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2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28화(124/675)
제 128화
콰아아!
모래를 뚫고 나온 것은 거대한 지렁이 모습의 몬스터였다.
데저트 웜.
모래에 서식하는 벌레인데, 그 크기가 작게는 2m에서 크게는 10m가 넘게까지 성장하는 몬스터다.
지금 보이는 건 대략 5m 정도 되어 보이는 놈들.
다만, 바닥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진동으로 보았을 때 그 수가 열 마리는 넘어가는 듯했다.
“제가 전방에 서겠습니다! 뒤에서 엄호 부탁드립니다!”
야샤가 곡선으로 휘어진 검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세운의 활 솜씨를 보고 세운이 궁수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세운은 그녀의 말에 따르지 않고 표범에서 내리고 모래 위로 손을 올렸다.
그녀가 당황하는 게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데저트 웜을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걸.
-흑탑의 묘리에 따라 ‘그라운드 웨이브’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쿠구구구!
“……마법?”
세운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모래 위로 구불거리는 파문이 일어났다.
사막에서 사용하는 그라운드 웨이브의 위력은 보잘것없다.
단단한 지면이면 몰라도, 모래를 흔들리게 해 봤자 그 안에 있는 몬스터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지 못하니까.
하지만, 마나를 키워 파동을 올리면.
“키엑!”
모래 속에 숨은 놈들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데저트 웜이 위협적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녀석들이 모래 아래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들이 모래 위로 올라왔다는 건.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 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대놓고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보법을 밟으며 꿈틀거리는 몬스터 사이를 한차례 휩쓸자, 순식간에 열두 마리의 몬스터가 움직임을 멈췄다.
야샤는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전투가 끝나 버렸다.
“……궁술에, 마법에, 검술까지. 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그쪽 입장에서는 제가 강할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놀란 얼굴을 하던 야샤가 순식간에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세운의 입장은 일종의 용병이었다. 고용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용병의 능력이지, 용병의 정체 따위가 아니었다.
-‘데저트 웜’을 포식하였습니다.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2 상승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잇감의 농후한 진액을 깊이 음미합니다.
이후로도 몬스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처음 만난 데저트 웜뿐만 아니라 이전의 시련에서 마주쳤던 다양한 몬스터들이 둘을 기습해 왔다.
근원지를 향해 다가갈수록 몬스터의 강함은 물론 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몬스터가 많은데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게 가능합니까?”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역로는 안전이 확보되어 있어서 어지간하면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역로라…….”
“다만, 최근에는 무역로에서도 몬스터의 습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원지에 신경 쓰는 이유도 그중 하나입니다.”
애초에 회귀 전에 세운이 합류했던 클랜은 이 부탁을 들어줄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니 세운으로서도 근원지에 무엇이 존재할지는 알지 못했다.
추측해 보자면…….
‘시련의 주축이 되었던 보스 몬스터나, 모래폭풍의 원인.’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련이 시작되기도 전에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게 놔둘 것 같지 않으니, 후자 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지금만 해도 그렇습니다. 본래 모래폭풍이 보이기 전까지는 몬스터가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습니다.”
“모래폭풍이 보인다는 건?”
“아, 병사가 근원지의 위치 말고는 설명이 부족했나 봅니다. 매해 저희 성벽에 불어닥치는 모래폭풍은 자연적인 재해가 아닙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 모래폭풍은…….”
그녀가 말을 조금 끄는 순간, 모래 언덕이 끝나고 따가운 모래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쳤다.
호흡기를 감싼 망토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세운도 이번만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조금 가라앉으며, 간신히 눈을 뜨자.
“저것에서 떨어져 나온 잔재일 뿐입니다.”
콰아아아-!!
모래 언덕 위에서 보는 사막의 광경은 엄청났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지평선 대신, 땅과 하늘을 잇는 거대한 모래폭풍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범위가 어찌나 큰지 시야의 좌우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마치 모래 언덕을 넘자마자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입성한 기분이었다.
‘이건 생각 이상인데.’
다른 곳도 아니고 고작 10층의 시련이다.
지휘관의 부탁이라 난이도가 낮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눈앞의 모래폭풍은 세운의 예상외였다.
저 환경만 생각해 보더라도 최소 20층 이상. 아니, 그보다 높은 곳에 존재하는 최악의 환경 중 하나로 보였다.
성벽에 불어닥친 그 어마무시한 모래폭풍이 저것에서 떨어져 나온 잔재 중 하나였다니.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어떤 게 말입니까?”
“모래폭풍 말입니다. 이전에 순찰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난폭해져 있습니다.”
아마 원래 저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로써 모래폭풍이 커진 것도, 주변에 몬스터가 더 많이 등장한다는 것도 확인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확인일 뿐이었다.
이런 정보는 소문으로나마 이미 들려오던 것이었으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째서 모래폭풍이 더 커졌으며, 몬스터의 활동반경이 넓어졌냐에 대한 사항이었다.
원인 파악이 되지 않은 지금, 모래폭풍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네.”
“크르릉-”
모래 표범이 신음을 내듯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아무리 사막에 적응한 녀석들이라고 해도, 모래폭풍을 향해 다가가는 것은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키에엑!”
모래폭풍을 향해 이동하는 중에도 몬스터의 습격은 그치지 않았다.
