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1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16화(112/675)
제 116화
-‘크리스탈 크리쳐’를 포식하였습니다.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2 상승합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폭식의 권능을 상용하는 게 가능했다.
까득, 까득 거리는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수정과 바위의 파편을 씹고 있는 이빨들.
저러다 이빨이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편을 더욱 작게 조각내며 꿀꺽 집어삼켰다.
저런 강도라면 드래곤의 비늘이라도 씹어 삼킬 수 있으리라.
세운은 물론 유서아도 멍한 눈빛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냥 저 힘으로 몬스터들을 공격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쉽게도 저건 내가 쓰러트린 몬스터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거든.”
-성좌, ‘배고픈 왕자’가 혀를 굴리며 달달한 수정 조각을 한껏 음미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 파편들은 씹는 재미가 있다며 입을 크게 오물거립니다.
베엘제붑이 놈들을 맛보던 중, 세운은 권능에 표시된 놈들의 이름에 주목했다.
‘크리스탈 크리쳐라…….’
회귀 전 수백 수천의 몬스터를 상대하고 조사했던 세운으로서도 처음 듣는 몬스터였다.
그러나 이름을 통해 그 이유 역시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크리쳐.
생물이나 생명체 등을 뜻하는 단어지만, 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에게 사용되는 이름이기도 했다.
즉, 예상했던 대로 이곳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였다.
몬스터들 역시 이 장소를 지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나아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대략 열 마리.
점점 넓어지는 통로에 걸맞게, 크기 역시 처음 만났던 것들보다 커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공략법이 밝혀진 적은 더 이상 위협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내공을 통해 팔괘장의 제삼 초식, 포월장(抱月掌)이 강화됩니다.
와르르-
세운의 손이 뻗어나갈 때마다 크리쳐의 몸체가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처음에는 내공의 분배에 익숙하지 않아 내공을 과도하게 사용하였다면, 지금은 딱 핵에 닿을 정도로 최소한의 내용만을 운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힘이 낭비되지 않아 놈들이 터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세운이 세 마리의 크리쳐를 무너트릴 때쯤, 유서아 역시 처음의 전투와 달리 능숙하게 놈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세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카카강!
처음에는 거센 저항 소리가 들려왔지만 유서아의 검은 맹수처럼 집요하게 꼬리 사이의 빈틈을 노렸다.
그러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크리쳐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즉사는 아니었지만, 예상대로 꼬리가 잘려 나가자 놈이 잠깐의 발작을 보이더니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핵과 신체의 연결부가 끊어졌으니 놈이 다시 일어날 일은 없었다.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는데?”
“6층에서 수련한 게 많이 도움 되는 것 같아요!”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지금이라면 네 번째 다리를 꺼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읊조립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유서아의 사냥에도 가속이 붙었다.
처음처럼 바위에 튕기는 듯한 저항음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쌍검이 한차례 들이닥칠 때마다 놈들의 꼬리가 단번에 잘려 나갔다.
빈틈을 공격하는 방법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이다.
덕분에 열 마리에 달하던 크리쳐가 순식간에 모두 쓰러졌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전투가 일 분이 넘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어느덧 유서아의 표정이 자신감이 차올라 있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수정 파편을 볼 한가득 집어넣고서 황홀한 표정을 짓습니다.
크리쳐를 백 마리쯤 해치웠을까? 드디어 길고 긴 외길이 끝나고,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타났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음…….”
4층의 시련인 ‘동굴 지나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각에 집중해 보았지만 별다른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스캔 마법을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흐름은 물론, 마나의 흔적까지. 그 모든 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동일했다.
“일단 움직여볼까요? 4층처럼 한쪽이 막혀 있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요.”
“그러자.”
가끔 이곳처럼 힌트가 없는 갈림길 역시 존재한다.
그럴 때는 유서아가 말한 것처럼 일단 움직여서 정보를 모으는 게 최선이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어쩐지 수정의 보랏빛이 익숙해 보인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대략 30분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크리쳐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둘의 앞으로 새로운 갈림길이 나타났다.
아니, 이걸 새로운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긴 것부터 시작해서 마나의 흐름, 공기의 흐름 등. 모든 것이 처음 보았던 갈림길과 똑같았다.
“……어쩔까요. 조금 더 가 볼까요?”
“아니, 돌아가자.”
“벌써요? 아직 알아낸 것도 없는데.”
“의심되는 게 하나 있거든.”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 자세히 알려줄 수는 없었다.
역시나 돌아갈 때도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았고, 이제는 익숙해진 몽환적인 빛 사이로 다시 30분쯤 걸었다.
그리고 세운과 유서아는 눈앞에 나타난 사실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둘의 앞에 나타난 갈림길. 통로의 각도로 보았을 때 절대 처음 지나온 갈림길이 아니었다.
첫 번째 갈림길이나 두 번째 갈림길과 똑같이 생긴 갈림길이었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
이에 세운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환상이야.”
“환상이요?”
“일종의 결계 같은 거겠지. 침입자를 막는 결계.”
“그럼 이제 어쩌죠?”
