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3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43화(139/675)
제 143화
시쳇더미의 가장 위에 자리 잡은 것은 집채만 한 크기의 꽃이었다.
붉은색에 하얀 고름 같은 것이 울룩불룩 솟아난 다섯 장의 꽃잎이 눈에 띄었다.
꽃의 중앙에는 검은 구멍 같은 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안이 어찌나 어두운지 입구 외에는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아래로는 뿌리가 난잡하게 내려와 시체들을 휘감고 있었다.
악취와 극독을 내뿜고 있는 정체가 바로 저것이었다.
‘커스 라플레시아를 재배하고 있었다니.’
커스 라플레시아.
저 앞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꽃의 이름이다.
세운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서적을 통해 공부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희귀한 식물이었다.
이 꽃이 희귀한 이유는 자라나는 환경에 있는데, 시체꽃이라는 이명답게 시체에서 얻는 양분을 통해 자라나는 특성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송장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이다.
거기다 습기 가득한 환경이 필요해 주로 정글이나 이런 늪지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을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뭐, 그래도 항상 전투와 죽음이 도사리는 탑에서 그런 환경이 그리 드물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를 보기 힘든 이유는, 커스 라플레시아가 위험 식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체를 먹고, 극독을 분출하여 주위의 환경을 망가트리는 꽃.
어느 정도 성장이 되면 시체뿐만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까지 죽이고 흡수한다.
결국, 커스 라플레시아가 자라난 곳은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하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만다.
그 때문에 모험가에게 발견되자마자 즉시 불태워지는 게 바로 이 꽃이었다.
‘오크들을 상대하려고 어지간히도 이를 갈았나 보네.’
자신들의 거주지가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송장화를 피워내다니. 자신들이 송장화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놔둔다면 늪지대는 저 송장화에 잠식되어 죽어갈 게 분명했다.
‘하긴, 오크들도 멀쩡한 방법을 준비하진 않았지.’
회귀 전에 세운이 편을 들었던 오크 부족도 리자드맨을 상대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마수 사육.
오크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수 새끼를 키우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수 역시 송장화와 맞먹도록 위험한 존재였다.
당시에는 전투에서 이기고 바로 층을 떠났으니 이후에 벌어진 일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마수에 의해 오크는 물론 그들이 살던 숲도 망가졌을 것이다.
‘뭐,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는 거네.’
리자드맨이 이겨 송장화가 창궐하든, 오크가 이겨 마수가 날뛰든 결국 이 늪지대는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회귀하기 전에 시련을 통과하며 목숨을 부지하기 급급하던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먹이는?”
“죄송합니다.”
“못 구했습니다.”
“어째서인가?”
“인근 반경에 먹잇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독이 퍼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오크들이 알아챌 우려가 있어, 일단은 보고 먼저 드리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잘했다.”
세운이 따라온 두 리자드맨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보고를 받는 존재는 그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리자드맨이었는데, 그 생김새가 도마뱀보다는 공룡에 더 가까웠다.
외형만 보아도 신체 능력이 더욱 발달하여 보였고, 장비 역시 비범해 보이는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녀석이 이 송장화 번식지를 관리하는 리자드맨인 듯했다.
‘기습으로 정리하는 게 낫겠지?’
11층의 시련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 역시 히든 퀘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일이 이후의 시련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두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때, 보고를 받고 있던 리자드맨의 눈이 세운을 향했다.
은신이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었기에 우연일까 싶었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꼬리를 하나 달고 온 모양이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주위로는 저희 말고 어떤 생명체도…….”
쐐애액-
팅!
놈이 들고 있던 삼지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세운이 곧바로 뒤랑달을 뽑아 들어 발도술로 삼지창을 쳐냈다.
“그럼 저것 무엇인가?”
“……인간?”
삼지창을 쳐내자 자연스럽게 은신술이 풀려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정체를 드러낸 세운이 몸을 일으키며 놈들을 내려보았다.
‘어떻게 알아챈 거지?’
클리어 슬라임의 땀샘으로 냄새는 완전히 지웠다.
기척 역시 은신술로 지워져 있었고, 특히 지금은 움직이지도 않고 나무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놈은 세운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창을 날렸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것 같지도 않았기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쥐새끼처럼 숨는 실력이 좋은 것 같기는 하다만. 송장화의 허기는 피하지 못했나 보군.”
“송장화?”
무슨 소린가 싶어 의아해하던 세운은, 순간 서적에서 보았던 송장화의 정보를 떠올리며 아래를 내려보았다.
검게 썩은 나무 기둥 아래에서 기다란 넝쿨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송장화의 뿌리.
덜 자란 송장화는 그저 시체에 뿌리를 박고 자라날 뿐이지만,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는 뿌리를 이용해 직접 먹이를 흡수한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이 역시 마찬가지.
송장화가 세운의 존재를 깨닫고 탐욕스럽게 뿌리를 뻗어온 것이다.
“인간! 어떻게 들어온 거냐!”
“침입자다!”
어느새 나무 기둥의 절반 이상을 뒤덮은 송장화의 뿌리 때문에 세운이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주위로 리자드맨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직 전부 모인 게 아닌 것 같은데도 리자드맨의 수가 순식간에 30으로 늘었다.
