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7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78화(174/675)
제178화
진동이 멈췄다.
빗금을 메우고 새롭게 벽을 가로막은 얼음 막 안으로 아우터의 붉은 눈이 번들거린다.
눈을 뜬 채로 다시 얼어붙은 모양이다.
‘후우…….’
아슬아슬했다.
아이스 골렘을 사용할 때 마나를 꽤 사용한 터라, 마나가 조금만 더 부족했으면 금을 다 덮지 못할 뻔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지휘관이 바짝 굳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당당하고 호탕하던 그녀라고 해도, 사람이 어떻게 할 수준을 벗어난 방금의 상황에 긴장하고 있었던 듯하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마몬의 이명, ‘고개를 숙인 까마귀’. 성흔에서도 더 이상 마몬의 신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부어 세운을 도와준 모양이다.
“이걸로 괜찮은 건가?”
“일부러 제가 만들어 둔 얼음 막을 부수거나 놈을 자극하지만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놈이 깨어나면 대처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녀석이 이대로 가만히 봉인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나중에…… 언젠가, 녀석을 상대할 힘을 얻게 되어 세운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얼음이 버텨 주길 바랄 뿐이다.
“나가죠. 방금 말한 것처럼,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녀석을 자극할 수도 있으니.”
“……그게 좋겠군.”
지휘관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떨림이 멈추지 않는 듯했다.
하긴, 아우터가 눈을 떴을 때 느껴진 위압감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있었다.
그녀는 분명 강력하지만, 강한 만큼 아우터와의 ‘힘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통로를 걷던 중, 고민에 빠져 있던 그녀가 먼저 세운에게 말을 걸어왔다.
“제군. 이곳을 나가면, 입구를 다시 막아줄 수 있겠나?”
“상부에 보고할 생각 아니셨습니까?”
“하하, 그 머저리 같은 학자 놈들에게 보고하면 분명 직접 확인하겠다며 찾아와서 무슨 짓거리를 할지 모른다.”
“그럼, 숨길 생각입니까?”
“그럴 생각이다. 적어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좋은 생각입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병사들이 처음 그 자리 그대로 둘을 맞이해 주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꼼짝없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서리 요새의 지휘관, 세리 버캐니어를 따르는 병사들의 충성도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들 집합!”
“집합!”
“이 순간부터, 오늘 보았던 사실은 모두 비밀로 한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이 안에 있는 것은, 우리 제국이. 아니, 대륙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명이라도 다른 생각을 품는다면 비밀이 지켜지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이들이라면 결코 오늘의 일을 외부로 흘려보내지 않을 것 같았다.
병사들이 수거해 두었던 얼음 조각을 모아오고, 그동안 마나를 회복한 세운이 아우터를 재봉인했던 마법을 다시 한번 영창하였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황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필드’가 더욱 견고해집니다.
쩌저저적!
병사들이 어설프게 쌓아 올린 얼음 탑에 한기가 몰아치더니 빈틈 사이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아우터의 힘이 깃든 ‘검은 얼음’의 상태보다는 강도가 떨어지겠지만, 이걸로도 어지간한 빙쇄기나 마법에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제국의 감사를 피하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겠지.
지하의 온도가 워낙 낮은 덕분에 자연적으로 녹을 걱정도 필요 없었다.
상황이 빠르게 수습되고, 세운이 그녀와 함께 지휘관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아직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평소의 호탕한 모습을 되찾았다.
“하하! 이거, 제군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그녀가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보상에 관한 얘기였다.
가장 먼저 서리 요새의 모든 편의 시설 무료 이용.
그녀는 이미 세운이 디아블로 클랜의 클랜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클랜원 모두의 시설 이용을 무료로 해 주겠다 제안하였다.
서리 요새는 편의 시설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매일 나가는 음식값이나 숙소 등의 공적치를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사항들이 있었지만 크게 귀에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병사들의 호감도.
그녀가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로써 냉랭하던 서리 요새의 병사들도 디아블로 클랜에게만큼은 친절하게 대할 것이다.
