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4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45화(141/675)
제 145화
“저, 착합니다! 착해요! 진짭니다! 무서워요!”
검 끝이 목젖 바로 앞까지 다가온 탓인지, 난쟁이는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세운에게 손을 비비며 빌고 있었다.
난쟁이의 말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녀석에게서 무기라고 할 만한 건 보이지 않았고, 신체 능력도 보잘것없어 보였으니까.
다만, 세운이 의아해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무슨 종족이야?’
11층의 테마인 늪지에 존재하는 지성체는 리자드맨과 오크, 두 부족뿐이다.
늪지대에 난쟁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이번 테마를 공략한 적이 있었던 세운으로서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게다가, 종족 명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고블린, 하플링, 노움 등.
난쟁이 모습의 종족에 대한 정보를 여럿 떠올려 보았지만, 이렇게 생긴 난쟁이는 기억에 없었다.
회귀 전, 플레이어로서 다다른 가장 높은 층인 92층에 오르고 탑의 대도서관을 통해 대부분의 지식에 통달한 세운이었다.
그러니 처음 보는 종족을 눈앞에 두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넌 뭐야?”
“이, 이거부터 치워주세요! 무섭습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보고, 세운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치웠다.
물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경계심은 잊지 않았다. 상대가 지성체인 만큼 힘을 숨기고 약한 척을 하며 기습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뭐, 솔직히 아무리 보아도 난쟁이에게 그럴 깡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세운이 검을 치워주자, 난쟁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늪지의 수호 일족인 마구라고 합니다!”
늪지의 수호 일족이라.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린 세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이런 존재들이 있었다.
하나의 종족으로 귀속된 개체라기보다는, 지박령처럼 환경 그 자체에 귀속된 자들.
그들은 생명체라기보다는 정령에 더 가까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자신을 마구라고 소개한 이 난쟁이도 그와 비슷한 경우이리라.
“그래서, 왜 여기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건데?”
“이곳은 저희가 원래부터 감시하고 있던 곳이었어요! 소동이 일어나고, 독성도 줄어들어서 가까이 다가와 본 겁니다!”
“감시? 어째서?”
“그건…….”
말을 이어가려던 난쟁이, 마구가 귀를 움찔거렸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운에게도 저 멀리서부터 들리는 한 무리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소동을 듣고 리자드맨들이 지원을 오고 있는 듯했다.
“이, 일단 자리부터 피해요!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딱히 상관없는데.”
“부탁드려요! 저를 따라오세요!”
말을 마친 마구의 몸이 늪지와 같은 검녹색으로 물들어 갔다.
단순히 색만 동화시킨 게 아니라, 기척까지 완전히 사라졌다.
5서클에 이르러 마나에 민감한 것은 물론, 감각도 어지간한 플레이어 이상인 세운으로서도 놀랄 정도의 은신술이었다.
‘설마, 방금까지는 일부로 기척을 드러낸 건가?’
생각해 보니 갑작스럽게 나무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 것도 조금 이상했다.
송장화와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세운은 모든 감각을 극도로 끌어 올리고 있었으니까.
마구의 등장은 이곳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아닌, 나무 뒤에서 소환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러웠다.
마구를 정령에 가까운 존재로 생각하던 세운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쪽이에요! 따라오세요!”
다행이라면, 세운을 위해서 마구가 고의로 미약한 기척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운이 알고 있는 시련과는 동떨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험가로서 92층까지 오른 플레이어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마구를 따라가는 게 11층의 시련에서 가장 큰 히든 피스라는 사실을 말이다.
– 내공을 통해 킬케르가식 은신술이 강화됩니다.
덮쳐 오는 리자드맨 무리의 기척을 무시한 채, 세운이 마구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세운을 제외하고, 디아블로 클랜에서 유일하게 커스 라플레시아를 마주한 플레이어가 있었다.
“자칼! 정신 차려라!”
“키싯!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그, 그만! 난 같은 편…… 케윽!”
송장화 번식지에서 리자드맨들이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은 내란이라도 일어난 듯이 같은 편과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비명이 들려오는 반대편에서 창을 휘두르는 리자드맨들에게서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생각대로입니다! 페로몬을 이용하여 병사들을 지휘하다니. 이 방법이라면 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군단이 꾸려지는 과정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만족스럽게 발을 구릅니다.
그 끝에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희열에 찬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백현이 서 있었다.
그가 다루는 언데드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았기에, 송장화의 독성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았다.
백현 자신도 사령술로 만든 듯한 가죽 마스크 같은 것을 끼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독을 막고 있는 듯했다.
그 옆에는 얼마 전에 세운이 가져다준 여왕개미로 만들어진 언데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왕개미의 배 끝에서 시꺼먼 연기 같은 게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언데드들은 그 신호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왕개미의 지시 아래 움직이고 있는 언데드의 수가 벌써 50을 가뿐히 넘었다.
전투가 이어짐에 따라, 사망한 리자드맨 역시 좀비가 되어 일어나 그 수가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지휘한다지만 서클에 따라 그 수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백현은 달랐다.
개조한 언데드를 이용해 그 질적인 강함은 물론, 수적인 한계 역시 뛰어넘었다.
“끼-에에에엑!!”
커스 라플레시아. 송장화가 굉음을 내지르며 뿌리를 일으켰다.
세운과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우선은 성장을 위해 살아 있는 리자드맨은 물론 백현의 언데드에게도 뿌리를 꽂았다.
뿌리의 수축과 팽창이 시작되며, 양분이 전달되려는 찰나.
