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1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20화(116/675)
제 120화
‘뭐지?’
성흔이 빛나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세운이 공포에 관한 힘을 사용할 때.
두 번째는 신의 힘. 즉, 신성에 반응하는 경우였다.
지금 세운은 전투를 끝낸 상황이니 첫 번째는 당연히 아닐 것이고. 남은 경우는 두 번째뿐이다.
즉, 이 주위에 무언가의 신성이 남아 있다는 뜻.
‘디오니소스의 신성이 남은 건가?’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에게 자수정을 상납한다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읊조립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세운은 마몬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이전에 그가 보냈던 메시지 중 하나가 떠올랐다.
‘어쩐지 신성을 견딜 만한 자수정을 어디서 그렇게 많이 구했나 싶었다며 부리를 까딱입니다.’
마몬은 자수정이 신성을 견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성흔이 반응한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성흔이 새겨진 오른팔을 수정을 향해 움직일수록 그 빛이 더욱 진해졌다.
이에 세운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자수정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 보라며 자비롭게 날개를 활짝 펼칩니다.
마몬의 메시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세운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오로지 성흔과 자수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힘이었다.
포식의 권능 덕분이긴 하지만, 사티로스의 권능은 어디까지나 판의 격을 집어삼켜 빼앗은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자수정에 깃들어 있는 디오니소스의 신성도 흡수할 수도 있다.
우웅!
자수정에 닿은 성흔이 더욱 강한 빛을 내뿜었다.
손바닥에 닿는 매끄러운 촉감 너머로, 무언가 강한 기운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지금 뭐 하는 짓이냐며 얼른 손을 떼라고 외칩니다.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당신의 행보에 관심을 드러냅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다들 먹을 수도 없는 거에 왜 그리 관심을 가지냐며 의아해합니다.
레비아탄을 만나기 위해 닿았던 흑경의 심장이 떠올랐다.
심장 박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분명하다. 이게 바로 디오니소스의 신성.
다른 플레이어라면 접촉하는 것만으로 정신을 잃거나, 그게 아니라도 힘을 견디기 어려워했겠지만, 세운은 이미 사티로스의 성흔을 통해 작지만 엄연한 격을 지니고 있었다.
눈을 감고 차분하게 그 힘을 느끼던 세운이, 성흔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떴다.
그 순간.
-사티로스의 성흔(봉인)이 신의 격(格)에 반응합니다.
-성흔에 봉인되어 있던 성좌의 격이 일부 깨어나 외부의 격을 흡수합니다.
성흔을 중심으로 감갈빛의 산양 형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세운의 옆에 서서 콧김을 크게 내뱉더니, 이내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수정을 향해 돌진했다.
콰직!
산양의 두꺼운 뿔이 수정과 부딪혔다.
세운이 전갈의 외갑을 부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여도 손톱보다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게 고작이었는데, 산양과 부딪히자 유리처럼 가볍게 깨져나갔다.
아니, 실제로 깨진 것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파괴가 아닌, 격의 파괴.
정확하게 말하자면 디오니소스의 신성을 지키고 있는 일종의 보호막이 깨진 것이다.
수정의 안에 갇혀 있던 신성이 해방되어 성흔에 흡수되며 산양의 검갈색 털이 번들거렸다.
메에에에-
공동 안으로 산양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곧이어 세운의 뒤로 수십 마리의 산양이 나타났다.
그것은 처음 나타난 산양보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그 전부가 신성으로 이루어진 힘. 즉, 신의 힘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쨍, 째앵!
그것들은 공동의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자수정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뿔이 부러질지라도 멈추지 않고, 탐욕스럽게 수정 안에 갇혀 있는 신성을 흡수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깨져가는 자수정을 바라보며 경악을 내지릅니다.
공동의 자수정이 절반 넘게 부서졌을까?
실제로 부서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완전히 사라져 마나 하나 들어 있지 않은 평범한 수정과 다를 바 없이 변했다.
그 순간이었다. 세운의 성흔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진 것은.
치이익!
“큭…….”
화상을 입은 것만 같은 고통. 아니, 단순히 피부가 뜨거운 느낌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가 달궈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운은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꽉 붙잡은 채로 이를 꽉 다물었다.
신성이 높아진다는 건 곧 영혼의 격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아우터를 막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성좌의 경지에 다다를 계획까지 가지고 있는 세운에게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자신을 무시하고 행동을 이어가라는 세운의 의지에, 기존의 산양들에 새로 생겨난 산양들까지 합세하여 공동의 자수정을 모조리 부수었다.
마몬이 그만 멈추라며 메시지를 날려왔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티로스의 성흔’이 디오니소스의 신성을 흡수합니다.
