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1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17화(113/675)
제 117화
“산 넘어 산이라더니, 딱 그 꼴이네요.”
“그러게.”
세운이 수정 벽 위로 손을 올려보았다.
매끄러운 겉면에서 수정 특유의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다.
도대체 몇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 이토록 투명한데도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매진 브레이커라면 부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세운이 곧 고개를 내저었다.
수정 벽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은 크기의 수정을 부수는 데만 해도 3 서클에 해당하는 마나가 소모되었다.
한 번 사용해 보았으니 다음부터는 사용이 더 익숙해져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수정 벽을 일격에 부술 수는 없어 보였다.
보구나 뒤랑달의 힘이 약한 게 아니다.
그 힘을 다루는 주체, 세운 자신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탑의 7층에서 2 갑자에 해당하는 내공과 5 서클의 마나를 지닌 세운이었지만 아직까지 보구의 힘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가 없었다.
다른 보물들 역시 마찬가지.
만약 지금의 몸으로 드래곤 하트라도 사용한다면, 당장 몸이 버티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리라.
분명 7층에서는 수많은 성좌가 관심을 가질 정도로 놀라운 무력이었지만, 탑의 전 플레이어로 놓고 보자면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
새삼스레 한계를 깨달은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와서 시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이 문을 통과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숨겨진 7층의 시련 ‘사하의 수정동굴’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총 누적 공적치 400,000point
-축하드립니다! 7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상상도 못 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유서아 역시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이게 시련이 말하던 비밀인 걸까요? 수상하긴 해도, 아직 비밀의 정체를 밝혀낸 것도 아닌데…….”
세운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시련을 통과했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중간했다. 게다가, 공적치도 조금 수상해 보였다.
이번 시련에서 해치워 온 크리쳐만 생각해 보아도 공적치가 저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을까?
물론,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숨겨진 시련이었기에 공적치 산출 방식이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찜찜한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수정 벽 내부를 감추기 위해서 세운과 유서아를 다음 층으로 떠넘기려는 기분이었다.
‘아니,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탑에는 관리자가 존재한다.
세운이 튜토리얼의 마지막에 만났던 관리자인 튜닝처럼, 그들은 플레이어에게 친절한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저 안이 정말 성좌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시스템을 건드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수정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고민을 반복하던 마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마침내 수정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수정이 ‘디오니소스의 잔’과 같은 재질이라고 외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러고 보니 자신이 사용하던 잔과 같은 재질이라며 화들짝 놀랍니다.
‘디오니소스의 잔?’
디오니소스라면 알고 있었다.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인 술의 신. 그 외에도 광기나 축제, 풍요와 야성 등을 관리한다고 알려진 신이었다.
주신급에 해당하는 성좌답게 탑 내에서도 그를 따르는 플레이어가 꽤 여럿 있었다.
과거를 떠올리던 세운은 기억 속에서 보랏빛 잔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보랏빛 잔…….’
회귀 전, 언젠가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길드에서 주최한 파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술의 신을 따르는 자들답게 플레이어에게 좋은 술과 노래를 베풀었다.
물론 파티가 끝나고 그 ‘대가’를 받아 갔지만 말이다.
그때, 세운은 보았었다. 파티가 시작되며 연설을 시작하던 길드장이 들고 있던 잔을.
분명, 수정과같이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잔이었다.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디오니소스가 만들어 낸 잔은 성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며 설명을 시작합니다.
‘그럼 설마 이곳이…….’
지금까지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숨겨진 통로. 탐욕의 권능이 아니었으면 파괴할 수 없었을 수정. 그리고 눈앞을 막아서고 있는 거대한 수정 벽.
마지막으로, 디오니소스의 잔까지.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어쩐지 신성을 견딜 만한 자수정을 어디서 그렇게 많이 구했나 싶었다며 부리를 까딱입니다.
이곳이 바로, 디오니소스가 잔의 재료를 조달하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멈출 수 없지.’
디오니소스는 선신 중 하나로 평화를 사랑하는 신이었지만, 세운에게는 방해되는 신 중 하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디오니소스의 뜻을 따라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플레이어들에게 그것을 설파하고 다녔으니까.
시련에 지친 플레이어들에게 그것은 큰 축복이었지만, 디오니소스의 술은 플레이어들을 휴식에 그치지 않고 나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성장이 정체되고 탑을 오르기 포기한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탑의 전력을 끌어 올려 아우터를 상대할 생각이었던 세운으로서는 방해 거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디오니소스를 방해할 수 있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세운 씨, 어쩌실 거예요? 조금 쉬고 나서 다음 시련에 도전할까요?”
“아니.”
“그럼 설마 바로…….”
“아니, 이 수정 벽을 넘어갈 거야.”
“네?”
다만,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 수정 벽을 넘어가야 하냐는 것.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재미있겠다며 스산한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문’ 앞에서 무엇을 고민하냐며 당신의 품을 가리킵니다.
‘문?’
그래, 이것은 문이었다.