“갈림길이 결계라면, 결계를 구성하고 있는 핵이 있을 거야. 내가 전에 사용했던 마나석처럼.”
“핵이라면……. 저걸 말하는 건가요?”
유서아가 갈림길 사이에 박혀 있는 수정을 가리켰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하던가? 사방에 수정이 가득했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마나에 집중하던 세운이 이 수정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수정에서 마나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게 더욱 이상했다.
‘크기에 비해 다른 수정보다 느껴지는 마나가 더 미약해.’
마치, 고의로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한 듯한 모습이다.
이에 세운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수정이 환상의 정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확신하자마자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벽면이 파괴 불가 지형이라지만, 만약 이 수정이 결계의 핵이라면 분명 파괴가 가능할 것이다.
-내공을 통해 태산십팔반검의 제삼 초식, 태산삼격(泰山三格)이 강화됩니다.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카가강!
동굴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들어간 힘과 내공만큼 소음도 컸기에, 유서아는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심지어는 저 멀리까지 퍼져나간 후 돌아온 메아리조차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파극심공의 묘리까지 들어간 공격에도 수정에는 상처하나 나 있지 않았다. 심지어 작은 흠집조차도.
다만, 뒤랑달이 수정에 닿는 순간에 세운은 느낄 수 있었다. 수정에 담긴 마나가 핵을 지키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을.
이로써 눈앞의 수정이 환상 결계의 핵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물리력이 아니라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 같은데.’
만약 그런 거라면 아무리 뒤랑달이라 하여도 부술 수 없었다.
크리쳐를 상대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여도 수정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환상을 깨는 검, 이매진 브레이커 ]– 일곱 마탑이 흑탑을 공격하기 위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마법 검. 마나 그 자체를 베는 힘이 있어 그 어떤 마법이나 결계도 갈라낼 수 있다.
뒤랑달에 미지의 힘이 깃들었다.
개미귀신을 상대하며 뒤랑달을 이용하여 마몬의 창고에 들어 있는 검 형태의 보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굳이 탐욕의 권능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보구의 힘이 깃든 뒤랑달이 본래 이매진 브레이커의 형상을 닮아 붉게 물들었다.
환상을 깨는 검, 또는 마법을 베는 검.
그렇게 불렸던 검은 자신의 주인의 마나 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검을 잡은 손바닥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며 1초도 되지 않아 손이 벌벌 떨려왔다.
마법사가 만들어 냈지만, 마법을 거부하기 위한 검.
그 때문에 이 검을 사용했던 마법사는 그 일격으로 가진 마나를 모두 잃고 서클을 잃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세운은 달랐다. 서클에서부터 손을 향하는 마나를 철저하게 단절시켰다.
사대 마탑의 묘리를 활용한 극도의 마나 컨트롤.
집중에 집중을 거쳐 더 이상 마나가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덜덜 떨리던 손이 멈추는 순간, 이매진 브레이커가 제 형상을 드러내며 붉은 섬광을 내뱉었다.
서걱-
수정을 베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놀랍도록 깔끔한 절삭음.
수정을 지키고 있던 마법적인 힘은 이매진 브레이커의 앞에서 조금의 시간도 벌어주지 못했다.
대각선으로 새겨진 실선을 따라 수정이 비스듬하게 미끄러졌다.
그 안으로 수정의 매끄러운 절단면이 보였다.
“후우…….”
뒤랑달에서 보구의 힘이 흩어졌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니라 서클의 마나에 온정신을 집중하였던 세운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마나가 통하지 않아 창백해진 손으로 다시금 마나가 순환되었다.
“세운 씨, 괜찮아요?”
순간적으로 마나를 컨트롤하는 데 성공했기에 마련이지, 무턱대고 검을 휘둘렀다가는 마나가 전부 빠져나갈 뻔했다.
세운으로서는 이 검이 단순히 마법을 베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읽었을 뿐, 사용자의 마나까지 파괴한다는 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구를 사용함과 동시에 스며들어온 지식 덕분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다.
빠르게 반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이에 삼 서클에 해당하는 마나가 빠져나가 있었다.
스르르-
핵이 사라지니 힘을 잃은 환상이 점차 옅어졌다.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던 길이 하나로 합해지고, 오감에 관여하던 마나 역시 사라졌다.
단순히 시야를 속이는 환상이 아니라 감각과 공간 그 자체를 속이는 환상이었나보다.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환상 결계라니.
‘설마, 신이 관여된 건가?’
이러한 결계를 플레이어나 거주민들이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중층. 아니, 상층의 플레이어도 이렇게 완벽한 환상 결계를 만들어 내는 건 어려웠다.
그러니 세운이 신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운 씨, 저건…….”
한창 생각에 빠져 있던 중, 유서아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어느덧 환상이 완전히 걷어지고, 한층 넓어진 통로를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거대한 수정 벽. 한 층이 아니라 겹겹의 수정이 쌓여서 만들어진 수정 벽이었다.
그곳에는 세운이 방금 부수었던 수정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막혀 있었다.
분명하다.
저곳이 시련에서 언급했던 ‘비밀’이 숨겨진 곳.
수정동굴의 중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