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0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09화(105/675)
제 109화
“오, 여기가 우리 거주지인가?”
“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모로 편리하구먼. 그런데 서야 양이 처음 클랜장을 맡았을 때는 별다른 기능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5층 이상부터 개방된 기능이에요. 가격도 꽤 비싸서 다른 플레이어들은 알아도 구입하기 어렵겠지만요.”
6층의 시련 대신 세운과 고창석이 이동한 곳은 메마른 황야였다.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평야.
그나마 저 멀리 물길이 보이는 게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가격? 얼마인데 그러나?”
“백만 포인트요.”
“배, 백만이라고 했나? 그걸 자네 혼자?”
“포인트야 탑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레 쌓일 테니까요. 어차피 백만 포인트야 제가 가진 포인트의 반도 안 되는 수치였고.”
“아직 백만 포인트가 넘게 있다는 뜻이구먼. 허허, 자네는 알면 알수록 놀랍단 말이지.”
고창석이 크게 뜬눈으로 세운을 바라보았다.
하긴, 지금 세운이 가지고 있는 공적치는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인 수치였다.
이 무렵 평범한 플레이어가 획득하는 공적치라 해 봤자 간신히 몇십만을 넘는 수준이었으니까.
실제로 이 거주지는 세운처럼 클랜장이 독단으로 구입하는 게 아닌, 클랜원의 포인트를 모아 사들이는 게 정석이었다.
그편이 아니면 100만 포인트는 구입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격이었다.
“우리 자리가 생긴 건 좋지만, 너무 아무것도 없구먼.”
“일단 그 두 명이 오기까지는 기다려야죠.”
“그 꼬맹이들 말이구먼. 허허, 둘이라면 믿을 만하지.”
세운으로서도 이 황야에서 재료도 없이 거주지를 건축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해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때문에 5층에서 스톤 라바를 상대하느라 고갈된 마나를 채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조금 쉬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휴식이었을 뿐이었다.
“장비는 이리 주게! 내 새것같이 수리해 주지.”
“괜찮습니다. 4층에서도 이미 손질해 주셨고…….”
“무슨 말인가! 가능하다면 장비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손질하는 게 최선이라네. 그리고 보게. 많이 더러워졌지 않나?”
세운이 갑옷을 내려보았다.
스톤 라바의 움직임이 워낙 컸던 터라 온갖 흙먼지가 묻어 있는 것은 물론 자잘한 흠집이 꽤 많이 보였다.
5층에서의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던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창석에게 장비를 벗어주었다.
어르신에게 일을 떠넘기는 거 같아 죄송하지만, 그는 오히려 장비를 주지 않으면 화내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고 있었으니까.
“그 검도 줘보게. 그 돌덩이를 갈라냈으니, 날을 좀 갈아둬야 하지 않겠나?”
“아, 이 검은…….”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할 말이 있으니 검은 가지고 있으라며 부리를 기분 좋게 흔듭니다.
‘음?’
뜬금없는 마몬의 메시지.
유난히 기분 좋아 보이는 걸 보니, 케프리의 애완벌레인 스톤 라바를 잡은 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검은 왜 가지고 있으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손해 볼 제안은 아닌 것 같아 마몬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검은 괜찮아요. 방어구만 좀 부탁드릴게요.”
“그러겠나? 흠, 하긴. 대충 보니 날도 멀쩡하구먼. 그 돌덩어리를 가르고도 멀쩡하다니, 명검이라는 말로 넘어가기 힘든 검이야.”
뒤랑달에 미련이 남은 것인지 그가 조금 주춤했지만, 곧 미련을 버리고 장비 손질을 준비하였다.
늘 그렇듯이, 장비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한없이 초롱초롱했다.
그사이, 세운은 그와 잠시 거리를 벌리고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고창석의 말대로, 바위를 갈랐음에도 날 하나 상하지 않았다.
‘질퍽한 진흙’으로 인해 내구도 소모를 막았다지만, 도저히 B급 아이템으로 보기 어려운 성능이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기꺼운 마음으로 당신에게 보상을 하사하려 합니다.
‘보상?’
굳이 바라지도 않았는데 보상을 주려 한다니. 그것도 탐욕의 마신인 마몬이.
케프리라는 신을 방해한 게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바닥에 검을 꽂아 넣으라고 지시합니다.
푹.
지시를 듣자마자 세운이 망설임 없이 검을 땅바닥에 내려찍었다.
큰 힘을 주지 않고 가볍게 찍었음에도, 검신의 절반 이상이 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황야인 만큼 대지도 단단한 편이었는데, 뒤랑달의 예기는 이미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 직후.
