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6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64화(160/675)
제 164화
“……조심하세요.”
“너희도. 아, 저번처럼 나 기다리지 말고 시련은 알아서 진행하고 있어.”
“네, 믿고 있을게요.”
유서아가 조금 아쉬워하는 티를 냈지만, 금방 마음을 바로잡았다. 그녀도 이제는 세운의 이런 모습이 익숙해진 탓이었다.
게다가, 아까까지만 해도 세운의 도움 없이 시련을 잘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세운이 빠진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세운 역시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걱정 없이 자리를 떠나려는 것이고 말이다.
“형님, 제 덕인 거 잊지 마십쇼? 저기서 쓸 만한 거라도 챙기면 저도 좀 나눠 주시고. 헤헷.”
“알겠으니까 이제부터는 네가 앞장서.”
“네? 아니, 제가 왜…….”
“네 역할이 뭐지?”
“그야 형님의 오른팔 아닙니까!”
“정찰이다. 앞에서 제일 먼저 문제 발견해서 유서아한테 알려주고, 몬스터가 나타나면 이목을 분산시키는 것.”
“헤헷, 그건 좀…….”
“다녀와서 교육 좀 받을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
세운이 ‘교육’을 언급하고 나서야 박정필이 선두로 나섰다.
정말이지, 조금만 풀어 두면 제어가 전혀 안 되는 녀석이다.
세운은 유서아에게 박정필이 만약에 헛짓거리라도 하면 즉시 알려주라고 한 뒤에야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물론, 18층의 시련이 안내하는 목적지가 아닌 설산 위의 얼음 성을 향해서 말이다.
‘마나는 아직 부족하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카로스의 날개를 펼쳐 단숨에 날아가고 싶었지만, 파이어 캐논을 사용하느라 마나를 전부 사용해 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얼음 성까지 날아갈 마나를 회복하는 것보다는 내공을 운용하여 뛰어가는 게 더욱 빠를 것 같았다.
파이어 캐논을 사용한 덕분에 얼음 성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니 후회는 없었다.
– 내공을 통해 초상비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집니다.
세운이 빠른 발걸음으로 눈 위를 달렸다.
아직 완벽한 수준은 아닌 터라 발자국이 조금 남긴 했지만, 발이 발목 이상으로 빠져드는 일은 없었다.
디아블로 클랜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다만, 세운이 향하는 곳은 얼음 성과의 직선거리가 아니었다.
“끄엣?”
디아블로 클랜의 이동 경로 바로 옆에 있던 설산.
그곳의 정상에 다다르니 눈 사이 오목한 공간에 숨어 있는 몬스터 무리가 보인다.
원숭이처럼 생긴 놈들이었는데, 전신에 하얀 털이 길게 자라있어 눈만 빼꼼히 튀어나온 것처럼 생겼다.
이것들이 아까부터 굴러떨어지던 부자연스러운 눈덩이의 주체.
생긴 걸 보니 전투력이 강해 보이지는 않고, 눈덩이를 굴려 지나다니는 생물을 사냥하는 습성인 듯했다.
이것도 엄연한 사냥방식 중 하나였기에 놈들에게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서걱.
괜한 우려를 남긴 채 지나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다른 몬스터에 비해 지능이 조금 더 발전했을 뿐 전투 능력은 고블린 수준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의 피가 눈 위에 뿌려졌다.
– 히든 퀘스트, ‘작은 재앙’을 완료하였습니다.
– 시련 ‘설원의 재앙’에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놈들을 죽이는 게 히든 퀘스트였다는 것을 몰랐던 세운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약한 놈들이 히든 퀘스트였다니.
하긴, 세운이 폭설을 그치고 하늘을 맑게 만들지 않았다면 녀석들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회귀 전에는 몰랐는데, 18층에도 히든 피스가 꽤 많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곧 탐욕의 어금니가 눈에 튄 피와 함께 놈들을 씹어 삼켰다.
지력이 아주 조금 오를 뿐, 능력치 상승이 극히 미미하긴 했지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에서의 먹이들은 시원해서 특색이 있다며 흡족해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띵해 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아찔한 고통을 즐깁니다.
그 뒤에도, 간간이 세운의 길을 막아서는 몬스터가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으로 18층에는 몬스터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목적지로 나아가는 길목을 벗어나니 다양한 몬스터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길로만 이동하라는 시스템의 뜻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놈들은 세운을 막아낼 수 없었다.
아무리 눈 속에 숨어서 기습 공격을 해 보아도, 거대한 덩치로 찍어 누르려 해 보아도 세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에 놈들은 베엘제붑의 간식거리가 될 뿐이었다.
설산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두 개의 설산을 더 넘고,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무렵에야 세운은 얼음 성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물 냄새가 풀풀 나는 성이로구나.”
가까이서 본 얼음 성은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게 꼭 보물로 만들어진 성 같았다.
곳곳에 아름답게 세공이 되어 있었고, 조금의 얼룩조차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는 없는 것 같고…….’
최소한 경비병이나 가디언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주위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버려진 성 같았다.
세운이 투명한 얼음계단을 올라 성문 앞에 다가섰다.
마찬가지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힘을 주어 문을 밀어보았지만…….
‘잠긴 건가.’
문은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자세를 잡고 힘을 주어 밀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물론 마몬의 보물을 이용하여 더 큰 힘을 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미동조차 없는 문을 보니 힘으로 억지로 열 수 있는 구조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
‘여기서도 쓰게 되네.’