“시체를 통해 양분을 흡수하는 꽃이라니! 흥미가 생깁니다. 식물을 이용한 언데드 제작이라,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퍼버벙!!
“끼-에에엑!”
뿌리가 꽂힌 언데드의 몸이 터져 나갔다.
이에 송장화의 뿌리는 물론, 터져 나간 살점이 꽃잎에까지 날아들어 끔찍한 흉터를 만들어 냈다.
송장화의 양분 흡수는 기본적으로 시체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살아 있는 리자드맨의 몸에 꽂힌다고 해도, 일단 생명을 꺼트린 후에야 본격적인 양분 흡수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양분을 흡수해야 할 시체들이 뿌리가 꽂히는 족족 폭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백현의 언데드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지능이 생겨난 송장화였기에, 언데드의 수가 줄수록 자신이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언데드를 향해 연신 뿌리를 날려댔다.
언데드의 수가 줄어 초조할 법도 한데, 백현의 얼굴에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발악하는 송장화를 바라보며 연구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송장화는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실험 대상일 뿐이었다.
“만약 언데드가 되어서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 한계가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이번 연구는 자신도 결과를 모르겠다며 크나큰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우웅!
백현이 가진 다크 마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였다.
가지고 있는 마나를 쏟아붓듯이 하자, 허공에서 가미긴의 권능에 따라 만들어진 시체 창고의 문이 열렸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커진 문 사이로, 우둘투둘한 가죽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숨을 잃고, 가죽만 남기고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기는 몬스터.
10층의 시련에서 상대했던 보스 몬스터, 사하의 포식자였다.
쿠궁!
백현의 언데드로 재탄생한 사하의 포식자가 그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쉽게도, 지금 백현의 실력으로 그것을 온전히 조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크-아아아악!”
세심한 컨트롤로 신체의 일부를 하나씩 조종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한 발, 한 발.
백현의 섬세한 조종 실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사하의 포식자가 송장화의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렸다.
살아남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송장화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저 거대한 존재 앞에서, 그 어떤 생존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다.
생존을 포기한 순간, 모든 뿌리가 절망한 듯이 늪지대 위로 떨어졌고.
콰직!
사하의 포식자가 송장화를 집어삼켰다.
그 와중에, 연구를 위해 표본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마왕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이토록 흥분된 적은 없었다며 계약자를 향해 힘차게 울부짖습니다.
송장화가 쓰러진 자리에 희열에 찬 백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세운의 전투와 다른 점이라면, 공포에 질린 늪지의 수호 일족 ‘마구’가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났다는 점이었다.
* * *
“그러니까, 너희 일족이 이 늪지대를 지켜왔다는 거지?”
“맞아요! 이곳은 저희의 고향이자 친구. 아니, 가족이니까요!”
“그런데 리자드맨이랑 오크들이 전쟁을 하기 시작했고.”
“네! 처음에는 이것도 순리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는데…….”
“송장화랑 마수가 나타나고부터 그게 무너져 버린 거겠지.”
“맞습니다! 어? 마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계신 건가요?”
세운의 예상대로, 마구의 일족은 늪지의 지박령과 비슷한 존재들이었다.
늪지의 수호 정령이랄까?
회귀 전의 세운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늪지를 수호한다지만, 생명의 순환을 존중하기에 어지간한 일에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
강한 몬스터가 약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무가 쓰러지고 새싹이 자라나는 건 자연의 이치였으니까.
무언가 일이 생겨도, 그들은 최소한의 도움만 줄 뿐 크게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모습을 드러내는 자체가 늪지의 순리에 방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몸을 숨겨 왔다고 한다.
‘엘프랑 비슷하네.’
세운의 머릿속에 리엘 리프레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엘프 역시 세계수를 중심으로 숲을 보호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종족이니, 외양은 달라도 그 목적은 엘프들과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 11층의 시련 ‘늪지대 건너기’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남은 시간 : 41시간 03분
– 사냥한 몬스터의 수 64 마리.
– 히든 퀘스트 ‘리자드맨의 계략’ 완료.
– 히든 퀘스트 ‘과잉성장’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289,800point
– 축하드립니다! 11층의 시련을 랭킹 3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3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늪지대의 초록빛이 사라지고,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할 때쯤 자연스럽게 시련이 끝났다.
마구를 따라왔을 뿐인데 시련이 종료되는 것을 보니 수호 일족이라 불리는 자들은 초록 늪지대의 바깥에서 거주하고 있는 듯했다.
아쉽게도 랭킹 1위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꽤 많은 공적치를 얻을 수 있었다.
‘하긴, 이 정도 판단은 여정의 지침표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거니까.’
독성이 가장 강한 곳에 가장 강한 적이 존재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이었고,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라면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는 히든 퀘스트였다.
그나마 빠른 시간에 공략을 마친 덕에 3위라는 순위를 쟁탈할 수 있었다.
– 숨겨진 갈림길을 찾아내어 바로 다음 층의 시련과 연결됩니다.
– 12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늪지의 수호 일족
– 시간제한 : 96시간
– 당신은 늪지의 수호 일족을 마주쳐 도움을 요청받았습니다.
– 현재 그들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늪지를 수호하기 전에, 그들의 부탁을 들어 일족을 위기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시련이 연결됨에 따라, 바로 12층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본래는 이때 오크나 리자드맨의 진형 중 한 곳을 선택하는 게 정석이었는데, 역시 마구를 따라가는 게 정답이었다.
시스템 메시지를 읽으며 ‘위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중.
“도착했습니다! 저기예요!”
마구가 신난 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두 팔을 높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