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2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33화(129/675)
제 133화
성문에 들어오자마자 두 모래 표범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무려 3시간 동안 최대 속도를 유지한 탓에 체력이 바닥난 것은 물론 탈수 증상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병사 몇몇이 물통을 가져와 먹이자, 그제야 숨이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고맙다.”
“그릉…….”
표범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세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흔들리는 자세 때문에 마나와 내공은 거의 회복하지 못했지만, 체력은 어느 정도 돌아온 상태였다.
마나를 회복하는 건 어디서 해도 상관이 없으니, 기왕이면 성벽 위에서 행할 생각이었다. 그편이 전장을 바로 이해하고 전투에 참여하기 편할 테니까.
야샤는 병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이미 성벽 위의 지휘실로 이동했다.
몬스터의 공격으로 인해 사방의 모든 사람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운 씨!”
“유서아, 상황은 좀 어때?”
“아직은 버틸 만해요. 무엇보다 한철 씨가 잘 버텨주고 있어요.”
굳게 닫힌 성문을 뒤로하고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한철.
수많은 몬스터가 그를 넘어서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강한철의 주먹에 닿기도 전에,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터져 오른 모래알에 몸이 꿰뚫려 목숨을 잃었으니까.
지진을 다루는 아가레스의 권능은 사방에서도 어김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남문의 전장을 지배합니다.
-타란튤라의 거미줄이 전장을 덮쳐옵니다.
-아군의 전투력이 증가하고, 적군의 이동 속도가 소폭 줄어듭니다.
유서아가 강한철처럼 근접전을 벌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잠재력인 지배는 저번에 보였던 것처럼 베어낸 몬스터를 지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전장을 지배 범위로 두어 아군의 전투력을 끌어 올리는 것 역시 가능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좌인 바알의 권능은 지배의 힘과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런 대단위 전투에서는 이렇게 지휘관으로서 활약하는 게 클랜에게 더 큰 힘을 안겨줄 수 있어 보였다.
전장이 훤히 내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마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귓가로 전에도 한 번 들어보았던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였지만, 몬스터에게는 그렇지 않는 듯했다.
-몬스터들이 ‘혼란의 울음’을 들었습니다.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인해 상당수의 몬스터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혼란에 빠진 몬스터들이 이성을 잃고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튜토리얼 중에 세운이 판의 계약자를 쓰러트리고 얻었던 ‘요정을 닮은 악기’. 그 악기의 능력 중 하나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한 여성이 갈대 나무를 엮어 만들어진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바람이 일렁이는 모습이 꽤 신비로워 보였다.
단순히 음악적인 재능만 따져본다면, 세운이 ‘거친 바다의 악보’를 연주했을 때보다 더욱 훌륭했다.
-성좌, ‘노래하는 일각수’가 혼란의 선율을 감상하며 뿔을 부드럽게 휘두릅니다.
아군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선율이었지만, 몬스터들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노래였다.
혼란에 빠진 몬스터들이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아군을 향한 공격이 이어질수록 놈들 사이에서의 혼란은 더욱 커졌다.
아무래도 그녀의 성좌인 ‘노래하는 일각수’. 67위의 마왕, 암두시아스의 권능이 깃들어 있어 혼란이 더욱 증폭된 듯했다.
-플레이어 이하늘이 ‘독에 잠긴 병동’을 사용합니다.
푸홧!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보랏빛 액체가 물풍선처럼 터져나갔다.
그 액체는 모래폭풍을 타고 전장에 넓게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수백의 몬스터가 액체를 뒤집어썼다.
몬스터들 저층에서 마주쳤던 놈들보다 강했기에 이것만으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상태를 악화시키고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공격이 이어질수록 성벽 앞에 몬스터의 시체가 한가득 쌓여나갔다.
처음에는 시체들이 몬스터의 전진을 막아 내는 훌륭한 벽이 되었지만, 그 높이가 점차 높아지자 말이 달라졌다.
동료의 시체를 발판삼아 성벽을 오르려는 몬스터들이 생겨난 것이다.
혹시라도 놈들이 성벽 위에 올라서 수성 병기라도 망가트리면, 전세는 크게 역전된다.
놈들이 성벽을 오르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 순간, 뒤에서 언데드들을 조종하던 백현이 세운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쯤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곧 벌어질 축제에 흥분을 멈추지 못합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기에 가미긴까지 기대를 내비칠 정도일까?
백현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저 많은 수의 시체를 한 번에 일으킬 수는 없었다.
네크로맨서의 마법을 떠올리던 세운의 머릿속에 하나의 마법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백현이 세운을 통해 만들어 낸 다크 서클을 맹렬히 회전시켰다.
언데드를 조종할 때와는 다르게, 서클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전장에 넓게 퍼져나갔다.
전장의 시체에 자리 잡은 마나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주위의 시체에게까지 손을 뻗어나갔다.
전장에 한가득 쌓인 시쳇더미가 모두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 듯했다.
이에, 세운은 자신의 예상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곧 다가올 충격을 대비하여 마나를 쌓는 걸 멈추고 눈앞에 와이드 실드를 펼쳤다.
곧이어 백현이 평소의 진지한 표정과는 다르게, 희열에 빠진 사람처럼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주먹을 꽉 쥐는 순간.
“커스-익스플로젼(Corpse explosion).”
전장에 쌓인 시쳇더미가 일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굉음이 전장을 가득 채워나갔다.
