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1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22화(118/675)
제 122화
쾅!
콰륵, 콰앙!!
세운의 전투는 그야말로 학살의 한 장면이었다.
양 떼 사이에 달려든 늑대처럼, 압도적으로 적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이미 개미 중 대부분은 세운을 상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도망가거나, 동료의 사체를 밟은 채 개미집을 향해 돌아간다.
개중에는 공포에 이성이 마비되어 자리에 주저앉은 놈들도 여럿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서아 역시 쌍검을 꽉 쥐었다.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네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서거거걱!
유서아의 검이 개미들 사이를 휩쓸었다.
수정동굴의 끝에서 자신의 성좌인 왕관을 쓴 거미, 바알에게서 하사받은 새로운 기술.
이전의 공격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면, 지금은 잔상은커녕 움직임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한 줄기의 바람.
그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개미들은 체액을 분수처럼 내뿜으며 차갑게 식어갔다.
‘아직 부족해.’
그러나 유서아는 만족하지 않았다.
다리에 집중하며 더욱 현란하게 움직였다.
검을 휘두르는 것 자체에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움직임에 검이 절로 따라오게 만들었다.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크게 만족하며 독니를 번들거립니다.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지금이라면 그 더러운 노인의 계약자를 가뿐히 짓밟을 수 있을 거라며 속삭입니다.
더러운 노인의 계약자. 악어를 탄 노인, 아가레스의 계약자인 강한철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유서아에게 경쟁심을 일으키기 위한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강한철과 경쟁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세운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방해되지 않도록, 그 빠른 걸음에 뒤처지지 않도록. 세운의 등 뒤에 딱 붙어서 따라갈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쉬워 보이는 목표지만, 세운의 속도는 평범한 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피가 나고 뼈가 깎이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다짐할수록 유서아의 주위에 몰아닥치는 광풍이 크기를 더욱 크게 키워갔다.
광풍에 휘말린 개미들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도록 난도질당한 채 모래 위에 버려졌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개미가 목숨을 잃었다.
그때.
위이잉!
그녀의 위로 몇 마리의 날개미가 기습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휘두른 검을 통해 익숙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날개미들은 멈추지 않았다.
놀란 유서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놈들이 입에 죽은 개미를 물고 있었다.
그녀가 벤 것은 놈들이 물고 있던 개미의 사체였다.
‘이런……!’
그녀의 공격이 놀랍도록 빠르지만, 그에 비해 공격의 깊이가 얕다는 것을 이용한 기습이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날개미들이 동료의 사체를 버린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순간, 유서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콰득!
단단한 무언가가 꺾이는 듯이 잔혹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대상은 유서아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개미 다섯 마리가 자신의 몸을 던져 날개미의 공격을 가로막고 반격을 날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이유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날개미를 물고 있는 개미들의 눈이 유서아와 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당신의 잠재력에 감탄합니다.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힘을 키운다면 엄청난 활용성이 엿보이는 잠재력이라며 기대를 품습니다.
광풍의 이명을 얻으며 그녀가 가지게 된 잠재력, 지배.
유서아가 깨달은 그 사용법은 ‘베어낸 상대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아직 사용해 본 적도 별로 없었고, 익숙하지도 않았기에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익숙하지 않다고 힘을 아끼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척.
척, 척.
전신이 난도질당해 목숨이 다 꺼져가는 개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은 동공이 붉게 물든 채 유서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야말로 여왕과 기사들.
날개미들은 배신자를 바라보는 듯, 주춤거렸다.
* * *
콰아아앙!!
세운의 주위로 검과 마법이 요동친다.
개미들은 진작에 전투 의지를 잃은 채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운은 더욱 집요하게 놈들을 쫓아 숨통을 끊어냈다.
벌써 수백 마리의 개미가 세운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주위에 널려 있는 개미들의 사체에서 악취에 가까운 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역시 오래 유지하는 건 무린가.’
세운의 이번 목적은 광란의 힘으로 개미들을 전멸시키는 것보다는, 광란의 힘 자체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광란의 힘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마나나 체력의 소모가 빨라지는 것과는 달랐다. 성흔에서부터 무언가가 쭉 빠져나가는 기분.
아무래도, 세운이 가진 신성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신성만 늘리면 지속시간을 더 늘릴 수 있겠지만…….’
문제는 신성을 키우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건 마나 수련법 같은 것처럼 주변의 기운을 모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유일하게 떠오르는 방법은, 지금처럼 다른 신의 신성을 빼앗는 것뿐이었다.
위이이잉!
그러는 사이, 개미의 수가 또 한 번 늘어났다.
세운의 무력을 겪은 개미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도망치는 중이었지만, 새롭게 나타난 개미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아득히 먼 개미집의 끝에 특히나 거대한 덩치의 개미가 올라서 있는 게 보였다.
여왕개미.
놈이 개미집의 위협을 깨닫고 개미들을 지휘하기 위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슬슬 빼야 하나.’
첫 습격으로 개미집을 무너트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10시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존재했으니, 이대로 공격과 도망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고개를 돌려 유서아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네.’
