 저렇게 얼굴을 구겨? 따지고보면 나는 지금 황제를 구원해준 상황 아닌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나와 달리, 왕자는 짐작가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폐하께선 절 경계하기로 결심하신 것 같더군요.”
“경계한다고? 그대, 아니 너를?”
그건 편지에서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였는데.
“예, 그렇습니다.”
왕자가 짧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요는 황권을 위협할지 모르는 왕자를 경계한다는 것.
“이해는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계속 황제를 배출하려면, 가문에서 내세우는 황제 후보는 하나뿐인 것이 좋으니까요.”
그래서, 영국 여왕이 사리분별도 못하고 왕자에게 푹 빠진 기색이니까 경계했다는 건가?
“이해는 합니다만, 기분은 썩 좋지 않군요. 저는 한번도 황제 자리를 노린 적이 없는데, 제 아버지는 저를 배제대상으로 낙인 찍은 것 아닙니까.”
왕자는 무척 상심한 듯 보였다.
나는 무어라 위로해줘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건 영 젬병인데 말이야.’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드러운 위로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그냥 내 식대로 말하는 수밖에.
“그대, 아니 네 아버지는 참 바보야. 황동으로 이루어진 왕관을 황금이라 착각하고 있으니.”
왕자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똥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를 향해 가볍게 웃어주며 말했다.
“어차피, 제국의 황제 따윈 머지 않아 아무런 가치도 없어질텐데 말이지.”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 말 대로야. 생각해 보면 알잖아? 신성로마제국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본래 다양한 나라였던 것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은 힘.
그것은 오로지 종교와, 교황에게서 나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나.
“교황은 벌써 200년 가까이 제국의 황제 선출에 관여하지 못했어. 황제를 뽑는 것은 제후들이고, 이미 그들의 종교조차 갈라진 지 오래지.”
이미 분열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머지 않아, 황제는 이름뿐인 존재가 되리라.
“영리한 네가 황제가 된다면 또 모르지만, 신성 제국의 황제가 될 거라면서 신교도를 추종하는 막시밀리안이 황제가 된다면? 글쎄, 아마 제국이 무너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걸. 황제 자리엔 아무런 가치도 없어질 거야.”
그래서 나는 제국의 황제자리 따위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보단 선제후가 훨씬 알짜지. 선제후는 곧 통치하는 나라의 왕이나 다름 없으니까. 게다가 제국이 무너지기 전까지 이득도 단단히 챙길 수 있고 말이지. 그래서 나는 게 꿈을 지지해. 페르디난트. 그깟 황제보다 몇 배는 영양가 있는 꿈인걸. 너는 네 아버지보다 훨씬 더 멀리 보고 있는 거야.”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던 페르디난트가, 내 마지막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렷다.
“설마, 이 모든 장황한 이야기가 저를 위로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까?”
“그래서, 뭐. 나는 위로엔 재능이 없어.”
내가 뚱한 표정을 짓자, 페르디난트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재능이 없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덕분에 충분히 나아졌습니다.”
못 미더웠지만, 그는 정말 괜찮아진 것 같았다.
페르디난트는 기운차게 이야기했다.
“좋습니다, 폐하께서 응원해주신 선제후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형님이 저지른 돌발상황부터 처리를 해야겠군요.”
아, 그 부분은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다.
“내가 직접 막시밀리안과 대화를 해보려고 해. 그는 내게 호의적인 눈치였으니까.”
왕자는 대번에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단단히 마음을 굳힌 차였다.
“틀림없이 막시밀리안의 뒤에서 속삭인 자가 있을 터. 막시밀리안과 대화를 통해, 그 배후를 찾아내겠어.”
아마 배후는 십중팔구 한자동맹일 것이다.
왕자를 통해 그들의 꼬리를 잡는다면, 이후의 자유도시 정복 계획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폐하의 뜻이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조심하십시오. 제 형님이긴 하지만, 이번에 보셨지 않습니까. 무슨 행동을 할 지 모르는 자입니다.”
“너무 걱정 말게. 아니, 걱정 하지마. 나를 놀래키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동네 최고 미친년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혹시 저와의 혼인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내가 틀렸다.
제국의 차기 황제는, 생각 이상으로 미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