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3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37화(133/675)
제 137화
다음 날이 밝았다.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플레이어가 되며 강화된 신체는 알코올 역시 빠르게 해독해 주었다.
오랜만의 자유시간이었기에, 디아블로의 클랜원들은 다들 각자의 이유로 아침부터 여관을 나섰다.
시장 구경이나 거주지를 꾸밀 소재 확보 등. 목적은 저마다 달랐지만, 하나같이 표정이 밝아 보였다.
세운 역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여관을 나섰다.
조금 걷다 보니 금방 광장이 나왔다.
“각종 몬스터 소재 팝니다!”
“스피어 클랜 가입자 모집합니다! 공적치가 조금만 더 모이면 클랜 거주지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같이 성장해 나가실 분!”
“장검 파시는 분 계신가요? 근력 78의 전사입니다.”
10층의 시련과 스토리가 이어져 혹시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떨어진 공간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광장에는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플레이어가 가득했다.
그 수가 제법 많았던 덕에, 이곳은 이미 플레이어 전용 시장 같은 곳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플레이어 사이를 돌아다니며 매점을 기웃거리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르신?”
“음? 아, 자네인가. 일찍 일어났구먼.”
고창석이었다.
가까운 대장간이라도 찾아간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허허, 괜찮은 소재가 보여서 말일세. 내 성좌께서는 쇠보다 이런 것들을 더 좋아하시거든.”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단단하기만 한 무쇠보다는 몬스터의 소재가 힘을 끌어 올리기 좋다며 단언합니다.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하지만 이곳에는 쓸 만한 소재가 영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합니다.
‘하긴, 여기서 파는 소재라고 해 봐야 대부분 별거 아니니까.’
제대로 된 물건이 이런 거리 한복판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무언가 도와줄 게 없나 고민하던 세운이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거기라면.’
지금쯤,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하고 많은 소재가 모여 있는 곳을 알고 있다.
“이쪽으로 오시죠.”
“음? 아냐, 괜찮다네.”
“여기서 공적치 낭비하시는 게 아까워서 그래요.”
“흐음, 그 정도인가? 그럼 뭐, 나야 고맙지. 근데 자네 어디 가던 중 아니었나?”
“어차피 같은 길이거든요.”
배려가 아니라, 애초에 세운의 목표는 이쪽이었다.
시장통처럼 시끄럽던 광장을 벗어나 조금 걷다 보니, 금방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가깝다기보다는, 그만큼 목적지의 크기가 컸기 때문이다.
“설마 목적지라는 곳이 저기인가?”
“네.”
스카베의 남문.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 내기 위해 디아블로 클랜이 전투를 벌였던 장소였다.
세운이 가까이 다가가자, 피곤해 보이는 병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 안녕하십니까! 이야, 어제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아직까지 머리가 아프지 말입니다. 하하!”
“고생하십니다.”
“아유, 고생은요. 오히려 작년의 습격에 비교하면 이번 고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병사가 세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미 어제 종일 들어온 감사였기에, 가볍게 이를 사양한 세운이 본론을 내뱉었다.
“혹시 바깥 정리는 끝났습니까?”
“그게, 수가 워낙 많은 터라 아직 길만 확보했을 뿐입니다. 주위는 아직 정리가 한창입니다.”
“몬스터의 사체는요?”
“그것도 한창 분류 중입니다. 혹시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가능하다면 쓸 만한 소재가 있나 좀 둘러보고 싶습니다만.”
세운이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10층의 시련에서 쓰러트렸던 수천 마리의 몬스터.
습격을 막아 내자마자 디아블로 클랜은 성벽 안으로 소환되었기에 그것들을 수습할 시간이 없었다.
스토리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였다.
현재 남문은 디아블로 클랜이 10층의 시련에 도전한 그 직후의 상태였다.
곧이어 병사가 소재를 정리하고 있다는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어떠세요. 아까 그 광장보다는 여기가 훨씬 나아 보이죠?”
“……허허, 이거 완전 노다지로구먼.”
어제 쓰러트렸던 몬스터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중요한 건 이게 수거한 사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
병사들은 몬스터의 사체를 도축하며 먹을 수 있는 부위나 쓸 만한 소재를 찾아내는 중이었다.
몬스터 습격은 스카베의 크나큰 위협이지만, 잘만 넘기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식량뿐만 아니라 일부 소재는 무역을 통해 연금술사나 마법사 등에게 비싸게 거래할 수 있는 물품이었으니 말이다.
세운이 여기까지 안내해 준 병사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혹시, 괜찮은 소재 몇 개만 얻어가도 되겠습니까?”
“하하, 물론입니다! 이 정도야, 지휘관님도 뭐라 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수가 너무 많아 절반 정도는 상품 가치를 유지할 수 없으니,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스카베는 사막에 위치한 도시여서 날이 더운 만큼 몬스터의 사체가 부패하는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이번에 습격한 몬스터의 수는 특히나 많았으니 병사들의 입장에서도 손해 볼 건 없었다.
“이거 고맙구먼! 여유 있을 때 얼른 하나라도 더 챙겨야겠네.”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저쪽의 척추뼈가 제법 쓸 만해 보인다며 고개를 기웃거립니다.
고창석이 세운과 병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정리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에게 재료가 충당되면 자연스럽게 디아블로 클랜의 장비가 좋아지며 무력이 상승하는 꼴이 될 테니, 세운으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것보다, 분명 이쯤에 있을 텐데.’