사막에서의 훈련 때문일까? 아니, 단순히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까다로운 잠재력인 지배도 잘 적응하는 듯했고.
그녀가 시선을 느끼고서 주변의 몬스터를 한순간에 정리하고 세운에게로 다가왔다.
“어쩔 생각이신가요?”
“일단 물러나자.”
“정말요?”
“재정비하고 다시 공격하는 식으로. 세네 번쯤 반복하면 끝낼 수 있을 거야.”
평소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세운의 말에 따랐을 텐데, 어쩐 일인지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곧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저를 한 번 믿어주실 수 있을까요?”
“계획이라도 있어?”
“네.”
유서아가 개미집의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
여왕개미.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세운이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왕을 죽여 봤자 소용없어. 잠시 혼란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곧 새로운 지휘자가 생길 거야.”
“그게 아니에요. 제 잠재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유서아의 잠재력, 지배.
어떤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어지간하면 부탁이란 걸 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세운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어?”
“네!”
“좋아.”
“감사해요!”
그녀가 세운에게 계획을 알려주었다.
세운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그녀가 여왕개미에게 닿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다가서려는 것인가 싶었지만, 동공이 붉게 물든 날개미 여러 마리가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
“길은 내게 맡겨. 시원하게 뚫어줄 테니까.”
“네!”
어차피 계획에 실패해도 거리를 벌리고 재공격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그녀의 부탁이기도 하니, 도박을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위이잉!
그녀가 날개미를 타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그녀를 막기 위해 수많은 날개미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땅 위에서는 공격이 어려웠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날개미들의 영역이다.
놈들이 날개를 빠르게 움직이며 자신 있게 이빨을 까딱거린다.
그리고 그때, 세운이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발현하였다.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르르륵!
마나를 잔뜩 머금어 덩치를 키운 불꽃이 날개미들을 집어삼켰다.
뜨거운 햇빛에 익숙해진 놈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불길 안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극심한 열기로 인해 놈들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유서아는 개미집의 정상을 향해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녀가 타고 있는 날개미들은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페르노의 공격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녀가 높이 날아오를수록 열기가 약해졌다.
또한, 여왕개미에게 가까워질수록 호위 개미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 있었다.
놈들이 줄어든 열기에 안심하며 이빨을 드러낼 무렵, 세운의 손에서 두 번째 마법이 발현되었다.
서클의 남은 마나를 모조리 쥐어짜 내어 발현시킨, 그녀에게 ‘길’을 만들어 줄 마법이었다.
-흑탑의 묘리에 따라 ‘토네이도’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녹탑의 묘리에 따라 ‘토네이도’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청탑의 묘리에 따라 ‘토네이도’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과도하게 멀어진 거리는 청탑의 묘리에 따른 안정성으로 극복했다.
흑탑의 묘리로 위력을 키우고, 녹탑의 묘리를 통해 그녀의 등 뒤를 밀어주었다.
토네이도가 그녀를 중심으로 요동치며 외길을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개미집의 정상을 향해 다가섰지만, 개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놈들에게 여왕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바람에 몸을 던지고, 날개가 찢겨나가더라도 유서아를 막아냈다.
그 때문에 균형이 흔들리며, 유서아가 타고 있던 날개미들이 바람에 휩쓸려 비행 능력을 잃게 되었다.
까마득한 상공에서 날개를 잃은 꼴이 된 셈.
하지만, 유서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날개미의 등을 밟으며 여왕개미를 향해 뛰어올랐다.
날개미들이 도망쳐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개미집에 다다른 유서아가 90도에 가까운 벽면을 밟고 수직으로 달렸다.
병정개미들이 앞을 막아섰지만,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전신이 난도질당하며 개미집 아래로 추락했다.
“그그그그극!”
유서아를 마주한 여왕개미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애초에 전투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여왕개미의 공격이 그녀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검이 바람처럼 빠르게 휘날리며, 여왕개미의 정수리에 꽂혔다.
위이잉!
두두두두!
당황한 개미들이 몸을 버둥거렸다.
단신으로 뛰어들어 여왕개미를 무찌르는 업적을 보였지만, 그녀의 계획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플레이어 유서아가 ‘여왕개미’를 지배합니다.
그녀의 동공이 붉게 일렁이는 순간, 그 기운이 검을 타고 흘러가 여왕개미에게까지 전해졌다.
숨이 끊어져 가던 여왕개미가 위엄한 자태를 유지하며 한쪽 팔을 들어 올린다.
“개미집을 부수어라.”
여왕개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개미집을 부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여왕개미의 정수리에 침입자의 검이 꽂혀 있는 상황임에도.
개미들은 여왕개미의 명령을 착실하게 이행하였다.
필드에 존재하는 모든 개미가 모여들어 개미집의 하단부를 갉아먹었다.
사각, 사각 하는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그 어떤 개미도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개미집의 하단부가 절반쯤 파먹히자.
쿠구구구구!!
사막 위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개미집이 거칠게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