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2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27화(123/675)
제 127화
야샤를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 보상을 내리는 건 그녀가 말하는 상부일 것이다.
조사를 떠나기 전에 미리 보상에 관해 얘기해 두지 않으면, 막상 조사에 성공하고 도착했을 때 다른 소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세운이 보상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충분합니다.”
그녀가 보상으로 내건 것은 스카베에서 통용되고 있는 화폐였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처음 보는 화폐 때문에 감을 잡지 못했겠지만, 세운은 이미 화폐의 사용처를 알고 있었다.
이번 시련이 끝난 후 도달하게 되는 쉼터. 그곳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세가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야샤는 꽤 넉넉한 보상을 약속했다.
“그럼 언제 출발하시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기왕이면 지금 바로 가려고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제 막 성벽에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번 시련에 도달하기 전, 9층의 시련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왔다.
몇 가지 편의시설이 떠오르긴 했지만, 어차피 성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상 성벽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시설에는 한계가 있었다.
야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유서아가 출발을 준비했다.
하지만, 세운은 그녀를 막아섰다.
“유서아, 넌 여길 지켜줘.”
“네? 그럴 수는 없어요! 저도 같이 가야죠.”
“안 돼. 이번에는 나 혼자 갈 거야.”
“……혹시, 제가 방해되는 건가요?”
유서아가 고개를 숙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방해되지 않기 위해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세운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냐.”
“……그럼요?”
“이제 곧 다른 클랜원들이 도착할 거야. 아까 병사들이 우리를 어떻게 봤는지 기억나지?”
“네, 근데 그게 왜…… 아.”
“알겠지? 우리 클랜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네가 사람들을 지휘해 줘야 해. 어리바리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알겠지?”
세운의 무력이 인정받았지만, 이후에 입장하는 클랜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병사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누군가 화라도 냈다가는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박정필이라든가……. 또, 박정필이라든가.
그런 의미로 클랜원을 지휘하고 조율해 줄 사람이 꼭 필요했다.
세운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한 유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여긴 제게 맡겨 주세요.”
“믿고 맡길게.”
“네!”
유서아가 곧바로 클랜챗을 확인하며 성벽 위로 올라갔다.
아직은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도착하면 바로 반겨주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를 하기 위해 떠날 준비 하였다.
사실 준비할 것도 없었다. 조사해야 할 장소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병사들의 매뉴얼을 듣는 정도가 끝이었으니까.
병사 하나가 호흡기를 가리라며 하얀 천 하나를 내밀었지만, 세운은 거절하였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태조 무황제의 전포’.
이는 망토라고는 하지만 착용법을 조금만 바꾸면 저런 천 조각보다 확실하게 호흡기를 가릴 수 있었다.
효과는 물론 방어력도 더 높다.
준비를 마친 세운이 계단을 내려가 성문 앞에 섰다.
몬스터를 방어하기 위함인지, 놀랍도록 크고 두꺼운 성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힘으로는 여는 게 불가능하고, 옆에 보이는 사슬을 감아 열어야 할 정도였다.
드르르륵-
병사들이 세운을 위해 문을 개방하였다.
사슬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며, 찬란한 황금색 모래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 뒤쪽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마중까지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만.”
남문의 지휘관, 야샤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위에서 입고 있던 기본 복장이 아닌, 제대로 된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몬스터와 싸우러 나갈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세운의 예상대로 그대로 들어맞았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제 직위를 걸고 부탁드리는 거라고.”
“그렇다고 따라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설명을 들으셨다고는 하지만, 이번 조사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저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녀와 함께 간다면, 적어도 근원지가 어디인지 길을 헤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운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회귀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기억하는데.’
물론, 세운이 직접 들은 부탁은 아니었고 당시 합류했던 클랜으로부터 들은 소문에 불과하긴 하지만, 당시에 야샤는 그저 지나가는 투로 부탁을 남겼을 뿐.
조사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남문의 책임자가 자리를 비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까 보인 실력으로 봤을 때는, 제 부하를 붙여줘도 방해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틀렸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남문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인수인계는 마쳐두었고, 특이사항이 없는 한 별다른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잠깐 고민하던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함께 간다면 괜히 조사를 마치고 증거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어지니까.
게다가 남문의 지휘관인 만큼 무력도 상당할 것이다. 적어도 방해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성문이 절반쯤 벌어지며 구불구불한 모래 언덕을 비추었다.
마차가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 한두 명 지나가는 것이기에 이 정도면 열어준 모양이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길을 알고 있는 건 그녀였기에, 야샤가 앞장서서 걸었다.
성문을 지나기 전 몇몇 병사들이 힘차게 팔을 들어 올리며 그녀에게 경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눈빛에서 존경심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야샤는 꽤 유능한 지휘관인 것 같았다.
“모래 표범은 탈 줄 아십니까?”
성문을 빠져나가자마자 보인 것은 두 마리의 표범이었다.