“일단 기본적인 건 여기까지다. 혹시, 더 원하는 거라도 있나?”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사항이다.
그리고 세운은, 미리 생각해 둔 보상이 있었다.
어쭙잖은 물질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서리 요새만의 보상.
“S급 의뢰를 해금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리 요새의 S급 의뢰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 * *
세운은 지휘관과의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15층이 끝나고 클랜의 거주지에서 휴식을 취했다지만, 10개의 층을 연이어 올라온 지 이제 단 하루.
그런데도 디아블로 클랜은 전혀 늘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스카베 때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정보를 수집하며 서리 요새의 정보를 알아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운 씨! 일찍 오셨네요?”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거든.”
“중간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는데, 혹시 세운 씨와 연관이…….”
“맞아. 잘 처리됐으니까 걱정은 말고. 그보다, 저건?”
“아, 서리 요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어요. 기존에 자리 잡고 계셨던 플레이어신데 정필 씨가 뭐라고 하니까 자선해서 알려주시더라구요.”
세운이 공포의 권능으로 물러나게 한 기존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열심히 강의를 펼치고 있었다.
모두 서리 요새의 핵심 정보였기에 클랜원 대부분이 눈을 빛내며 강의를 듣고 있었다.
“서리 요새의 핵심 시스템인 의뢰는 F급부터 시작해서 S급까지 존재합니다.”
“오호.”
“처음에는 D급 의뢰까지 수락할 수 있지만, 신뢰도가 쌓이면서 등급이 높아지며 저희는 A급 의뢰를 수행하는 중이었습니다.”
“1년 동안 거주했다고 들었는데, S급 의뢰는?”
“저희도 S급 의뢰를 받아내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는데, 저희 수준으로는 절대 무리라며 주지를 않습니다. 실제로도 A급 의뢰만 하더라도 몬스터가 너무 강력해서…….”
세운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애초에 리암이 워낙 쓰레기였기에 기억하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모조리 기억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으니까.
‘제법 정확한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정보는 세운이 회귀 전에 알아낸 것들과 비슷…… 아니, 솔직히 그 이상이었다.
회귀 전의 세운이 아무리 활약했다 하더라도 1년간 서리 요새에 머물렀던 그녀보다는 미흡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등급에 이어 의뢰의 종류, 보상 등의 설명이 이어지자 클랜원의 눈빛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서리 요새.
지금까지 거쳤던 두 쉼터에 비해 불편한 점이 가득했던 공간인데, 그녀의 설명을 들을수록 얻을 게 많은 곳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제가 설명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병사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의뢰만 꾸준히 수행하면 충분히 살 만한 곳입니다.”
“오오!”
“수고하셨습니다!”
“의뢰라. 재밌겠군.”
“다행입니다! 시련을 너무 급하게 통과하다 보니 시체 수급이 덜 되었는데!”
그녀의 설명이 끝났다.
클랜원들이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던 중, 설명을 마친 여자가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이내 세운과 눈을 마주쳤다.
“흡!”
과하게 놀라는 얼굴.
절로 뒷걸음질을 치는 걸 보니 세운이 어지간히도 무서운가 보다.
다만, 그녀가 놀란 이유는 그것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이분이 약속해 주셨어요! 협력만 잘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신다고……!”
그녀가 박정필을 가리켰다.
목숨만은 살려준다니, 세운을 폭군 같은 이미지로 보고 있나 보다.
세운이 박정필을 쏘아보았지만, 박정필은 실실 웃다가 곧바로 줄행랑을 쳤다.
‘뭐, 덕분에 귀찮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다리를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자에게 수고했다며 손짓을 하자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고개를 숙인 채 후다닥 도망쳤다.
세운이 어지간히 무서웠던 모양이다.
하긴, 처음 본보기로 때려눕혔던 리암은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니까.
아직도 숙소의 반대편 끝에서 세운을 보며 떨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다 자업자득이지.’
