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5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61화(157/675)
제 161화
회귀 전, 세운은 탑을 오르며 다양한 영약을 보아왔다. 여정의 지침표를 통해 남보다 영약을 찾아내기가 수월했던 덕분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직접 복용한 영약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의 세운에게는 소량의 능력치 상승보다는 좋은 아이템을 구입하여 시련에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지금 눈앞에 피어난 꽃 역시도 세운이 알고 있는 영약 중 하나였다.
‘설삼.’
극한의 설산에서만 피어난다고 알려진 영약이 바로 이 설삼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이 그리 크지 않았다.
만년 설삼까지는 안 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복용 가능한 수준이다.
세운이 익숙한 솜씨로 설삼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회귀 전의 경험과 이전에 사용했던 ‘이나스의 식물도감’의 지식 덕분에 채취 실력은 전문가 못지않았다.
드드득-
뒤랑달을 땅에 박아 넣으니, 냉기가 검신을 타고 올라왔다.
이게 바로 설삼을 채취하기 까다로운 점이다. 설삼이 자라나는 주위의 대지는 그 어느 곳보다 차가운 냉기를 품고 있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검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이 검 손잡이에 딱 달라붙어 동상을 입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세운은 ‘예티의 가죽’으로 인해 냉기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두꺼운 장갑으로 어떻게든 냉기를 막으며 채취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 없이 흙을 퍼 올렸다.
잔뿌리 하나조차 손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온 집중을 기울였다.
그리고 드디어.
“휴.”
생각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설삼을 완벽하게 채취해 낼 수 있었다.
– 히든 퀘스트, ‘천년 설삼’를 완료하였습니다.
– 시련 ‘설원 집결’에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 보상으로 ‘천년 설삼’을 획득하였습니다.
[ 천년 설삼 ]분류 : 영약
등급 : B+
설명 : 극한의 냉지에서만 자라난다는 인삼으로서 천년 동안 냉기를 흡수해 정순한 냉기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
능력 : 1. 냉기의 정수 – 섭취 시, 냉기의 기운을 대폭 흡수한다.
세운의 예상대로 만년 설삼은 아니었다. 그러나, 천년 설삼도 영약 중에서 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영약 중 하나였다.
거기다 히든 퀘스트로 공적치까지 부여받았으니, 일석이조의 수확이었다.
“잘됐네.”
최근 자하신공을 통해 양기의 내공을 쌓던 세운은 단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만간 음기의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음기를 머금은 영약인 천년 설삼을 찾아내다니. 누군가 세운의 성장을 돕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 쉼터에서 여유 있게 영약을 사용하려던 세운은 주위의 환경을 확인하고는 생각을 고쳤다.
‘여기라면…….’
발바닥을 통해 차가운 냉기가 올라온다.
천년 설삼이 자라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것은 물론, 마나의 밀도 역시 놀랍도록 뛰어났다.
내공이나 마나를 쌓기 최적인 장소였다.
그런데 여기에 천년 설삼까지 섭취한다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수련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 남은 시간 : 47시간 02분 ]지금은 시련 도중이다.
제한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고, 시련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적치 보상이 낮아진다.
공적치 보상보다 이곳에서의 수련으로 얻는 게 더 크다고 해도,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보통, 내공이나 마나를 흡수하는 도중에는 시간이 흐르는 사실을 잊어 버린다는 것.
실제로 첫 번째 쉼터의 ‘반짝이는 동산’에서 마나 수련법을 사용했을 때 세운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나를 흡수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침 해가 떠오른 후였지.
당시에는 하룻밤으로 끝났다지만, 이번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칫, 남은 47시간을 전부 소모해 버린다면 시련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세운이 고심하고 있을 때, 어느새 모습을 구현화한 마몬이 작은 날개를 펼치며 나타났다.
“무얼 고민하느냐?”
“그게…….”
“내가 있지 않느냐.”
“네?”
“시련이 끝나기 전에 깨워주는 것 정도는 짐이 도와줄 수 있느니라.”
예상치 못한 마몬의 도움이었다.
물론 마몬에게 부탁하는 것도 생각은 해 보았지만, 콧대 높은 마신이 모닝콜 같은 행위를 해 줄 것 같지는 않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마몬이 먼저 자선해서 나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마나 역류.
내공이나 마나를 모으며 무아지경에 빠져 있을 때 강제로 깨워지게 되면 마나가 역류하여 몸이 망가지고 만다.
“아무리 이 모습으로 힘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명색이 마신이다. 마나 역류를 억제하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감사합니다.”
하긴, 마몬이 이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세운이 편안해진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그녀가 지켜봐 준다면 걱정 없었다.
천년 설삼이 자라나고 있던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즉시 천년 설삼을 집어삼켰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당신을 부러워합니다.
뿌리는 물론 줄기와 꽃까지 한입에 삼켰다.
뿌리를 씻지도 않았던 터라 까끌까끌한 흙과 얼음 조각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빙백신공(氷白神功) ]– 북해의 절대강자로 단 한 번도 북해의 패권을 놓치지 않았다는 북해빙궁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기(秘記).
세운의 주위로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며 음기의 내공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 * *
[ 남은 시간 : 1시간 12분 ]“세운 씨, 왜 안 오는 걸까요?”
