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6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72화(168/675)
제172화
쿵!
세운과 지휘관의 주먹이 맞부딪친다.
첫 공격인 만큼 치명타를 노린 공격이라기보다는 적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견제 공격.
그렇다고 해도 세운의 근력 수치는 벌써 200이 넘어가는데…….
“과연 강하군! 빼빼 말라 보여서 마법이나 이능에 특화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더욱 마음에 드는군!”
그녀는 그런 세운의 주먹에도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하얀 눈 위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구릿빛 근육이 꿈틀거리며 세운의 주먹을 받아낸다.
세운이 예상한 것처럼, 그녀는 세 번째 쉼터에 존재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다.
지휘관이니 당연히 강한 게 정상 아니냐고?
아무리 지휘관이라 하여도 세 번째 쉼터의 지휘관일 뿐이다.
이곳의 몬스터들을 막는 데 이 정도의 강자까지 필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단순히 몬스터를 막아내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쿠옹!”
쿵이라 불린 백곰이 힘차게 울부짖음과 함께, 두 번째 격돌이 시작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지휘관의 움직임이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첫 격돌이 단순한 직선적 공격이었다면, 지금은 다리를 넓게 벌리고 손이 바닥에 닿을 것처럼 길게 늘어트린다.
무게중심을 극도로 낮추고서, 외각을 향해 빠르게 내달린다.
늑대가 적을 경계하듯이 외각을 달려오던 그녀는 순간 눈초리를 빛내더니 급격하게 방향을 꺾어 세운에게 뛰어든다.
‘정면…… 아니, 뒤!’
퍽!
“하하하하! 실전 경험도 충분해 보이고, 감각도 놀라울 지경이군! 당장 우리 군의 간부로 올라와도 손색없는 실력이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그녀가 세운의 코앞에서 뛰어오르더니 제비처럼 회전하며 등 뒤를 공격해 왔다.
허리를 급격하게 회전시켜 가드를 올린 덕에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첫 격돌 때보다 더욱 강해진 힘.
제대로 막아냈음에도 팔목에서 묵직한 충격이 느껴진다. 마치, 거대한 곰이 휘두른 앞발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기분이었다.
‘이게 지휘관의 전투 스타일인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적들과는 전혀 달랐다.
강한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큰 덩치와 타고난 힘으로 우직하게 상대를 밀어붙이는 강한철과는 전혀 달랐다.
야수. 갖가지 야수들의 힘이 그녀의 몸 안에 녹아 있는 듯했다.
이어서 그녀는 감추어 두었던 송곳니를 반짝이며 다시금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 내공을 통해 팔괘장의 제일 초식, 하탑장(下탑掌)이 강화됩니다.
이번에는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듯이 세운이 먼저 손바닥을 내질렀다.
준비 동작이 극히 짧은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기에 무조건 적중하리라 생각했다.
일 초식인 만큼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공격만 명중하면 연이어 다음 연계 공격을 밀어 넣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격을 이어가려던 순간.
스륵-
눈앞에서 그녀의 신형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졌다.
안 그래도 무게중심이 낮았는데, 지금은 뱀처럼 바닥에 딱 붙은 채로 세운의 공격을 노려왔다.
다급하게 십로담퇴를 이용하여 다리를 뻗었지만, 이 역시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곧이어 두 송곳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길게 미소 지은 그녀가 상체를 쑤욱 올리며 손을 뻗어왔다.
“내가 착각했군! 제군은 간부 따위로 멈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내 제안을 거절한 것도 납득이 가는군!”
커다란 손바닥이 늑대의 아가리처럼 세운의 목을 노려온다.
니추공을 이용해 보법을 밟아 몸을 반 바퀴 돌려 급하게 목을 빼냈지만, 그녀의 손은 살아 있는 별개의 동물처럼 세운을 추적한다.
지금까지 싸워 온 그 어떤 적과도 다른 전투 스타일.