모래를 닮은 황금빛 털에 은빛 점박이 새겨져 있었는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 뒤에는 표범 외에도 꽤 많은 낙타가 성문에 묶여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낙타가 스카베의 사람들의 이동 수단인 듯했다.
그중에서도 이 표범은 지휘관급 정도는 되어야 탈 수 있는 특별한 개체겠지.
“장거리 이동이라면 몰라도, 근원지 수색은 낙타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혹시 못 타신다면 제 뒤에 타셔도 됩니다.”
당연하게도, 아무리 회귀자라고 하여도 모래 표범을 타는 법은 알지 못했다.
저 개체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번 시련에 한정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단순한 오기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하나의 표범을 타면 기동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크르릉-”
세운이 가까이 다가오자 모래 위에서 편안하게 누워 있던 모래 표범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탑승을 위해 길들어졌다고는 하나, 육식동물 특유의 야성이 남아 있어 보였다.
“제가 태워 드리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심해서 바로 타시기는 힘들 겁니다.”
그녀가 주의했음에도, 세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모래 표범의 송곳니에도 주눅 들지 않고 찬찬히 다가가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생각해 둔 게 하나 있었다.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마수 조련사의 목줄 ]– 그라드 제국의 마수 조련사들이 마수를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던 목줄. 마수를 진정시키는 마법 수식이 깃들어 있다.
얼마 전, 마몬에게 타락한 타뷸라의 신체 부위를 넘기는 것으로 허락받은 창고의 새로운 보물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밤마다 창고의 보물 목록을 외어둔 보람이 있었다.
스르륵.
마몬의 창고를 통해 세운의 손위로 기다란 줄이 하나 생겨났다.
그러자 모래 표범의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 세운이 무기를 들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다른 동물이라면 세운의 기에 눌려 뒷걸음질을 쳤을 터인데, 녀석은 오히려 모래를 휘날리며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입을 크게 벌리자 송곳니가 두 배는 더 길어 보였다.
“조심!”
이를 지켜보던 야샤가 다급하게 도약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세운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니추공을 통해 표범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녀석의 목에 목줄을 걸었다.
회색빛 목줄이 녀석의 목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그러자.
“그르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송곳니를 드러내던 녀석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이마를 내밀었다.
세운은 그런 녀석의 이마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후에 가볍게 도약하여 등 위의 안장에 올라탔다.
“뭐 합니까? 안 타고.”
고개를 돌려보니 야샤가 멍한 표정으로 세운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녀 역시 모래 표범의 위에 올라탔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모래 표범들이 이렇게 빨리 낯선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건 처음 보았습니다.”
“얼른 가죠.”
“알겠습니다. 사막을 건너오셔서 잘 아시겠지만, 갈수록 모래바람이 심해지니 호흡기는 잘 막고 계시길 바랍니다.”
타앗!
그녀가 탄 모래 표범이 선두로 달렸다.
녀석의 목 언저리를 가볍게 쓰다듬자, 세운이 타고 있던 모래 표범 역시 그 뜻을 이해하고 선두를 따라 달렸다.
모래 표범을 탈 줄 모르지만, 목줄을 사용한 덕에 미약하게나마 녀석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니 굳이 조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녀석에게 부탁해 알아서 움직이게 놔두면 될 뿐이다.
‘생각보다 빠르네.’
속도가 붙자, 야샤가 말한 대로 건조한 모래바람이 덮어쓴 망토 위를 때렸다.
이동 속도로만 본다면, 무공을 사용하며 달리는 것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탑승감도 훌륭했다.
“근원지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적어도 세 시간은 이동해야 할 겁니다. 다만 피해 범위가 늘어난 만큼, 그전에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세 시간이라.
조사 시간에 더해 돌아오는 시간까지 합하면, 못해도 여덟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그쯤이면 지금 한창 9층의 시련을 공략하고 있는 클랜원들도 성벽 위에 도착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유서아가 알아서 잘하겠지.’
세운이 기억하기로 클랜원이 모두 도착하고 시작된 카운트 다운은 대략 열 시간 정도였다.
10층의 시련을 함께 준비하기 위해서는, 얼른 근원지 조사를 끝내고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대단하군요.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 그냥 쏜 겁니다.”
“그냥 쏴서 저런 위력이 나온다면, 저희 성벽에 병력이 십 분의 일로 줄여도 될 겁니다.”
모래 표범의 속도가 상당히 빠른 덕에, 얼마 되지도 않아 세운이 터트린 선인장이 보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저 ‘펑’ 하고 선인장이 사라진 정도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화살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터져 나간 선인장의 파편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장 멀리 날아간 파편은 수십 미터 밖에 떨어져 있기도 했다.
만약, 그때 화살촉에 마법을 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거리가 먼 만큼 마법의 위력이 떨어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태양이 가까이 다가온 것처럼 따가운 열기가 느껴질 때쯤.
“크르릉-”
“적입니다.”
10층의 시련에서의 첫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