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0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04화(100/675)
제 104화
결국 세운의 말대로 왼쪽 갈림길을 향해 나아갔다.
고창석이 의아해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세운이 걸어온 길을 알고 있던 터라 말없이 그 선택에 따라주었다.
“어째 몬스터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구먼. 혹시 제대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럼 그것대로 나쁘지 않죠. 시련을 일찍 끝마칠 수 있으니까요.”
“흐음, 말은 그렇게 해도 출구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구먼.”
갈림길 이전에는 죽자고 달려들던 몬스터 무리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그저 어두운 통로가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었다.
몬스터가 안 나타나자 고창석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관찰하였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동굴, 조금 이상하구먼.”
“뭐가요?”
“그냥 평범한 동굴인 줄 알았는데, 볼수록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이 보여서 말이네.”
고창석이 동굴의 천장을 가리켰다.
누가 다듬은 듯이 매끈해 보이는 천장.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저게 뭐가 이상하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테지만, 세운은 얼마 안 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라면 무릇 종유석이나 석순 같은 게 있게 마련인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렇긴 하죠.”
“만약 물이 아닌 바람이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동굴이라고 해도, 뭔가 영 어색하단 말이지.”
“동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허허, 밖에 있을 때 내 대장간 앞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었다네. 그런 의미로, 여긴 뭔가 어색하다네.”
그의 말에 공감은 가지만, 세운 역시 이에 대해서는 아는 점이 없었다.
이 길의 끝에 히든 피스가 존재하긴 하지만, 고창석이 말하는 것과 지금의 히든 피스는 큰 관련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예를 들면 뭔가의 굴이라던가……. 크흠, 아니라네. 이건 너무 간 것 같구먼.”
“굴이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탑에는 다양한 몬스터가 존재하고, 이 동굴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대부분은 벌레 형 몬스터다.
그러니 어쩌면 이 동굴이 어떤 몬스터가 만든 굴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세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몬스터는 없었다.
이 길의 끝에 있는 녀석도 이런 굴을 팔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주위를 경계하면서 나아가던 중.
세운이 걸음을 멈추고 고창석에게 신호를 주었다.
“……뭔가 있나?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만.”
“여기, 자세히 봐보세요.”
“그렇게 말해도 아무것도……. 음?”
마법의 불빛에 비춰, 전방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가느다란 실. 두께가 어찌나 얇은지 빛을 비추어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건 거미줄 아닌가?”
“그런 것 같네요.”
지금부터가 진짜다.
회귀 전의 세운은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가 멋도 모르고 거미줄을 건드렸다가 이후 나타난 몬스터에게 쫓겨 다녔으니까.
그러다가 ‘그것’을 발견했지만, 몬스터 때문에 열 시도도 못 해 보고 도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이라면 몬스터를 상대할 자신도, 그것을 열 자신도 있었다.
“어떻게 할 텐가? 촘촘한 게, 전부 피하면서 나아갈 수는 없어 보이는데.”
“저희가 굳이 귀찮게 거미줄을 피하면서 갈 필요는 없죠.”
“허면?”
화륵!
세운의 손 위에서 붉은 불씨가 일렁였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인페르노 ]– ‘화염방사기’라고도 불리는 화탑의 마법으로써 일직선으로 고온의 화염을 분사한다.
“저쪽에서 먼저 마중 나오게 하면 되죠.”
화르르륵!
붉은 불꽃이 전방을 휩쓸었다.
거미줄이 아무리 질기고 튼튼해 봤자, 4 서클의 불 마법 앞에서는 볼품없이 타들어 갈 뿐이었다.
동굴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건 자제할 생각이었지만, 괜히 여기서 시간을 끌긴 싫었다.
만약 산소가 부족해지면 마법을 통해 뒤에서 산소를 조달해 오면 그만이다.
무모한 방법이지만, 뛰어난 실력만 뒤받쳐 준다면.
“키에에엑-!!”
그 어떤 방법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화염이 거미줄을 불태우며 거침없이 나아가자, 동굴의 안쪽에서 기이한 비명이 들려왔다.
앞서 등장했던 몬스터들의 하찮은 위협과는 달리, 피부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기괴한 비명이었다.
곧이어, 바닥에서부터 쿵쿵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옵니다.”
“키에에엑!”
어찌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비명이 들린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영화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기분이구먼.”
여덟 개의 다리로 벽을 타고 기어 온 녀석이 여덟 개의 홑눈을 빛낸다.
잔털에 남은 잔불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지만, 외피에 마법 저항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았다.
녀석은 감히 자신의 거미줄에 불을 저지른 침입자에게 곧바로 독니를 내보였다.
이미 세운과 고창석이 적이라는 것을 인지하였기에, 대치 시간 따위는 없었다.
쿵!
“공격은 내가 막겠네!”
고창석은 어느새 배틀 해머를 집어넣고, 등에 매달고 있던 타워 실드를 꺼내 들었다.
거미를 보는 순간 자신의 힘으로는 타격을 입히기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다.
빠른 판단 능력. 저 정도라면 어지간한 전사계 플레이어 이상이었다.
“감사합니다.”
세운은 그 찰나의 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거미가 이빨이 막히며 주춤거리는 사이에 재빠르게 꺼내 든 뒤랑달을 첫 번째 다리에 휘두른다.
푹!
단번에 썰려 나갈 줄 알았는데, 외피가 어찌나 단단한지 검이 절반쯤 박히는 데 그쳤다.
이것만으로도 다리가 제 기능은 못 하겠지만, 세운은 이대로 그칠 생각이 없었다.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서걱!
