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7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83화(179/675)
제 183화
‘어째서 아우터가 설룡에게 붙어 있는 거지?’
부관병에게 들은 전설대로라면 아우터는 운석과 함께 떨어져 절망의 얼음 호수 아래에 봉인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얼음 호수와는 거리가 제법 먼 최북부.
그중에서도 얼음 호수의 지하와는 정반대로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어떻게 아우터가 이곳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궁금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완전히 잠식되지 않았어.’
회귀 전에 아우터를 직접 상대해 본 세운이었기에 아우터에 잠식당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건 파괴 본능.
수면이나 휴식 따위는 불필요해지고, 보이는 생명체를 닥치는 대로 죽이고 새롭게 잠식한다.
그런 식으로 숙주를 늘려가며 수를 늘리는 게 아우터의 핵심적인 본성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아우터는?
설룡의 비늘 위를 기어 다닐 뿐, 설룡을 제대로 잠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겉돌고 있을 뿐이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연이어 등장하는 검은 액체에 미간을 크게 구깁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또다시 헛구역질을 시작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질리지도 않고 더러운 것들과 연관되는 당신의 행보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아우터가 가까워지자 마신들도 바로 반응하였다.
마몬의 말처럼, 세운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긴 하였다.
회귀 전에는 마지막 순간에 탑이 멸망하기 전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아니, 마주치기는커녕 아우터에 대한 전조조차 듣지 못했었다.
하지만 회귀를 하고는 아우터와 마주치는 게 벌써 세 번째였다.
처음은 우연, 두 번은 필연, 세 번은 운명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이게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앗.
“저건 뭔가요?”
“아우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같은 놈이랄까. 섣불리 안 건드리는 게 좋을 거야.”
유서아가 가볍게 벽을 타고 세운의 옆에 착지했다.
꽤 깊은 구덩이에, 벽이 얼음으로 되어 있어 발을 디딜 곳도 부족했을 텐데, 너무나도 안정적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보법 수준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세운이 한창 머리를 굴리던 중.
침입자가 두 명이나 왔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있던 설룡이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눈을 여전히 감은 채로, 고통을 참듯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쿠오오오오-!!”
뻥 뚫린 구멍을 통해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멀리서 들을 때도 귀를 막아야 할 정도였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정말 고막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사일런스(Silence) ]– 녹탑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기술로써, 공기의 진동을 억제하여 소리를 차단하는 특수계 바람 마법이다.
다급하게 새로운 마법을 펼쳐 고막을 보호했다.
마나나 피어를 실은 포효도 아닌 것 같은데도 이런 위력이라니.
역시, 아직 설룡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상이 떠나갈 듯이 웅장한 포효가 퍼져나가고, 설산의 하늘 위로 다시 한번 눈구름이 몰려들었다.
그사이, 세운은 볼 수 있었다.
‘물러나고 있다.’
설룡의 비늘 위를 기어 다니던 아우터가 순간적으로 흠칫거리며 설룡의 머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목격하자마자 설룡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설룡의 포효에는 아우터를 억제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설룡은 아우터에게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움츠린 채로 포효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밖에서 흩날리는 폭설은 그로 인한 부작용일 뿐이다.
‘이러고 수십…… 수백 년을 버텨온 건가.’
회귀 전에 보았던 것처럼 비처럼 쏟아지는 아우터에게 전신이 잠식당하면 이런 방법도 통하지 않았을 거다.
아마, 운석의 파편에서 튀어나온 아우터의 크기가 작았던 덕분에 이런 방법으로 잠식을 피할 수 있었겠지.
정확한 시기는 듣지 못했지만, 부관병은 처음에 ‘수백 년 동안 서리가 내려 얼음 호수가 생겨났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얼음 호수가 생겨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최소 천 년 이상인가.’
대충 짐작하자면, 몇천 년 동안 이 자리에서 아우터에게 저항하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설룡의 포효가 끝났다.
아우터는 설룡의 목 언저리에서 뒷다리 언저리까지 물러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다시 잠드는 게 수순이었겠지만, 드래곤답게 세운이 마법을 사용하며 움직인 마나를 느낀 듯, 천천히 눈을 뜨며 세운을 내려보았다.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눈을 닮아 하얗게 번들거렸다.
성흔이 미약하게 빛나며 공포를 집어삼키고 있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른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그 정도로 강렬했다.
“……인간인가.”
단순히 말을 내뱉었을 뿐인데, 세운이 5서클 마법을 사용했을 때처럼 주위의 마나가 크게 일렁거렸다.
마나는 설룡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며 피부를 자극했다.
유서아는 이미 그 공포감으로 인해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세운만이 차분하게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라……. 인간을. 아니, 생명체를 마주하는 건 수천 년 만이구나.”
수천 년.
설룡의 나이는 세운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았다.
그러면서도 저런 크기인 것을 봐서는, 아우터에게 저항하느라 활동을 중단하며 그와 함께 성장마저 멈추었던 모양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성장마저 포기하고 아우터에게 저항하며 이 자리에 머물렀다니.
인간으로서 감히 넘보기 힘든 정신력이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수십 년은커녕 저 상태로 한 달도 못 버티지 않았을까.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우터에게 잠식당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돌아가거라. 이곳에서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라.”
설룡의 말이 맞았다.
그는 세운이 아우터의 존재를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드래곤을 쓰러트리는 것도, 아우터를 쓰러트리는 것도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은 얘기다.
아무리 강력한 위인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돌아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세운은 달랐다.
