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5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54화(150/675)
제 154화
붉게 물든 하늘이 갈라졌다.
구름이 쩌억 갈라지는 그 광경은 마치 상처가 벌어지는 것처럼 잔혹해 보였다.
벌어진 상처 속에서 피처럼 붉은 액체가 꿀럭거리며 흘러내렸다.
철썩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스산한 기운을 내뿜으며 본래의 형체를 되찾았다.
사티로스(Satyros).
상체는 인간의 모습에 하반신의 염소, 머리 위로는 우람한 뿔이 뻗어 나와 있었고 붉은 동공은 가로로 쭉 찢어져 있었다.
판이라 함은 어엿한 올림포스의 선신 중 하나지만, 지금 보이는 그의 모습은 선신보다는 악마라 부르는 게 더 어울려 보였다.
“용케도 이곳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알아냈구나!”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할 성좌는 너 정도밖에 없으니까.”
“크흐흐, 하긴! 다른 성좌들은 다들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뿐이지. 나, 판 님이 아니고서야……!”
“잘못 알아들었나 본데, 칭찬이 아니야.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지능까지 짐승 수준인가 보네.”
“크아아아! 이놈이!”
판이 두꺼운 발굽으로 바닥을 쾅쾅 내려찍었다.
그럴 때마다 바닥이 움푹 패고, 대지를 따라 진동이 퍼져나갔다. 그의 심정에 따라 공간 자체가 요동치는 듯했다.
“이 상황이 돼서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 정도로 탑에 개입한다면 다시 성좌의 자리로 돌아가기 어려울 거라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크흐흐, 이 몸을 뭐로 보는 것이냐? 내가 바로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아들이다.”
“널 감옥에 던져 넣은 그?”
“닥쳐라! 네놈을 죽이고 불명예를 바로잡으면, 아버지께서도 다시 이 몸을 바라봐주실 것이다!”
판의 눈이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감옥에 박혀 있는 동안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스스로를 속이며 자기합리화를 해 왔던 듯하다.
그게 극도로 심해지며 저런 착각을 하여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고.
“그러니 날 위해 죽어라. 내게서 앗아간 신성을 모두 토해내어라!”
“메에에에-!”
판의 외침과 함께 멈춰 있던 가축들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슬슬 가축의 수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판의 등장과 함께 수백 마리의 가축이 새롭게 생겨났다.
‘판의 성역인가.’
아무래도 이곳은 15층이 아니라 판이 만들어낸 성역(聖域)인 듯했다.
성역이라면 성좌가 힘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곳이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이 순간만을 위해 제법 철저하게 복수를 준비했나 보다.
‘그럴 시간에 반성이나 좀 할 것이지.’
퍼엉!
코앞까지 다가온 염소 한 마리가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산산이 터져 나갔다.
다시금 방어막을 펼쳐 막아냈지만, 판의 등장과 함께 가축들의 공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빠직!
암소 하나가 뭉툭한 뿔로 세운의 방어막을 들이박았다.
단순히 몸을 던져 폭발하는 공격만이 아닌, 머리로 직접 들이박는 직접 공격 패턴이 추가되었다.
넓은 범위의 폭발은 잘 견뎌내던 실드였지만, 타격점이 한점에 집중된 저런 물리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세운은 실드를 거두고 거리를 벌린 채 새로운 마법을 준비하였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캐스팅 시간이라는 게 필요하다.
강한 마법일수록 캐스팅 시간은 길어지게 마련이라,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찰나의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세운의 마법에는 더 이상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하긴 했지만, 그 시간이 극도로 짧았다.
이게 바로 늪지의 주인을 통해 세 번째 서클을 수정하여 얻게 된 새로운 서클.
퍼플 서클의 힘이자, 자탑의 묘리가 지닌 힘이었다.
화르르륵!
“무오오오-”
최선의 방어는 곧 공격이라 하였던가?
뜨거운 불길이 초원을 뒤덮었다.
제아무리 판이 다스리는 가축들이라 하더라도, 이글거리는 화염 앞에서는 한낮 짐승일 뿐이다.
갈색의 풀이 불타오르며 점점 범위를 늘려나갔다.
자연스레 가축들 역시 더 이상 세운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그 순간…….
“크흐흐흐, 그사이 많이도 성장했구나!”