디아블로 클랜이 떠날 때까지 저 구석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수가 조금 줄어든 것을 보니 이미 몇몇은 다음 시련에 도전했나 보다.
세운은 바톤터치를 하듯 여자가 서 있었던 자리에 대신 자리 잡았다.
한창 설명에 집중하던 클랜원이 그제야 세운을 발견하였다.
“오, 클랜장!”
“왔나.”
“형님도 의뢰하실 겁니까? 저도 데려가 주십셔!”
쿵.
세운이 발을 구르자 주위로 압도적인 기세가 퍼져나갔다.
소란스럽던 클랜원들의 입이 모두 다물어지고,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기존의 플레이어들도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소란을 진정시킨 세운이 곧바로 본론을 얘기하였다.
“의뢰에 대해서는 다들 들었을 겁니다.”
클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막 설명을 들은 참이니, 잊어버렸을 리가 없었다.
“방금 서리 요새의 지휘관과 대화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일단 숙소나 식사같이 일상적인 편의 시설 이용에 공적치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아싸!”
“안 그래도 짬밥 먹는데 공적치까지 지불하려니 아까워 죽겠었는데!”
반응이 꽤나 좋았다.
그도 그럴 게, 사람들은 공적치를 내고 요새의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게 싫다며 식사 시간마다 거주지로 돌아가 직접 요리를 해 먹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요새에서는 식자재 조달이 쉽지 않아 제한이 있었지만, 그 정도로 불편했었다.
그걸 세운이 해결해 줬으니, 환호하는 게 당연했다.
이로써 요새에 얼마나 머물든지 공적치가 나갈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들었던 의뢰를 처음부터 A급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오!”
일단 환호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 막 요새에 도착한 디아블로 클랜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이에 대신 반응한 건 방금 설명을 마치고 돌아가던 여자였다.
“저, 정말인가요?”
“네.”
“이럴 수가…… 저희는 반년을 노력해서 B급 의뢰를 받았는데! A급 의뢰도 최근에 일부만 허락 받았다구요…….”
B급에 반년, A급에 일 년.
서리 요새에서 인정을 받고 상위 의뢰로 넘어가기까지는 그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자신들이 일 년을 투자한 결과를 세운이 단 하루 만에 얻어냈으니 여자가 허무한 반응을 보인 건 당연했다.
억울함을 표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세운이 쌍둥이 자매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요새의 보수 의뢰를 맡으면 될 거야. 방어 요새인 만큼 수리나 보강이 필요한 곳이 넘쳐나니까.”
“네, 오빠!”
“여기 철 좀 특이하던데, 좀 챙겨 놔야겠다!”
“어르신은 병사들 장비만 봐주셔도 충분히 보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허허, 알겠네. 안에서 일하면 나야 편하지.”
“강한철, 너는 박정필 데리고 토벌 의뢰 맡아. 몰이시켜서 한 번에 쓸어 버리는 식으로.”
“알겠다.”
“형니이이임!”
이후로도 세운의 조언은 계속되었다.
디아블로 클랜원 개개인에게 가장 걸맞은 의뢰를 수준에 맞게 추천해 준다.
클랜원 모두의 수준과 실력을 잘 알고, 의뢰의 종류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조언.
처음에는 마냥 좋아하던 이들도, 어느새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세운을 바라보았다.
서리 요새에 도착한 지 단 하루.
그 하루 만에 지휘관을 만나 여러 편의점을 해결하고 오더니, 의뢰에 대한 내용을 모조리 이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회귀 전 서리 요새에 머물렀던 기억을 통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클랜원에게 하나하나 조언을 끝내고, 남은 사람은 단 하나.
“마지막으로 유서아.”
“네!”
숙소에서 가장 먼저 세운을 반겨주었던 유서아였다.
그녀는 세운이 무슨 의뢰를 지정해 줄지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세운은 그녀의 의뢰 역시 진작부터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너는 나와 함께 S급 의뢰를 수행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