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8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90화(186/675)
제 190화
다음 층으로의 이동이 끝나자 피부를 통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숨을 들이쉬니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폐를 뜨겁게 달군다.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가뭄이 온 것처럼 쩍쩍 갈라진 대지였다.
그 흔한 바위 하나 존재하지 않았고, 하늘에서 내리는 잿가루가 태양을 가려 구름 하나 없음에도 주위가 어두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멀리.
시야의 끝으로,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활화산이 보였다.
– 21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흔들리는 대지
– 시간제한 : 24시간
– 당신은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자극하는 화산 지대에 도착했습니다.
– 동료와 함께 화산을 향해 나아가 불안정한 대지에서 탈출하십시오.
21층의 시련.
21~30층까지의 시련은 자연 현상. 또는 자연재해라 불리는 시련을 통과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저 강을 건너고 산을 오르고 하는 탑 초입부의 시련과는 난이도가 극명하게 차이 난다.
그 첫 번째 시련의 주제는 바로 흔들리는 대지.
설명에서 ‘불안정한 대지’를 탈출하라는 말처럼, 이번 시련의 재해는…….
쿠구구구!
지진이었다.
‘여정의 지침표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구간이었지.’
아쉽게도 지금으로서는 여정의 지침표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회귀를 통해 초기화된 여정의 지침표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하며 생긴 페널티가 아닐까 싶었다.
‘그보다, 동료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세운은 시련을 혼자 진행하는 게 나았다.
디아블로 클랜에서 세운의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이는 유서아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아니, 최근에는 박정필도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놈은 아니지.’
당연하게도 이번 테마 역시 한 층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런 몇 개의 층을 박정필과 함께하라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럴 바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기절시킨 후에 끌고 다니는 게 더 마음 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 후, 하얀 빛무리와 함께 세운의 옆으로 ‘동료’가 입장하였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세운이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으, 더워. 어? 형니이이임!”
하필, 그놈이었다.
* * *
“이야, 살았습니다! 이번에도 그 꼬맹이가 걸릴까 봐 얼마나 간 졸였는데!”
“하아…….”
꼬맹이라.
아마 한아름을 말하는 듯하다.
차라리 동료로 한아름이 걸렸다면 업고 다닐 수라도 있었을 텐데.
‘진짜 기절이라도 시킬까?’
장난식으로 생각했던 계획을 다시금 떠올렸다.
물론, 시련 하나만 빠르게 통과할 거라면 그게 더 마음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순 없다.
몇 층간 녀석을 계속 업고 다닐 수는 없었으니까.
쿠구구-
망설이는 사이 대지의 진동이 한층 더 커졌다.
“따라와.”
“넵!”
최근 혹독하게 ‘교육’과 ‘수련’을 반복한 탓인지 녀석은 되묻지도 않고 바로 세운의 뒤를 따라왔다.
게다가 디아블로 클랜에서 유서아 다음으로 다리가 빠른 게 바로 박정필이다.
회피 능력도 뛰어나니, 뒤처지거나 지진으로 인한 환경 요소에 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나중에 영 방해되면, 진짜 기절이라도 시켜야지.’
부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쿠구구구!
“우왓! 형님, 조심하십쇼! 이거 땅이 막 꿈틀거립니다!”
“늦으면 버리고 갈 테니까 알아서 따라와라.”
“가, 같이 갑시다! 형니임!”
뒤틀리기 시작하는 대지를 바라보며 바로 다리를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쩌억 벌어지더니 먹잇감을 놓쳐 아쉽다는 듯이 부들거렸다.
유서아의 보법이 세운에게 배워 잘 다듬어진 기술과 같았다면, 박정필의 보법은 하룻강아지가 허겁지겁 달려가는 꼴을 보는 것 같았다.
‘우왓!’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갈라지는 대지를 뛰어넘거나 갑자기 튀어나온 바위를 스치듯 피하며 바닥을 구른다.
꼴이 우습긴 하지만, 신기한 건 그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피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저 꼴을 보라며 계약자를 손가락질하며 크게 웃습니다.
녀석이 잘 따라오고 있다는 걸 확인한 세운이 속도를 올렸다.