캉!!
판이 화염을 뚫고 날아와 두꺼운 발굽을 휘둘렀다.
화염으로 시야가 가려진 상태였기에, 본능적으로 뒤랑달을 빼 들지 않았으면 그대로 치명타를 입을 뻔했다.
그나마도 급하게 막아낸 거라 내공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세운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엄청난 힘.
뒤랑달이 아닌 평범한 무기였다면 곧바로 수명을 다하고 부러지고 말았으리라.
“어디 한번 발악해 보아라! 그래야 짓밟는 맛이 있으니 말이야! 크흐하하하!”
캉, 캉!
태극권의 묘리를 활용하여 발굽에 담긴 힘을 흘려보내고, 니추공으로 최대한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 낸다.
하지만 도저히 반격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피하기만으로도 급급한 상황.
아무리 격이 낮은 성좌라 해도, 세운으로 인해 격이 더욱 추락하여 올림포스의 감옥에 처박혀 있었다고 해도, 상대는 엄연한 올림포스의 성좌이다.
제멋대로 층에 억지로 강림하여 힘이 한층 더 깎여나갔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세운으로서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었다.
“크흐하하하! 그래, 이거지. 마신들의 도움이 없으면 넌 겨우 이 정도일 뿐이다! 일개 인간일 뿐이라는 소리지!”
– 성좌, ‘### ## ###’가 ### # #에게 ####를 내뱉습니다.
– 성좌, ‘### ## ###’가 #의 ###에게 ### ##을 요청합니다.
– 성좌, ‘### ## ###’가 ##의 ##을 꺼내 듭니다.
눈앞에 노이즈가 잔뜩 낀 메시지가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성좌의 도움을 받기는 무리인 것 같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라?”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화룡을 벤 검, 아론다이트 ]– 원탁의 기사 랜슬롯의 검으로써 그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이 검으로 화룡을 베었다고 한다.
서걱.
“미, 미친! 이건!”
뒤랑달이 순간적으로 붉게 일렁거리는 순간, 세운은 당황하는 판에게서 생겨난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치명타는 입히지 못했지만, 놈의 뿔에 가느다란 흠집을 낼 수 있었다.
아론다이트의 힘이 깃든 뒤랑달의 일격이었는데, 겨우 저런 흠집이 고작이라니.
그 말도 안 되는 방어력에 질색이 났지만, 세운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콰르르르륵!
“크하악!”
판의 뿔에 난 조그만 흠집에서 뜨거운 불길이 뿜어나왔다.
화룡을 벤 검, 아론다이트. 그 이명에 걸맞게, 아론다이트에는 과거에 베었던 화룡의 힘이 담겨 있었다.
이런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판은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두 눈을 가린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주변에서 당황하고 있던 가축들이 판의 불을 끄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러다, 가축 몇 마리가 최후의 수를 꺼내 들 듯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치이익-
다리 사이에서 노란 물을 뿜어내며 불길을 꺼트렸다.
“말도 안 돼! 아무리 마신이라고 해도 이곳까지 권능이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텐데!”
판이 이번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이곳은 판의 성역. 시스템마저 간섭하기 어려운 공간이었기에, 성좌가 플레이어에게 내려준 권능 역시 끌어오지 못한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세운이 탐욕의 권능을 일으키는 건 판으로서는 전혀 예상 못 한 공격이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착각이라고.”
“설마 그게 네놈의 힘이라는 거냐! 그럴 리가 없다! 고작 인간 따위가! 그것도 이런 하층의 인간 따위가 권능을 일으키다니!”
“믿든 말든 그건 네 자유지만…….”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이 초식, 혈랑아(血狼牙)가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판이 당황한 지금이 기회다.
세운이 바로 후속타를 날리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뒤랑달에 깃든 아론다이트의 힘이 더욱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내 힘은 진짜다.”
카앙!
당황했다고는 해도 성좌는 성좌인 모양이다.
판이 다급하게 발굽을 올려 세운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번에도 역시 작은 흠집밖에 낼 수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또다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두 번 당할 것 같으냐!”
푹!
판이 갈라진 발굽을 대지 아래로 쑤셔 넣었다.
제아무리 아론다이트의 불길이라 하여도, 저 상태로는 불을 내뿜을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릴 때까지 가지고 놀다 죽이려 했는데, 네 건방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구나!”
