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5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55화(151/675)
제 155화
“이게 무슨 일이야! 플레이어가 테마를 이탈하다니!”
“온 구역을 뒤져도 없습니다! 모든 시련을 정복해 버린 탓에 새로운 시련을 준비하는 도중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찾아! 어떻게든 찾아! 젠장, 그 플레이어를 지켜보는 주신급 성좌가 몇인지나 알아?”
탑의 관리소.
그중에서도 11~15층의 테마인 늪지를 관리하는 전담 부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무언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아래층의 정보를 통해, ‘정세운’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떤 일을 벌이며 탑을 등반해 왔는지 전달받았으니까.
하지만, 늪지 테마는 다른 시련에 비해 히든 피스의 수가 많지 않은 편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히든 피스인 늪지의 수호 일족을 찾아낸 것은 물론, 다른 시련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리자드맨과 오크 부족을 전부 무너트려 버렸다.
마지막에는 기어코 늪지의 주인을 만나고 말았다.
그러고도 층이 하나가 더 남아 곤란하던 참이었는데, 플레이어가 사라지다니?
그러던 중, 가장 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찾았습니다.”
“대, 대단하군! 설마 이 많은 차원을 전부 뒤진 건가?”
“그렇습니다. 여기.”
“대체 어느 미친 놈이…… 미친!”
세운의 특별 전담관, 튜닝이었다.
그가 세운이 사라지는 즉시 관리소에 자리를 잡아 의심 가는 채널을 닥치는 대로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조사한 게 바로 이곳.
“판입니다.”
올림포스의 망나니, 판의 성역이었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산양의 모습으로 강림한 판과 검을 쥐고 이에 대립하고 있는 세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판이라면 올림포스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째서 저놈이!”
“튜토리얼 도중에 판의 격을 떨어트리고 아버지의 미움을 사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정세운 플레이어입니다.”
“플레이어가 성좌를 물 먹였다고? 그게 말이 되나?”
“어쨌든, 지금은 조치를 취할 때입니다.”
성좌가 탑에 직접 개입하였다.
신도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니고, 층을 뒤바꿔 본래의 모습으로 강림하였다.
이는 관리소는 물론 탑의 시스템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였다.
플레이어에게 정당한 시련을 내려야 하는 게 관리소의 임무였기에, 어떻게든 현 상황을 올바르게 처리하여야 한다.
“어떻게 하지? 우리라고 해서 성역에 간섭하는 것은 무리인데.”
대단한 점은, 세운이 판을 상대로 꽤 오랜 시간을 벌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격이 위태로울 정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하층에 강림하며 격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성좌는 성좌였다.
그런 성좌를 상대로 이렇게나 시간을 버는 것 자체가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판은 세운을 자신의 성역으로 데려갔다.
층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몰라도, 성역이라면 관리소의 이들이라도 관여할 방법이 없었다.
올림포스에 보고해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그래봤자 이번 일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튜닝이 손가락을 튕겼다.
“성역이라면, 다른 성좌 분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습니까.”
“다른 성좌라니! 고작 플레이어 한 명을 위해 인과율을 지불하고 저 망나니를 막아줄 성좌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저기 있습니다.”
“뭐라?”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해당 사건에 개입을 요청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장 길을 열지 않으면 관리소고 뭐고 가만두지 않겠다며 날개를 크게 펼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니터의 한쪽에서, 한 성좌의 메시지가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탐욕의 마신, 마몬.
악신 중에서도 주신급에 해당하는 그라면, 이번일 정도는 가뿐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신을 불러들이는 건…….”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인과율을 조종하고, 합당한 보상을 지급한다면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몰라도, 세 마신이 지켜보고 있는 플레이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죽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항의가 몰아칠 게 분명하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게 나았다.
– 탑의 관리소가 ‘고개를 숙인 까마귀’의 개입을 승인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강림합니다.
고민을 마친 관리자가 붉은 버튼을 누르는 순간, 판의 성역에 검은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세운이 고개를 올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에 몸에 딱 붙는 드레스, 두 눈은 보석처럼 영롱한 보랏빛을 흘리고 있었다.
까마귀를 닮은 그녀의 날개가 펄럭일 때마다 검은 깃털이 허공에 흩날린다.
판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세운의 몸에 소름이 바짝 선다.
처음 보는 이였지만, 세운은 처음 보자마자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몬.’
기껏해야 특별 전담관인 튜닝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탐욕의 마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다니, 세운으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크하아아악!”
“닥치거라.”
꽈악!
“큽! 크읍!”
판이 사슬에서 탈출하기 위해 기합을 내질렀지만, 마몬의 한 마디에 꿈틀거린 흑색 사슬이 판의 주둥이를 휘감았다.
그래도 성좌는 성좌라는 것인지, 판이 몸을 들썩일 때마다 흑색 사슬이 대지와 함께 들썩거렸다.
“보아하니 아직 벌을 받을 준비가 안 되었나 보구나.”
아무리 판이라고 해도 눈앞에 마신이 나타난 상황이라면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지만, 놈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판이 성좌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신성을 끌어 올려, 몸을 강화했다.
그에 뿔이 더욱 크게 자라나며, 몸의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한다.
발굽이 대지를 짚고 기둥처럼 일어서더니 기어코 제 주둥이를 휘감고 있는 마몬의 흑색 사슬을 터트리고 만다.
그와 함께 마몬의 눈썹이 크게 구겨졌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된다!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나는 아버지께 인정받을 수 있다!”
