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7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82화(178/675)
제 182화
폭설. 아니,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눈사태는 단순히 이 설산만을 노리고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
눈에 의해 시야가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건너온 설산들 대부분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사태에 의해 햇빛이 가려져 어두워져 있었다.
즉, 도망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비행도 불가능하다.’
이카로스의 날개를 펼쳐봤자, 눈사태에 머리를 처박는 꼴밖에 안 된다.
마법을 써서 타개하기에는 아무리 세운이라 하여도 이런 대범위 눈사태를 처리할 방법은 없었다.
만약 지금의 폭설이 마법이라 친다면 7서클…… 아니, 8서클 마법과 맞먹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뚫고 지나간다.’
마법과 무공을 이용하여 눈사태가 닥치기 전에 구름을 뚫고 산에 올라야 한다.
물론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산의 정상은 구름에 막혀 있었기에 결국 눈사태에 닿을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 순간 정도는 어떻게든 뚫고 지나갈 자신이 있었다.
“유서아, 잡아.”
“네? 뭘…….”
“아니다. 내가 잡을 테니까 버티고 있어.”
“우왓?”
하늘을 잠식한 눈사태에 당황한 탓인지 세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유서아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눈을 박차고 전방으로 내달렸다.
이제는 바닥이 무너질까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바닥을 어찌나 강하게 박차는지, 세운이 발을 디딜 때마다 눈이 움푹 파이며 그 뒤로 눈사태가 일어났다.
“제, 제가 직접 뛸게요!”
“아냐, 이게 더 빨라.”
속도도 속도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세운도 유서아를 챙겨줄 자신이 없었다.
손이 묶이더라도, 직접 안고 달리는 게 편하다.
– 내공을 통해 니추공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집니다.
아직 폭설이 덮쳐오기 전이었지만, 설룡의 포효로 인해 밀려나 뭉쳐서 만들어진 눈덩이가 사방에서 굴러떨어져 왔다.
니추공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눈덩이를 피해 내고, 눈덩이로 인해 일어난 눈사태를 뛰어넘었다.
이미 범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황.
유서아도 자신이 뛰어봤자 세운의 뒤를 따라오기 벅차리란 걸 깨닫고는 할 수 없이 세운의 목을 꽉 붙잡았다.
‘생각보다 높다.’
일직선으로 달렸으면 몰라도, 눈덩이와 눈사태를 피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아직 구름에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 폭설이 머리 위까지 도달해 있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황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순식간에 다섯 마탑의 묘리를 머금은 붉은 구슬이 주먹 안에 몰려들었고, 구슬이 손바닥에 화상을 입힐 정도로 달아오르는 순간.
화륵!
세운이 유서아를 붙잡지 않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콰과과과-!!
18층의 시련에서 눈구름을 불태우며 폭설을 잠재웠던 것과 같은 캐논이 전방으로 비스듬하게 쏘아졌다.
당장 세운을 덮쳐오던 폭설이 녹아내림과 동시에 하얀 수증기가 되어 사방에 뻗어나갔다.
그로 인해 생긴 찰나의 빈틈. 그 속으로, 세운이 빠르게 내달렸다.
다섯 마탑의 묘리와 상당량의 마나를 소모한 일격이었지만 이마저도 짧은 시간 동안 길을 만들어 내는 게 고작이었다.
시야에는 파이어 캐논으로 인해 생겨난 둥근 통로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마저도 크기가 빠르게 작아지고 있었다.
콰륵, 콰르륵!
그 뒤로도 세운은 길을 만들어 내기 위해 파이어 캐논을 연신 쏘아댔다.
서클이 빠르게 비어갔지만, 폭설은 지치지도 않는지 더욱 빠르게 쌓여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끝이다!’
폭설의 근원지로 보이는 눈구름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어느새 설산의 정상 직전까지 달려온 것이다.
다만, 파이어 캐논을 연사한 덕분에 이미 서클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남은 건 내공뿐.
게다가, 설룡의 힘이 깃든 눈구름은 그 아래로 쏟아지는 폭설 이상으로 강한 힘을 머금고 있었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저 눈구름을 뚫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니.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자하검결(紫霞劍訣) ]– 자하신공 사성에 오른 자만이 배울 수 있는 화산파 최고 절기. 강렬한 양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터라 검마(劍魔)조차도 쉽사리 익히지 못했다는 독문무공.
세운 역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을 사용한다. 아니, 사실 지금의 신체로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도박에 가까운 기술.
눈구름을 마주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가 아니라면, 저 눈구름을 뚫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일 초식, 자하개벽(紫霞開闢)이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우우웅!
단전이 화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속에 깃든 4갑자의 내공이 전부 양기로 치환되며, 그 열기로 인해 내장마저 타들어 가는 듯했다.
자하검결.
그 설명에 적혀 있듯이, 세운이 처음 배운 자하신공을 응용한 검결로써 검마마저 섣불리 익히기 어려워했다는 초일류 무공이다.
계획대로라면 최소 5갑자. 아니, 그 이상은 되고 난 후에 익힐 예정이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주룩.
세운의 입가에서 한 줄기의 선혈이 흘러나왔다.
내장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굳이 억제하려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기에, 세운은 그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발을 앞으로 뻗었다.
자하개벽(紫霞開闢).
자줏빛 노을을 연다는 그 장엄한 뜻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세운의 앞을 가로막던 새하얀 폭설이 일순간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풍경이 노을에 물들 듯이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일순간 세상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비록 검은 들고 있지 않았지만, 탐욕의 권능을 통해 자하검결의 묘리를 머릿속에 새긴 세운은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
철컥!
