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6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68화(164/675)
제 168화
– 20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절망의 얼음 호수
– 시간제한 : –
– 당신은 목적지인 ‘서리 요새’에 도착하기 전, 길을 가로막고 있는 몬스터의 대군은 발견하였습니다.
– 어떤 방법으로든 얼음 호수를 지나 서리 요새에 도달하십시오.
20층의 시련, 절망의 얼음 호수.
세운의 도움 없이 19층의 시련을 통과하자마자 디아블로 클랜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였다.
시련의 내용은 간단했다.
몬스터를 물리치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호수를 지나가면 된다는 내용이었으니까.
잘만 피한다면 별다른 전투도 없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설원 너머의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마자 가장 선두에 있던 박정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미친…….”
절망의 얼음 호수.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아마 처음 호수를 마주하는 순간 머리에 떠오른 단어를 조합해서 지어낸 그야말로 직설적인 작명이리라.
먼저, 절망.
호수 위에는 수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아니, 수천이라는 숫자도 부족하다.
수가 너무 많아 눈으로 세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 호수가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둘째, 얼음.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는데, 호수가 꽝꽝 얼어 있어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얼음 특유의 미끄러움과 그 위에 쌓인 눈으로 인해 이동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위에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니…….
하나의 테마를 끝마치고 쉼터에 들어가는 마지막 시련인 만큼, 그 난이도가 상상 이상으로 괴랄했다.
“아니, 저길 어떻게 지나가란 거야? 이게 말이나 돼?”
“……할 수 없죠. 방법이나 구상해 보자구요.”
유서아 역시 절망적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시련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이라면 시간제한이 없다는 점.
충분히 고민하고 전략을 짜면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뚫고 지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힘들 것 같아요. 일단, 최대한 외각을 둘러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강한철이 나서려 했지만, 유서아가 막았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일 때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한철이라고 해도 저 호수를 힘으로 무작정 뚫고 들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이번 시련은 개인 시련이 아니다. 클랜을 지키면서 길을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백현 씨, 언데드로 몬스터를 막아낼 수 있겠어요?”
“으음, 어렵겠습니다. 보셨겠지만 제 소환물들은 추위에 약한 편이라…….”
수많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상황은 네크로맨서에게 최적의 환경이지만, 그와 반대로 살을 에는 추위는 네크로맨서에게 극한의 환경이었다.
언데드는 추위가 심해질수록 움직임이 굼떠지게 마련이니까.
그런 언데드를 억지로 일으키고 움직이려 하면, 평소 이상으로 많은 마나가 필요했다.
거리를 생각했을 때 그런 페널티를 안고 호수의 반대편에 도착하는 것은 무리였다.
“언니, 우리도 이건 힘들 것 같은데…….”
“눈이랑 얼음으로 벽을 만드는 건 어떨까?”
“뭐 만리장성이라도 쌓을 거야? 저기까지?”
“헤헤, 그건 무리!”
각자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완벽한 해결법은 없었다.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도착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왕이면 세운에게 기대지 않고 시련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100% 가까운 계획은 있어도 100% 완벽한 계획은 없었다.
그리고 유서아는 그 도박에 클랜원을 걸 생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하의 포식자를 다룰 수만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아니에요. 백현 씨는 이미 충분히 큰 힘이 되어주고 계시는걸요.”
두 번째 쉼터, 스카베에서 백현이 세운과 함께 일으킨 언데드인 사하의 포식자.
그 두꺼운 가죽이라면 이 낮은 기온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현은 아직까지 혼자서 그것을 조종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몸의 일부를 조종하는 게 한계였다.
그러던 중, 박정필이 호들갑을 떨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 저거 사람 아냐?”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가……. 어?”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사람이 있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들도 시련을 진행 중인 것인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고분 고투하고 있었다.
그걸 본 유서아는 깨달았다.
이번 20층 시련은 클랜 단위의 도전이 아니었다. 클랜 단위를 넘어선, 단체 시련.
시간제한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자신의 클랜만으로 도전할 엄두가 안 난다면 다른 클랜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도전하라는 뜻이었다.
“일단 저쪽부터 돕죠!”
유서아를 선두로 디아블로 클랜의 전투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하나의 클랜으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자가 발생하게 마련이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사용할 수 있는 전략도, 계획도 늘어난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를 모아 최소한의 희생자로 이 설원을 건너는 것.
그게 바로 유서아의 계획이었다.
* * *
펄럭!
19층의 시련을 끝내자마자, 세운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꺼내 다음 시련을 향해 빠르게 날아올랐다.
성주와의 대결에서 내공과 신성을 꽤 사용하긴 했지만 마나는 여유로운 편이었기에 이카로스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물론, 시스템이 비행으로 시련을 편하게 진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수많은 비행 몬스터가 출현했지만.
– ‘위글 클라우드’를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1 상승합니다.
– ‘자이언트 이글’을 포식하였습니다.
…….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머리가 띵해 오는 통증에 중독될 것 같다며 열심히 먹이를 집어삼킵니다.
