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7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77화(173/675)
제177화
“버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이거 상성이 영 말이 아니군! 손을 못 대니까 자리에 묶어 두는 게 고작이었다!”
세운이 달려오자 지휘관이 길을 비켜주었다.
근접계. 그중에서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그녀로서는 아우터를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세운이 첫 번째 골렘과 일대일의 승부를 벌일 시간을 벌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콰직!
이번에는 견제나 신경전 따위 필요 없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어차피 첫 골렘을 상대하며 공략법을 깨달은 것은 물론, 성흔이 아우터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아직 손등이 얼얼한 게 성흔의 부하가 덜 가라앉은 모양이지만, 원래 뭐든 쓰면 쓸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붉은 늑대. 아니, 성흔으로 인해 평소보다 더 검게 물든 늑대의 형상이 골렘의 가슴팍에 앞발을 내밀었다.
골렘이 세운을 떼어내려 발버둥 치고, 검은 액체가 숙주를 지키기 위해 꿈틀거렸지만, 그보다 세운의 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게 먼저였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버스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펑, 펑, 퍼벙!!
그 이후로의 전투는 첫 번째 골렘과 똑같았다.
파이어 버스트로 만들어 낸 연쇄 폭발로 아이스 골렘의 외각을 제거하고, 파이어 캐논을 이용해 핵을 보호하려는 검은 액체를 태워 버린다.
곧이어 뒤랑달을 높게 들어 핵을 향해 내질렀다.
골렘의 움직임이 멈추고, 검은 액체가 꾸물럭거리며 빠져나온다.
이미 두 기의 골렘이 모두 정지된 상태.
이곳에 남은 숙주라면 세운과 지휘관뿐이었지만, 녀석은 본능적으로 세운에게 다가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듯, 곧장 방향을 선회하여 녀석이 향해 흘러간다.
꾸물!
세운에게 당한 동료를 보고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녀석은 처음 잡혔던 놈과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세운마저 따라잡기 힘든 속도.
다리에 온 내공을 실어 도약했지만, 한 끗 차이로 거리가 모자랐다.
그 순간.
“하하, 어림도 없다!”
콰앙!
허공에서 날아온 아이스 골렘의 주먹에 아우터의 경로가 틀어막혔다.
골렘이 재가동한 게 아니었다. 지휘관이 작동을 정지한 골렘의 주먹을 떼와 오로지 근력만으로 휘둘러 버린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경로가 막히자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흠칫거리던 검은 액체.
그 위로, 세운의 검이 쇄도했다.
푸욱!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이 깨어납니다.
치이이익!
검은 액체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성흔이 새겨진 손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성흔이 부서질 정도는 아니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성장을 위한 통증이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고통으로 인해 뒤랑달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가고, 부들부들 떨려대는 손을 반대쪽 손으로 꽉 붙잡고 그 위에 이마를 박을 때쯤에야.
치이이-
아우터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회귀 전, 플레이어는 물론 성좌도 하지 못한 행위. 숙주를 잠식하고 있는 상태의 아우터가 아닌, 숙주에게서 떨어져 나온 아우터 그 자체를 처단한 것이다.
“대단하군! 이놈들이 전설에 나온 운석에서 떨어진 것들인가!”
“아마, 극히 일부일 겁니다.”
“하하, 본체는 어느 지경일지 궁금하군. 만약 깨어 있다면…… 제국이, 아니, 대륙이 위험할 수도 있겠어.”
지휘관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뇌까렸다.
특유의 육감으로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방금 상대한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말이다.
그사이, 세운은 가만히 손을 들어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성흔을 바라보았다.
‘세 번째 힘…….’
봉인이 일부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힘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첫 번째, 공포.
두 번째, 광란.
그리고 세 번째, 아우터를 소멸시키는 정체불명의 힘까지.
처음에는 그저 상대한 적의 신성에 따라 힘이 정해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쩐지 세운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세운의 의지에 따라 권능의 방향이 결정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세운이 손을 내리고 다시금 정신을 붙잡았다.
아직 탐사가 끝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운석 그 자체를 탐사하는 일이 남았다.
– ‘아이스 골렘’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근력이 3, 체력이 3 상승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물질이 사라진 깨끗한 먹이를 한입에 넣고 까득까득 씹어댑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짜릿한 두통을 즐기며 먹이를 꿀꺽 삼킵니다.
아우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증명하듯, 베엘제붑이 신나게 아이스 골렘을 집어삼킨다.
이전에 아우터가 깃든 동상은 구역질을 하며 끝내 삼키지 못했는데.
이로써 세운의 성흔이 아우터를 얼마나 완벽하게 소멸시켰는지가 증명되었다.
“가죠.”
“하하하! 제군은 지치지도 않는가 보군!”
세운이 라이트 마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안 그래도 아이스 골렘이 나타날 정도로 거대했던 통로가 더욱 커지더니, 이내 공동처럼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새까만 어둠만이 가득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얼음으로 된 천장에서 옅은 빛이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이곳이 호수의 중앙.’
확실하지는 않지만, 요새에서 걸어온 거리를 생각하면 대충 맞을 것이다.
천장이 밝긴 해도 이곳 역시 지금까지의 얼음처럼 어둠을 유지하며 속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있군.”
하지만, 세운과 지휘관은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신경이 짜릿할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쪽인가.’
그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있는 지휘관과 달리, 세운의 성흔이 아우터의 존재에 직접 반응하고 있었다.
세운은 성흔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마찬가지로 새까만 얼음벽 앞.
