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3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42화(138/675)
제 142화
내공만 운용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늪지에서의 이동은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불편했다.
특히 앞으로 나아갈수록 늪지의 점도가 불균형하여 어떤 곳은 과하게 점도가 높고, 어떤 곳은 물처럼 잠겨 있었다.
아무리 세운이라고 해도 물 위를 달릴 수는 없으니,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십 분 정도 발을 움직이다 도저히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세운은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초상비(草上飛) ]– 높은 수준의 경신법으로써 풀을 밟으며 달려도 풀잎이 꺾이지 않는다는 경공의 경지를 뜻한다.
초상비.
풀 위를 난다는 그 이름처럼 몸을 가볍게 하고,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경신법이다.
높은 수준인 경공인 만큼 고수의 수준에 오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 고도의 경신법. 최근에 2갑자의 내공을 얻은 세운이었기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기술이었다.
타앗!
세운의 발걸음이 한순간에 가벼워졌다.
본래 늪지에서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기술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은 늪지에서도 훌륭한 효율을 보였다.
끈적이는 늪지는 더 이상 세운의 발을 붙잡지 못했고, 함정처럼 도사리던 깊은 물가는 바람처럼 매끄럽게 피해갔다.
일반 경공보다 내공을 많이 사용해야 했기에 사용을 아끼고 있었는데, 막상 사용해 보니 왜 진작 사용하지 않았는지 후회될 지경이었다.
확실히 내공의 사용량은 많지만, 이동 거리를 생각해 보면 효율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길은 맞는 것 같네.’
피부로 느껴지는 독성이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나무 위에 달려 있던 알록달록한 단풍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지도 못하고 나무 위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분명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나무가 못 버틸 정도로 독이 강했다면, 애초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 말은 즉, 최근에 무언가의 계기로 인해 주위의 독이 나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
‘이 앞에 그 원인이 있겠지.’
독성이 강해지는 쪽으로 쭉 나아가면, 독의 근원지가 나타날 가능성이 컸다.
초상비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중, 주변의 늪지가 한순간 꿀렁거리며 거품을 토해냈다.
세운이 본능적으로 늪지를 박차고 높이 뛰어오른 순간.
“쿠르르르-!”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드디어 나타났다며 다급하게 포크를 집어 듭니다.
세운이 서 있던 자리로 길쭉한 무언가가 솟아 나왔다.
장어인지 지렁이인지 모를 모습의 몬스터였는데, 머리에 눈과 코 같은 감각 기관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날카로운 이빨이 우수수 박혀 있는 거대한 입이 전부였다.
조금만 더 늦게 뛰어올랐으면, 못해도 다리 하나쯤은 물렸을 것이다.
‘확실히, 몬스터의 수준도 더 강해졌어.’
세운이 회귀 전에 보았던 11층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반대쪽으로 향했을 때 나오는 몬스터는 기껏 해 봐야 무릎까지 오는 독개구리나 나무에서 독열매를 던져대는 원숭이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처음부터 사람 하나쯤은 가볍게 삼켜 버릴 듯한 몬스터가 등장했다.
앞으로 더 나아가면 이보다 강한 몬스터가 연이어 등장할 게 분명했다.
“쿠륵, 쿠르르!”
장어인지 지렁이인지 모를 녀석이 자신의 머리보다 입을 크게 벌린 채 세운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날카로운 이빨도 이빨이지만, 꿈틀거리는 몸이 진흙으로 번들거리는 게 징그러워 보였다.
저 안에 들어가는 것은 죽어도 사양이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서걱!
세운이 떨어지는 그대로 뒤랑달을 휘둘러 몬스터의 몸을 두 동강 냈다.
놈은 과하게 벌린 입을 닫지도 못한 채, 진득한 체액을 뿜어내며 늪지 아래로 가라앉았다.
검에 묻은 체액을 털고 있으니 베엘제붑이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댄 탓에 곧바로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 ‘트랩홀 피쉬’를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2 상승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잇감의 쫄깃한 식감에 감탄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건 구워 먹으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겠다며 당신을 흘깃거립니다.
구워 달라니.
귀찮은 제안이었지만, 10층의 시련을 완료하고 스카베에서 쉬는 동안 폭식의 권능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배고프다고 찡찡거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도 될 것 같았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다크 플레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의 예상대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몬스터의 공격이 이어졌다.
3m는 되어 보이는 악어나 회귀 전에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커다란 독두꺼비 등. 11층의 수준에 맞지 않는 다양한 몬스터가 자신의 힘을 자랑했다.
그럴 때마다, 세운은 불길을 뿜어내며 그것들의 목숨을 끊었다.
간혹 불길을 피해 늪지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라운드 웨이브를 사용하자 진동을 못 견디고 튀어나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환상적인 요리 실력이라며 당신을 찬양합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기분이랄까?
마나를 절약하며 검을 휘둘러도 충분한 상대여서 마법을 사용하기가 조금 아깝긴 하지만, 덕분에 베엘제붑의 입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저래 보여도 ‘폭식의 권능’의 주인이니, 기회가 될 때마다 식탐을 채워 주는 게 좋았다.
