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4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48화(144/675)
제 148화
– 13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늪지를 물들이는 괴수
– 시간제한 : 96시간
– 당신은 늪지를 오염시키는 송장화를 물리쳐 늪지와 그 수호 일족을 구했습니다.
– 하지만, 늪지대에는 아직 송장화 이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남아 있습니다.
시련을 읽자마자 목표를 떠올릴 수 있었다.
늪지대의 테마에 처음 도달한 플레이어라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세운은 이미 한 번 늪지의 시련을 통과한 적이 있었으니까.
늪지를 물들이는 괴수.
이는 오크 부족에서 리자드맨과의 전투를 대비하여 키우던 마수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예상대로, 마구가 먼저 시련에 대한 얘기를 꺼내왔다.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늪지대는 물론 제 친구들까지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아직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마수, 맞지?”
“맞아요! 은인께서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희 문제를 전부 꾀고 계세요. 마치, 신께서 보내주신 사자 같아요!”
“하하…….”
신이 보낸 사자라.
정확하게는, 마신이 보낸 사자가 더 어울리는 표현일 텐데.
뭐, 목표를 들은 이상 이곳에서 주춤거릴 필요는 없었다.
늪지의 시련이 시작되고 한 번도 쉬지 않았지만, 며칠을 새는 것 정도는 컨디션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애초에 플레이어의 신체가 강한 탓도 있었고, 2갑자에 오르며 자체적인 회복 속도가 늘고 피로가 누적되는 속도가 감소한 덕분이었다.
가능하다면, 늪지의 테마를 전부 끝낼 때까지 잠을 자지 않을 생각이다.
높은 공적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시련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공략하는 게 중요했으니까.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웠다.
물론, 중층의 시련부터는 이런 고집이 통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보답은!”
“보답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알아서 해.”
“아닙니다! 저희를 위해 이토록 힘써주시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은인께서 다녀오시는 동안, 저희는 보답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든가.”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크 부족의 마수.
늪지의 시련을 마무리 짓기 위해 세운이 발을 옮겼다.
* * *
“취익! 웬 소란인가!”
마을 곳곳에 몬스터의 뼈와 가죽이 장식처럼 걸려 있는 오크 부족의 거주지.
그곳에서 특히 덩치가 큰 오크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란의 중심으로 다가갔다.
툭 튀어나온 어금니 때문에 입을 열 때마다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지만, 험악한 인상 때문에 그 소리마저 위협적으로 들려왔다.
“도마뱀 한 마리를 포획했다고 합니다.”
“그 미꾸라지 같은 것들이 잡혔다고?”
“그게,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
“비켜 봐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네.”
최근, 리자드맨의 부족이 거주하고 있던 곳에서 폭음이 연신 일어났다.
그 소리는 오크 부족에까지 닿을 정도였기에, 당연하게도 그들은 조사팀을 꾸려 조심스럽게 리자드맨의 부족을 탐색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늪지대에서 그들의 유일한 적수라 할 수 있는 리자드맨의 부족이 초토화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건물이 무너지고, 늪지가 움푹 파이고, 불길이 남아 주변을 불태우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수십 개의 유성이 떨어진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거주지 그 어디에도 리자드맨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해를 당했거나, 적에게 공격을 당했거나. 무슨 일이 있었든 시체가 남는 건 당연한 일인데.
적이긴 하지만, 선조의 의지를 이어받은 리자드맨의 긍지는 죽더라도 마을을 지켜낼 정도로 강했을 텐데.
유령이라도 휩쓸고 간 것처럼, 리자드맨의 마을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수색을 반복하던 중 드디어 찾아낸 게 지금 눈앞의 리자드맨이었다.
“쉿, 쉬익……. 쉬이익…….”
리자드맨은 포박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굳이 포박이 필요 없어 보였다.
리자드맨의 긍지는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몸을 말고 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눈도 질끈 감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 입에서도 역시 덜덜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오크 하나가 심문을 위해 리자드맨을 향해 다가갔다.