회귀 전의 경험을 더하자면 그 누구보다도 실전 경험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세운이었는데도 그녀의 공격 경로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밀리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지.’
이대로 시간을 끌어 공격만 눈에 익히면 이기는 거야 문제없지만, 그녀는 지금 세운의 힘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런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태극권의 묘리를 통해 그녀의 공격을 비껴낸 세운이 곧바로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빙백신장(氷白神掌) ]– 북해빙궁을 대표하는 장법(掌法)으로써 음공이 쌓일수록 주변의 음기를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다고 알려진 무공.
북해빙궁의 무공을 익힌 세운의 손이 차갑게 식어갔다.
이변을 알아챈 지휘관이 본능적으로 빠르게 거리를 벌렸지만, 세운의 첫 목표는 그녀가 아니었다.
– 내공을 통해 빙백신장의 제이 초식, 빙장(氷場)이 강화됩니다.
까드드득!
세운이 바닥을 향해 손바닥을 내지르자, 그곳을 중심으로 주변의 눈이 푹 들어가며 딱딱하게 굳어갔다.
무릎까지 쌓인 눈이 얇게 압축되어 투명한 빙판으로 변해갔다.
“마법도 아닌 것 같은데, 신기하군!”
빙백신장은 단순히 얼음을 내두르고 상대에게 공격을 반복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북해빙궁을 대표하는 무공답게 자신의 음공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그 대표적인 초식이 바로 이것, 빙장.
주변의 지형을 빙판으로 바꾸어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기술이지만…….
“하하, 이거 재미있군!”
주변이 빙판으로 바뀌었음에도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스케이트를 타듯이 자유롭게 얼음 위를 미끄러지더니,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얼음을 긁으며 방향을 조절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운은 바닥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공격을 이어간다.
– 내공을 통해 빙백신공의 제삼 초식, 빙극(氷戟)이 강화됩니다.
콰직!
세운이 그녀와의 거리를 무시한 채로 손바닥을 내지른다.
그러자 단전에 깃들어 있던 차가운 음공이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타났다.
마법에 비해 공격 범위가 형편없지만, 반대로 시전 속도는 마법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다.
세운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뻗어 나오는 얼음 가시들.
자탑의 묘리를 적용한 마법이라도 이렇게나 빠르게 발현되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북해빙공의 정수가 담긴 무공인 빙백신장이었기에 가능한 일.
콰직, 콰직!
얼음 가시가 연이어 올라왔지만, 그녀는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잘도 공격을 피해 냈다.
한 대라도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텐데도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패턴에 익숙해지며 세운에게 반격을 날려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세운이 허공이 아닌 바닥을 향해 다시 한번 손바닥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그녀의 발아래가 아닌, 뒤편을 향해 튀어나오는 거대한 얼음 가시.
그와 동시에 빙판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던 지휘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하하, 설마 여기까지 예상한 건가!”
전방을 제외한 그녀의 양옆과 뒤 전부가 얼음 가시로 막혀 있었다.
그녀의 점프력이라면 이것도 못 피할 리가 없었지만, 동물 같은 본능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가시를 넘으려 해 봤자, 세운의 공격을 허용하는 꼴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마지막 한 방인가! 좋군!”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그녀가 어깨를 크게 젖히며 위협하는 곰의 형상을 취했다.
세운 역시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며 차분하게 걸음을 옮겼다.
점차 거세지기 시작한 눈발이 시야를 가리며, 빙판 위에 쌓인 눈이 밟히며 뽀득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쿠오옹!”
백곰, 쿵이의 외침과 함께 둘의 공격이 충돌하였다.
– 내공을 통해 빙백신장의 제오 초식, 빙산(氷山)이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콰아앙!!
세운의 움직임에 따라 눈 위에 휘날리던 눈발이 그녀의 상체를 덮쳤다. 빙판이 날카롭게 솟아오르며 그녀의 하체를 덮쳤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저항하고 구릿빛 다리를 크게 벌려 앞을 내디디며 곰 같은 주먹을 내밀었지만, 그 주먹이 세운과 닿을 때쯤에는.
