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2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24화(120/675)
제 124화
“이곳인가요?”
“그래.”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네요. 세운 씨라면 조금 더 멀고 어려워 보이는 곳에 들어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세운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모래 무덤 앞이었다.
꽤 큰 무덤이었지만, 위로 모래가 수북하게 덮여 있어 대충 보았다간 평범한 모래 언덕으로 착각할 만한 곳이었다.
그나마 중간중간 벗겨진 모래 사이로 하얀 벽돌이 보인 덕에 찾아낼 수 있었다.
무덤 주위를 반 바퀴쯤 걷자, 입구로 보이는 곳이 보였다.
모래로 반쯤 묻혀 있었는데, 회귀 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나저나 이동하면서 몬스터가 안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아마, 유적지에 들어가고 난 후부터가 본격적인 시련의 시작이라는 거겠지.”
“그렇겠죠? 아,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세운이 머리를 굴렸다.
솔직히, 핑곗거리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회귀에 대한 사실을 말해야 하나 생각하며 고민하던 중, 그녀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장난이에요. 나중에 말해 주고 싶을 때 말해 주시면 돼요. 지금은, 어쨌든 세운 씨의 선택을 믿으니까요.”
“……고마워.”
“뭘요! 바로 들어갈까요?”
“그러자.”
바람 마법을 이용하여 입구를 막고 있는 모래더미를 치워냈다.
-유적지 ‘이른 아침의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해당 유적지에 입장하면 다른 유적지를 선택하실 수 없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세운이 유서아와 눈을 마주쳤다.
이미 결심한 내용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 안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마자 쿠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입구를 막아냈다.
유적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인 듯했다. 아마, 수정동굴의 벽면과 마찬가지로 파괴 불가 지형일 거다.
“생각보다 밝은데요?”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은은한 조명이 벽을 비추고 있었다.
발광석이라 불리는 돌에서 나온 빛 덕분이었는데, 반쯤은 수명이 다했는지 불이 꺼져 있었지만 남은 것들로도 시야는 충분히 확인되었다.
벽은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이곳저곳이 깨져 있었는데, 그 위로 정체 모를 벽화가 그려 있었다.
그것 역시 세월의 흔적으로 손상이 심했지만, 간간이 손상이 덜한 그림이나 글자도 보였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본 글자 같은데?’
어째서일까? 드문드문 보이는 글자들이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귀 전에는 아무런 뜻도 해석하지 못했는데, 그 이후에 습득한 언어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해석이 되지 않았다.
“신기하네요. 이집트 벽화 같아요.”
“이집트 벽화?”
“네,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조금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벽화를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무덤의 내부를 꽤 이동했는데도 적은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서아는 쌍검을 꼭 쥐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시련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몬스터와 안 마주친 건 처음이지 않아요?”
“그렇네.”
회귀 전 이미 탐사를 마친 유적지였기에, 이곳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에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잠깐.”
“네? 몬스터는 없는 것 같은데…….”
“몬스터는 없지만.”
철컥.
카앙!!
함정은 존재했다.
세운이 미묘하게 조금 더 튀어 올라 있던 바닥의 돌을 밟는 순간, 전방의 양쪽 벽면에서 날카로운 창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놀랐는지 유서아가 ‘흐읍!’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티가 나길래.”
“몬스터만 신경 쓰다가 함정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하마터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요.”
“괜찮아. 함정은 내가 찾아낼 테니까.”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함정의 위치는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세운은 함정을 찾기 최적의 탐색 마법인 ‘서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고작 9층의 함정에 당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만약 먼저 찾아낸다고 해도 대처가 어려운 함정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서걱!
무력으로 함정을 파괴하면 그만이다.
굴러오는 돌덩이를 일격에 두 동강 낸 세운이 검에 묻은 돌가루를 떨쳐내고 다시 길을 따라 걸었다.
갈림길조차 없었기에 둘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익숙하단 말이야…….’
함정을 처리하는 중에도 세운의 시선은 벽화에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를 듯 말 듯 한 기억에 난처를 표할 때쯤,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비릿한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 정도면 의도적인 게 아니냐며 크게 웃음 짓습니다.
‘아!’
그제야 세운은 벽화에 적힌 글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3층의 시련인 동굴을 지나며 들렸던 숨겨진 방, 그곳에 꽂혀 있던 책에 적혀 있던 글자들. 베르헬 대륙의 언어였다.
물론, 완전히 똑같다는 건 아니었다. 획이나 모양도 미묘하게 다르고, 배치 순서도 달랐다.
세운이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마도, 일반적인 베르헬 대륙의 언어가 아닌 것 같았다.
‘고대의 언어 같은 건가.’
같은 대륙의 언어라고 해도 전부 같을 수는 없었다.
베르헬 대륙의 언어를 습득했음에도 벽화를 해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둘 사이의 차이점 때문인 듯했다.
‘그보다, 마몬의 반응을 보면 이곳도 케프리와 관련된 것 같은데.’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 일출의 신, 케프리.