코앞까지 왔음에도 얼음의 내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에 세운이 라이트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얼음 가까이 들이댔다.
그러고는 충격적인 장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건…….”
“크흠…….”
새까만 얼음 속에서 괴수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췄다.
크게 벌린 입 안으로 보이는 톱니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스산하게 번들거린다.
상어보다는 날카롭고 악어보다는 매끈한 몸체.
굳이 비유하자면 고대에 지구의 바다를 지배했다는 모사사우루스 같은 공룡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마저도 신체 대부분이 검은 액체로 뒤덮인 상태였고, 세운의 빛이 밝힐 수 있는 부위가 극히 적었기에 정확한 형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역시, 아우터였어.’
숙주는 달랐지만,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모습이 꼭 회귀 직전에 보았던 멧돼지 모습의 괴수를 보는 듯했다.
검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는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지만, 그 위압감과 특유의 불쾌감은 감춰지지 않았다.
“이건…… 최악이로군.”
지휘관이 떨리는 팔을 숨기며 표정을 굳혔다.
겁이 나서라기보다는 동물적인 감각이 남들보다 발달한 그녀였기에 본능적으로 눈앞의 존재에 대한 위험성을 깨달은 것이다.
아이스 골렘을 잠식하던 소량의 검은 액체.
그것만으로도 아이스 골렘은 본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그마저도 얼음 속에서 오랜 시간 갇혀 있던 탓에 힘이 제한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존재는 어떤가?
아우터와 별개로도 강함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해 보이는 몬스터인데, 그런 몬스터의 몸 가득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 몬스터가 깨어난다면, 그녀가 말한 것처럼 제국이 문제가 아니라 대륙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지친 몸을 달래줄 세 번째 쉼터가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아니, 그것을 넘어 탑의 하층 전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아마, 스카베의 모래폭풍에 봉인되어 있다는 괴물도 이놈과 비슷한 놈이겠다.’
설마 쉼터마다 이런 아우터가 한 마리씩 봉인되어 있는 것인가?
하지만, 어째서?
정보가 너무 적은 탓에 이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지금으로서 이놈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폭식의 권능을 통해 강해진 세운이라도, 탐욕의 권능으로 발현한 무기로도, 시기의 권능으로 차이를 좁히더라도 눈앞의 아우터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성흔의 세 번째 힘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 그 힘은 극히 미약했으니까.
녀석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긴 세운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공동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바닥이 떨려온다. 아니, 공동 전체가 떨려온다.
세운의 성흔이 검붉은 빛을 발하며 진동의 근원지를 알려준다.
번뜩!
“크흡!”
고개를 돌리니 세로로 쭉 갈라진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이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단단한 얼음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시작으로 아우터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있던 검은 액체가 꿈틀거린다.
‘젠장…….’
어째서지?
녀석의 봉인이 자연적으로 해제되었을 리는 없었다.
만약 그런 거였다면, 세운이 회귀하기 전에도 녀석이 알아서 깨어나는 게 맞을 테니까.
아무리 높은 층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아우터가 깨어나 난동을 부렸다는 소식을 세운이 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설마 나 때문인가?’
세운이 손을 들어 검붉게 일렁거리는 성흔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아우터를 죽이는 힘인 줄 알았지만, 아직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정체를 모르는 만큼, 이 성흔이 아우터를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쩌적!
검은 얼음의 외부로 한 줄기의 금이 새겨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바닥과 벽면 곳곳에 실 같은 빗금이 새겨지며 공동 전체의 떨림이 점점 더 심해졌다.
이대로 녀석이 깨어난다면, 세 번째 쉼터는 꼼짝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세운이야 바로 다음 층에 도전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 경험상 아우터는 탑의 층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 탑을 자유자재로 활보한다면, 3차 신마대전이 오기도 전에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세운으로서는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더욱 검게 변하게는 성흔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 때쯤, 성흔 안에 잠들어 있던 존재가 검은 깃털을 나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네놈은 문제가 끊이질 않는구나.”
탐욕의 마신, 마몬. 그녀가 나타났다.
촤르르륵!
그녀가 손을 뻗자, 얼음 속에서 검은 사슬 수백 갈래가 나타나 아우터의 몸을 휘감았다.
붉은 눈동자가 화난 듯이 찌그러졌지만, 사슬은 더욱 팽팽하게 아우터의 몸을 조였다.
그러자 공동을 울리던 지진의 강도도 한층 줄어들었다.
“여유롭게 하층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벌써 막을 내리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지.”
쭉 뻗은 그녀의 손이 잿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지금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세운의 성흔에 남겨진 극히 일부의 신성일 뿐.
저번에도 말한 것처럼, 힘을 발휘하기 위해 남긴 신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성흔에 남긴 모든 힘을 이용하여 아우터의 움직임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뭣 하느냐? 얼른 보수하지 않고.”
수백 갈래의 사슬 역시 그녀의 몸이 사라져 감에 따라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우터는 분노를 표출하며 입을 크게 벌리려 하였다.
그에 진정되기 시작하던 진동이 다시 심해지며, 아우터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보수’라.
어떤 걸 말하는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느니라. 대가는 받아 갈 터이니.”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황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가 더욱 견고해집니다.
드드득-
아우터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만들어 낸 수많은 빗금.
그사이에 한기가 깃들며 빗금이 매워지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어!”
남은 빗금을 통해 환영처럼 울려 퍼지는 아우터의 포효를 마지막으로.
드드드드득-!!
검은 얼음 위에 한층 더 두꺼운 얼음 막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