“이름을 말하라.”
“쉬, 쉬잇…….”
“……정말 완전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긍지 하나는 인정할 만했는데, 지금은 짐승과 다를 게 없어 보여.”
어떻게 해야 저 리자드맨에게서 정보를 끌어올 수 있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오크는, 곧 머리를 저었다.
자신이 언제 생각 같은 걸 하고 움직였단 말인가?
심문이든, 전투나 전부 똑같다.
힘. 오로지 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쾅!
“얼른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꼬리 끝부분부터 잘근잘근 짓뭉개 주겠다.”
“쉬, 히이익! 아, 악마. 악마야. 악마!”
“다시 한번 말하겠다. 말하지 않으면…….”
“바칸 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째서 막는 거지?”
“방금 한 말. 바칸 님에게 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라?”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게 자신인데, 자신을 보고 한 말이 아니라니?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존재를 떠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수하가 생각 없이 저런 말을 꺼냈을 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주먹을 내린 바칸이 가만히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그럴수록 리자드맨의 떨림은 커져만 갔다.
“말도 안 돼. 아, 악마야. 쉬이익, 모두 죽을 거야. 도망칠 수 없어!”
“아예 정신이 나갔군.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긴 글렀어.”
“재앙이! 악마가, 재앙을 몰고 올 거야!”
리자드맨이 떨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꼬리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비늘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며 속살에서 초록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에서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광기까지 보이고 있었다.
“치워라. 정보 따위 없어도, 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취익! 알겠습니다!”
바칸이 질렸다는 듯이 침을 뱉고서는 등을 돌렸다.
애초에 처음 상태를 봤을 때 바로 등을 돌렸어야 했는데. 괜히 시간만 낭비한 기분에다, 리자드맨의 광기 어린 비명이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걸려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바칸의 지시를 받은 오크 두 마리가 리자드맨의 양팔을 붙잡고 처형장으로 데려가려는 순간…….
콰아앙!!
부락의 입구 쪽에서 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바칸이 인상을 찌푸리고, 다른 오크들도 귀를 막으며 당황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두가 당황하던 중, 단 한 명의 생명체만이 이 폭발을 예상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가 오셨다. 악마가, 재앙을 몰고 오셨다! 모두 죽을 거야! 도망칠 수 없다! 쉬키키킥!”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반쯤 잘려 대롱거리는 꼬리를 입에 물고 소리를 지르는 리자드맨.
그 모습에, 오크들의 머릿속에 미약한 공포가 감돌기 시작했다.
* * *
오크라고 해 봤자 리자드맨과 다르지 않다.
근력이 조금 더 강한 대신 힘에 중시하는 터라 작전이나 진법에 대해서 미흡한 등의 차이점이 있지만, 종합적인 전투력은 같았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세운이 선택한 시련의 공략법은 아래층의 시련과 같았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토네이도’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오크들이 이 좁은 늪지대에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을 5서클 마법.
그 재앙과도 같은 마법을 일으켜, 입구부터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오크는 리자드맨보다 수가 많아 이대로 전부 처치하기도 전에 마나가 모두 떨어지겠지만, 리자드맨을 상대하며, 세운은 이런 대군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상대법을 깨달은 참이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성흔의 첫 번째 권능을 발현할 정도의 임팩트만 보여주면, 그다음부터는 성흔의 차례였다.
공포의 권능이 주위로 퍼져나가 오크의 정신을 잠식했다.
그 어떤 종족보다 용맹한 전사라고 알려진 오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종족을 위해 도끼를 내지르는 게 바로 오크였지만.
“취, 취익!”
“이건 무리…… 무리다!”
공포의 권능 아래 그들은 한없이 약한 겁쟁이가 될 뿐이었다.
덕분에 마나의 양을 아끼면서 부족의 깊숙한 곳까지 가뿐히 나아갈 수 있었다.
‘성흔의 지속시간도 한계가 있지만.’