수정 벽이라는 겉보기에 선입견이 생겨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곳은 엄연히 저 안을 지키는 문이었다.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게 있지 않은가?
마몬의 메시지를 이해한 세운이 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스터키. 세상 그 어떤 자물쇠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였다.
물론 수정 벽에는 자물쇠도, 열쇠를 끼워 넣을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운은 정면을 향해 열쇠를 내밀었다.
기묘하게도, 뒤랑달로도 흠집을 내기 어려웠던 수정에 열쇠가 쑤욱 들어갔다.
열쇠 주위로 잔잔한 파문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철컥.
세운이 열쇠를 돌렸다.
무언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열쇠를 중심으로 일던 파문이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
파문은 파도가 되고, 파도는 해일이 되었다.
그 단단한 수정 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한 겹, 두 겹.
차차 퍼져나간 해일은 끝내 가장 안쪽의 수정 벽까지 무너트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수정 벽의 크기가 어찌나 두꺼웠는지, 5m에 가까운 통로에 수정의 잔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우와…….”
유서아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만, 놀란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세운도 눈앞에 벌어진 일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고 있었다.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획득했던 열쇠.
탑의 수많은 문을 알고 있었기에 고른 것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쓸 수 있었다니.
열쇠의 활용처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할 것 같았다.
“가 보자.”
“네!”
세운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 순간, 시스템 오류라도 난 것처럼 치지직 거리는 메시지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누군가 다급하게 세운의 침입을 막아서려는 듯한 모양이었다.
세운은 역시 이번 시련이 급작스럽게 완료된 이유가 관리자의 개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시스템 메시지가 정리되었다.
-플레이어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7층 관리자가 시련에 개입을 요청합니다.
-시스템이 관리자의 개입을 거부합니다.
-7층의 관리자가 플레이어의 특별 전담관을 호출합니다.
-특별 전담관의 권한을 통해 특수 개입이 시도됩니다.
‘특별 전담관?’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스템 메시지가 문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보다 7층의 관리자가 아니라 특별 전담관이라니. 그 말은, 성좌뿐만 아니라 탑의 관리자들도 세운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긴, 벌인 일도 있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튜토리얼에서의 일들은 물론 탑에 들어와서도 타뷸라의 늑대를 사냥하거나 스톤 라바를 사냥하는 등.
세운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눈에 띌 행동을 수도 없이 벌여왔다.
늘어진 시스템 메시지 사이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하아…….”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한숨 소리. 곧이어 허름한 정장과 늘어진 넥타이를 매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튜닝.
튜토리얼에서 공적치 랭킹 1위 보상을 위해 세운의 앞에 나타났던 관리자였다.
어떻게 된 건지, 튜토리얼의 관리자였던 그가 세운의 특별 전담관이 되어 있었다.
“이걸…… 열면 어떡합니까…….”
튜토리얼에서는 가식이라도 영업용 미소를 활짝 짓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세운과 눈을 마주치고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두 눈 아래로 내려온 다크서클은 이전과 비교해도 더 진하고 길게 내려와 있었다.
최소한 일주일은 잠을 자지 못한 듯한 몰골이었다.
특별 전담관이라는 직위를 보아하니 그 원인이 세운 자신이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세운…… 플레이어.”
“진급하셨나 보네요.”
“진급? 하아, 진급이 맞긴 하지요. 일단은 탑에 들어오게 되었으니까…….”
튜닝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쩐 일이시죠? 관리자가 시련에 개입하는 건 금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아……. 아니, 하…….”
그가 당황한 듯 소리를 지르더니 곧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호출되다 보니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한 모양이다.
유서아가 옆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세운은 답변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관리자가 나타난 이상, 우선은 그와의 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머리를 쥐어뜯던 그의 손에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 떨어져 나올 때쯤,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눈을 낮게 뜨며 말을 이어갔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이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걸 막을 권한은 없으실 건데요.”
“……누가 보면 저희 직원인 줄 알겠습니다. 7층의 플레이어가 저희 매뉴얼을 이토록 잘 꿰뚫고 있다니 말입니다.”
세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서 모르는 척을 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아는 척을 하며 압박을 하여 뭐라도 얻는 게 이득이었다.
튜닝이 세운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그런다고 무언가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보상이라면 두둑하게 챙겨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네?”
“보상은 필요 없고, 저는 이 앞을 확인하러 갈 생각입니다.”
“아니, 안 됩니다. 진짜 안 됩니다. 저 진짜 죽습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멈춰 주세요. 네?”
“안 됩니다.”
“그러지 말고, 생각 좀 해 보십쇼. 보상은 진짜 두둑하게 챙겨드리겠습니다. 분명 앞으로 층을 오를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7층의 관리자에게 어떻게든 세운을 막으라는 명령을 듣고 나타난 것이겠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곳에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특별 전담관이라 해도 세운이 알고 있는 관리자라면 플레이어에게 약간의 페널티를 주는 건 가능해도 강제로 움직임을 막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튜닝이 기어코 무릎을 꿇고, 옆에서 당황한 유서아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 정리를 마친 세운이 튜닝에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