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7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81화(177/675)
제 181화
이후로도 몬스터의 습격은 계속되었다.
힘을 제어한다는 설명을 마친 세운은 그 이후로도 광란의 권능을 제어하는 데 신경 썼고, 유서아는 그런 세운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전투가 반복됐음에도 질리지도 않고 새롭게 나타난 서리 곰 몇 마리.
놈들이 거대한 앞발을 휘두르는 순간.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서걱!
세운의 성흔이 검붉게 빛나며 서리 곰의 몸통을 대각선으로 베어냈다.
단 한 방.
과연, 광란의 권능이 펼쳐진 공격은 서리 곰을 일격에 두 동강 낼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이다.
스스스-
곧바로 다음 적을 노리며 빛을 토해내던 성흔이 점차 어두워졌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며 투정을 부려왔지만, 세운이 단호하게 신성을 끊었다.
그러자 할 수 없다는 듯이 꺼져가는 광란의 힘.
‘성공했다.’
광란의 힘을 제어하는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
“축하해요. 세운 씨!”
“고마워.”
솔직히 이렇게나 빨리 광란을 제어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유서아의 지원이 컸다.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세운은 한 마리의 몬스터를 죽인 게 끝이었으니까.
세운이 힘을 다루려 노력하는 동안, 유서아가 다른 몬스터를 처치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랐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간신히 진정되었던 성흔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세운의 성흔이 검붉은 궤적을 그리며 길게 뻗어나갔고, 선에 맞닿은 서리 곰 다섯 마리가 동시에 쓰러졌다.
광란의 힘에 익숙해져 기분 좋아 무턱대고 날린 공격이 아니었다.
일종의 먹이 훈련이랄까?
말을 잘 들은 성흔에게 상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몬스터가 모두 쓰러지자 성흔이 배부르다는 듯이 일렁이며 알아서 빛을 잃어갔다.
‘작게 보면 단순히 광란의 힘을 다루는 훈련이지만…….’
크게 보면, 성흔 그 자체를 다루는 데 익숙해지려는 것이었다.
첫 번째 힘인 공포, 두 번째 힘인 광란.
그 두 가지 힘도 어지간한 성좌의 권능만큼이나 강력한 것이었지만, 세운에게 가장 필요한 힘은 세 번째 힘.
아직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아우터를 집어삼키는 힘이었으니까.
세 번째 힘의 봉인이 완전히 풀린다고 해도 제어력을 잃으면 의미가 없게 되니, 다른 두 가지의 힘을 통해서 성흔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 이후로는 전투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성흔이 점점 말을 잘 듣기 시작해 세운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벌써 4개의 설산을 올랐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 2개의 설산이 남아 있었고, 그 앞에 구름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 않는 아득히 높은 설산이 폭설에 가려 있었다.
‘그나저나…….’
세운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첫 번째 설산을 넘었을 때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플레이어의 기척.
은신 능력이 제법 뛰어난지 유서아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후각과 청각, 시각이 극도로 민감한 세운을 속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극도로 미약한 기척.
기척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최근의 행보를 통해 그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리암.
서리 요새의 숙소에서 세운에게 손가락과 팔이 부러지며 오줌을 지렸던 그놈이었다.
‘제법 잘 따라오네.’
몬스터야 세운과 유서아가 정리하고 있다지만, 이 정도 폭설이라면 알아서 뒤처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서리 요새에서 일 년간 살아남은 플레이어라는 것일까?
그들은 끈질기게 세운을 따라잡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했다.
마지막 순간에 세운을 덮쳐 복수도 하고 S급 의뢰도 대신 해결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애초에 가만히 눈뜨고 그걸 눈뜨고 지켜볼 세운이 아니다. 물론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에는 전부 나가떨어질 것 같지만…….
‘조금 골려줘 볼까?’
– 흑탑의 묘리에 따라 ‘그라운드 웨이브’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쿠구구구-
“세운 씨, 뭐 하세요?”
“아냐, 가자.”
진동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눈더미를 뒤로하고, 세운과 유서아가 다음 설산으로 발을 옮겼다.
* * *
“젠장, 이놈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리암! 인제 그만 가자!”
“그래, 무리야. 애초에 우리 수준으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몬스터를 다 정리해 줘서 망정이지, 고블린 하나라도 나타나면 우린 끝이야. 알잖아…….”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이것만 잘 풀리면 우리가 S급 의뢰를 해결하는 거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하지만…….”
과연, S급 의뢰라는 걸까?
세운의 뒤를 몰래 뒤따라가며 몬스터의 공격 한 번 안 받았는데도, 리암과 일행들은 탈진 직전이었다.
A급 의뢰를 수행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간혹 기후가 악화되는 상황은 있어도, 이렇게 의뢰 내내 폭설이 내리지는 않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눈이 잠잠해질 때까지 쉬었다 갈 법도 한데, 저들은 평지를 걷듯이 사뿐하게 눈 위를 이동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틈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미행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리암, 다시 생각해 봐. 이건 진짜 불가능하다고.”
“맞아. S급 의뢰라니, 처음부터 무리였어.”
“이 병X들아! 누가 우리끼리 해결하재? 이렇게 몰래 따라가서 막타만 치면 된다고! 복수도 하고, S급 의뢰도 따고. 일거양득, 몰라? 이 무식한 것들.”
A급 의뢰를 해결했을 때 얻은 보상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다.
리암이 지금 사용하는 최상급 단검은 물론, 서리 요새에서 일 년은 더 버틸 수 있는 공적치를 획득했으니까.
