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6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67화(163/675)
제 167화
서걱!
이걸로 끝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성주는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가볍게 위기를 벗어났다.
허리를 돌려 몸을 급격하게 회전시키더니 검을 팽이처럼 휘둘러 얼음송곳의 날카로운 끝부분을 베어냈다.
얼음 마법 특유의 단단함에 황탑의 묘리까지 깃든 송곳인데, 성주는 너무 쉽게 송곳을 베어 버렸다.
성주가 잘린 송곳의 단면 위로 올라타 쪼그려 앉더니 질색하는 표정으로 세운을 내려보았다.
“이 정도면 최소한 5서클. 아니, 수준만 보면 6서클은 되어 보이는데 어디 유희라도 나오셨어요? 드래곤 씨?”
째앵!
세운이 검을 휘두르자 긴 실선이 그려지며 얼음송곳이 깨져 나갔다.
성주가 공중을 한 바퀴 회전하더니 가볍게 착륙했다.
그런데도 세운은 여유를 가지고 가만히 검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한 것은 세운 자신이었으니까.
– 시기의 눈초리가 ‘프랜시스 하멜’의 힘을 질투합니다.
– 프랜시스 하멜의 검술을 앗아옵니다.
– 프랜시스 하멜의 힘을 앗아옵니다.
…….
그리고 마침내, 질투의 권능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장난기 가득하던 성주의 얼굴이 묘하게 구겨졌다.
“이건 또 무슨 짓이야? 나 참, 내가 뭘 상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질투의 권능에 대한 메시지는 세운에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다양한 적들에게 질투의 권능을 사용해 왔지만, 그들 중에서 질투의 권능을 이렇게 곧바로 알아차린 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성주가 그만큼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좀 더 즐기고 싶었는데, 안 되겠네. 나도 시시하게 끝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성주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중단세(中段勢). 하멜가 장검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로써, 검을 앞으로 바로잡고 칼끝이 적의 목과 미간 사이를 향하는 자세이다.
상대의 공격을 견제하고 공격을 시작하기 위한, 가장 처음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
단순한 준비 동작일 뿐이었지만,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위압감은 전혀 기본적인 것이 아니었다.
쿠궁!
성주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거대한 무언가가 어깨를 찍어 누르는 듯한 기분이다.
세운 역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를 향해 검을 겨누자, 그제야 위압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멜가의 상징.’
성주의 뒤로 반투명한 푸른빛의 사자가 세운을 내려보고 있었다.
세운이 혈랑검법을 사용하며 내공으로 늑대의 형상을 일으키듯, 하멜가 장검술 역시 검술에 정통하면 사자의 형상이 일어난다.
마몬의 보물을 사용하여 하멜가 장검술을 익혔음에도 세운은 도달할 수 없었던 경지.
과연, 검제라 불리는 이의 잔재였다.
19층을 오르던 시절에 저런 수준에 도달했다면, 과연 지금의 프랜시스 하멜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프랜시스 하멜이지, 눈앞의 잔재 따위가 아니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세운의 성흔이 깨어났다.
오른손등을 통해 신성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 어깨를 짓누르던 위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와 함께 세운의 뒤에도 무형의 기운이 일렁거리더니 늑대의 모습이 되어 송곳니를 드러냈다.
무공이 아닌 신성으로 만들어진 늑대의 형상.
사자와 늑대가 서로의 존재를 경계하며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드득, 드드득!
주변의 얼음이 둘의 기세를 버티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켰다.
바닥과 벽, 천장 할 것 없이 거미줄 같은 실금이 넓게 퍼져나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운과 성주는 검과 상대에게만 집중하였다. 세상에 그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준비 자세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성주가 준비하고 있는 공격은, 그야말로 하멜가 장검술의 정수.
아마, 그저 잔재로 남게 된 힘이 아니라 이 시험의 얼음 성에 남겨진 후부터 잔재가 스스로 수련하고 깨달은 힘이리라.
그는 이미 잔재의 힘을 초월하였다.
그런 고로, 세운도 이 일격에 모든 힘을 담았다.
크아앙-!!
아우우-!!
푸른 사자와 붉은 늑대가 울부짖는다.
사방의 균열이 더욱 진해지며, 얼음 성이 견디기 힘들다며 부들부들 떨려댄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바닥 위에서도 둘은 차분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다 떨림을 견디지 못한 샹들리에의 줄이 뚝 끊어지며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타앗!
세운과 성주가 동시에 발을 떼었다.
세운의 검이 하늘을 가를 듯이 위로 솟구치고, 성주의 검이 대지를 무너트릴 듯이 아래로 쏟아진다.
그 찰나의 순간, 세운은 성주의 눈을 마주치며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인정하기라도 한 듯한 차분함과 잔재로써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을 터트리는 희열을 말이다.
서걱-
검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의 기세와는 다르게, 둘의 격돌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주의 검은 세운을 가르지 못했고, 세운의 검은 성주의 가슴에 대각선의 혈선을 남겼기 때문이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파기검법(破技劍法) ]– 무명의 낭인이 무림을 떠돌아다니며 수백, 수천 명의 적과 상대하며 만들어 낸 검술. 적의 공격을 파악하고, 파훼한다.
비록 저 정도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세운은 하멜가 장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어중이떠중이 수준도 아니고, 기본만은 그 어느 검술보다도 탄탄하게 숙련하였다.
그러니 성주의 마지막 일격에 담긴 묘리 역시 미약하게나마 미리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사용한 게 바로 이 파기검법.
적의 검술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파악하여, 완벽한 반격을 날려 적의 검술을 파훼하는 검법이었다.
나무처럼 한없이 정직하게 하멜가 장검술만을 고집하던 성주였기에, 마지막 순간, 세운의 검로를 알아내고서도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검을 이끌어갈 뿐.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파기검법을 사용하더라도 그의 검을 파훼할 수 없었겠지만, 세운은 달랐다.
