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8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88화(184/675)
제 188화
S급 의뢰를 끝낸 후, 세운과 유서아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A등급까지의 의뢰를 수행해 나갔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S급 의뢰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전 같은 난이도면 쉽게 도전하기 힘들겠지만.’
S급 의뢰, 설룡의 포효.
만약 아우터를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고 해도 끝낼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그럼 지금의 세운이 아니라면 공략이 불가능한 의뢰였다는 뜻인데…….
‘탑이라도 이렇게나 밸런스가 안 맞을 리는 없을 텐데.’
찜찜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면, 최소한 어떻게든 공략할 수 있게 만들어 놔야 할 건데, 이번 S급 의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세 번째 쉼터에서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주원소 계열의 드래곤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탑의 최상층에 존재하는 플레이어 중에서도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 ‘스노우 맨’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의문점을 떠올리며 검을 휘두르다 보니 이번에 새로 받았던 의뢰가 완료되었다.
나름대로 어렵기로 알려진 B급 의뢰였는데, 잡생각을 하면서도 공략할 정도로 난이도가 맞지 않았다.
A급 의뢰 정도가 아니면 마법 몇 번으로 가볍게 쓸어 버릴 수준이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앞으로의 쉼터도 전부 이런 식이면 좋겠다며 부른 배를 쓰다듬습니다.
보통 쉼터에 입장하면 몬스터를 사냥할 일이 없어지니 폭식의 권능을 사용할 일도 줄어든다.
그 때문에 베엘제붑은 유난히도 세운이 쉼터에 입장하는 것을 꺼렸는데,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시련 때보다 더욱 자주 더 많은 몬스터를 폭식하는 중이었으니까.
가볍게 의뢰를 완수한 후, 재정비를 위해 숙소로 이동하였다.
그러던 중.
“오오, 형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시원한 음료수라도 대접할까요? 제가 또 형님을 위해 기가 막힌 음료수 제조법을 익혀놨지 않겠습니까?”
박정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세운이 지시한 대로 강한철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요즘은 강한철이 필요 없다고 내팽개친 상태다.
그런데도 어디로 숨어다니는지 하라는 의뢰는 안 하고 게으름만 피우고 있는 녀석.
“박정필.”
“넵!”
“전에 말했던 거, 지금 하자.”
“……하핫! 형님, 제가 받아둔 의뢰가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분위기를 읽었는지 재빠르게 빠져나가려던 녀석.
세운이 손을 뻗었지만, 깃털이 바람에 휘날리듯, 녀석의 몸이 스윽 기울며 절묘하게 몸을 빼냈다.
‘역시, 재능은 있어.’
단순히 손을 뻗는 동작이었다고는 하나, 민첩 수치가 200이 넘어가는 세운의 손아귀다.
디아블로 클랜에서 유서아 정도가 아니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빠르기다.
문제는, 전투 능력.
시련에서 박정필과 같은 팀이 되었던 한아름에게 들었다.
도망치는 능력은 말도 안 되게 뛰어났지만,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고.
그러면서도 도발은 또 어떻게 그리 잘하는지 결국 전투계 플레이어도 아닌 한아름이 뒤처리를 다 도맡았다고 들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넘어간 모양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헤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슴다!”
세운의 손아귀를 피하자마자 내빼는데, 그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운이 주로 사용하던 니추공과 닮아 있었다. 본능적으로 적의 공격을 회피하기 가장 적합한 움직임을 찾은 것이다.
그 움직임을 볼수록, 녀석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세운이 무공을 운용하며 한걸음에 녀석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또다시 내뻗는 손.
슥-
“헤헷, 제가 형님한테 몇 번을 당했는데 이런 거에 또…….”
툭.
“……어어?”
고개도 안 돌리고 상체를 수그리는 게, 감이 좋거나 기척을 감지하는 방법도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세운의 진짜 수는 손이 아니라 발이었으니.
쭉 뻗은 다리에 발이 걸린 박정필이 슬로우 모션처럼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곧바로 바퀴벌레처럼 도망치려는 녀석의 등 뒤를 밟았다.
“본격적인 훈련 전에, ‘교육’부터 받고 시작해 볼까?”
“으아아악! 형니이임, 살려주십셔어!”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간만의 볼거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옵니다.
일단은 이 정신머리부터 고치고 시작해야겠다.
* * *
“이제 정신 좀 들지?”
“넵, 뭐든지 시켜만 주십셔!”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계약자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며 대폭소를 터트립니다.
‘교육’이 끝났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빡세게 교육해 둬도 금방 기강이 해이해지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은 교육을 해 줘야 할 듯하다.
어쨌든, 지금은 도망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아니, 그전에 일단은 녀석의 수준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알아서 피해라.”
“넵! ……아, 잠깐. 검으로 하실 겁니까? 그거 진검이잖습니까?”
“그러니까 말했잖아. 알아서 피하라고.”
“아니, 진검이라니까요? 진검! 진검! 베이면 피납니다! 죽어요! 으아아아악!”
하멜가 장검술.
기교 없이 정직한 검술로 놈을 공격했다.
가장 처음 배운 기본기인 만큼 가장 익숙한 기술이었기에, 만약 녀석이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멈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떻게든 공격을 피해 내는 박정필.
속도를 높이자 머리를 감싸며 무릎을 굽히거나 바닥을 구르는 등 모양이 꼴사나워졌지만,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세운의 공격을 다 피해 내는 중이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오랜만에 보는 재미난 광경이라며 낄낄거립니다.