튜토리얼에서 얻은 마스터키, 작은 열쇠뿐이었다.
눈꽃처럼 아름다운 육각형의 구멍 사이로 열쇠를 집어넣자, 그 안에서 작은 열쇠의 구성 광석인 오리하르콘 특유의 빛이 채워졌다.
빛은 곧 얼음과도 같은 시린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철컥.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돌아갔다.
– 18층의 시련 ‘설원의 재앙’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남은 시간 : 43시간 25분
– 히든 퀘스트 ‘작은 재앙’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175,000point
– 축하드립니다! 18층의 시련을 랭킹 3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3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랭킹 3위로 만족해야만 했다.
목적지를 도착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시련을 통과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카샬락카스 같은 존재가 용으로 변해 설원을 가로질렀다면 그 기록을 깨트리기는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보다, 세운이 기다리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얼음 성을 열자마자 18층의 시련이 끝났다.
그 말은 즉.
– 숨겨진 갈림길을 찾아내어 바로 다음 층의 시련과 연결됩니다.
이 얼음 성이 단순한 히든 피스가 아닌, 숨겨진 19층의 시련 그 자체라는 뜻이었다.
* * *
“얼음 성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아……. 튜닝이라고 했나? 자네 말이 맞았구만.”
탑의 16층부터 20층까지의 시련인 설원 테마를 담당하는 관리부서. 그들은 얼음 성의 문을 열고 있는 세운의 모습을 모니터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운의 특별 전담관. 튜닝만은 세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 얼음 성이 어떤 곳인데 그러시는 겁니까? 메뉴얼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아, 저곳 말인가…….”
설원 테마의 관리팀장이 다시 한번 모니터를 바라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최신 메뉴얼에는 나와 있지 않겠지. 저곳은 탑이 초창기일 때 사용되던 시련 장소였으니까.”
“초창기 말입니까?”
“그렇다네. 현재는 기준에 맞지 않아 폐쇄된 시련이기도 하지.”
“어째서 폐쇄된 겁니까?”
“탑이 초창기일 때는 플레이어를 선별하는 과정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네. 그건 들었나?”
“그건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중시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오로지 전투력만을…… 아. 그렇군요.”
“그렇다네. 저 성은 오로지 전투에 관한 잠재력을 시험하기 위한 장소라네. 난이도 역시,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지.”
“폐쇄한 이유 역시 그것이겠군요.”
“지금 저런 시련을 열었다가는, 제작이나 연금술 같은 곳에 재능을 지닌 플레이어들은 꼼짝없이 당하고 말 테니까.”
탑의 초창기. 관리소에서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시절이었다.
당시에 탑을 이끌어가던 관리자들은 지금 탑의 고층에서 수뇌부의 위치까지 올라간 후다.
당시의 탑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암흑기였다.
오로지 힘만으로 플레이어를 선별하고,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플레이어들끼리 죽음을 건 대련을 시키기도 했고, 아군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시련도 존재했다.
지금 설원의 테마가 ‘협동심’을 알아보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 때문에 초창기에 탑을 올랐던 이들 중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모두 탑의 최상층에서 랭커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협동심이나 배려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오로지 힘.
물론, 시간이 흐르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탑을 등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시스템이 시련을 수정하며 지금의 모습을 보이지만 말이다.
“그럼 나도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저 열쇠가 대체 뭐길래 상부가 저리 시끄러운 것인가?”
관리팀장이 세운이 사용했던 열쇠를 가리켰다.
작은 열쇠.
관리팀장인 그로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지급된 아이템이었다.
세운은 그저 마스터키로서만 활용하고 있었지만,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저게 그저 마스터키였다면 상부가 이렇게나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
튜닝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자신도 저 열쇠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 건 얼마 전에 상부에서 내려온 정보 덕분이었다.
그전까지는 ‘매우 중요한 열쇠’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저게 왜 튜토리얼의 보상 중에 하나였는지조차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튜닝은 곧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상부에서 이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라는 언급도 없었고, 눈앞의 팀장이라면 비밀을 퍼트리고 다닐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튜닝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뱉었다. 물론, 그마저도 100% 완벽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 그게 정말인가?”
그것만으로도 관리팀장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 * *
– 19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시험의 얼음 성
– 시간제한 : –
– 당신은 설원을 헤매던 도중 굳게 닫힌 얼음 성을 발견하였습니다.
– 얼음 성의 입구에 발을 내밀면 다시는 시련을 되돌릴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도전하시겠습니까?
시련의 내용에서 목표 대신 주의를 알리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만큼이나 19층의 시련이 위험하다는 뜻이겠지.
저것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세운에 대한 시스템의 배려. 아니, 관리소의 배려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애초에 위험하다는 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곳까지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턱.
세운이 메시지를 뚫고 앞으로 첫발을 내밀었다.
등 뒤의 얼음 문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굳게 잠겼고, 밝은 빛이 몸을 뒤덮음과 함께 어쩐지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맨몸으로 도전하라는 건가.’
– ‘시험의 얼음 성’에 도전하였습니다.
– ‘시험의 얼음 성’에서는 외부 아이템 반입을 금지합니다.
– 시험을 훌륭하게 통과하여 얼음 성의 성주에게 도달하십시오.
고창석이 만들어 준 장비는 물론 뒤랑달이나 아펠리온, 태조 무황제의 전포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세운이 준비가 끝나자, 드디어…….
“……오랜만의 도전자로군.”
19층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