광란의 권능을 사용한 지금. 힘과 속도, 그 모든 게 성주를 뛰어넘었다.
털썩.
성주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닥에 검을 꽂고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승부는 났다.
그 역시 승부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요즘 플레이어가 다 너 같은 건 아니지?”
“당연하지.”
“하긴, 너 같은 놈들이 넘쳐났다면 탑은 이미 끝났을 거다.”
– 19층의 시련 ‘시험의 얼음 성’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총 누적 공적치 40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19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세운의 생각이 맞는다면, 19층의 시련은 성주를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성주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만약 성주를 쓰러트린다면, 그 플레이어가 잔재의 모습이 되어 성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러니 시련은 당연히 1등으로 끝이 났고, 성주로서 역할을 다한 ‘프랜시스 하멜’의 잔재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와 함께 세운이 얼음 성에 들어오며 빼앗겼던 장비도 전부 돌아왔다.
손끝에서 차가운 얼음 검 대신 익숙한 뒤랑달의 감촉이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오랜만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촉감에 검을 빼 드니 무언가 다른 점이 느껴졌다.
“호오, 봉인이 완전히 풀렸구나.”
마몬이 해답을 들려주었다.
봉인이 풀리다니.
세운이 눈빛을 반짝이며 뒤랑달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 ]분류 : 장검
등급 : SS
설명 : 샤를마뉴의 12기사 중 수장이었던 롤랑이 사용하던 전설의 명검.
능력 : 1. 영웅의 검 – 절삭률이 100% 상승한다.
2. 영웅의 자격 –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공격력이 50% 상승한다.
3. 바위를 쪼갠 검 –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칼날이 무뎌지거나 이가 빠지지 않는다.
4. 부서지지 않는 검 – 그 어떤 공격으로도 내구도가 소모되지 않는다.
5. 천사의 축복 –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한다.(검에게 인정받을수록 수치 증가)
정말이었다.
검의 봉인이 완전히 풀리고, 대부분의 능력이 크게 상승한 것은 물론 막혀 있던 마지막 능력까지 개방되었다.
천사의 축복이라니.
아무래도 뒤랑달이 천사가 샤를마뉴에게 내려준 검이라는 전승을 이어받은 능력인 듯했다.
무려 세 마신에게 가호를 받고 있는 세운이었기에 영 찝찝한 능력이긴 했지만, 그 효과만큼은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치의 10% 상승.
능력치의 총합이 1,000에 가까워지고 있는 세운이었기에 그 효율은 다른 플레이어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검에게 인정을 받을수록 수치도 증가한다니…….
“호오, 이게 본 모습인가. 짐의 수집품에도 반영을 해야겠구나.”
마몬이 미소를 짓더니 작은 손으로 뒤랑달을 검날을 쓰다듬었다.
튜토리얼 당시 세운의 뒤랑달을 복제한 적이 있었으니, 완벽해진 지금의 모습으로 복제품을 수정하려는 모양이다.
따로 언급이 없는 걸 보니 다행히도 이번에는 검을 빌려 갈 필요가 없는 듯했다.
‘그나저나 어째서…….’
시스템의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이와 관련된 시스템 메시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머리를 굴리다 보니, 결국 해답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세운이 시선을 돌려 서서히 흩어지고 있는 성주. 프랜시스 하멜의 잔재를 내려보았다.
“흐흐, 보았냐? 이게 이 몸의 배려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이 산산이 부서진 채 흩어지고 있었다.
시련이 지나며 자연스레 흩어지고 있는 프랜시스의 모습과는 달랐다.
시련과 별개로 힘을 잃은 상태였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검에 깃든 힘을 이용하여 뒤랑달의 봉인을 풀어준 듯했다.
비록 잔재라고는 하지만 검제의 검은 세상 그 어떤 보검보다 뛰어나다고 했으니…… 뒤랑달의 봉인을 풀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거지?”
“어차피 사라질 힘인데 좋은데 쓰는 게 낫지. 그리고 덕분에, 이 답답한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잖아?”
답답한 감옥. 그래, 그에게 이곳은 감옥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성주로 배정받은 후에는 얼음 성이 닫히며 성주의 자리를 물려줄 플레이어도, 지루함을 달래줄 플레이어도 나타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저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독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을 거다. 언젠가, 세운 같은 존재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걱정하지 마. 보아하니 네 잔재가 나 같은 꼴을 견딜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까.”
세운과 성주의 전투 때문인지, 애초에 닫혀 있던 얼음 성을 억지로 공략한 탓인지 결투가 끝난 직후, 천장부터 시작해 얼음 성이 서서히 부서져 가고 있었다.
아마, 이걸로 세운이 ‘시험의 얼음 성’을 공략한 마지막 플레이어가 되리라.
“낯간지러운 소리는 안 할게. 아, 그래도 내 빌어먹을 본체한테는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싶어서 그런데, 내가 본체의 약점을 알려줄까?”
“약점?”
세운이 귀를 쫑긋했다.
검제라 불리는 랭커에게 약점이라는 게 존재했다니.
세운의 첫 번째 목적은 탑의 최상층에 다다르는 것이었으니 그 도중에 검제와 마주칠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당장은 그를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를 상대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그의 약점을 귀담아 두고 싶었다.
성주가 희미해져 가는 손을 까딱거리자 세운이 그를 향해 다가가 귀를 내밀었다.
“나, 프랜시스 하멜은 말이야…….”
성주가 다 사라져 가는 입으로 마지막 단어를 내뱉었다.
“당근 파이를 엄~청나게 싫어해.”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성주.
어이가 없어 황당해하는 세운의 귓가로 장난기 넘치는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