회귀 전에는 일면식 하나 없던 성좌였는데, 이번 생에는 어찌 된 일인지 의도치 않게 계속 부딪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세운은 성좌들의 눈치나 보자고 회귀를 선택한 게 아니었으니까.
‘찾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회귀 전에 보았던 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열 생각도 하지 않아 신경 쓰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문 위에도 몇 가지의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언어는 해석할 수 없었지만, 보석을 닮은 쇠똥구리가 세월의 흔적을 무시한 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케프리가 상징하는 벌레가 바로 이 쇠똥구리였으니, 이로써 이 무덤이 케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들어가실 건가요?”
“당연하지.”
당연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쇠똥구리 모습을 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오각형 모양의 틈이 파여 있었다.
아마 저곳에 열쇠를 대신하는 무언가를 집어넣어 문을 여는 모양이다.
저런 게 시련의 보상으로 나왔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케프리가 자신이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내리기 위해 숨겨둔 장소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그 어떤 자물쇠도, 그 어떤 문도 세운의 앞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철컥.
기이이-
세운의 손에 들린 만능열쇠가 오각형의 틈 사이에서 반 바퀴 돌았다.
열쇠 구멍이 전혀 맞지 않음에도, 오각형은 열쇠를 따라 가볍게 회전했다.
언제까지나 닫혀 있을 것 같았던 문이 녹슨 소리를 내며 손님을 반겼다.
이제 고작 9층인데, 벌써 열쇠를 세 번이나 사용했다.
튜토리얼 공적치 보상으로 열쇠를 선택한 것은 세운이 생각해도 훌륭한 판단이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라면 만능열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 사용처를 생각해 내지 못했겠지만, 세운의 머릿속에는 탑에 관한 수많은 지식이 쌓여 있었으니까.
어느덧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그제야 이변을 깨달은 케프리가 황급히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자신의 무덤이 열린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랍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또 네놈 짓이냐며 분노를 표합니다.
하지만, 문이 열린 것을 알았다고 해도 케프리가 행동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성좌가 플레이어의 시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의 입장으로는 가만히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세운 씨! 여기, 엄청난데요?”
함정이나 몬스터 따위는 없었다.
세운의 예상대로 자신의 계약자를 위한 보물창고라도 되는 듯이, 문 안에는 다양한 보물들이 잠들어 있었다.
-일출이 비치는 곳에 입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창고의 보물 중 하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다급하게 시스템의 알림을 가로막습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네놈에게 줄 보물 따위는 없다며, 당장 자신의 창고에서 나가라고 외칩니다.
“……어떻게 할까요?”
“신경 쓰지 말고 골라.”
케프리가 메시지를 연신 떠올리며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세운은 이를 가뿐히 무시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물이 한 가지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케르피가 말한 것이라면 무시했겠지만, 시스템의 알림은 절대적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물 하나를 집어 드는 순간 선택권은 사라질 것이다.
“보자…….”
금은보화가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을 선택하라고 외쳤지만, 탑에서 저것들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일부 층에서 저것들을 팔아 대량의 공적치를 획득할 수 있다지만, 공적치야 시련을 통과하며 획득하면 그만이다.
‘장비들도 제법 쓸 만해 보이기는 하는데.’
금색과 은색이 아름답게 장식된 무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는 꽤 성능 좋아 보이는 창도 여럿 있었는데, 마몬의 보구 중에는 창 형태를 가진 것들도 많았기에 제법 탐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일반 무기들. 뒤랑달에 비할 바는 되지 못 된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마몬의 보구를 몇 번 사용하면 부서져 버리고 말 것이다.
어디까지나 세운에게만 해당하는 표현이겠지만, 일회용품을 보상으로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방어구 역시 마찬가지.
일출의 신이 직접 준비한 보물답게 당장 세운이 착용하고 있는 것보다는 등급이 높았지만, 굳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고창석의 실력이 오르면 저 정도 갑옷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 이걸로 고를게요!”
“괜찮아 보이는데?”
유서아가 선택한 것은 금으로 세공된 목걸이였다.
바람의 힘을 지니고 있어 사용자의 속도를 올려주고, 주위로 풍압을 퍼트릴 수 있는 목걸이였는데 그녀와 잘 어울려 보였다.
아무래도 세운과 마찬가지로 고창석의 실력을 믿고 있었기에 무기나 갑옷은 제외한 모양이다.
이에 세운도 시야를 돌려 장신구가 있는 방향을 둘러보았다.
쓸 만한 장신구가 여럿 있었지만, 이 역시 탐나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웅!
세운의 오른손에 새겨진 성흔이 가볍게 떨려왔다.
본능적으로 진동이 강해지는 쪽으로 손을 움직인 세운은, 여러 보물 사이에 숨겨진 보물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눈을 크게 뜹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그것만은 안 된다며 비명을 내지릅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끅끅거리며 숨이 넘어가라 웃고 있습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쇠똥구리 모습의 조각상.
평범한 보물이 아닌, 일출의 신 케프리의 신성이 스며들어 있는 조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