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5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59화(155/675)
제 159화
솔직히, 마수인 ‘흑마우’ 정도는 데려올 것이라 예상하였다. 클랜챗에서부터 마수를 향한 그의 욕심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오크 진영을 선택했으니 같은 진영의 몬스터인 마수의 사체를 가져오는 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흑마우는 둘째치고 리자드맨 진영에서 최후의 수단으로써 암암리에 키우고 있던 송장화의 시체까지 가져왔다.
“아, 세운 씨 오셨습니까!”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하하, 너무 탐나서 그만…….”
“리자드맨과의 전투 중에 마수가 당한 겁니까? 어지간해서 저 마수가 당할 일은 없을 텐데.”
“아닙니다!”
“그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그냥 전부 처리하고 챙겨왔습니다.”
“……네?”
저게 무슨 말인가?
세운이야 ‘늪지의 수호 일족’이라는 숨겨진 이들을 만난 덕에 두 진영 중 한 곳을 선택하지 않고 모두 망가트릴 수 있었다지만, 그는 다르다.
클랜챗으로 분명히 오크 진영에 들어갔다고 했었다.
회귀 전에 그와 마찬가지로 오크 진영을 택했던 세운의 기억으로는, 두 종족을 모두 말살하는 시련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백현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전쟁 중에 ‘실수’로 아군을 죽였는데, 히든 퀘스트라는 이름으로 늪지 말살이라는 게 나와서 따랐습니다. 하하, 덕분에 이 마수의 사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늪지 말살.
난쟁이들의 부탁으로 늪지를 구하기 위해 두 진영을 부수었던 세운의 시련과 목표는 같으면서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게다가, 세운이야 세 마신의 권능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니 그렇다 치고, 그는 어떻게 두 진영을 말살시킬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늪지 테마의 독특한 특성이 한몫을 발휘한 듯했다.
‘독이 통하지 않는 언데드와 대규모 전쟁. 둘 다 네크로맨서에게 최적의 전장이니까.’
늪지는 여러모로 백현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다른 종족과는 달리 독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언데드가 죽으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었다.
전장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으니 조건만 따라준다면 일인 군단을 형성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라면 불가능하겠지만…….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즐거운 듯이 콧바람을 뿜어댑니다.
마계 최고의 사령술사인 가미긴과 계약한 백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히든 퀘스트라면 공적치도 많이 얻었을 거고, 저 두 몬스터로 만든 언데드라면 그의 성장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백현이 점점 광기에 휩싸이는 것 같아 조금 불안해졌다.
온갖 수모를 겪으며 탑을 올라 멘탈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고 자부하는 세운과 달리 백현은 아직 저층의 플레이어일 뿐이었으니까.
저대로 정신 오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혹시나 가미긴이 백현을 세뇌하는 중이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탐욕의 마신 앞에서 고개를 조아립니다.
세운이 한창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성흔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마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요정 같은 크기이지만, 그 기백만큼은 엄연한 마신이었다. 등장과 동시에 가미긴이 고개를 조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가미긴이 ‘세뇌’라는 행위로 자기 계약자의 가능성을 짓밟는 짓은 할 리가 없으니라.”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마몬의 말에 세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세운이 지켜봐 온 마몬은 거짓말을 할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이럴 때 보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악신들이 오히려 선신들보다 정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괜찮으시다면 이번에도 같이 작업해 주시겠습니까?”
세운이 저를 걱정을 하는지도 모르고 백현이 밝은 얼굴로 공동 작업을 권유하였다.
어차피 24시간 온종일 수련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시간이 남기도 하고, 세운 역시 송장화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 저 대형 송장화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 학자들이나 모험가 길드에서 판매할 수도 있었으니까.
“대련부터 하고 오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시작하고 있겠습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얼른 꽃잎부터 갈라보자며 콧김을 크게 내뿜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휴식 겸 정비 기간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길고도 짧은 정비 시간이 끝났다.
그사이 백현은 송장화와 마수를 모두 언데드로 만들어 냈고, 강한철은 세운의 지도하에 태을섬수공의 사 초식을 깨우쳤다.
유서아는 거주지 주변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보법을 더욱 강화했고, 이하늘은 늪지대에서 구한 약초로 여러 가지 약품을 만들어 냈다.
그 외에도 저마다 자신의 특색을 발전시키거나, 클랜을 위하여 제 역할을 다했다.
휴식을 위한 기간이지만, 게으름을 부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는 박정필도 쌍둥이 자매의 일을 돕거나 강한철의 수련을 돕는 등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물론, 자의로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름아, 다운아.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잘 수 있었어.”
“진짜 침대랑 솜이불 있으니까 잠의 질이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요?”
“역시, 침대는 과학이지!”
쌍둥이 자매는 쉼터에서 얻은 재료로 쉼터를 더욱 멋지게 꾸몄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것은 바로 침대였다.
쉼터에서 얻은 솜과 고창석에게 도움을 빌려 만든 스프링 등을 이용해 만든 침대.
기껏 해 봐야 두꺼운 천이나 가죽을 깔고 잠들었던 사람들에게 지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푹신한 침대는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심지어는 세운도 침대 하나를 받아 들고 갔을 정도였다.
“자, 다들 준비되셨죠?”
“네!”
시련에 도전하기 전, 늘 그렇듯이 이하늘에게 약을 보급받은 것과 별개로, 사람들은 다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
바로, 세운이 유서아에게 알려준 다음 시련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다.