“메에에에에-”
판의 외침과 함께 성역에 존재하는 모든 가축이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
주인의 외침에 따라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하였다.
“짐이.”
푸북!
허공에 나풀거리던 마몬의 깃털이 성역의 모든 가축에게 내리꽂혔다.
가축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검은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닥치라고.”
푸부부북!
“크하아악!”
검은 깃털이 갖가지 무기로 변해 판의 몸을 꿰뚫었다.
희대의 마검, 다인슬라이프.
빛의 신 루의 검, 프라가라프.
최고신 오딘의 창, 궁니르 등.
그 모두가 한 차원, 한 세기, 한 신화를 대표하는 무구들이었다.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전설의 무구들이 판의 몸을 아래서부터 차례대로 꿰뚫으며 올라갔다.
“하지 않았느냐?”
푸부부북!
셀 수 없이 많은 무기가 머리를 제외한 판의 전신을 꿰뚫었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제서 판은 이성을 되찾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적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하지만, 상황은 이미 되돌리기 불가능한 수준에 치달았다.
“죄,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십시오! 제가 감히 정신이 나가 마신님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그래, 이제야 벌을 받을 준비가 되었나 보구나.”
푹!
“크흑!”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내려온 그녀가 하이힐의 날카로운 굽으로 판의 이마 정중앙을 짓밟았다.
굽이 콧등에 박혀 들어갔지만, 판은 감히 고통을 토해내지도 못했다. 그저 그녀가 목숨만은 살려주길 바랄 뿐이었다.
“먼저, 감히 짐의 보물을 탐내던 그 눈알부터 가져가야겠어.”
푹!
“크하아악!”
마몬의 가녀린 손가락이 판의 눈가를 뚫고 들어갔다.
판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사이, 손을 빼낸 그녀에게는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동공이 떨리고 있는 눈알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감히 짐의 말을 어기고 시끄럽게 굴었던 그 혓바닥도 가져가야겠지.”
푸홧!
“카학! 카하아악!”
마몬이 반대쪽 손으로 판의 혓바닥을 빼냈다.
저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날 수 있는 것인지, 그리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았는데 판의 혓바닥이 길게 빠져나왔다.
칼에 베이는 것도 아닌, 그저 힘으로 혓바닥이 뜯기는 통증을 겪은 판이 비명을 내지르려 했지만 혀가 사라진 탓에 바람 새는 소리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판은 희망을 가졌다.
양손에 하나씩 ‘벌’을 가져갔으니,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목숨만 부지한다면 상처야 어떻게든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마몬. ‘탐욕’의 마신이었다.
“호오, 비록 버러지 같은 몸이지만. 그 뿔만은 제법 가치가 있어 보이는구나.”
“카학! 아, 아대니다! 뿌, 뿔마는!”
판의 남은 한쪽 눈알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혓바닥이 없어 발음이 무뎌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입술을 뻥긋거렸다.
판의 뿔은 판의 격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가 성좌의 자리로 있게 한 상징이며, 그가 가진 힘의 모든 게 담겨 있는 원천이었다.
뿔을 잃는다면, 성좌로서의 격이 완전히 상실되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잃고 말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 막아야 한다.
판이 최후의 반항을 하기 위해 머리를 꿈틀거렸지만, 그럴수록 이마에 박힌 하이힐이 더욱 깊게 콧등을 파고들었다.
“이건…… 감히 짐을 이런 누추한 곳에 오게 만든 대가로 받아 가겠다.”
“안…….”
푸홧!
판의 콧등이 무너짐과 동시에, 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던 산양의 뿔이 마몬의 손에 뽑혀 나왔다.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는지, 두개골이 함께 딸려오며 그 아래로 허연 뇌수가 보였다.
푸홧!
마몬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반대쪽 뿔도 뽑아 들었다.
이미 판의 몸에서 반응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판을 상대하며 잔뜩 구겨졌던 마몬의 표정이 한 쌍의 뿔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밝아졌다.
성좌의 죽음.
그 진귀한 장면을 코앞에서 지켜본 세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불사라 알려진 성좌라고 하여도, 성좌로서의 격을 잃게 되면 불사의 개념마저 사라지고 마는 법이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마신 앞에서 입을 놀렸으니 저건 당연한 결과였다.
판이 버려진 자식이라 불린다고 해도, 엄연한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그런 이를 죽였기에, 제우스의 반응이 걱정될 법도 한데…….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이거라면 창고의 중앙에 배치해도 손색이 없겠어.”
마몬의 얼굴에서는 그에 대한 걱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판의 뿔을 어디에 배치할지 생각하며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판의 뿔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기에, 세운이 먼저 나서 감사를 표했다.
그제서 마몬의 시선이 세운을 향했다.
레비아탄을 마주하며 신과 마주하는 데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몬을 마주하니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레비아탄은 힘을 잃고 탑의 밖으로 추방당한 상태였고, 직접 마주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중압감이 덜했던 모양이다.
성흔이 붉은빛을 발하며 중압감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당장 무릎을 꿇고 이성을 잃을 뻔했다.
“네가 감사를 표할 필요는 없다. 짐은 짐의 보물을 지켰을 뿐이니까.”
“……네?”
“비록 이번 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짐의 창고를 훔친 시점에서, 너는 이미 ‘짐의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마몬의 고혹적인 눈빛이 세운의 몸을 훑으며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