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6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73화(169/675)
제173화
축제라고는 했지만,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저 평소보다 더 푸짐한 저녁 식사에 술이 곁들여진 자리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세운을 제외하고는 전부 서리 요새의 병사들뿐이었다.
플레이어는 물론, 세운이 언급을 했음에도 디아블로 클랜은 초청받지 못했다.
‘하긴, 여기도 플레이어에게 그리 친절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세운이 이 자리에 끼어 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괜찮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진지하게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휘관도 술을 처음부터 과하게 들이켠다 싶더니 맥주 두 통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쓰려졌다.
세운은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유서아 : 세운 씨, 괜찮아요? ] [ 박정필 : 형니이이임! 왜 안 오십니까아아! ] [ 한아름 : 근데 이거 무슨 소리지? 저기 파티라도 하나 본데? ] [ 한다운 : 우리한테는 잡내 나는 이상한 고기만 배식해 줬는데! 그것도 공적치까지 받아먹고! 자기들끼리만 맛있는 거 먹고! 너무해! ]클랜챗을 보니 세운을 걱정하는 메시지가 여럿 올라와 있었다.
소식을 전할 틈도 없이 지휘관의 옆에 붙잡혀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몇몇 병사들이 좀 더 놀다 가라고 세운을 붙잡았지만, 세운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자리를 떠났다.
회귀 전에 이미 거주해 본 곳이었기에 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대충 이쯤이었을 텐데.’
서리 요새의 쉴 곳은 병사들이 사용하는 곳과 마찬가지의 숙소였다.
애초에 서리 요새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대규모 병사가 머물 수 있게 만들어진 곳이어서 긴급 상황이 아닌 지금은 남는 자리가 많았다.
그 남는 자리를 플레이어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물론, 남는 자리는 서리 요새의 숙소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곳이었다.
지휘관이 세운에게 특실을 권해 줬지만, 일단 오늘은 디아블로 클랜과 함께할 생각이다.
“저기 뻔히 자리가 남는데 어째서 구석으로 가라는 거죠?”
“아, 여긴 우리 자리라니까. 짐이 저렇게나 많은데 어쩌라고?”
“짐보다는 사람이 먼저 아닌가요?”
“난 그런 거 모르겠고, 대충 저쪽에 쭈그리고 있어. 신참이면 신참답게. 엉?”
숙소가 가까워지자 ‘코볼트의 짝귀’로 예민한 세운의 귀로 소란이 들려왔다.
축 늘어진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들리는 것은 유서아의 목소리.
식사를 마치고 방금 숙소로 들어온 듯한데, 무언가 마찰이 생긴 듯하다.
그리고…….
‘그놈인가.’
세운은 소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회귀 전보다 며칠은 더 일찍 도착한 덕분에 시간대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서리 요새에는 미리 자리를 잡고 텃세를 부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었으니까.
말년 병장처럼 축 늘어진 이 목소리는 분명…….
‘리암.’
그놈의 것이었다.
뭐가 자랑이라고 자신들은 작년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며 새로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억압하던 플레이어.
혼자였으면 어떻게든 저항을 해 보겠지만, 숙소에는 등반을 포기한 플레이어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두 번째 쉼터인 스카베는 물가도 비싸고 공적치를 벌 방법도 제한되어 있었기에 살기 위해서라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은 다르다.
여가 시설도 부족하고 식사 종류도 제한되지만 최소한의 공적치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난이도가 높고 보상도 적지만 요새에서 내건 의뢰나 임무를 통해 공적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이곳에서 성장할 수 있는 한계선은 명확했지만, 처음 도착하는 플레이어들보다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회귀 전에는 세운을 포함한 새로운 플레이어들 전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만 했다.
침대는 이 인당 하나씩 제공되었고, 그들의 자리까지 청소를 도맡는 등. 그들의 거들먹거림을 견디며, 괜찮다 싶은 의뢰는 그들이 전부 독식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었지.’