치이익-
곳곳에서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아니,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이 오기 직전처럼 차마 떨어지지 못한 낙엽이 겨우 매달려 썩어가던 나무들은, 이제 단풍 하나 달려 있지 않았다.
뿌리부터 시작해 나무 전체가 썩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의 공격도 줄어들었다.
독을 머금고 살아가는 몬스터조차 힘들어하는 구역이라니.
‘잠깐 쉬다 갈까.’
세운이 가까이에 보이는 썩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포이즌 살라만더의 피부’는 마몬의 보물 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독을 막아주는 것이었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 힘이 몸에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강한 독을 해독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대기 중의 독성이 점점 강해지자 세운의 피부도 녹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으니, 몸이 독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했다.
우웅-
쉬는 동안에 내공과 마나를 채워 나갔다.
늪지 때문에 초상비를 끊임없이 사용하고, 베엘제붑을 위해 볼 마법을 계속 사용해 온 탓에 회복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던 중, 나무 아래에서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 즉시 킬케르가식 은신술을 활용하여 몸을 감춘 세운이 숨소리를 가라앉히며 아래를 내려보았다.
‘리자드맨?’
파충류 특유의 촉촉한 피부와 그 위로 돋아난 매끄러운 비늘. 이족보행을 하며 양손에 창과 방패를 쥐고 있는 녀석들은 공룡처럼 기다란 주둥이를 가지고 있었다.
리자드맨.
서식하는 위치에 따라 그 종류가 많이 나뉘지만, 놈들은 늪지라는 환경에 적응한 개체들이었다.
지형이 늪지인 만큼 놈들이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세운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저놈들이 왜 11층에?’
리자드맨은 본래 12층 이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두 종족 중 하나였다.
그런 놈들이 11층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혹시 벌써 초록 늪지대를 벗어난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사냥감이 안 보인다.”
“평소보다 더 조용한 느낌.”
“이곳의 동물들도 독을 못 버티는 수준에 도달한 건가?”
“생각보다 진행이 빠른가 보군.”
다음 층부터의 얘기지만, 놈들은 플레이어의 시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덕분에 세운은 나무 위에서 놈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었지만, ‘코볼트의 짝귀’로 강화된 청각은 놈들의 숨소리까지 완벽하게 잡아냈다.
“어쩔 건가?”
“돌아가자.”
“먹이는?”
“돼지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일단은 보고부터.”
“알겠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설마 자신의 존재를 들킨 것이냐며 화들짝 놀랍니다.
돼지라……. 아마 다음 층부터 등장하는 핵심 부족 중 하나인 오크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세운이 몬스터를 정리한 것을 보고 독이 강해진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놈들이 독에 대해서 저런 언급을 한다는 건…….
‘저놈들을 따라가면 되겠네.’
세운이 예상한대로 독의 근원지가 리자드맨들과 무언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었다.
– 내공을 통해 킬케르가식 은신술이 강화됩니다.
은신술을 통해 검게 죽은 나무와 동화된 세운이 놈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늪지를 걸으며 미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초상비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경신법이지 몸을 감추기 위한 경신법이 아니니까.
자칫 실수하여 늪지에 발이 빠지거나 찰팍거리는 소리라도 내었다가는 바로 정체를 들키고 말 것이다.
휙, 휙!
튜토리얼에서 사용했던 원숭이의 힘을 떠올렸다.
그 힘은 절벽을 등반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지만, 원숭이인 만큼 나무를 타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개중에는 독에 의해 기둥까지 썩어들어간 나무도 있어 자칫 소음이 날 뻔도 했지만, 초상비를 응용하여 발을 가볍게 만들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제 얼마나 걸리겠나.”
“나도 모른다.”
“돼지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먼저 공격해 온다면 우리야 환영이다. 이쪽으로 유인하면, 놈들은 버틸 수 없다.”
놈들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리자드맨들이 오크와의 전쟁을 위해 독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때 그게?’
회귀 전에 세운은 오크의 편에 들어 리자드맨을 공격했다.
그때, 리자드맨들은 늪지에서 살아가는 오크들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독을 가져와 흩뿌리고 다녔다.
아무래도 그때 보았던 독이 이곳에서 만들어진 독인 듯했다.
치이익-
리자드맨을 따라 나아갈수록 주변의 독성이 더욱 강해졌다.
‘포이즌 살라만더의 피부’로 독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독성이 강해지니 피부가 다시금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하늘이 만들어 준 해독제까지 들이마시며 미행을 계속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윽…….’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상큼한 향기에 코를 킁킁댑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일까?
처음 맡아보는 냄새는 아니었다. 회귀 전에 질리도록 맡아보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바로, 시체가 썩어들어갈 때 나는 냄새였다.
“써라.”
“알겠다.”
독성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리자드맨들도 가죽으로 만들어진 방독면 비슷한 무언가를 얼굴에 착용하였다. 심지어 손에도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다.
리자드맨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극독.
그 중앙에는…….
‘미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쌓인 시쳇더미와 그 위로 뿌리를 내린 채 악취를 내뿜고 있는 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