놈들은 세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속도를 이용하여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놈들은 베엘제붑의 간식거리가 되어 사라졌다.
시험의 얼음 성에서 오랜 시간은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쯤 디아블로 클랜 역시 이미 19층의 시련을 통과했을 것이다.
20층의 시련이 얼마나 괴랄한 난이도인지 알고 있는 세운이었으니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무모하게 먼저 달려들기라도 하면 안 될 텐데.’
물론, 유서아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얼마간 비행하다 보니,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설원 테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0층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시련이 시작되는 대기 장소에서 디아블로 클랜을 찾던 세운은, 곧 예상외의 장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디아블로 클랜이 이미 시련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수의 외각을 따라 설원을 등지고 최대한 몬스터를 피해 가는 중이었다.
적에게 둘러싸이지 않기 위해 쌍둥이 자매가 임시 벽을 내세우거나 백현이 언데드를 내세웠다.
노출되는 곳은 강한철을 포함한 전투계 플레이어들이 맡고 있었다.
전략은 좋지만,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도전.
하지만, 세운은 곧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벌써 20층의 목적을 파악할 줄은 몰랐네.’
세운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을 건데, 유서아는 주위의 클랜을 모두 불러들여 협동하고 있었다.
대략 세 개의 클랜을 불러들인 것일까?
백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합동하며 몬스터에 대항하고 있었다.
설원 테마가 시련하는 ‘협동심’이라는 목적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서부터였지. 내 고유 스킬의 힘을 알아채기 시작한 게.’
회귀 전, 세운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여정의 지침표’의 힘을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여정의 지침표로 길을 안내했다.
몬스터가 적은 곳, 얼음이 더 두꺼운 곳, 더 안전한 곳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전투 스킬이 아닌 것에 후회하던 중, 처음으로 여정의 지침표에 만족하던 때였다.
‘저 정도면 조금 거들어도 되겠지.’
그 장면을 잠시 흐뭇하게 바라보던 세운이 이카로스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익룡의 모습을 한 몬스터들이 세운을 막아섰지만, 그 역시 일검으로 가볍게 처리했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해 갈 때쯤, 사람들의 앞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콰앙!!
수천의 몬스터가 밟고 있어도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던 두꺼운 얼음 바닥이 깨지며, 물이 터져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깨져나간 얼음 조각을 막아내느라 정신없는 사이, 얼음을 깨고 올라온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오오오오!”
수장룡이라 불리던 공룡처럼 길쭉한 목을 지닌 괴물이었다.
공룡에 비유한 만큼 덩치도 엄청나서 목의 그림자만으로 사람들 대부분을 가릴 정도였다.
녀석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고는 녀석의 입 안으로 주위의 한기가 빠르게 몰려들었다.
아이스 브레스.
주변의 한기를 응축하여 뿜어내는 공격으로, 세운이 회귀 전 호수를 건널 때 가장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만들었던 공격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운이 창을 꺼내 들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게이 볼그(Gáe Bolg) ]– 얼스터의 빛의 왕자, 쿠 훌린이 사용했다는 무기로써 거대한 바다짐승의 뼈로 만들어낸 작살.
촤아악!
잠시 비행을 멈춘 세운이 팔과 허리를 비틀더니 게이 볼그의 힘이 깃든 아펠리온을 힘차게 내던졌다.
창은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바람을 꿰뚫으며 빠르게 하강하였다.
얼음 호수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몬스터는 머리 위에서의 공격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고.
푸욱!
공격을 알아차렸을 때쯤에는, 이미 창끝이 목구멍을 가로막은 후였다.
엄청난 속도와는 달리 목을 완전히 꿰뚫지 못하고 녀석의 몸에 박혀 버린 창.
하지만, 이것은 힘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다.
아펠리온에 깃든 ‘게이 볼그’의 힘을 완벽하게 발휘하기 위해 창의 힘을 일부러 조종한 것이다.
창이 적당한 자리에 박혀 들어간 것을 확인한 세운이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푸부부부북!!
녀석의 목에 박힌 창끝에서 수십 개의 굵은 가시가 뻗어 나왔다.
그 가시는 녀석의 목을 헤집을 뿐만 아니라 길게 늘어나 머리와 심장까지 뚫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미 즉사에 가까운 위력이었지만, 세운이 아펠리온의 능력 중 하나인 회수를 떠올리는 순간.
푸홧!
수십 개의 가시가 몬스터의 내부를 쥐어뜯으며 빠져나왔다.
호수의 지배자 중 하나로서 군림하던 몬스터가 단 한 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세운 씨!”
유서아가 가장 먼저 세운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날개를 접고 바닥에 착지한 세운이 곧바로 백현을 불렀다.
“준비되셨습니까?”
“아아, 드디어!”
쿠궁!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며 크게 흥분합니다!
쓰러진 호수의 지배자를 짓밟으며, 언데드로 재탄생한 사하의 포식자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