의뢰 중 인기 있는 것들은 대부분 목표가 확고한 몬스터 토벌 의뢰였다.
반면에 수색 의뢰나 관찰 의뢰 등 목표가 애매하거나 까다로운 것들은 인기가 없어 항상 자리에 남아 있었다.
회귀 전의 세운은 여정의 지침표를 활용하여 그것들을 해결해 나갔고, 제법 많은 공적치와 작은 히든 피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서리 요새에서 새로운 무기와 각종 도구를 구매해 다음 층에 돌입한 덕분에 21층부터는 제법 노련하게 시련을 공략할 수 있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 정말. 이것들이 굳이 힘쓰게 만드네. 아직 힘의 차이도 못 느끼지?”
세운이 회귀 전을 회상하는 동안에도 소란은 계속되었다.
유서아.
항상 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만 보아왔는데,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부조리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강한철도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이 뒤에 가만히 서서 리암을 내려본다.
이에 질세라 리암의 뒤로도 그의 편인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당장에라도 주먹이 오갈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그만하지.”
드디어 세운이 숙소에 첫발을 내디뎠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기세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세운의 낮은 목소리는 숙소 안 모든 플레이어의 뇌리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세운 씨!”
“하, 씨.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미쳐가지고서는.”
세운을 발견한 리암이 건들거리며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회귀 전에는 당하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껄렁껄렁하게 등을 굽히고 있었지만, 허리를 편다고 해도 세운보다 작을 것 같았다.
얼굴에 나 있는 자잘한 흉터는 공포를 유발하는 전투의 흔적이 아니라, 약함의 증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 이놈 보니까 오늘 시끄럽던 그놈이네. 병사들 축제하는데 너도 끼어 있었다며? 우리도 한 번도 못 끼어봤는데, 건방지게.”
태도를 보아하니 세운이 서리 요새에 들어오기 직전에 벌인 활약상도 듣지 못한 듯하다.
하긴, 녀석이 아무리 굽신거려도 서리 요새의 병사들은 플레이어들과 거리를 두는 만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디아블로 클랜과의 대치도 방금 막 시작된 것 같고 말이다.
“야, 어떻게 했냐? 들어보니까 지휘관실에 불려갔다던데. 가서 아양이라도 떨었냐? 키킥. 어떻게 빌었길래 저것들이 파티에도 불러주냐?”
리암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에 유서아의 표정이 찌그러진다.
강한철이 움직이려 했지만, 세운이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말렸다.
그 모습을 보고 세운이 자신에게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리암은 자신감이 붙어 신나게 말을 쏘아댔다.
“이야, 이거 나도 한 수 배워야겠는데. 나한테도 한 번 빌어 봐. 누가 알아? 잘하면 내 옆자리에 눕혀줄지. 키킥.”
리암이 그렇게 말하며 두 손가락으로 세운의 이마를 짚으려 한다.
뒤에서 지켜보던 유서아도 못 참겠는지 다리를 움직이는 순간, 가만히 리암을 내려보고 있던 세운이 드디어 손을 움직였다.
꽈드득!
“크아아악!”
리암의 두 손가락이 세운에게 붙잡혀 오싹한 소리를 내며 뒤로 꺾이더니 손등과 맞닿았다.
아무리 플레이어의 신체가 강인하다지만, 관절이 어긋나고 뼈가 부러지는 통증은 똑같았다.
뒤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이 당황하며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세운이 공격을 이어갔다.
“컥, 크헉! 자, 잠깐!”
그가 아무리 세 번째 쉼터의 플레이어 치고 강하다고 해도 세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이어 이어지는 공격에 그는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린다.
그라드 제국식 고문법.
그것을 익힌 덕분에, 세운은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부위와 목숨에 해가 되지 않는 부위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서리 요새 내부인만큼, 살상은 피할 생각이었다.
지휘관 덕분에 기껏 좋아진 이미지가 이것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되니까.
“크아악! 뭐, 뭐 해! 얼른 이것들을……!”