“하하, 이거 정말 내가 져 버렸군!”
그녀의 몸은 이미 설한에 묻혀 딱딱하게 굳은 후였다.
* * *
“한 판 붙어보길 잘했군! 오랜만에 화끈한 승부였다! 마지막에는 좀 차가웠지만 말이다. 하하하!”
전투가 끝나고, 세운이 마법을 사용하여 얼어붙은 그녀의 몸을 녹여 주었다.
백곰이 검은 망토를 가져와 그녀의 등에 둘러주고 끙끙거리며 하얀 털을 비벼댔다.
주인이 추울까 싶어 저러는 듯했는데,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워 보였다.
“일단 들어가지! 들어가서 제군을 부른 이유를 마저 설명하겠다!”
세운 덕분에 지금은 얼음이 녹았다고 해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몸이 얼어 있었는데, 그녀는 가볍게 몸을 터는 것만으로 얼어 있던 후유증을 벗어던지고 세운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방금의 전투에서 입은 피해는 이미 모두 회복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얼고, 쌓이고, 깨지는 등.
대련의 흔적으로는 보기 힘든 정상의 풍경을 뒤로하고, 서리 요새의 내부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끼익-
‘음?’
눈이 거세짐에 따라 다시 얼어 버려 뻑뻑한 철문.
세운이 당황하지 않고 힘을 주어 문을 밀자.
“어익후!”
쿠당탕!
문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완전히 열리니,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쌓인 한 무리의 병사들이 보였다.
때마침 세운이 뒤이어 지휘관이 철문을 빠져나오며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음? 너희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게…….”
“누님이 싸우시는데 어떻게 안 볼 수 있겠습니까!”
“부관병이 한숨 쉬고 있길래 알아채고 바로 뛰어왔습죠!”
아아, 그런 거였나.
아무래도 지휘관의 전투를 보기 위해 처음부터 문 뒤에서 몰래 숨어 있었던 듯했다.
자칫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에 가장 위에 퍼질러져 있던 병사가 벌떡 일어나 눈을 반짝거렸다.
“그래서 누가 이겼습니까! 마지막에 갑자기 눈발이 심해져서 못 봤습니다! 역시 누님이 이기셨습니까?”
“하하하! 그게 궁금했던 건가!”
병사의 질문에 그녀가 크게 울렸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서리 요새를 가득 채우는 듯했다.
궁금함을 꾹 참고 주변을 돌고 있던 병사들도 계단 쪽으로 슬쩍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평소보다 목청을 키워 외쳤다.
“나, 세리 버캐니어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 메아리치는 그녀의 목소리.
대충 무승부라고 둘러대도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결과를 알렸다.
“제군에게 패배했다!!”
쩌렁쩌렁한 그녀의 목소리가 계단만이 아니라 서리 요새 전체에 퍼져나갔다.
덩달아 병사들이 얼빠진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누, 누님이 졌다고?”
“지휘관님이…….”
당황한 건 세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성격이 좋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패배 소식을 대놓고 퍼트릴 줄은 몰랐으니까.
지휘관의 패배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병사들이 패닉에 걸린 것처럼 멍하게 있던 중.
“다들 뭐 하고 있나! 오늘 저녁은 내 패배 기념 축제다!”
패배 기념 축제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쩌렁거리자마자.
“누님이 패배하셨다!”
“이야, 이거 처음 아니야? 당연히 이번에도 상대가 피떡이 돼 있을 줄 알고 의료병 대기시켜 놨는데!”
“지휘관님이 패배하셨다!”
“얼른 술부터 챙겨!”
병사들까지 껄껄거리며 진짜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녀가 세운의 목에 팔을 걸고 있던 탓에 세운도 덩달아 축제를 향해 움직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축제가 끝난 다음에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