“키이에엑!”
뒤랑달에 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거미의 다리가 깔끔하게 베어졌다.
거미가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나며 여덟 개의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거미줄을 불태운 침입자에게 분노하여 달려왔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막았는데도 손이 얼얼하구먼. 튜토리얼 때 봤던 보스 몬스터란 것들보다 강한 것 같은데?”
“튜토리얼은 어디까지나 튜토리얼이었으니까요.”
거미가 고민을 마쳤는지 숨을 들이마시듯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아랫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입에서 하얀 거미줄이 뭉텅이로 뿜어져 나왔다.
이에 세운이 뒤랑달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마법을 발현하였다.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르륵!
흑탑의 묘리까지 적용되어 검붉게 타오르는 불꽃.
외양만 본다면 흑마법인 ‘다크 플레어’와 비슷해 보이지만, 고서클인 마법인 만큼 그보다 훨씬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다.
거미가 내뱉은 거미줄 따위는 인페르노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그사이…….
“키에엑!”
화염을 뚫고, 거미가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거미줄이 타오를 것 정도야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움직임.
아무래도 동굴의 안쪽에서 이미 마법에 당한 상태였기에 세운의 공격을 예측한 모양이다.
불꽃 정도야, 외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때랑은 다를 텐데?”
거미가 기억하는 불꽃은 세운의 손에서 멀리 떨어져 화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거리가 가까워 온도는 최대 화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흑탑의 묘리까지 가미되어 화력이 크게 뛰어올라 있었다.
치이익-
거침없이 달려들던 거미의 털이 모조리 타올랐다.
불꽃은 그에 그치지 않고 거미의 몸 전체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다리가 녹아내리고, 두꺼운 몸통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며 쪼그라들었다.
거미와 세운의 거리는 불과 5m.
녀석으로서는 다리를 몇 번만 움직이면 닿을 법한 짧은 거리였지만…….
“키이이-”
녀석은 기다란 앞다리를 내뻗은 채, 결국 세운에게 닿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마법의 여파로 동굴의 온도가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같이 다니던 동료가 고창석이 아니었다면, 이 열기 속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힘들어했으리라.
“엄청난 열기구먼. 대장간의 불꽃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
전투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끝났다.
그래도 회귀 전에 마주쳤을 때는 어지간한 무기로 상처하나 낼 수 없었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였는데.
‘하긴, 5 서클이라면 중층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실력일 테니까.’
그런 마법을 고작 4층의 시련에서 사용했으니, 제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세운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동굴 왕거미’를 포식하였습니다.
-양분을 흡수하여 지혜가 8, 민첩이 3 상승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이가 바싹바싹 잘 익었다며 만족해합니다.
세운은 열기도 식힐 겸, 불도 끌 겸 하여 앞으로 바람을 끌어왔다.
대충 주변이 정리되자, 바로 길을 따라 나아갔다.
불꽃 때문에 동굴의 벽면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도착한 동굴의 끝에는.
“아무래도 아까 그 거미의 집이었나 보구먼.”
“그러네요.”
녹아내린 거미줄의 흔적과 뼈만 남은 몬스터의 사체가 가득했다.
문제는 더 이상 길이 없다는 것.
“흐음, 아쉽지만 이번에는 자네 선택이 틀렸나 보구먼. 얼른 돌아가지.”
“잠시만요.”
우웅!
세운이 서칭을 사용하여 주변의 마나를 감지하였다.
회귀 전에는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가면 될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으니까.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 자네 뭐 하는…….”
쾅!
세운이 2층의 시련에서 돌다리를 내려찍었던 해머를 꺼내, 벽면을 강타했다.
검은 그을음이 벗겨지고,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지나온 길을 제외하고는 삼방이 막힌 곳이었기에, 충격음이 귀를 왕왕 울렸다.
“자, 잠깐 그러다가 동굴이 무너지면!”
쾅!
고창석이 말려보려 하였으나, 세운은 다시 한번 과감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타격점을 중심으로 생겨난 금이 거미줄처럼 넓게 퍼져나갔다.
슬슬 다 돼간다고 생각한 세운이 망치에 내공까지 실어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쩌저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더욱 심해지더니, 이내 돌조각들이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떨어졌다.
고창석은 동굴이 무너지는 줄 알고 기겁을 하였으나, 걱정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저건?”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요.”
부서진 벽면 사이로.
-히든 퀘스트, ‘숨겨진 문’을 완료하였습니다.
-시련 ‘동굴 지나기’에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문처럼 보이는 매끈한 벽면이 나타났다.
문은 동굴의 벽 안에 숨겨져 있던 거로도 모자라, 침입을 거절하겠다는 듯이 굳건한 자물쇠로 봉인되어 있었다.
황금색 딱정벌레 문양이 그려진 자물쇠였는데, 무언가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세운도 찾지 못했던 숨겨진 히든 피스로 열쇠가 숨겨져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곳일까?
뒤랑달로 자물쇠를 내려쳐 보았지만, 자물쇠는 금빛으로 빛나며 세운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 어떠한 접촉도 거부하는 완벽한 봉인.
다른 플레이어라면 여기서 포기하고 물러났을 게 분명하다. 여기서 아쉬워해 봤자, 결국 문을 열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나, 세운은 달랐다.
‘드디어 이걸 확인해 볼 수 있겠네.’
아공간 주머니에서 아름다운 열쇠 하나가 나타났다.
세운이 튜토리얼 공적치 랭킹 1위 보상으로 획득한 ‘작은 열쇠’였다.
아이템 정보 확인으로는 그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던 열쇠.
그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