명치에 주먹을 쑤셔 박아 숨도 쉬기 괴롭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래도 악바리는 남은 모양인지 리암이 숨을 짜내어 동료들을 불러냈다.
리암을 따르던 플레이어들이 정신을 차리며 앞으로 나서고, 디아블로 클랜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앞을 막아서는 순간…….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세운의 성흔이 빛을 발했다.
매개체는 이미 만들어 뒀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숙소가 다 울리도록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정신을 잃지 못하고 있는 리암.
그의 비명을 타고 공포의 권능이 퍼져나갔다.
‘이걸로는 조금 부족하려나.’
어중간하게 겁을 주고 내버려 뒀다가는 후환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첫 만남부터 공포를 깊숙이까지 새겨줄 필요가 있었다.
감히 반란이나 복수 따위는 꿈꾸지 못하도록.
“커헉!”
잠시 가만히 있던 세운을 올려보며 공격이 끝난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는 리암의 미간에 발끝을 꽂았다.
리암의 목뼈가 위험할 정도로 고개가 휙 젖혀졌고, 세운은 잡고 있던 손가락을 당겨 팔꿈치를 역으로 짓밟았다.
빠각!
관절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비명이 더욱 커졌다.
성흔을 더욱 자극하여 공포의 권능을 더 크게 확산시켰다.
성흔의 빛이 강해지고, 공포가 커져 나가며 세운의 등 뒤로 검붉은 늑대의 형상이 생겨났다.
혈랑검법을 사용할 때 보이는 늑대의 형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하여 무릎을 꿇게 만드는 공포의 형상.
마침내 공포로 인해 이성의 끈이 끊어졌는지 리암이 의식을 잃고 그의 바지 쪽에서 쉰내가 올라왔다.
시선을 올리니 그를 따르던 플레이어들 역시 무릎을 꿇은 채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세운은 그제야 부러져 달랑거리는 리암의 팔을 놓고 입을 열었다.
“이놈 데리고 꺼져.”
서리 요새의 숙소에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 * *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세운의 눈도 못 쳐다보고 자리를 떠났다.
유서아가 빈자리만 비워주면 된다고 말해 봤지만, 다들 그럴 수 없다며 모든 짐을 챙겨 숙소의 저 끝으로 향하였다.
덕분에 디아블로 클랜은 숙소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야후! 이야, 군인 숙소라길래 마룻바닥에서 매트 깔고 잘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이 짐을 뺀 자리인데, 박정필은 아무 망설임 없이 침대에 몸을 집어 던진다.
그의 말대로 제법 푹신한 게 스카베의 고급 여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괜찮은 침대였다.
세운이 말한 대로 구석으로 ‘꺼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뒤로하고, 유서아가 세운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세운 씨, 이래도 괜찮을까요……?”
“내버려 둬. 자기들 업보니까.”
실질적으로 텃세를 부려온 건 리암이라지만, 따르는 자들 역시 그의 행동을 방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인 물은 결국 썩게 마련이다.
서리 요새에 자리 잡고 새로이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억압하는 플레이어 따위, 탑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세운이 생각하는 최종목표에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혹시 이번 쉼터에는 얼마나 머물 생각인가요?”
유서아가 짐을 마저 풀고 세운에게 물었다.
디아블로 클랜을 이끄는 만큼 머무는 시간을 알고 행동을 계획하는 건 그녀에게도 꼭 필요한 정보였다.
“스카베 때보다는 더 오래 있을 예정이야.”
“정말요? 이곳에는 딱히 뭔가 얻을 만한 게 없어 보이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유서아에게 공적치나 숨겨진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서리 요새의 의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시련과 별개로 경험치와 자원, 공적치를 쌓을 좋은 기회였다.
설명을 다 들은 유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아닌 척해도 다섯 개의 시련을 연달아 통과하느라 피곤이 쌓였는지 불을 끄자마자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덜컹!
“제구우우운!”
지휘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세운을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