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0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10화(106/675)
제 110화
거주지에 한아름이 도착하자마자 건설 작업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처럼 이동할 걱정 없는 터전을 꾸리는 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 역시 활기차게 쌍둥이 자매를 도왔다.
5층의 시련을 마치고 오느라 피곤할 텐데도 말이다.
“탈락자가 한 명도 없다니. 이건 의외인데.”
“제가 중간에 클랜챗으로 공략법을 몇 개 알렸거든요.”
“음…….”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나요?”
세운의 애매한 반응에 혹시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한 건지 당황하는 유서아.
세운이 5층의 공략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5층의 시련은 어려워 보이지만, 곳곳에 수많은 공략법이 존재하여 플레이어의 냉철함과 전투력을 확실히 끌어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거기서만큼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시련을 통과하길 바랐던 것이다.
튜토리얼 때와 마찬가지로, 세운은 클랜원들이 강하게 성장하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제 공략법을 본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아요. 대부분 이미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서 도전하고 있더라구요.”
“뭐, 괜찮겠지.”
세운이 클랜장을 맡고 있다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건 유서아였다.
그 책임감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을 뿐이니까.
그렇게 한창 거주지가 지어질 때쯤, 저 멀리에서 혼자 고분 고투하고 있는 고창석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건축물은 아닌 것 같아 관심이 생긴 세운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르신, 이건 혹시…….”
“아, 자네인가. 허허, 터전도 잡았겠다. 제대로 된 대장간을 지어보고 싶어서 말일세.”
풀무나 모루, 각종 연장 등. 대장간에 필요한 각종 도구는 물론 화로까지 기본적인 틀은 대부분 준비되어 있었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 디테일이라니.
아무래도 거주지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진작에 대장간의 구조를 생각해 둔 것 같았다.
아마, 쉼터에서의 대장간을 기본으로 하여 설계를 했겠지.
대충 보기에도 그곳과 흡사한 점이 많아 보였다.
“잘 지으신 것 같은데, 뭐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그게 말이네…….”
고창석이 곤란한 얼굴로 화로를 바라보았다.
무기는 물론 두꺼운 갑옷 등도 달궈야 했기에, 화로의 크기가 상당했다.
그런데도 열이 최대한 빠져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게 엿보였다.
그 시선으로, 세운은 이 대장간에서 부족한 점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불이 문제군요.”
“그렇다네. 여기는 장작으로 쓸 나무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공적치로 장작을 구입하긴 영 아쉬워서 말일세.”
“공적치를 그렇게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죠.”
“다음 시련에서 나무가 보인다 해도, 내가 들고나올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잖나. 나도 그 마법이란 걸 쓸 수 있으면 좋겠구먼. 허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화로용으로는 안 어울릴 거예요. 마법에도 마나라는 장작이 필요하니까요.”
“크흠, 그런가.”
이러한 문제 때문에 클랜 전용 거주지에 대장간을 설치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방법이라면, 10층마다 존재하는 쉼터에서 대량의 장작을 조달해 두는 것 정도.
그 때문에 어지간한 대형 길드가 아니고서는 전용 대장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기에는 아쉬워하는 고창석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뭔가 방법이…….’
세운이 머리를 굴려 보았다.
마나석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마나를 지속해서 조달해 줘야 한다.
마몬의 보물 중에서 흑련 가루와 같은 게 있지만, 그것 역시 순간적으로 불길을 키워낼 뿐 대장간에 필요한 지속적인 불길과는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 그게 있었지.’
화륵!
세운이 화로의 안에 불씨를 만들어 냈다.
가장 처음 배운 마법이라 할 수 있는 ‘카샤의 불씨’.
화력은 약하지만, 정령의 힘이 깃들어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꺼지지 않는다는 건 아니라 결국 제한이 있었지만…….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선지자의 불씨 ]–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훔쳐 온 하늘의 불꽃. 신의 힘이 깃들어 있어 절대 꺼지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말이 달라진다.
성냥불처럼 초라하던 카샤의 불씨에 신의 힘이 깃들어 은은한 금빛을 흘리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흐음, 고맙지만 자네도 아까 말했지 않나. 마나가 없으면 마법으로도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말일세.”
“이건 다를 겁니다.”
“……정말인가?”
솔직히, 반은 도박이었다. 이 힘 역시 무기에 깃든 보구의 힘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대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순간.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특별히 인심을 써주겠다며 자신의 창고에서 ‘선지자의 불꽃’을 꺼내옵니다.
화르륵!
마몬의 메시지와 함께 눈앞의 불씨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이제는 불씨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열기를 키운 불꽃 덕분에 대장간 안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거라면…….’
카샤의 불씨에 세운이 지닌 탐욕의 권능, 거기에 레플리카라고는 하지만 실제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마몬의 보물까지.
이 정도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의 불이라는 힘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작은 필요 없고, 풀무질만 잘하시면 화력을 쉽게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오오! 정말 고맙네! 자네, 정말 다재다능하구먼!”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마신께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이 은혜는 뛰어난 결과물로 보이겠다며 감사를 표합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은 숟가락을 거들었을 뿐이라며 당신에게 공을 떠넘깁니다.
평소라면 저렇게 넘어갈 마몬이 아닌데, 케프리에게 한 방 먹인 여운이 아직 남아 있나 보다.
