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6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71화(167/675)
제171화
“싫습니다.”
“하하하하!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는군! 그 당당한 모습, 아주 마음에 든다!”
당연하게도, 세운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녀가 무슨 의미로 저런 제안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세운의 목표는 고작 3층의 쉼터에서 정착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대우를 해 준다고 해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일말도 없었다.
세운의 거절에도 그녀는 조금도 안 좋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세운이 더욱 마음에 든다는 듯이 어깨를 둘러싼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지휘관님이 저렇게 좋아하시다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관병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놀라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가 아직 경례를 받아주지 않았는데도 경례하고 있던 손을 스르르 떨어트릴 지경이었다.
‘원래 성격이 좋으시긴 해도, 처음 보는 외부인에게 저런 반응을 보이신 적은 없었는데…….’
세리 버캐니어. 그녀가 누구인가?
서리 요새의 총지휘관으로서 카리스마 하나로 요새의 모든 병사를 사로잡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보다 오래 서리 요새에 근무하던 말년병사도, 윗선에서 지시를 내리기 위해 찾아온 전령도, 그녀 앞에서는 허리도 펴지 못하고 기죽어 버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세운은 그런 그녀를 처음 맞이하는데도 허리를 펼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첫 만남부터 ‘내 아래로 들어와라’라는 제안까지 받으며 말이다.
이후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세리가 세운을 쿡쿡 건드리며 여러 가지 질문을 내뱉었고, 세운은 최소의 대답만을 내뱉었다.
그런데도 그녀에게서 불쾌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좋아! 성격은 아주 마음에 든다! 남은 건 하나. 실력이겠지!”
덜컥.
그녀가 문을 열고 세운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눈치챈 부관병이 다급하게 앞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지휘관님! 위험합니다!”
“그럼 안에서 할까?”
“그건 더 위험합니다! 저번에도 그랬다가 시설을 몇 개나 망가트리셨잖습니까!”
“그러니까 밖으로 나간다잖아.”
“하지만, 바깥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세운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지휘관에게 대들기는커녕 눈도 제대로 못 맞출 것 같은 부관병이었는데, 식은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며 지휘관에게 대드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밖이라니?
그렇게 몇 번 티격태격하던 중.
껄껄 웃으며 부관병의 말을 받아주던 지휘관의 표정이 돌연 돌변하였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흡…….”
호탕하게 웃던 지휘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변의 기운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위압감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세운이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부관병은 숨이 막힌 것처럼 말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위압감만으로 세운은 그녀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하다.’
과연, 서리 요새의 지휘관.
두 번째 쉼터에서 보았던 군단장 같은 이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함이 느껴졌다.
고작 세 번째 쉼터에 이 정도 수준의 강자가 있었다니.
세운의 표정이 한층 무거워지자 그녀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기세를 풀고 호쾌하게 웃으며 부관병의 등을 두드렸다.
“금방 내려올 테니까 걱정 말라고! 하하하!”
“네, 넵!”
부관병이 간신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경례 자세를 취하였다.
위압감이 풀린 상태라고 해도 저렇게 빠르게 마음 잡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이유도 이런 그녀의 기세 때문이겠지.
“하하, 이거 미안하군! 우리 부관병이 걱정이 좀 많다!”
“기세를 견딜 만한 병사를 곁에 두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저 걱정이란 게, 나한테 부족한 요소라서 말이다. 기세를 견딜 만한 놈들은 다 머리가 텅 비어서 곤란하더군! 하하하!”
그녀가 웃을 때마다 어깨를 둘러싼 가죽이 크게 들썩거린다.
뒤에서 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방에서 보았던 백곰이 자연스럽게 엉금엉금 따라오고 있었다.
일단 당장 거슬리는 요소는 없었기에 세운은 얌전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서리 요새의 지휘관인 그녀에게 잘 보여서 곤란할 건 없으니까.
오히려 회귀 전에 몰랐던 세 번째 쉼터의 히든 피스를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긴…….”
계단 하나를 더 오르고, 또다시 거대한 문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지휘관실의 문과는 전혀 다른, 두꺼운 철문.
바퀴 모양의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는데 한기가 풀풀 흘러내리는 게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요새의 정상이다! 하하, 기대하라고. 우리 요새의 절경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녀가 철문의 잠금장치에 손을 올렸다.
한기만 보아도 저 바퀴가 얼마나 차가운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돈데, 겁도 없이 맨손으로 그것을 꽉 붙잡는다.
단순히 차가운 것을 넘어, 저렇게나 얼어 있다면 문을 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끼이이이익-
쾅!
그녀는 너무나도 손쉽게 바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바퀴를 얼리고 있던 얼음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피부가 떨어져 나갈 법한 추위였는데도, 차가운 철문을 민 그녀의 손바닥은 한없이 멀쩡해 보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기로군! 이 정도는 되어야 몸을 굴릴 만하지. 그렇지 않나?”
“…….”
“내 방도 이렇게 시원하게 해 두려고 했는데, 우리 부관병이 하도 뭐라 해서 말이지! 덕분에 운동할 때마다 방이 찜질방이 되더군!”
찜질방이라니.
지휘관실 역시 야외보다는 아니겠지만 들어가자마자 설원 특유의 한기가 느껴졌었다.
게다가, 당시 지휘관은 저 망토도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운동을 하는 중이었지.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걸까?
세운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이 추위만으로도 어깨를 감싸고 몸을 떨고 있었을 거다.
“쿠옹!”
“하하하하! 간만의 야외라 그런지 우리 쿵이도 신났나 보군!”
세운이 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뒤에서 따라오던 백곰이 세운을 밀치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즐거운 모양이다.
