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화(1/675)
제 1화
“찾았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궁전이 눈앞에서 번쩍거린다. 궁전의 바닥과 기둥뿐만이 아니라, 궁전을 에워싸고 있는 공동 전체가 황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어떤 대부호도 이렇게나 많은 황금을 소지하지는 못했으리라.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번쩍이는 모습이, 꼭 황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천국의 길을 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세운은 알고 있었다. 이곳이 ‘천국의 길’과 완전히 상반되는 곳이라는 걸.
-플레이어 정세운이 ‘만마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만마전(万魔殿), 또는 판데모니엄(Pandemonium).
일만의 마귀가 거주하는 곳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곳은 지옥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탐욕의 마신이 악마들을 이끌고 검은 구름을 토하는 지옥의 산을 뚫어 얻어 낸 금괴를 사용하여 만들어 냈다는 신전.
칠죄종에 해당하는 일곱 마신이 세계의 멸망을 논하기 위해 총회를 벌인 장소로도 유명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여기까지 떨어졌을 줄이야.”
지금 세운의 위치는 탑의 92층.
끝을 알 수 없다고 알려진 탑 속에서, 현재까지 플레이어가 다다른 가장 높은 층이었다.
하지만, 만마전은 악마 중에서도 주신급으로 알려진 일곱 마신이 모여들던 장소인 만큼 본래라면 성좌들이 자리 잡은 탑의 꼭대기 층에 있어야만 하는 건축물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제3차 신마대전(神魔大戰).
그 전쟁으로 인해 마신을 포함한 탑의 모든 악마가 섬멸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때문에 만마전을 포함한 마의 잔재는 모두 꼭대기 층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 덕분에 세운이 만마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신마대전을 통해 마의 세력이 섬멸당한 후, 탑에는 평화가 찾아왔었다.
‘성좌들이 모두 삼켜지기 전까지는 말이지.’
그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악마들이 소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좌가 거주하는 탑의 꼭대기에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아우터(Outer).
탑의 꼭대기보다 더욱 높은 하늘 어딘가에서 나타났다는 미지의 적.
당시 성좌의 절반을 차지하던 악신들이 전부 소멸한 것은 물론, 악신들을 상대하며 선신들 역시 세력이 크게 약해진 상태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중립신들 역시 그 수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아우터는 신의 힘마저 초월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성좌들이 필사적으로 아우터들을 막아 보았지만, 끝내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지.’
탑의 꼭대기를 차지한 아우터들은 자신의 몸을 나누어 아래로 흘려보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몬스터들이 공포를 느끼며 아래층으로 쏟아져 내렸다.
성좌가 사라지며 덩달아 힘을 잃은 플레이어들이 그 모두를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아우터의 잔재가 도착하기도 전에, 플레이어의 사회는 크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게 바로, 탑이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었다.
-플레이어로서 만마전에 처음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00,0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신역(神域)에 입장하였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0,0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역시, 만마전.
발을 내딛자마자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공적치라고도 불리는 포인트가 쏟아졌다.
평소라면 웃음꽃이 활짝 필 만한 상황이었겠지만.
“어차피 이제 쓸 일도 없는 거, 받으면 뭐 하나.”
아우터로 탑을 구성하던 사회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포인트를 얻어도, 쓸 곳이 없어진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운은 가볍게 쓴웃음을 삼키며, 번쩍이는 황금 위를 걸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곳곳에 아름다운 장식이 보였다.
“진짜 화려함 그 자체네.”
과연, 탐욕의 마신이 지은 건축물이랄까?
드워프가 아니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아름답고 섬세한 세공이나, 분수를 통해 뿜어지는 황금빛 액체. 거기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일곱 마신의 조각상까지.
“제우스의 신전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신 중의 신.
올림포스의 12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주신으로 불리는 제우스의 신전과도 비교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신전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쿠릉!
파스스-
“거 성격 한번 더럽게 급한가 보네.”
신전 전체를 울리는 진동과 천장에서 떨어지는 금가루들.
92층에 남은 마지막 플레이어인 세운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지, 아우터의 잔재가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조금 더 걸으니 신전의 내부로 통하는 화려한 입구가 나타났지만, 이곳은 세운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분명 있을 거야.”
만마전은 일곱 마신이 총회를 벌인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 주인은 누가 뭐래도 탐욕의 마신, 마몬이었다.
신마대전을 통해 마몬을 포함한 모든 마신이 소멸한 지금, 세운이 만마전에서 찾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마몬의 창고.’
탐욕의 마신이 영겁의 시간 동안 모아온 금은보화들.
온갖 서적을 뒤지고, 현자의 지식을 캐내고, 던전의 히든 피스를 모으며 알아낸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유 스킬,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합니다.
지잉!
세운의 머리 위로 나침반을 닮은 금빛 화살표가 떠오른다.
제대로 된 성좌의 선택도, 압도적인 전투 능력도 없던 세운이 탑의 92층까지 올라와 이 만마전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고유 스킬.