다들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있는 게, 리자드맨 중에서도 제대로 된 전투 병력인 것 같았다.
“이곳엔 어떻게 알고 온 거냐!”
“설마, 오크들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그 더러운 것들. 인간의 도움까지 받다니.”
놈들이 세운을 포위한 채 기다란 혓바닥을 연신 날름거렸다.
세운은 아직 입도 한 번 열지 않았는데, 저들끼리 떠들더니 세운이 졸지에 오크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다.
상황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굳이 변명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크의 앞잡이 놈! 죽어라!”
“키싯! 죽어라!”
커스 라플레시아를 포함하여, 이곳의 리자맨들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아우우우-
뒤랑달이 휘둘러지자 핏빛 늑대가 휘둘러지며 검기의 폭풍을 자아냈다.
그에 세운을 향해 좁혀오던 창들이 폭풍에 휘말려 날아가거나, 절단되었다.
스카베의 내성에서 경비병들을 통해 이미 한 번 겪어 보았던 전술이다.
전체적인 강함은 저쪽이 한 수 위지만, 전술의 섬세함은 부족하다. 그런 공격이 세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룡 머리의 리자드맨이 세운이 쳐낸 삼지창을 집어 들고 다가왔다.
다른 리자드맨 역시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흉포함을 드러냈다.
수인족 특유의 장비의 사용성은 그들을 강하게 해 주었지만, 그들은 태생이 짐승이다.
야생성을 끌어 올리는 데는 무기보다 손톱과 이빨을 사용하는 게 더욱 어울렸다.
일대 다수의 대결.
질리도록 경험해 본 유형의 전투였기에, 세운은 이럴 때 누구를 가장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이 초식, 혈랑아(血狼牙)가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카앙!
세운의 검이 공룡 머리의 리자드맨을 노렸다.
어차피 다른 놈들의 공격은 세운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전투에서는 어떻게든 우두머리의 머리를 베는 게 우선이었다.
자하신공의 묘리로 붉게 달아오른 뒤랑달이 맞부딪친 삼지창을 녹여냈다.
놈이 당황하며 몸을 내빼려 했지만, 그보다 세운의 발걸음이 더욱 빨랐다.
캉, 카앙!
뒤랑달이 연신 휘둘러지며 놈의 급소를 노렸다.
무기술이 꽤 좋은 건지,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놈의 이마에서는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우 몇 수 부딪친 것만으로도 놈의 창은 물리적인 힘과 열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뭣들 하나!”
“죽여라!”
놈의 외침에 다른 리자드맨들이 기세를 올리며 세운에게 달려들었지만, 세운에게는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펄럭거리는 망토에조차 그들의 손톱이 닿지 않았다.
캉!
마침내 놈의 삼지창이 부서졌다.
제법 질 좋아 보이는 무기였지만, 무기의 급이 너무 많이 차이 났다.
거기다 세운의 검에는 내공마저 듬뿍 응축되어 있었으니, 평범한 무기가 버티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놈이 자세를 다잡을 틈도 없이, 세운의 마무리 공격이 이어졌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이 초식, 혈랑아(血狼牙)가 강화됩니다.
까앙!
“크륵!”
놈의 머리를 베었다고 확신하며 날린 공격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놈이 무기를 놓고 아가리를 힘껏 벌려 날아오는 뒤랑달을 악문 것이다.
아가리 양쪽의 피막이 찢어지고, 이빨이 부러진다.
양기로 인해 치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혓바닥이 익고 살타는 소리가 풍겨온다.
그런데도 놈은 세운의 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화상을 각오하고 세운의 검을 양손으로까지 잡으며 동공을 더욱 날카롭게 좁혔다.
놈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리자드맨이 대장의 희생에 고개를 끄덕이며 필살의 공격을 날렸다.
그리고 세운은…….
툭.
“크륵……?”
손에서 검을 놓았다.
놈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세운을 바라보았다.
전사가 손에서 검을 놓는다는 건 그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기란 전사의 긍지, 그 자체와도 같으니까.
하지만, 세운은 긍지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회귀 전에 생존만을 위해 온갖 수를 동원하여 탑을 뒹굴어 왔다. 그러니 전사로서의 긍지보다는, 승리 그 자체가 더욱 중요했다.
– 내공을 통해 진주언가권의 제삼 초식, 비천야차(飛天夜叉)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왼발을 앞으로 크게 내밀었다.
오른손을 꽉 쥐며, 허리를 돌려 주먹을 활시위에 건 화살처럼 잡아당겼다.
손에서 검을 놓은 어이없는 상황을 지켜본 놈이 멍하니 뜨거운 뒤랑달을 물고 있을 때.
콰아앙!!
시퍼렇게 물든 세운의 주먹이 놈의 가슴을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가슴이 뻥 뚫리며, 등 뒤로 리자드맨 특유의 녹색 혈액이 터져 나갔다.
강한철에게 알려준 강권다운 압도적인 파괴력.
흰자위를 보이며 쓰러져 가는 놈의 입에서 뒤랑달을 회수한 세운의 오른손등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대장을 잃은 충격과 정신을 쿡쿡 찌르는 살기. 거기에 성흔의 힘까지 더해지자.
“키, 키에엑!”
리자드맨들은 이성을 잃고 원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