세운이 이곳까지 찾아온 본 목적을 떠올렸다.
병사들에게 물어봐야 하나 싶었지만, 저 멀리서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고 저곳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슬슬 악취를 풍기기 시작하는 사체 사이를 뚫고 지나가니, 예상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대단하지 않아? 죽은 게 알아서 꿈틀꿈틀 움직이네.”
“조금 무섭지 않나?”
“무섭긴 무슨! 저분이 저 마법으로 몬스터를 얼마나 쓰러트렸는데. 특히 마지막에 그 폭발, 못 봤나?”
“당연히 봤지. 정말이지, 간담이 서늘해지는 폭발음이었어.”
백현. 그가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하여 언데드를 제작하고 있었다.
10층의 시련에서 만티코어를 제외한 모든 언데드를 시체폭발을 사용하는 데 써 버린 탓에 언데드를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령술처럼 단순하게 몬스터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몬스터의 신체 기관과 특성을 하나하나 연구하여, 그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서로 다른 몬스터의 사체를 이어 붙여 키메라의 형태로 만들기도 하고, 악어를 터트렸을 때 사용한 것처럼 가스를 채워 시체폭발용 언데드를 만들기도 한다.
그의 성좌, 가미긴 덕분에 언데드와 사체는 무한에 가깝게 저장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준비였다.
“잘 돼 갑니까?”
“아, 오셨습니까! 보시다시피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몬스터가 많아서 연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하!”
늘 느끼는 거지만, 평상시에는 그렇게 점잖은 사람이 몬스터의 사체나 언데드에 대해서 얘기할 때만은 분위기가 변하였다.
뭐,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의 힘에 빠져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그의 모습이 그 말을 딱 증명하고 있었다.
세운이 도착하자마자 지금 눈앞에 있는 몬스터의 특성을 신나게 설명하고 있는 그를 두고,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털썩.
“이건!”
“아공간에 들어 있었으니 썩거나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혹시 상태가 안 좋아서 특성을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오오, 확실히 다른 개미들과는 전혀 다르군요.”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이건 꽤 쓸 만하겠다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여왕개미의 사체를 꺼내자마자 백현이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가졌다.
머리와 배 쪽의 장기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가능할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백현의 부탁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분명 언데드 제작이나 흑마법과 관련된 부탁일 것이다.
그런 거라면 디아블로 클랜의 전투력 상승과도 연관이 있었으니,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번 10층의 시련에서 증명된 것처럼, 클랜이 강해지는 건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잠깐만 이쪽으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어째서인지 자리 이동을 요청하는 그.
어지간한 부탁이라면 이 자리에서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이동을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운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사체를 정리하던 작업소를 빠져나와 병사에게 허락을 구하고 성문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작업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한 악취와 함께 몬스터의 체액이 모래와 섞여 굴러다니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작업소에서 보이기에는 공간이 너무 부족해서 그랬습니다.”
“공간이요?”
작업소는 수많은 몬스터의 사체를 모아둔 만큼 공간이 매우 큰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의 공간이 작게 느껴졌다니.
대체 무슨 부탁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세운의 머릿속에 한가지의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아무리 백현이어도, 아무리 가미긴이어도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백현이 가미긴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허공에 검은 빗금이 그어지더니, 그 사이가 입처럼 벌어지며 몬스터의 사체 하나를 뱉어냈다.
쿠궁!!
분명 몬스터 한 마리의 사체일 뿐인데, 그게 바닥에 떨어지자 땅이 떨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가 당황한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그 반응은 세운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챙겼던 겁니까?”
“하하, 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말입니다.”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이 아까운 소재를 어떻게 버려둘 수 있겠냐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체의 정체는 바로 ‘사하의 포식자’.
10층의 시련에서 성벽을 공격했던 두 마리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였다.
내부에서 폭발 공격을 당했음에도, 그 두꺼운 가죽은 온전히 본래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자, 백현이 무슨 부탁을 할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이걸 언데드로 만들고 싶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폭발로 인해 복구가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습니다. 이대로는 그 어떤 형태로도 일으키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작업소를 포함해, 이 사막에는 수많은 몬스터의 사체가 널려 있지 않습니까?”
“……설마, 그것들을 이용할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다른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하여 뼈대를 만들고, 내부조직을 구현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 저 포식자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흥분된다며 콧바람을 강하게 뿜어냅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가미긴의 광기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잘 숙성된 먹이들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합니다.
백현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당당히 몸을 일으킨 채 적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 악어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듯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생각이네.’
그래,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고작 두 번째 쉼터의 플레이어가 저런 보스 몬스터를 다루려 하는 것도, 다른 몬스터의 사체로 악어의 뼈대와 내부장기를 채우려는 것도.
전부, 세운의 상식에 상반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무모함이 싫지 않았다.
세운 역시 더욱 강해지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벌이고 다녔으니까.
이론과 자신감, 확신이 있는 무모함이라면 플레이어를 강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레이즈 키메라(Raise chimera) ]– 서로 다른 사체를 뒤섞어 강력한 언데드를 만들어 내는 기술로써 흑탑의 고위 네크로맨서만이 가능하다는 고난이도 마법이다.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며, 머릿속을 채워 나가는 흑탑의 지식을 사용해 작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