우우웅-
뒤랑달의 검신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갔다.
세운이 무슨 일인지 이해되지 않아 눈을 껌뻑거리자, 마몬이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뒤랑달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그 안에 담긴 힘의 일부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
튜토리얼 때 마몬에게 빌려줬던 뒤랑달.
그저 복제에만 매진하는 줄 알았는데, 그사이 무언가 발견한 게 있나 보다.
의문만이 가득하던 세운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저 말은 즉, 뒤랑달의 봉인을 풀어주겠다는 말이니 말이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봉인을 완벽하게 푸는 건 안 되겠지만, 한 단계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치켜듭니다.
우웅!
뒤랑달을 둘러싼 보랏빛이 스펀지에 빨려 들어가듯, 검에 빨려 들어갔다.
아직 땅에 박혀 있는데도, 이전보다 선명해진 황금빛 문양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검을 빼 드니 ‘스릉’ 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봉인) ]분류 : 장검
등급 : A
설명 : 전설의 영웅들이 사용해 온 전설의 검. 아직 주인의 힘을 완벽하게 인정받지 못해 잠재력이 일부 봉인되어 있다.
능력 : 1. 영웅의 검 – 절삭률이 50% 상승한다.
2. 영웅의 자격 –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공격력이 30% 상승한다.
3. 바위를 쪼갠 검 –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칼날이 무뎌지거나 이가 빠지지 않는다.
4. 부서지지 않는 검 – 그 어떤 공격으로도 내구도가 소모되지 않는다.
5. (봉인)
검을 잡은 세운이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주었다.
B급이었던 뒤랑달이 A급이 된 걸로도 모자라, 봉인되었던 네 번째 능력이 개방되었다.
부서지지 않는 검.
어차피 바위도 쪼갤 만큼 튼튼함 검이었기에 다른 플레이어라면 대충 넘어갈 능력이었지만, 세운에게는 달랐다.
‘이거라면 보구를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겠어.’
스톤 라바를 상대할 때 깨달았던 점.
검의 성능이 뛰어난 만큼 보구의 힘을 100%에 가까이 발현할 수 있고, 검의 내구도가 받쳐주는 만큼 보구의 힘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런데 매개체가 되는 검이 A급의 명검이라면?
게다가, 그 내구도가 절대 소모되지 않는다면?
마음 놓고 마몬의 보구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검 형태의 보구에 한정된 얘기지만 앞으로 무기가 망가질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부터가 크나큰 장점이었다.
“감사합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앞으로 벌레 녀석이 귀찮게 할지도 모르니, 그에 대한 보상일 뿐이라며 날개를 파닥입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 일출의 신, 케프리.
주신급에 가까운 성좌의 복수라지만, 그렇게 걱정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어차피 성좌가 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의 신도들은 대부분 탑의 중층 이상에 존재했으니까.
세운이 그들을 마주칠 때쯤에는…….
‘그렇게 강한 세력은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들의 전력을 아득히 초월했으리라.
누군가 자만심이라 부를지 모르겠지만, 현재 자신의 성장 속도와 케프리의 신도들이 가진 전력을 알고 있는 세운이었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얼른 써 보고 싶은데.’
능력에는 따로 적혀 있지 않았지만, 등급이 상승한 만큼 검의 예리도 역시 상승해 있었다.
검을 휘두르자 공기가 잘려 나가듯 한 절삭음이 들려온다.
짧은 검무를 펼치며 그 기분 좋은 절삭음을 감상하던 중, 뒤쪽에서 새로운 기척이 느껴졌다.
“우와! 여기 뭐예요? 신기하다! 진짜 우리 땅이야?”
익숙하게 들려오는 활발한 목소리.
‘아름……. 아니, 다운이었나?’
미묘한 억양 차이로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다.
쌍둥이 자매는 쌍둥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으니까.
둘이 작정하고 속이면, 클랜 내에서도 유서아를 제외하고는 둘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와! 혈랑 오빠!”
“일찍 왔네.”
“한철 오빠가 쾅! 쾅! 하더니 바로 눕혀 버렸거든요! 4층의 시련도 그렇고, 진짜 믿음직하다니까요?”
세운을 발견하자마자 활기차게 다가오는 한다운의 옆에 강한철이 서 있었다.
거친 전투를 증명하듯, 그의 갑옷에는 오우거의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하긴, 튜토리얼에서 세운과 함께 굶주린 오우거를 사냥하고 다녔던 강한철이었으니. 다 자라지도 않은 오우거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보다, 여기 진짜 우리 땅이죠? 여기에 마음 놓고 건물 지어도 되는 거죠?”