– 판이 공포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 판을 제외한 성역의 모든 생명체가 공포에 빠져듭니다!
판의 몸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순식간에 5m가 넘어가는 거구로 변하더니, 근육이 탄탄해지고 발굽이 더욱 두꺼워졌다. 뿔이 구불거리며 날카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검갈색의 털이 마구 자라났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저 모습을 보는 순간 공포에 질려 무릎을 꿇었겠지만, 세운은 달랐다.
– 성흔이 판의 공포를 집어삼킵니다.
– 압도적인 공포를 포식하며 혈랑의 이명이 강화됩니다.
판과 마찬가지로 공포의 권능을 깨우친 세운에게, 공포는 더 이상 공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포를 집어삼키는 특성 때문에 세운에게 힘을 제공해 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세운의 성흔이 붉은빛을 발하자, 판이 더욱 크게 분노하며 눈가를 꿈틀거렸다.
“감히 내 신성을 그딴 더러운 형태로 변질시키다니!”
판이 달려들었다.
발굽이 땅을 박차자, 폭탄이라도 터진 듯이 대지가 터져 나간다.
판이 뿔을 앞으로 내세우며 달리자 공기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며 흉악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세운이라 하더라도 저런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다.
태극검의 묘리를 살린다고 해도 힘을 흘려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니추공을 사용한다 해도 피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된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콰앙!
광란의 힘을 이용하여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그렇다고 판을 제대로 상대할 수준이 된 건 아니었다. 간신히 놈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 정도.
마몬의 보물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게 세운의 한계였다.
아무리 격이 떨어진 상태로 하층에 억지로 강림했다고 해도, 성좌는 성좌다.
서클이 과열될 정도로 마법을 발현하고, 단전이 터져 나가기 직전까지 무공을 사용했다.
신성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 탓에 성흔의 빛이 빠르게 꺼져갔다.
‘질투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회귀 전의 기연을 통해 얻은 탐욕, 폭식의 권능과는 달리 질투의 권능은 이번 생에서 레비아탄의 힘을 빌려 사용 중인 힘이었다.
성좌의 개입이 불가능한 이곳에서 질투의 권능을 빌려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폭식의 권능은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만한 힘이 아니었다.
“크흐하하하! 네까짓 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신에게 대항할쏘냐!”
– 성좌, ‘### ## ###’가 건#진 ##에게 ###를 ##니다.
– 성좌, ‘### ## ###’가 #의 ##소에게 ##의 ### 요청합니다.
– 성좌, ‘고개# ## #마귀’가 인과율을 ##합니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서클도, 단전도, 성흔도 이제는 한계였다.
탐욕의 권능을 이용해 틈을 노리려 해 보았으나, 아무리 대치를 이어가도 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공격은 통하지 않았고, 공격을 막아내도 상처가 누적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탑의 시스템은 규칙과 규율에 엄격하다.
놈처럼 시스템을 어기고 층에 간섭하는 행위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시스템이 대처할 때까지 시간만 끌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크흐흐하하! 이제 끝이다! 이 몸은 네놈을 짓밟고, 아버지의 품에 들어가 주신의 경지에 오르리라!”
판의 뿔에서 갈색의 기운이 화염처럼 이글거렸다.
짐승처럼 네발로 대지를 짚더니, 뒷다리로 대지를 벅벅 긁으며 콧김을 내뿜었다.
이어지는 돌진.
그 돌진은 가히 공간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았다.
판의 주위로 공간이 일그러지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무시하고 세운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신의 힘을 끌어 올려 무기에 집중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반드시 살아남아, 저 빌어먹을 산양 놈을 찢어발기고 말 것이다.
거대한 산양의 뿔이 갈색 궤적을 남기며 세운의 몸과 충돌하기 직전.
– #의 #리소가 ‘고개를 ## 까마귀’의 ##을 승인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강림합니다.
촤르르르르!
꽈악!
“크흑! 이게 무슨!”
판의 몸이 바닥에서 솟아오른 검은 사슬에 묶이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감히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가 ‘짐의 것’을 건드리다니. 벌을 받을 준비는 되었느냐?”
흑발의 여인이 거대한 까마귀의 날개를 펄럭이며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판을 내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