‘발레포르의 권능도 있지만, 재능이 큰 것 같은데.’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공격을 잘 피하고 있으면서 반격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
피하는 동작이 불필요하게 크긴 하지만 분명 손에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반격해라.”
“헤헤, 제가 형님한테 어떻게 이빨을 드러내겠습니까? 저 박정필! 형님을 위해서…….”
“오늘. 제대로 된 공격이 아니더라도 내 털끝 하나 못 건드리면 수련 안 끝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으아아압!”
순식간의 태세변환.
나름대로 세운이 말하는 타이밍을 노린 회심의 일격으로 보였지만.
스윽.
“어뤠?”
퍽!
그저 가볍게 한 발을 옮기는 것만으로 녀석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공격한 건 자신이면서 공격함으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지며 혼자 넘어지려는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케욱!”
처음으로 본 박정필의 공격은 정말이지…….
“너, 탑에 들어오기 전에 이름 좀 날렸다고 안 했었냐?”
“아유, 당연하죠! 대산동에서 제 이름 모르는 놈이 없었다니까요?”
“근데 주먹이 왜 이따위야?”
형편없었다.
동작은 스스로의 균형을 깨트릴 정도로 크고, 그러면서도 주먹에는 힘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게다가 주먹을 날릴 때 눈을 왜 감는 것일까?
그 모습은 마치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왕따가 울분을 담아 휘두른 어설픈 일격과도 같았다.
“헤헤, 그게. 제가 인맥이 좀 좋았거등요. 동네 형들이 제 뒤를 쫙 봐주고 있어가지고, 저 아무도 못 건드렸슴다!”
퍽.
“악! 이번엔 왜 때리신 겁니까?”
“그냥.”
“…….”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입에서 팝콘을 내뿜으며 즐거워합니다.
결국, 회귀 전에 세운이 보았던 것처럼 현실에서도 강자에게 빌붙었을 뿐이었다.
적랑을 타고 스포츠카 어쩌고 했던 걸 기억하면, 그래도 집안이 좀 살았나 보다.
그 돈으로 ‘동네 형’들에게 붙은 거겠지.
새삼 회귀 전에 박정필에게 당하던 기억이 떠올라 짜증이 일었지만, 이번 생에서 벌이지도 않은 일로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박정필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들을 떠올렸다.
“도구를 써라.”
“넵? 도구요?”
“주먹이 미치도록 형편없어서 하는 말이다. 그래도 손재주는 조금 있잖아?”
“헤헤, 그렇게 말씀하셔도 당장 마땅한 도구 같은 게 있을 리가…….”
우르르-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잡동사니를 쏟아부었다.
날카로운 손톱이나 줄처럼 기다란 몬스터의 힘줄, 진득한 독액이나 파이어 버스트가 새겨진 마나석 등.
딱 봐도 흉흉해 보이는 것은 물론, 저걸 어떻게 무기로 사용하라는 걸까 싶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템이라도 무기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실전에서 항상 도구가 완벽히 준비되어 있는 상황만 바랄 수는 없으니까.
“뭘 쓰든, 치사하든, 비겁하든 상관없다. 내가 꺼내 준 아이템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싸워.”
“헤헷, 형님. 이것보다 차라리 쓸 만한 무기라도 주시면…….”
“너, 전투에 재능 없어.”
“그래도 제가 또!”
“없어. 당장 아름이가 검을 쥐고 휘둘러도 너보다는 잘 휘두를 거다.”
“……저 아직 휘둘러보지도 않았는데.”
“주먹 휘두르는 것만 봐도 보인다. 수련 끝나면 당장 어르신한테 가서 의논하고.”
녀석이 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말을 하는 동안 유난히도 짙어지는 세운의 눈빛.
‘이놈한테 이 방법을 알려주게 될 줄이야.’
사실, 이는 회귀 전의 세운이 탑을 오를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마땅한 전투 스킬이 없으니 온갖 도구를 사용하여 몬스터를 상대하거나 전투를 피해 다녔다.
실제로 근접계 플레이어를 상대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들었던 말이 바로 ‘비겁하다!’였다.
하지만, 세운은 살아남았다.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아 결국 마몬의 창고를 찾아내어 지금의 시간으로 회귀하였다.
게다가 박정필의 회피 능력과 발레포르의 권능이라면 머리가 조금 모자라도 충분히 그 전투 스타일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단 생각할 시간 좀 주십셔!”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어떻게 찾을래? 자, 바로 시작한다. 머리 굴려서 어떻게든 공격을 맞출 생각이나 해.”
“자, 잠깐만요! 형니이임!”
“오늘부터 서리 요새를 떠나기 전까지, 내 몸에 어떤 공격이라도 성공시키지 않으면 수련은 계속된다. 그리고 만약 도망이라도 치면…….”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세운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녀석이 얼마나 빨리 해이해지는지 지금까지 경험해 왔기에, 머릿속에서 ‘도망’이라는 요소를 아예 배제해 줄 필요가 있었다.
공포의 권능이 지배당해 덜덜 떨고 있는 녀석의 목젖 앞으로 뒤랑달의 끝을 가져다 댔다.
“너 혼자 호수 중앙에 던져두고 우리끼리 탑을 올라갈 테니까.”
차가운 칼끝이 서늘한 한기를 풍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