“응. 안 그래도 그거 부탁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와아! 그럼 이제 이동형으로 안 지어도 되는 거죠? 완전히 설치형으로 지어도 되죠?”
“물론이지.”
“야호! 기대하세요! 저희가 진짜 멋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 아름이는 아직 안 왔나?”
“우리 다음으로는 너희가 처음이야.”
“흠, 하긴. 아름이는 정필 오빠랑 붙었다고 했으니까 조금 걸릴 거예요.”
한아름과 박정필의 조합이라.
둘 다 제대로 된 전투계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조금 걱정되긴 했다.
박정필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같지만, 한아름은 어르신보다도 전투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그럼 일단 저 먼저 도면이라도 짜고 있을게요! 아, 할아버지!”
“오, 우리 다운이 왔구나.”
“저랑 같이 도면 짜요!”
“음? 일단은 갑옷 손질부터 끝낸 다음에…….”
“그러지 말고 같이 해요! 네? 네?”
“……허허, 그러자꾸나.”
어차피 인제 와서 도와줄 방법도 없었다.
세운은 다들 멀쩡하게 올라오길 바라며, 자리에 앉아 비어 버린 단전과 서클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으아아아악!”
세운이 우려하던 박정필과 한아름이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이걸 상대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오우거는 장난감 쫓듯이 박정필을 따라가고 있었고, 박정필은 온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한아름은 산의 높은 곳에서 공성 병기를 꺼내 오우거를 조준하고 있었지만.
“아, 좀 가만히 있어 봐요!”
“오우거라고! 오우거! 가만히 있으면 나 뒤진다고오!”
활도 아니고, 조준에 시간이 걸리는 공성 병기로는 오우거를 제대로 조준할 수 없었다.
한참 애를 쓰던 한아름이 신경질을 내며 조준을 포기하였다.
‘그러게, 처음에 허세만 안 부렸어도!’
처음 5층의 시련에 도전했을 때 오우거는 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것을 본 한아름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이 자리에 올라서서 공성 병기를 설치하였다.
아무리 오우거라도, 수면 중에 급소를 당한다면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그것도 일반적인 짱돌이나 화살이 아닌, 제대로 된 공성 병기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박정필에 의해 산산이 깨져 버렸다.
‘야, 자냐?’
‘으헤헤, 이놈 곧 죽을 줄도 모르고 세상 편하게 자고 있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지만, 내가 봐줬다! 자고 있을 때 고통도 못 느끼고 죽게 해 주마!’
한아름이 열심히 공성 병기를 설치할 무렵, 박정필이 자고 있는 오우거의 옆에서 헛소리를 하며 연신 깐죽거렸다.
병기의 설치에 집중하느라 한아름이 이를 말릴 새도 없이.
‘크어어어어!’
오우거가 깨어나고 말았다.
그다음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박정필은 오우거를 피해 도망치고, 한아름은 조준을 포기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난 안 노리네.’
어째서인지 오우거가 박정필의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종종 조준에 실수하더라도 도박 반으로 공성 병기를 작동시켰는데, 위협적임을 깨달았음에도 오우거의 표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아무리 도망친다고 하여도 박정필의 체력은 한계가 있다.
그사이, 한아름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디아블로 클랜의 클랜장, 세운이 자주 쓰던 방법.
공성 병기를 전방으로 조준한 한아름이 아직까지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박정필을 향해 외쳤다.
“오빠! 이쪽으로 달려요!”
“내가 지금 방향 보고 도망치고 있는 것 같냐! 그 높은 곳까지 어떻게 달려!”
“아, 쫌! 그냥 닥치고 달려요!”
“으아아아악!”
박정필이 바닥을 구르며 오우거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가까스로 피해 냈다.
곧이어 그 짧은 틈을 이용해 방향을 바꿔 한아름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경사 때문에 달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으로 속도가 점차 떨어졌다.
그에 반해 오우거는 무식한 힘으로 속도를 유지하며 박정필을 따라왔다.
“빨리 어떻게 좀 해 봐! 아이고 나 죽네에에!”
우렁찬 비명이 들려왔지만, 그와 반대로 한아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지어졌다.
박정필이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이로써 정면으로 달려오는 오우거는 공성 병기의 직선 범위에 들어와 있었다.
이에 그녀가 망설임 없이 공성 병기를 작동시켰다.
“알아서 피해요!”
“뭐?”
투웅!
박정필. 아니, 오우거를 향해 발사되는 탄환.
한아름의 계획대로 오우거는 박정필에게 신경 쓰느라 날아오는 탄환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탄환을 바라보며.
“으아아아악!”
어쩐지, 데자뷔가 떠오르는 박정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