병기를 조종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멈춰 귀를 막고, 자세를 낮춰 풍압을 견뎌냈다.
급하게 설치하느라 안정성이 부족한 병기는 풍압을 감당하지 못하고 흔들리기까지 했다.
성벽 위에서 느끼는 풍압도 이 정도인데 폭발에 직격당한 몬스터들은 어떨까?
‘미친…….’
말 그대로 괴멸되었다.
시체 더미가 쌓여 있던 곳을 중심으로, 몬스터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천이 넘는 수의 몬스터가 목숨을 잃었다. 온전한 시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말이다.
다행히도 폭발 범위를 잘 설정한 덕분에 성벽에까지 위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성벽이 무너졌을 것이다.
“과연, 성공입니다! 역시 평범한 시체폭발보다 시체를 일순간 부패시켜 만들어 낸 가스를 통해 폭발을 일으키니 위력이 급증하였습니다! 이 방법이라면…….”
눈앞의 처참한 광경에 백현이 한껏 미소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분명 처음에 대화를 나눴을 때는 저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이 잘 어우러져, 한 명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새삼, 시해(屍海)라는 그의 이명이 그 어떤 순간보다 잘 어울려 보였다.
어찌 됐든, 덕분에 위태롭던 전장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시체가 모두 산산이 조각난 탓에 성벽을 오르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시체 주변의 몬스터가 전멸한 것은 물론, 성벽에 몬스터의 체액이 들러붙어 미끄러워진 탓에 맨몸으로 성벽을 오르기도 더욱 힘들어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일격이었다.
“……이런 공격을 할 거면 언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마침 적당한 방패가 하나 있어서 상처는 없다.”
“그거 다행입니다!”
강한철이 전신에 끈적한 체액을 묻힌 채 성벽 위로 올라왔다.
아마도 그가 말한 방패 역시 몬스터를 말하는 것이겠지.
이 미끈거리는 성벽을 어떻게 타고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상태로 싸움을 이어가는 건 어려워 보였다.
슈르륵!
“……고맙군.”
세운이 손을 뻗자 강한철의 주위로 물방울이 요동쳤다.
클린 샤워. 9층의 개미집을 무너트리고 사용했던 생활계 마법이었다.
장비는 물론 머리카락까지 끈적하게 젖어 있던 강한철의 몸이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조금 쉬었다 가지?”
“아니다. 아직 체력은 충분하다.”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진(震)’을 사용합니다.
콰아아앙!!
강한철이 다시 한번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위로 올라온 건 정말 몬스터의 체액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해서 그랬나 보다.
성문을 홀로 지키고 있었으면서도 아직 체력이 충분하다니. 저 정도면 힘뿐만 아니라 순수 체력도 세운 이상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모든 능력치의 총합으로는 세운을 결코 넘길 수 없겠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네.’
솔직히, 디아블로 클랜이 이 정도로 강해졌을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의 고전은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최소한 마나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무력은 세운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고전은커녕, 압도적으로 몬스터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세운이 단 한 번도 거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들 탑의 10층까지 올라오며 세운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성장을 이룬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로운 성좌와 계약한 플레이어의 수도 전보다 더욱 늘어나 있었다.
물론, 그 모두가 72 마왕이라 알려진 성좌들이었다.
악마를 뜻하는 디아블로 클랜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혼자 쉬고만 있을 수는 없지.’
마나를 충분히 회복한 세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쩍 시선을 내려 뒤랑달을 바라보았지만, 검신에 아직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뒤랑달이라고 해도 마몬의 보물을 연이어 사용하기에는 무리일 테니 검신이 식을 때까지는 쉬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공격은 하나뿐이다.
이렇게 많은 대군을 상대하기에는 마법만큼 훌륭한 방법이 또 없었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아이스 필드(Ice field) ]– 청탑의 얼음계 공격 마법으로써 지정한 구역을 냉기의 대지로 만들어 그 위의 적을 모조리 얼려 버린다.
드드드득!
세운의 손끝에서 차가운 서리가 생겨났다.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아이스 필드의 범위를 설정해 나갔다.
아이스 필드는 마나를 불어넣는 만큼 공격 범위를 얼마든지 늘일 수 있었다.
어차피 상황도 여유롭고, 마나야 새로 모으면 그만인 상황. 본래 필요한 마나의 두 배 이상을 투자하여 마법의 범위를 극도로 늘렸다.
범위 설정이 끝나자마자.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녹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가 얼어붙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청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쩌저저적!
전방의 사막이 차갑게 얼어나갔다.
그 위를 지나던 몬스터들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냉기를 처음으로 느끼며, 몸이 굳어가는 순간을 생생하게 느껴야만 했다.
다리가 먼저 얼고, 몸통에 이어 팔과 목이 얼어간다.
냉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놈들도 있었지만, 되레 얼어붙은 신체가 깨져나가며 남들보다 빨리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운이 지정한 범위 위에 있던 몬스터들이 전부 백색의 동상이 되었다.
태양에 비춰 반짝거리는 동상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품이나 다름없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절반이 넘는 몬스터가 쓰러졌다.
남은 것은 나머지 절반의 몬스터와.
쿵, 쿵.
10층의 시련, ‘다가오는 모래폭풍’의 보스 몬스터.
그리고…….
“크아아아악!”
세운이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며 생겨난 또 하나의 보스 몬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