설원의 수많은 크레바스를 지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공터.
시련이 안내한 목표인 ‘얼어붙은 거인’이 서 있는 그 공터 주변에 수십 명의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바로, 디아블로 클랜.
미리 준비한 방한 장비와 세운이 알려준 크레바스의 존재 덕분에 이번에도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아직 한 명.
세운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제 고작 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걱정하지 마라. 고작 크레바스 따위에 떨어질 리가 없다.”
“그건 저도 알고 있지만…… 이제 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걸요.”
강한철의 말에도 유서아는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당연히 세운이 가장 먼저 도착해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47시간이 지나,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박정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냥 먼저 도착해서 다음 시련으로 넘어간 거 아냐? 형님이라면 그럴 거 같은데.”
“아닐 거예요. 다음 시련은 단체로 진행하는 시련이니까요.”
“그건 그런데…… 형님이 거기서 당할 사람은 아니잖아? 아니면 먼저 와서 숨어 있는 건가?”
‘설원 집결’이라는 시련의 이름처럼, 다음 층은 집결한 플레이어들이 함께 진행하는 시련이었다.
당연하게도 시스템은 이번 시련 역시 디아블로 클랜끼리 모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 아무리 세운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다음 시련으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보다, 다음 시련이 뭔지나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전부 모이게 할 정도면, 엄청 어려운 시련일 것 같은데 말이야.”
“네, 일단은 혹시 모르니 다들 전투 준비를 끝내주세요.”
걱정이 되었지만 이대로 손톱만 물어뜯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세운이 도착했을 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를 마쳐야 했다.
그가 없더라도 17층에 통과할 수 있도록.
클랜장은 아니지만, 리더로서 유서아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다.
“걱정 마라. 튜토리얼 때처럼, 어디선가 나타날 테니까.”
“그렇겠죠?”
설원의 공터.
디아블로 클랜 모두가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그 중앙에서 아주 작은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스스.
16층 시련의 목적지였던 ‘얼어붙은 거인’. 그 거인을 옭매고 있던 얼음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 * *
– 빙백신공을 통해 단전에 이 갑자의 내공을 쌓았습니다.
– 상승한 내공의 수치에 따라 사용하는 모든 무공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사용하는 무공에 극음의 기운이 발현됩니다.
–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2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음기가 가득한 수련터와 천년 설삼의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앉은 자리에서 일 갑자도 아니고 무려 이 갑자의 내공을 모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마지막에는 음양의 기운을 조율하느라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음기와 양기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애초에 빙백신공을 수련한 의미가 퇴색되는 꼴이니까.
어쨌든, 목표하는 바는 완벽하게 이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 남은 시간 : 6분 12초 ]시련이 종료되기까지 십 분도 안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마몬, 시련이 끝나기 전에 깨워준다고 했잖습니까!”
“음? 아직 시간이 남지 않았느냐.”
“6분밖에 안 남았잖아요!”
“6분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만약 지금 일어나지 않았다면 5분쯤 남았을 때 깨우려 했으니, 짐의 예상보다 충분히 여유롭구나.”
초상비를 통해 빠르게 달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 거대한 크레바스가 16층의 딱 중간쯤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상식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그 거리를 6분 만에 완주하여야만 한다.
심지어, 세운이 알아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3분은 더 늦게 일어날 뻔했다.
‘젠장!’
마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생각의 차이였다.
마신인 그녀라면 이런 설원을 주파하는 것 정도야 몇 초면 충분하겠지…….
어쨌든, 지금은 불평을 늘어놓는 것보다 일 초라도 빨리 출발하는 게 우선이다.
펄럭.
이카로스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방금 막 빙백신공을 펼친 탓인지, 깃털 사이로 얼음 알갱이가 떨어져 내렸다.
타앗!
세운이 부서진 얼음벽을 통해 눈보라를 향해 날아올랐다.
차가운 눈보라가 세운을 막아섰지만, 2갑자의 내공을 얻어 총 4갑자의 내공을 지니게 되며 강화된 세운의 육신에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마나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콰아아아!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세운은 순식간에 크레바스 사이를 뚫고 올라와 그대로 목적지를 향해 날았다.
내공까지 최대로 운용하며 날개를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데, 마몬이 세운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느리구나.”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까마귀의 부족한 현실 감각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급속히 빠져나가는 마나 때문에 서클이 급속하게 과열되었다.
그래도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5분, 3분, 1분.
남은 시간이 초 단위를 향하고 있었다.
숨을 쉴 겨를도 없이 날개를 최대한 크게 펄럭이는 순간.
– 16층의 시련 ‘설원 집결’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남은 시간 : 3초
– 사냥한 몬스터의 수 13 마리.
– 히든 퀘스트 ‘천년 설삼’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60,300point
지금까지 얻은 공적치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공적치와 함께 16층의 시련이 끝났다.
하긴, 48시간 중 3초만을 남기고 가까스로 시련을 통과했으니까. 히든 퀘스트를 공략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미래를 위해 공적치를 모아야 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균형 잡힌 4갑자의 내공으로 채워진 단전이 훨씬 중요하니까.
그렇게 세운이 집결지에 도착하는 순간.
“크아아아아악!”
얼어붙은 거인이 몸을 옭매는 얼음을 깨부수며 함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