공포의 권능이라 하여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법이 서클에 담긴 마나를 사용하고, 무공이 단전에 담긴 내공을 사용하듯이 공포의 권능 역시 성흔에 담긴 신성을 사용한다.
두 번째 능력인 광란의 힘에 비하면 신성의 소모 속도가 느리지만, 이것도 기껏해야 이삼십 분 정도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삼십 분 정도면, 충분히 오크 부락을 정리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네놈인가! 도마뱀 놈들의 부락을 무너트렸다는 게!”
부락을 절반쯤 이동하자, 중무장을 갖춘 수백 마리의 오크가 세운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저 너머로, 오우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덩치와 강인한 근육을 가진 오크가 서 있었다.
온몸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처가 자욱했고, 손에는 흉악한 글레이브가 들려 있었다.
‘역시 성격 급한 족장답네.’
회귀 전에 같은 편이었기에 세운이 아주 잘 알고 있는 몬스터였다.
오크들의 우두머리, 베르칼.
오우거와 비교하긴 했지만, 그 전투력은 어지간한 오우거 이상으로 강력했다.
단순 무력으로 따진다면 리자드맨 족장 이상.
광역 마법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적이었기에, 이번에도 세운은 검을 빼 들고 땅을 박찼다.
족장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오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아우우-
“취익!”
리자드맨 부락에서의 전투와 다른 점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오크라고 해도 세운의 주위로 흩날리는 붉은 검기는 막아내지 못했고, 주춤거리는 사이 세운은 이미 족장의 코앞에 도착했다.
“감히. 인간 주제에. 나에게. 덤비는 것이냐.”
베르칼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말이 툭툭 끊기기는 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가득 담겨 있어 중압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일종의 기 싸움.
그러나, 세운도 기 싸움에서 지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오크 주제에 어디서 까불어?”
– 내공을 통해 태산십팔반검의 제오 초식, 태산압정(泰山壓頂)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앙!
세운의 검이 태산의 무게를 담은 채 베르칼의 글레이브를 강타했다.
무기끼리 부딪쳤다기보다는,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충돌한 것과 같은 굉음이 터졌다.
그와 함께 일어난 풍압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오크들의 접근을 막아냈다.
괜히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고래 싸움에 끼어든 새우 꼴이 될 뿐이었다.
“다들 끼어들지 마라!”
“족장님의 전투다. 명예가 걸린 전투를 방해할 셈이냐?”
“취익!”
이에, 주위의 오크들이 베르칼과 세운의 주위를 둘러싸 원의 형태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작은 경기장 하나가 완성되었다.
오크들은 힘을 중요시하는 만큼, 이런 일대일 싸움을 방해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나야 좋지.’
족장과 싸우며 다른 오크들을 견제하기에는 영 귀찮았는데, 저 명예라는 것 덕분에 한결 편하게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캉, 카강!
베르칼과 세운의 검이 연이어 부딪쳤다.
오우거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 베르칼이었지만, 태산십팔반검을 사용하며 검에 태산의 무게를 실은 세운은 결코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드드드득!
“인간 주제에. 꽤 강하군!”
검이 부딪칠수록 베르칼의 육중한 몸이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현실에 주변을 둘러싼 오크들이 숨을 죽이고 침을 삼켰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운이 이번 전투에서 굳이 질투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은 게 그 증거였다.
태산십팔반검의 무게를 받아내지 못한 베르칼의 글레이브가 휘청거리는 순간.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직!
세운의 검이 약점을 노리는 늑대처럼 베르칼의 빈틈을 물어뜯었다.
근육으로 둘러싸인 목이 잔혹하게 뜯겨나가며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베르칼이 한 손을 들어 목을 지혈하며, 세운을 노려보았다.
경동맥을 정확하게 끊었으니, 승부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운이 기억하는 베르칼이라면, 여기서 승부를 인정할 가능성이 컸다.
그 순간…….
무우우-!!
‘이건.’
오크의 부락에 마기가 담긴 외침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