쿵이가 뛰어놀며 만들어 준 길을 따라 이동했다.
위에서 한눈에 내려보니 새삼 요새의 규모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끝으로 다가가자 특히 불룩 솟아 있는 눈더미가 보였다.
대포나 대포알, 각종 공성 병기들이었는데 눈을 맞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둔 모양이었다.
단순히 옥상의 개념이 아니라, 이곳 역시 몬스터의 공격을 대비하여 준비된 공격 시설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하하하하!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가관이로군!”
세운의 마지막 공격.
흐로티를 통해 재현한 ‘악룡의 브레스’의 흔적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도 연결되어 있네.’
두 번째 쉼터였던 모래 도시 스카베.
그곳은 보통 10층의 시련과 같은 배경이지만, 실질적으로 시련의 결과와 연결되지는 않는 곳이었다.
상식적으로 무조건 시련이 연결되어 있다고 쳤을 때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못 막아내면 스카베의 성벽이 무너지는 꼴이었으니까.
그런데 세운의 시련은 달랐다.
히든 퀘스트 때문이었는지, 높은 성과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시련의 결과가 쉼터와 이어져 있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세운이 공략한 20층의 시련과 세 번째 쉼터인 서리 요새의 상황이 연결되어 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슬슬 비어가는 식탁을 바라보며 최고의 만찬이었다며 만족해합니다.
‘악룡의 브레스’에 직격당한 호수의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브레스 때문인지 폭식의 권능 때문인지 호수 앞부분의 몬스터는 거짓말처럼 싹 사라진 상태였고, 그토록 단단하던 호수의 얼음도 무참히 박살 나 있었다.
깨져 나간 얼음 아래에서는 몬스터의 시체가 무더기로 둥둥 떠 올라 있었다.
아마, 브레스에 직격당한 몬스터가 아니라 브레스로 인한 충격으로 얼음이 박살 나며 2차 피해로 기절하거나 죽은 몬스터인 듯했다.
그 위로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는 검은 기운.
브레스의 잔재가 아직까지 호수에 남아 있었다.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다른 몬스터들이 성벽 가까이에 다가오지 못한 이유가 바로 저것인 듯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아직 식탁 위에 옮기지 못한 먹잇감을 발견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의 다급함을 나무라며 차갑게 식어가는 먹잇감에 좌절합니다.
‘지금도 사용 가능하려나.’
차갑게 식어가고 말고, 이런 지형에서는 아무리 오래 방치해도 어지간해서 몬스터의 시체가 썩을 일은 없을 거다.
아마 저 스멀거리는 브레스의 잔재만 없어져도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나 저것들을 포식할 테지.
그럴 바에, 베엘제붑에게 먹이고 마나를 조금이라도 더 얻는 게 나았다.
– 폭식의 권능으로 ‘절망의 얼음 호수’ 전체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세운이 범위를 지정하기 위해 손을 들어 호수의 부서진 부분을 가리켰다.
다행히 아직 폭식의 권능을 사용할 조건이 풀리지 않았는지, 폭식의 어금니가 나타나 얼음 사이에 떠오른 몬스터들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20층의 시련과 세 번째 쉼터.
같은 공간이지만, 시스템으로 인해 분리된 공간이었기에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폭식의 권능은 멍쩔히 발현되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특수한 조건을 통과하면 마지막 시련과 쉼터가 연결되는 듯했고, 세운이 연이어 그 조건을 만족시킨 모양이다.
“오오?”
세운과 함께 이를 지켜보던 지휘관이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지금의 상황이 세운이 벌인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법인가?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대단하군! 내가 한눈에 알아본 남자다워!”
폭식의 권능.
딱 보아도 평범한 힘은 아니었기에 의심을 할 법도 한데 그녀는 잠깐 감탄할 뿐, 호탕하게 세운의 등을 두드릴 뿐이었다.
덩치나 행동이나, 저 호탕한 성격만 아니면 딱 강한철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잠깐, 강한철이었다면…….’
순간,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
굳이 밖으로 나온 지금의 상황이나, 그녀의 앞을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부관병. 시설을 몇 개나 망가트렸다는 부관병의 의미 모를 소리.
그 모든 것들과 강한철이 겹쳐 보이는 지휘관의 행동이 연결된다.
“자, 그럼! 얼른 시작해 볼까!”
펄럭!
지휘관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은 망토를 벗어 던졌다.
뒤에서 얼음을 파헤치고 놀던 백곰이 후다닥 달려와 망토를 받아낸다.
당연하게도, 망토를 벗어 던진 그녀는 지휘관실에서 보았던 부실한 옷차림 그대로였다.
이 추위에 저 옷차림으로 서 있다니, 제정신인가 싶었다.
“하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한 세운이 그녀를 마주 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무리 세운이라 해도 다섯 층을 등반하며 피로가 쌓인 상태.
무엇보다 시험의 얼음 성에서 프랜시스 하멜의 잔재를 상대하고,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 호수를 막 건너온 상황이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 조금은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탑은 세운에게 아직 휴식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을 알아보려면 역시 주먹을 맞대는 게 최고다! 제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제군이라니.
입대는 첫 순간부터 거절했는데, 그녀는 어느새 세운을 자신의 병사로 보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입대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세운이었기에,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했다.
“쿠옹!”
검은 가죽을 뒤집어쓴 백곰이 중간에 주저앉아 크게 울부짖는 순간, 그녀가 바닥에 쌓인 눈을 박차고 달려왔다.
만나자마자 무작정 주먹부터 들이대는 성격이라니.
볼수록 강한철을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