무언가 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받은 만능열쇠를 통해 온갖 문을 열고 다닌 세운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
그와 함께, 자줏빛으로 물든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자하검결의 제일 초식, 자하개벽.
세운은 그저 열린 문의 틈새를 통해 발을 내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지금 눈앞의 세상은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만약 상대가 눈이 아닌 몬스터였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거다.
몬스터라 할지라도, 이 보랏빛 세상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해 보고 ‘열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세운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콰아아아!
쿠르르르르-
멈춰 있던 세상이 다시금 흘러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활짝 열려 있던 문이 눈으로 채워지며 사라져 갔고, 아래의 세상이 전부 눈에 삼켜지고 있었다.
저 아래 남아 있었다면, 아무리 세운이라 하더라도 다시 올라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털썩.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한순간 시공을 간섭한 당신의 힘에 감탄하며 몸을 걱정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방금의 아름다운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설산을 뒤덮은 눈을 내려보고는 빙수를 떠올리며 침을 줄줄 흘립니다.
세운은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유서아를 내려놓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떨려왔다.
“세운 씨! 괜찮으세요? 방금은 대체…….”
“괜찮아. 힘을 많이 써서, 조금 힘들 뿐이야.”
단 한 번. 자하검결의 일 초식을 사용했을 뿐인데, 단전을 채우고 있던 4갑자의 내공이 한순간에 모두 타들어 갔다.
방금은 어떻게든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고 넘길 수 있었지만, 조금만 방심했어도 단전이 붕괴하였을지도 모른다.
‘역시, 벌써 사용하기에는 무리야.’
세운이 지금까지 괜히 초절정 무공들을 아껴왔던 게 아니다.
초절정 무공들은 그 이름값을 하듯이 단단한 단전과 풍부한 내공, 강인한 신체를 요구한다.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섣불리 펼쳤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되고 만다.
비록 어떻게든 자하개벽을 사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주 시도할 만한 도박은 아니었다.
최소한. 정말 최소한, 5갑자는 채우고 나서야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검결이었다.
“여기, 포션이에요.”
“고마워. 잠깐만 쉬자.”
“죄송해요. 또 제가 걸림돌이 되어서…….”
“아냐, 나 혼자였어도 별반 다를 것도 없었을 거야.”
세운이 포션을 건네받으며 마나와 내공을 회복하였다.
그러면서 주위를 차분하게 둘러보았다.
설산의 정상.
구름을 뚫고서야 다다를 수 있었던 이곳은, 마치 화산처럼 중간이 뻥 뚫려 있었다.
화산과 다른 점이라면,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게 용암과 열기가 아니라 눈가루와 한기라는 점이었다.
‘이 안인가.’
지휘관이 설명해 준 의뢰 내용대로라면 이 안에 설룡이 있을 터였다.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하자마자, 유서아에게 눈치를 보내며 조심스럽게 구멍을 향해 발을 옮겼다.
차가운 한기가 가득 올라와 고개를 내밀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세운이 먼저 조심스럽게 구멍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크르르르-”
마치 얼음으로 이루어진 신전을 보는 듯이 아름다운 절경.
투명한 얼음이 반짝이는, 예술품을 보는 듯한 그 중간에 하얀 용 한 마리가 고고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저게 바로 설룡(雪龍).
아우터로 인해 생겨난 절망의 얼음 호수라는 필드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이자,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S급 의뢰의 목표.
“아름답네요.”
“스노우 드래곤…….”
“스노우 드래곤? 저 몬스터 종족 명인가요?”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회귀 전에 보았던 서적을 통해 읽은 기억이 있었다.
사대 속성을 타고난 드래곤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비록 물도 얼음도 아닌 눈이라는 제한된 파생 속성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 어떤 이유를 들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진짜 드래곤이었다니.’
하위 용종 같은 게 아닌, 진짜 드래곤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크기만으로 유추해 보아도 헤츨링급은 아니었다.
최소 아성체. 아니, 저 정도면 충분히 준성체에 가까워 보였다.
‘내가 사냥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스노우 드래곤과의 전투를 떠올려 보았다.
마법을 통해 설산을 무너트려 녀석을 기습한다면.
시기의 권능을 통해 힘을 빼앗고, 탐욕의 권능을 통해 전투력을 최대로 끌어 올린다면.
방금 막 5갑자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떻게든 힘을 끌어 올려 다시 한번 자하검결을 사용한다면.
하지만, 세운은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준성체급 드래곤이라면 미약하게나마 용언(龍言)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다.
그 어떤 힘을 사용하더라도, 지금의 세운이 용언에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정말 만약에, 어떻게든 용언을 저항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다음으로 이어지는 용의 숨결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이게 S급 의뢰…….’
지금이라면 가능할 줄 알았다.
세운의 수준은 이미 동 층의 플레이어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S급 의뢰라 하여도, 지금이라면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고작 세 번째 쉼터의 의뢰에서 진짜 드래곤이 출현하리라고는 세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승산은 기껏 해 봐야 1% 미만. 그조차도 최선의 수를 떠올리며 후하게 준 확률이었다.
그런 미약한 승산에 기대어 놈에게 도전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그때.
‘저건?’
세운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스노우 드래곤의 새하얀 몸체에서 시꺼먼 무언가가 꿀렁이는 게 보였다.
제왕 독수리의 척안을 통해 녀석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미묘한 움직임.
“세운 씨!”
세운이 그 즉시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착륙하기 직전 순간적으로 이카로스의 날개를 펼치며 우아하게 착지에 성공했다.
침입자가 들어 왔음에도 눈을 뜨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설룡.
그 아름다운 순백의 비늘 위로.
“역시…….”
절망의 얼음 호수 아래에서 보았던 꾸물거리는 검은 액체.
아우터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