그런데 S급 의뢰를 해결한다면? A급 의뢰보다도 훨씬 수준 높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들을 무시하던 병사들도 다른 태도를 보일지도 모른다.
“이것들이, 음식을 직접 떠 먹여줘도 안 받아먹으려고 하네. 다 닥치고 내 뒤만 따라와! 지금부터 함부로 입 열면 내가 먼저 굴려줄 테니까.”
“끄응…….”
리암의 동료들이 서로 눈치를 봤지만, 어차피 리암의 도움 없이는 돌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의 고유 스킬인 ‘추적’.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곳까지 미행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고유 스킬 덕분이었으니까. 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추적으로 여기까지 걸어온 흔적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설산의 미아가 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리암의 뒤를 따라가던 중, 동료 한 명이 이상한 진동을 감지했다.
구구구구-
“응? 뭔가 떨리는 것 같지 않아?”
“헛소리해도 안 통하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아니, 진짜라니까. 이것 봐.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어? 나도 느껴져.”
“이거…… 위에서 울리는 것 같지 않아?”
힘이 들어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내려보며 이동하던 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두꺼운 눈발이 시야를 가리는 와중에, 그 너머로 유난히 돋보이는 하얀 파도.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크기를 불리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 미친!”
“눈사태다!”
설원의 재앙이라 할 수 있는 눈사태가 닥쳐왔다.
리암도 갑자기 눈사태가 덮쳐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도망쳐!”
“도망칠 곳이 어디 있어!”
“이래서 내가 그냥 돌아가자고 했잖아!”
“남 탓할 시간에 대처법이나 생각하라고!”
“대처법은 무슨! 너 때문에 끝났어! 끝났다고!”
쿠구구구구-!!
동료의 말대로, 대처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고, 당연하게도 눈사태를 막을 수도 없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 최대한 자세를 낮추며 하늘에 목숨을 맡기는 것뿐이다.
“으아아악!”
그들의 비명이 폭설에 묻혀 사라져 갔다.
* * *
드디어 마지막 설산.
세상의 끝이라도 되는 것처럼, 텅 빈 배경 위에 우뚝 서 있는 가장 높은 설산 앞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어려운 건 없었어.’
물론, 일반 플레이어 수준에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거친 폭설은 제아무리 강한 플레이어라도 눈뜨고 걷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고, 나오는 몬스터들은 하나하나가 B~A급 의뢰에 등장할 법한 것들이었으니까.
30층. 아니, 40층에 다다른 플레이어라도 이곳까지 막힘없이 뚫고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운은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S급 의뢰.
괜히 지금까지 그 어떤 플레이어도 도전하지 못한 의뢰인 게 아니다.
아직 목표인 설룡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지만, 이대로 별일 없이 설룡과 맞닥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생각지도 못한 특식을 맛나게 집어삼킵니다.
세운이 광란의 힘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자 늘어난 먹이로 기뻐하는 베엘제붑.
그 메시지를 무시하고, 세운과 유서아가 설산을 올랐다.
45도가 넘어가는 경사에 눈이 가득 쌓여 있어 눈을 조금만 깊게 밟아도 눈으로 된 지면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내공을 세심하게 조절하며 조심스럽게 눈을 밟았다.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 설산의 중턱에 오를 때까지도 몬스터의 기척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세운 씨. 여기, 너무…….”
“춥지?”
마지막 설산의 온도가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설산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도 버티기 힘들 정도.
경사뿐만 아니라 눈도 이렇게나 높게 쌓인 탓에 설산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도 버티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설산을 타고 올라가 구름이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더욱 내려갔다.
세운이야 ‘예티의 가죽’을 통해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지만, 유서아는 오로지 외투와 정신력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우웅!
“……감사해요.”
이에 세운이 바로 온도 조절 마법인 ‘템플리쳐’를 사용해 주었다.
사막에서도 사용해 주었던 마법인데, 유서아 한 명을 대상으로는 마나 소모가 그리 크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만, 세운은 현재 윈드 커튼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을 사용하니 조금 부담이 되긴 하였다.
‘속도를 내야 해.’
천천히 올라갈수록 부담만 커진다.
유서아에게 눈빛을 보낸 후, 다리에 속도를 붙이려 하였다.
바로 그때.
“쿠오오오오오오-!!”
한없이 조용하던 설산 위에서 거대한 포효가 들려 왔다.
세운이 회귀를 하고 탑을 오르며 들어보았던 소리 중에서 가장 크다고 느낄 정도의 굉음.
그 포효와 함께 나풀거리며 내려오던 눈이 풍압으로 인해 뒤로 밀려났다.
세운은 물론, 유서아도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자리에 멈춰 섰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코앞까지 다가온 목적지.
가장 높은 설산의 꼭대기에 살아간다는, 폭설을 부른다는 설룡.
녀석이었다.
– 성흔이 드래곤 피어를 집어삼키며 힘이 강화됩니다.
– 공포를 포식하며 혈랑의 이명이 강화됩니다.
용의 포효답게, 그 안에는 거대한 공포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다행히 세운의 성흔 덕분에 공포에는 휘말리지 않았고, 유서아 역시 클랜의 효과로 세운의 힘에 영향을 받기에 어느 정도 버티는 모습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지휘관이 했던 말.
설룡이 포효를 내지를 때마다, 엄청난 폭설이 휘몰아친다고 했었지.
“세운 씨, 위에…….”
“젠장…….”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이 온통 하얗게 범벅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도 눈을 뜨고 걷기 힘들 정도로 눈발이 강했는데, 지금은 그 수준을 아득히 벗어났다.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구름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사태.
아무래도 이게, 설산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