“들었다시피 다음 시련은 추위를 테마로 한 시련이에요. 이걸로 최소한의 준비는 갖췄으니, 다들 이번에도 힘내요!”
“화이팅!”
16층부터 20층까지의 시련을 담당하는 테마는 설원이었다.
유서아가 세운의 말을 워낙 잘 따랐기에, 이전의 층에서 얻은 정보라고 둘러대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몇 명은 추위를 예상하고 있었다.
첫 번째 테마인 산.
두 번째 테마인 사막.
세 번째 테마인 늪지대.
그곳들은 각각 사계절인 봄과 여름, 가을을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다음 테마가 겨울과 관련된 테마라는 것 정도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일 까다로운 환경의 테마이기도 하지.’
늪지대는 해독약을 잘 챙겨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독성이 옅은 지역을 잘 찾아가 진영에 들어가면 무리 없이 공략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다음 테마인 설원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다들 입고 있는 외투는 최소한의 준비에 불과했다.
다리가 푹푹 빠지는 눈길은 움직임을 방해하고, 뼈까지 시려오는 추위는 몸을 굼뜨게 만든다.
몰아치는 눈보라는 시야를 가리면 그 빈틈을 노리고 몬스터가 이빨을 드러낸다.
회귀 전의 세운은 그곳에서 몬스터가 아니라 그저 추위에 의해 얼어 죽는 플레이어의 모습도 꽤 많이 보았었다.
다음 테마의 난이도는 그만큼이나 높았다.
그 때문에 세운도 미리 힌트를 알려 외투를 준비시킨 것이고 말이다.
“다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만 하면 모두 잘 풀릴 거예요! 아마도, 이번 테마를 통과하면 또 쉼터가 나올 테니 다들 힘내요!”
“다음 쉼터는 어떤 곳일지 궁금하구만!”
“두 번째 쉼터가 이전 시련이랑 연결되어 있었으니, 이번에는 추운 곳이려나?”
“으, 난 추운 거 싫은데…….”
사람들이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방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탑과 시련에 익숙해져 있어 긴장을 적당히 푸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유서아 역시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긴장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슬슬 준비되었을 때.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가자고!”
유서아를 선두로, 디아블로 클랜이 다음 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 16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설원 집결
– 시간제한 : 48시간
– 당신은 살을 에는 추위로 가득한 설원의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 동료들과 만나기 위해 아득한 설원을 지나 ‘얼어붙은 거인’이 있는 곳으로 향하십시오.
이변은 없었다. 세운의 경험대로 16층의 테마는 설원이었다.
장소가 이동되자마자 예상했던 추위가 몸을 뒤덮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아직 눈이 내리지 않고 있다는 점? 설원을 절반쯤 지나다 보면 눈보라가 몰아칠 테지만 말이다.
“과연, 두 눈으로 보는 탑은 위에서 내려보는 것과 다르구나. 몹시나 아름답고…… 따뜻해.”
따뜻하다는 마몬의 말은 괜한 게 아니었다.
악마들이 살아간다는 마계는 이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들었으니까.
설원지대는 마력을 두르지 않으면 즉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리고, 화산 지대는 숨을 들이쉬는 순간 전신이 잿더미가 되어 흩어진다고 했다.
그런 곳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꽈악.
세운이 전포를 끌어당겨 조금 더 여몄다.
등급이 높은 만큼 어느 정도 보온기능도 있었지만, 살을 에는 추위를 완벽히 막아주지는 못했다.
본래 이 추위에 적응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게 16층의 시련이지만, 세운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예티의 가죽 ]– 깊은 설산에서 살아가며 눈보라가 치는 날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괴수, 예티의 가죽. 추위에 대한 면역과 눈에서의 위장 효과를 가진다.
혹시나 예티와 같이 긴 털이라도 자라나는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피부가 두꺼워지는 기분과 함께, 추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직 완벽하게 적응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맨몸으로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전포를 덮어쓰면 추위가 거의 안 느껴질 정도였다.
단순히 추위만 덜 느껴지는 것만 아니라, 세운의 피부와 장비가 하얗게 물들어 갔다.
예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인 위장.
사방이 눈으로 덮인 설원이었기에, 하얗게 물든 세운의 모습은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찾기 힘들어졌다.
만약 이대로 눈보라라도 몰아친다면, 설원에 익숙한 몬스터라도 세운을 찾아내기 힘드리라.
‘거기에 킬케르가식 은신술을 사용하면…….’
아마, 몬스터가 눈으로 세운을 발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벅.
발을 앞으로 내딛자 수북하게 쌓인 눈더미가 세운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직 눈보라가 불지 않아서인지 그리 높게 싸이진 않았지만, 충분히 이동에 거슬릴 정도였다.
그러니.
– 내공을 통해 초상비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집니다.
늪지대에서도 사용했던 초상비를 통해 눈 위를 사뿐사뿐 달려간다.
늪지와는 달리 부드럽기에 눈에 발이 완벽하게 안 빠지게 할 수는 없었지만, 이동의 제약은 완전히 사라졌다.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켰던 방향이 어디쯤이었더라?’
전포를 끌어 올려 머리를 완전히 덮은 세운이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당연하게도 이번 시련 역시 무작정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히든 피스.
회귀 전에는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히든 피스를 찾아내는 게 세운의 첫 번째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