온갖 지렁이나 전갈, 또는 식물형 몬스터 등. 눈이 퇴화하거나, 단단한 갑각으로 덥힌 녀석들은 모래폭풍 안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쉽게 녀석들을 처치할 수 있었지만, 갈수록 싸움이 점차 버거워졌다.
몬스터들이 강해지는 것보다는, 모래폭풍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습니다. 일단은 이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원인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정보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소득입니다. 폭풍이 너무 거세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아마 부탁의 진행은 여기서 마무리인 듯했다. 그 어떤 플레이어도 이 모래폭풍을 뚫고 나가기는 힘들 테니까.
하지만, 세운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여정의 지침표가 있었다면, 분명 저 폭풍 속을 향해 지침을 가리켰을 것이다.
곧이어 세운의 서클이 회전하며 새로운 마법이 발현하였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윈드 커튼(Wind curtain) ]– 녹탑의 방어 마법으로써, 바람의 장막을 일으켜 주변의 재해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해 준다.
후우웅-
거친 모래폭풍과는 다른, 온화한 바람이 피부를 감싸며 퍼져나갔다.
세운뿐만 아니라 야샤를 포함한 두 모래 표범의 주위로 바람의 장막이 펼쳐졌다.
피부를 따갑게 때리던 모래알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다. 공기를 찢는 것만 같던 날카로운 바람 소리도 쥐 죽은 듯이 사라졌다.
윈드 커튼.
물리적인 공격은 막기 어렵지만, 우박이나 모래바람처럼 약하지만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공격을 막기에 효과적인 방어 마법이었다.
“……이런 마법도 쓸 줄 아셨습니까?”
“혹시 몰라서 마나를 아껴두기 위해 안 사용하고 있던 거니까,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유지 시간은 얼마나 되십니까?”
“다른 마법을 안 쓰고 이것만 유지한다면…… 대략 두세 시간 정도.”
“왕복을 생각해 보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겠군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죠.”
“알겠습니다.”
바람의 장막이 모래바람을 막자, 모래 표범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졌다.
자연스레 이동 속도도 빨라졌고, 생각보다 빠르게 폭풍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다가갈수록 생각 이상이네.’
엄청난 크기의 모래폭풍.
바람의 장막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모래알이 피부에 박혀 들어갔을 것이다.
바람의 세기도 더욱 강해져, 몬스터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디까지 들어갈 생각이지?’
이곳이 근원지라고는 하나, 이 이변의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
스캔 마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거센 모래폭풍 때문에 마나도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려져 있었다.
이대로 무언갈 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
“저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야샤가 왼편을 가리켰다.
이에 세운도 서칭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왼편을 확인해 보았다.
처음에는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시야에 집중하자 그녀가 의문을 느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람의 흐름이 다르다.’
바람의 장막을 유지하고, 서칭 마법까지 사용하며 마나에만 집중하느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5 서클이 되고 난 뒤로는 마나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던 듯했다.
반성을 느낀 세운이 장막만을 유지한 채로 그쪽을 향해 이동했다.
가까워질수록, 달라진 바람의 흐름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런데 근원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사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사된 사항은 대부분 외적으로 관찰한 내용입니다. 내부는 이런 환경 때문에 조사할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왔을 수 있을 텐데.”
“모래폭풍이 가장 약할 시기에 꽤 깊이 조사를 한 기록이 있지만, 별다른 걸 찾아내지는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무엇보다도 내부를 관찰하기 위해 인원을 보낼 때마다 절반 이상은 모래폭풍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한 터라, 최근에는 정찰 자체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래폭풍의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낼 때마다 절반 이상이 돌아오지 못한 건 물론이고, 쓸 만한 정보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상부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한 인력 낭비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다만, 전설이 하나 있긴 합니다.”
“전설?”
“아주 먼 옛날. 사막의 괴물을 가두기 위해 폭풍을 일으켰다는…… 그런 전설입니다.”
세운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설이라고는 해도, 시련을 진행하며 핵심 인물이 내뱉는 대사는 커다란 힌트나 다름없었다.
‘괴물이라…….’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 거대한 모래폭풍이 단 한 마리의 괴물을 가두기 위한 결계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런 괴물을 세운이 상대할 수 있을까?
해답은 회의적이었다.
세운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층의 플레이어에 한한 얘기다.
중층만 도달해도 지금의 세운과 막상막하로 검을 부딪칠 만한 실력자가 가득하다.
야샤의 말을 들으면, 아마 저 모래폭풍 내부의 몬스터는 최소 중층 이상에서나 활약할 만한 무력을 가진 몬스터.
마몬의 보물을 사용한다고 하여도, 지금의 세운이 상대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후웅-
“역시.”
“태풍의 눈에라도 들어온 기분이네요.”
“이 부근에 태풍의 눈이 존재한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아직 이곳은 태풍의 눈이 존재할 만한 위치가 아닙니다.”
“그렇다는 말은…….”
“아마, 이곳이 저희가 찾던 곳인 것 같습니다.”
그 거세던 모래폭풍이 거짓말처럼 폭 가라앉았다.
뒤를 돌아보니 세운의 장막과 비슷하게 일정한 막을 중심으로 바람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마나를 아끼기 위해 바람의 장막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중앙의 모래 언덕을 중심으로 바람이 멈추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찾았다.’
이변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동상과 함께,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