회귀 전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구멍의 아래로 내려와 설룡의 몸에 붙은 아우터를 확인한 순간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는 확실해졌다.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뭐라?”
세운을 무시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려던 설룡이 고개를 멈추었다.
다만, 그의 눈에서 보이는 것은 희망 같은 게 아니었다.
분노. 경멸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세운을 향했다.
“인간의 오만이 무한하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때를 잘못 골랐느니라.”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설룡은 아우터에게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몇천 년 동안 이 자리에서 고통을 참아 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대뜸 자신을 치료해 준다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놀리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용의 눈길을 받고 있음에도 세운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고 어깨를 펼쳤다.
“절망의 얼음 호수 아래에서 아우터…… 그 검은 액체를 소멸시켜 보았습니다.”
“장난치지 말아라! 나의 어머니도 이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그런데 감히 인간 따위가 이것을 소멸시킬 수 있단 말이더냐?”
“몇천 년 동안 그 상태라면, 앞으로 버티고 버틴다고 하여도 달라질 건 없지 않습니까.”
“지금 감히 나를 모욕하는 것이더냐?”
“모욕이 아닙니다. 잠식당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지만, 회복할 방법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포기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설룡의 시선이 더욱 뜨겁게 달라붙었다.
단순히 눈을 마주치고 성흔이 공포의 힘이 삼키고 있는데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는 세운.
그렇게 일 분 정도 대치하였을까?
유서아가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던 중, 드디어 설룡의 입이 열렸다.
“다섯 개의 띠를 두르고 있군. 그 힘을 모두 걸 수 있겠느냐?”
다섯 개의 띠.
세운의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서클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아우터를 소멸시키는 데 실패하면 서클을 모조리 부숴 버리겠다는 뜻.
하지만, 세운은 망설일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 정도면 후한 대접이었다.
다른 오만한 드래곤이라면 서클은커녕 이상한 낌새를 느끼자마자 목숨을 앗아갔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것들은 내 몸을 잠식해 오고 있다. 시간은 길게 줄 수 없다.”
“그럼, 지금 바로 시도하겠습니다.”
스릉.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설룡이 순간적으로 몸을 흠칫했지만, 그는 드래곤으로서 다른 생물이 지닌 감정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검으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라면 살기가 느껴지는 게 정상일 터. 하지만, 세운에게서 느껴지는 건 살기 같은 게 아니었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수천 년간 살아온 설룡이었지만,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이 자리에서 홀로 떨어져 있던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세운이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에도, 그는 의심하지 않고 검을 받아들였다.
뒷다리 인근의 그늘을 향해 찔러 들어간 뒤랑달은 곧.
푹!
끼이이이익!
설룡의 그늘에 숨어 있던 검은 액체를 꿰뚫었다.
애초에 아우터는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기에 아무리 날카로운 검으로 찔러봤자 반응조차 없는 게 정상이지만, 아우터는 분명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미약하게 빛나던 성흔이 검붉은 빛을 크게 밝혔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이 깨어납니다.
치이이익!
예상대로 신성이 빠르게 빠져나감과 함께 검에 꽂힌 아우터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사방에 퍼져나가니 베엘제붑이 왜 아우터가 나타날 때마다 코를 막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설룡이었다.
“이럴 수가, 정말로…….”
수천 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존재.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리자면, 어머니의 목숨마저 앗아간 존재.
평생 그 힘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존재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액체의 몸이 1/3쯤 줄어든 순간, 세운조차 생각지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뚝.
검은 액체가 세운의 검에 찔린 몸을 끊고 달아났다.
아이스 골렘을 잠식하고 있던 아우터를 소멸시킬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역시 그놈들은 움직임이 둔해져 있던 건가?’
수천 년 동안 얼음 아래에서 봉인되어 있던 터라 밖에 나와서도 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세운의 검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아우터는 다르다.
무려 수천 년 동안 설룡을 잠식하기 위해 활동하던 놈들이다.
이미 세운의 공격이 위협적이라 판단한 놈들이라면, 이후에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최대한, 지금 바로 놈들을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고, 마법조차 피해 가는 놈들의 움직임을 멈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유서아!”
“네!”
콰직!
끼이이이익!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튀어 오른 유서아의 쌍검이 도망치던 검은 액체의 양 끝을 꿰뚫었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를 지배합니다.
검은 액체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성흔의 힘은 세운의 잠재력이 신성을 통해 더 큰 힘으로 발현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었다.
잠재력이 통한다면, 유서아의 잠재력인 지배 역시 통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정답이었나보다.
하지만, 녀석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닌 아우터다.
유서아의 수준으로 지배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꿈틀!
지배의 힘에 당했으면서도 도망치기 위해 몸을 꿈틀거린다.
세운의 성흔은 신성으로 그 힘이 증폭되고 있다지만, 유서아는 성흔은커녕 신성 한 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금방 놓쳐 버리고 말 것이다.
그 순간.
아득히 높은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성좌. 서열 1위의 대마왕, 바알이 그녀에게 손을 내뻗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자신의 계약자를 정식으로 사도로 임명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자신의 계약자에게 자신의 신성을 불어넣습니다.
사도. 플레이어로서 성좌와 가장 가까운 직위. 단순히 성좌의 권능을 빌려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신성을 이어받아 사용하는 자들.
치이이익!
유서아의 왼손등 위에 거미의 형상을 닮은 성흔이 생겨남과 동시에.
“멈추어라.”
– 플레이어 유서아가 ‘#$!?%’를 지배합니다!
지배의 힘에 반항하며 미친 듯이 꿈틀거리던 아우터의 몸이 죽은 것처럼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