“이거, 얼른 써 보고 싶구먼! 당장 뭐라도 만들어 봐야겠어!”
뜨겁게 타오르는 화로 덕분에, 쌀쌀하던 거주지에 따뜻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 * *
거주지는 생각보다 일찍 완성되었다.
그만큼 쌍둥이 자매의 건설 실력이 뛰어났고, 클랜원의 열정 역시 뛰어난 덕분이었다.
특히, 쌍둥이 자매가 ‘바로 이거야!’라며 만들어 낸 목욕탕은 세운으로서도 감탄할 정도였다.
대장간의 화로와 수로를 연결하여 만든 것이었는데, 덕분에 탑에서 하리라고 생각도 못 한 온수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콰앙!!
“……졌다.”
“움직임이 많이 빨라졌는데? 태을섬수공이 몸에 꽤 익은 것 같아.”
“5층의 시련까지 일부러 태을섬수공만 사용해서 올라왔다.”
“그래도 아직 일 초식이 한계지? 익숙해졌다고 하려면, 최소한 삼 초식까지는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거야.”
“알고 있다. 다음 대련까지는 꼭 이 초식을 숙달하도록 하지.”
세운과의 대련을 마친 강한철이 가볍게 주먹을 털며 대답했다.
세운이야 탐욕의 권능을 이용한 덕분에 순식간에 익힐 수 있었다고 해도, 강한철은 달랐다.
따로 지도를 받는 것도 아니고, 대련 시간에 부딪히며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힌 게 전부인데, 그것만으로도 벌써 일 초식을 완벽히 익혔다.
놀라울 정도의 성장 속도.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듯한 습득력이었다.
대련할 때마다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니 세운으로서도 키우는 재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유서아, 너도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던데?”
“층을 오르면서 깨달은 게 있었거든요. 아, 그리고…….”
“그리고?”
“제 잠재력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유서아의 잠재력, 지배.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잠재력 중에서도 극히 드문 잠재력이었고, 이해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힘을 발휘하는 잠재력이기도 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자신만의 사용법을 깨달은 듯했다.
역시 정석적인 사용법을 안 알려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자신만의 사용법을 알아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것보다, 이놈은 또 안 보이네.’
박정필을 찾던 세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주지에 도착하자마자 한아름이 달려와 투정을 부렸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박정필이 와서 극구 부인했지만, 세운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세운이었기에 상황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전투법이라도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곳에서 완전히 거주해도 되지 않냐는 말이 돌고 있어요.”
“당연히 거주……. 아, 그 말인가.”
이곳이 전용 거주지라고 말하려던 세운이 유서아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모두 몬스터의 전투나 정착하지 못하는 생활에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시련에 도전하지 않고 이곳에서 살면 어떠냐는 말이겠지.
‘나도 그러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솔직히, 현재 디아블로 클랜의 경우는 그 어떤 클랜보다 시작이 잘 풀린 케이스였다.
아마 세운이 아니었다면 클랜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일었을 것이다. 남은 사람들 역시, 폐인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겠지.
회귀 전 지옥 같은 삶을 살아왔던 세운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운은 알고 있었다.
탑을 오르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될 거라는 걸.
“보다시피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 기껏 해 봐야 흙이랑 물. 두 가지뿐이지.”
“식물을 재배하거나 동물을 키우자는 말도…….”
“이 땅, 죽은 땅이야. 식물을 키워봤자 자라지도 않을 거고, 그러면 당연히 먹이가 없으니 동물을 키우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테이머로 각성한 플레이어가 동물이나 몬스터를 클랜 전용 거주지로 데리고 오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가축을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키운다고 해도 먹이를 계속 사 와야 하는데, 그래봤자 밖에서 식량을 사 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공적치로 식량을 구입할 수는 있지만, 공적치가 다 떨어지면? 결국 시련에 도전하는 수밖에 없어.”
“……그렇겠죠.”
“게다가, 그쯤에는 이미 전투 감각이 다 떨어져 있겠지. 너도 경험했다시피, 어설픈 마음으로 탑을 올랐다가는 죽음밖에 없어.”
유서아가 꺼낸 말을 그 누구보다 오래, 또 진지하게 고민해 본 세운이었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탑은 플레이어가 정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제자리에 멈춘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는 건, 결국 죽음뿐이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꽤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아우터들이 나타날 것이다.
미래를 바꾸지 않는다면, 세운이 겪은 탑의 멸망이 다시 한번 반복될 거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저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요. 다만, 본 터가 생기니까 저도 마음이 조금 약해졌나 봐요.”
“이해해. 그러니까 다음 층에 오르기 전까지는 충분히 휴식할 생각이야.”
“세운 씨는 참 신기해요. 이럴 때 보면, 미래에서 오기라도 한 것 같아요.”
“…….”
세운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이전부터 생각하던 사항이다. 그녀에게라면 회귀에 대한 사실을 밝혀도 되지 않을까……라고.
만약 그녀가 이해해 준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짜고 클랜을 이끌기가 더욱 수월해질 테니까.
그리고 사실.
“하늘, 엄청 깨끗하네요. 그렇죠?”
탑의 멸망을 막는다는 거대한 사명감을 함께 짊어질 동료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 무게를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힘들었으니까.
늘 강한 척하며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지만, 세운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