-혈랑전설의 설화에 새로운 잠재력인 ‘광란’이 새겨집니다.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디오니소스의 격이 단순히 성흔에 흡수되는 것을 넘어 세운의 영혼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혈랑전설에 새겨진 새로운 잠재력.
모든 플레이어가 단 하나의 잠재력만을 가질 수 있다는 규칙을 깨고, 광란의 잠재력이 추가되었다.
그 순간부터, 세운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공동의 자수정은 이미 전부 깨진 상태.
세운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성흔이 새겨진 오른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공동에 존재하는 수많은 산양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세우고 천장을 향해 울부짖었다.
우웅!
성흔이 불타오르듯이 빛을 크게 내뿜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갈빛의 성흔이 불타오르며, 그 자리에 사티로스의 성흔 대신 늑대의 형상을 가진 성흔이 생겨났다.
메에에에-
산양들의 모습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뿔이 쩍쩍 갈라지고, 탐스러운 검갈빛 가죽이 갈라지며 허물처럼 벗겨졌다.
그리고 그 안으로.
아우우우-!!
피처럼 붉은 가죽을 지닌 늑대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타나 허공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 순간, 꽉 막힌 공동의 천장에 희미하게나마 붉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이 한바탕 하울링을 내지르던 늑대들은 곧 성흔을 향해 흡수되기 시작했고.
털썩-
“세, 세운 씨!”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세운이 결국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 * *
“이거 놔! 아니라고! 아니라고!”
“주신(酒神)은 이미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당신이 수정을 제공하는 대가로 영원의 유흥을 제공해 달라고 먼저 제안을 했다고 말입니다.”
“뭐? 그분! 아니, 그 자식이! 이봐, 아니야! 먼저 내게 제안을 건 건 그놈이었단 말이다!”
“변명은 심판원에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 안 돼! 안 돼에에!”
7층의 총책임자가 두 명의 거인에게 팔목을 잡힌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탑과 시련을 위한 계약이 아닌,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성좌와의 계약. 이는 단순히 직위 박탈이 아니라 존재의 소멸로까지 이어지는 중죄였다.
심판원에 불려가고 증거까지 완벽한 이상,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는 이미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에 7층의 관리자들이 고개를 숙인 채 그를 외면하였다.
정을 내세워 그의 편을 드는 순간, 그 역시 심판원에 불려 나갈 수도 있으니까.
만약 무언가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가장 현명했다.
총책임자가 사라진 후,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감사팀장이 튜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총책임자를 신고하는 건 쉽지 않을 선택이셨을 텐데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전 단지 메뉴얼대로 진행했을 뿐입니다.”
“권력 앞에서 매뉴얼을 지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일입니다.”
“하하…….”
칭찬을 들은 튜닝이 어색하게 웃었다.
결국은 세운의 말이 모두 맞았다. 7층의 총책임자는 디오니소스와 계약을 맺어 암암리에 자수정을 제공하고 있었고, 이는 중대한 범죄 행위였다.
이번 일을 통해 다른 층에 관해서도 본격적인 감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나저나 7층의 총책임자 자리가 비었군요. 당장 자리에 앉힐 이를 구하기는 힘드니……. 괜찮으시다면 그 자리를 맡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하하, 물론입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불의를 신고할 수 있었던 분이라면, 총책임자 자리를 훌륭하게 맡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아…….”
“게다가, 이전에 튜토리얼의 총책임자 아니셨습니까? 실무경험도 있으실 테니, 조건은 충분합니다.”
이 역시 세운이 말한 그대로였다.
7층의 총책임자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탑에 발도 들이지 못했었는데, 순식간에 7층의 총책임자라는 놀라운 직위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는 탑에서도 유례없이 빠른 진급이었기에 튜닝은 잠시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믿기 힘들 정도였다.
“어떠십니까?”
“저는…….”
당연히 수락해야 할 제안이다.
지금도 팀장에 해당하는 특별 전담관을 맡고 있다지만, 말이 팀장일 뿐이지 수하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명예직이었다.
그에 비해, 총책임자 자리는 지금 당장 주위만 둘러보아도 수많은 관리자가 존재한다.
특별 전담관과는 비교도 어려운 자리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잠시 고민하던 튜닝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자리는 명예직에 가깝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하하, 맞습니다. 수하에 직원 하나 없고, 일은 산더미죠. 탑에 들어오고 나서 제대로 잔적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감사원의 질문에, 튜닝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수정동굴의 끝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자.
튜토리얼에서부터 수많은 히든 피스를 공략하고, 탑에 들어와서도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여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
그리고 지금은, 고작 7층의 플레이어인 주제에 자신만의 격을 생성한 남자.
“조금 더 저 플레이어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를 지켜보다 보면, 7층의 총책임자 자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회가 생겨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