여정의 지침표.
탐험, 모험, 탐색 등에 있어서는 최고로 평가받은 세운의 스킬이었다.
뭐, 그 덕분에 사람들에게 이용도 당하고 위험했던 적도 많았지만, 이 스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드드득-
“잘도 숨겨놨네.”
신전의 외진 구석, 벽의 중앙을 밀며 황금 촛대를 기울이니 바닥이 열리며 넓은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마전에 숨겨진 비밀 계단.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곳이 바로 탐욕의 마신, 마몬의 창고로 향하는 길이었다.
쿵! 쿠궁-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발밑의 진동이 강해졌다.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느낀 세운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나선형으로 휘어진 계단을 몇 번이고 돌아가자, 마침내 창고의 문이 보였다.
오직 탐욕의 마신만이 입장할 수 있는 문 위로 손을 올리자.
파직!
마나가 전기처럼 튀어 오르며 세운의 손길을 거부했다.
“펠체스. 그 자식한테 고마워할 날이 오다니.”
세운이 주머니에서 황금열쇠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 어떤 감정 스킬로도 아이템 정보가 확인되지 않았던 열쇠.
최고위 던전에서 얻어 낸 보상임에도 용도를 확인하지 못하자, 보상이라며 열쇠를 던져주었던 펠체스의 역겨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세운도 한동안 열쇠의 존재를 잊고 있었지만, 만마전을 조사하면서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열쇠가 바로, 마몬의 창고에 입장하기 위한 황금열쇠라는 것을 말이다.
철컥!
끼이익-
거대한 황금 문이 열린다.
오로지 황금만이 가득했던 만마전 안에서, 처음으로 황금 이외의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 이게 다 보물이라고?”
-‘탐욕의 보물창고’에 입장하였습니다.
-플레이어로서 탐욕의 보물창고에 처음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00,0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신전을 보았을 때도 그저 ‘대단하네.’ 정도로 그쳤던 세운의 눈이 황금처럼 반짝였다.
“저주받은 검, 티르빙(Tyrfing)에 천마신공(天魔神功)의 무공서, 잊혀진 8서클의 고대 마법서에 용의 심장인 드래곤 하트까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보물들이 이 넓은 창고 안에 가득 쌓여 있었다.
플레이어는 물론, 신이 보더라도 침을 줄줄 흘릴 만한 물건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세운도 한 명의 플레이어인지라, 순간 탐욕에 빠져들 뻔했지만.
쿠구궁!
“이럴 때가 아니지.”
때마침 울려오는 진동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욕심을 억누르며, 수많은 금은보화의 사이를 헤치며 창고 안을 헤집었다.
보물의 양이 어찌나 많은지, 원하는 것을 찾아내려면 몇 달 동안은 이 안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았지만, 세운에게는 ‘여정의 지침표’ 스킬이 있다.
머리 위의 금색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아이템을 찾아낼 수 있었다.
[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무너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뭐, 벗어난다고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모래시계를 사용해 봤자, 되돌릴 수 있는 건 ‘사용자의 시간’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되돌려 봤자, 결국은 지금의 순간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신마대전을 막는다면.’
최소한, 아우터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있지 않을까?
세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악마들의 힘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이용한다면.
‘탑을 오르고, 내가 직접 아우터들을 막아 낸다면.’
최소한,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자잘한 복수는 덤이고.’
턱!
이미 앞으로의 상황을 모두 생각하고 온 것이기에, 모래시계를 사용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탑’에서의 시간을 처음으로 되돌립니다.
새로운 시작.
계획은 이미 완벽하다.
탑을 오르며 여정의 지침표와 각종 서적, 플레이어들을 통해 얻은 히든 피스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무슨 짓을 해서든, 지금과 같은 상태는 막아내고 말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일은 행하지 않겠다.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하였습니다.
-모래알이 모두 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9분 58초…….
모래시계를 되돌리자, 금빛 모래알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린다.
인과율을 역행하는 행위인 만큼,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세운이 그것을 한가하게 기다릴 틈도 없이.
콰앙!
우르르-
“용케 여기까지 찾아왔네.”
황금으로 이루어진 창고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마신의 궁궐인 만큼, 그 내구력은 신조차도 쉽게 부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할 터인데.
과연, 성좌를 삼키고 탑의 꼭대기를 차지한 아우터다운 힘이었다.
“그-어어!”
무너져 내린 천장의 사이로 아우터의 모습이 언뜻 내비쳤다.
고막이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울부짖음. 본체도 아닌, 아우터의 잔재일 뿐인데도 마주치는 순간 손이 덜덜 떨려온다.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녀석을 피해 다리를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10분이라. 어디, 그동안 실컷 즐겨 볼까?”
[ 제우스의 번갯불, 아스트라페 ]– 최초의 거인 키클롭스가 올림포스 12신의 왕, 하늘을 다스리는 신인 제우스를 위해 제작한 세 개의 보물 중 하나.
파지직!
세운의 손 위에서 뇌신의 번갯불이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