– 내공을 통해 초상비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집니다.
늪지대를 통과하고, 설원을 통과하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초상비 덕분에 세운의 발걸음은 바람처럼 빨랐다.
대지가 불안한 만큼 이카로스의 날개를 펼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마나의 소모가 너무 크다.
이번 시련의 목적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기에 목적지까지 비행으로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거기에 박정필까지 들고 간다면, 마나 소모는 두 배가 아니라 서너 배 이상으로 뛸 것이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을 건 없는지 주위를 바쁘게 둘러봅니다.
베엘제붑이 요란을 떨었지만, 30층까지의 시련은 자연재해를 통해 플레이어의 생존력을 알아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늪지 때처럼 몬스터가 주축이 되는 시련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간간이 몬스터가 등장하긴 하겠지만, 이전처럼 배불리 먹여주지는 못하리라.
물론.
‘찾아보면 ‘특식’도 제법 많긴 하지.’
이곳은 특이한 시련인 만큼 특이한 몬스터가 존재하긴 한다.
예를 들자면, 사막의 시련에서 마주쳤던 ‘개미귀신’과 비슷한 포지션의 몬스터였다.
다만, 여정의 지침표가 없는 이상 녀석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는데, 적어도 지금 세운이 노리는 몬스터에 한해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쿠구구구-
이곳의 몬스터는 개미귀신과 달리,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타입이었으니까.
“거어어어어어-!!”
저 멀리, 유난히 크게 떨어대던 대지가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터져 나갔다.
그 사이로 흙으로 이루어진 괴물이 나타났다.
“혀, 형님! 저거 보십쇼! 아니 무슨 갈수록 몬스터 수준이 말도 안 되게 강해지지 않습니까? 저건 그냥 괴수도 아니고 대괴수잖습니까!”
볼캐닉 골렘(Volcanic golem).
이곳의 보스격 몬스터였다.
물론, 보스 몬스터라고는 해도 굳이 사냥할 필요는 없는 녀석이다.
녀석은 저 자리에서 고정된 채로 대지를 흔들며 지진을 일으킨다는 설정이었으니까.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직접 공격받을 리 없었다.
조금 돌아가야 하긴 하지만, 녀석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이동하면 지진의 강도도 줄어든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세운이 곧장 방향을 틀었다.
“혀, 형님? 어디 가십니까?”
반대 방향이 아닌, 볼캐닉 골렘이 몸을 일으킨 방면으로 말이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역시 당신을 믿고 있었다며 식기를 챙깁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번에는 또 어떤 맛이 나는 음식일지 기대를 품습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당황하는 계약자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자, 잠깐만요. 형님! 다시 생각해 보십쇼! 저건 말이 안 된다구요!”
“그럼 너 혼자서 따로 가든지.”
“아, 그건 좀! 아, 아아! 알겠으니까 좀만 천천히 갑시다아!”
멀리서 보이는 볼캐닉 골렘이 본격적으로 땅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두 손을 높게 들어 쿵쾅쿵쾅 내려찍거나, 몸을 비틀어 주변의 대지를 일그러트린다.
그럴수록 주변에 거친 지진이 일어나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쩌억!
쿠구구구!
땅이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거대한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몸이 꿰뚫리거나 심연 속으로 빠지고 만다.
빈 공간이라고 발을 디뎠다가, 갑작스럽게 공간이 좁혀지면 발목이 짓이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거어어어어어-!!”
쿠우웅!
골렘이 지면을 강타하자 세운의 앞으로 거대한 돌벽이 튀어나왔다.
더 이상 자신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인 듯했다.
빠져나갈 빈틈도 보이지 않았고, 뛰어넘기에는 그 높이가 말도 안 되게 높았지만 애초에 세운은 둘러 갈 생각이 없었다.
스륵.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당장 눈앞에 지름길이 있는데 빙 둘러 갈 필요는 없었다.
– 내공을 통해 태산십팔반검의 제육 초식, 태산양분(泰山兩分)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태산십팔반검의 오 초식인 태산압정이 산을 찍어 누르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다음 초식인 태산양분은 말 그대로 태산을 둘로 가르는 힘을 가진 올려 베기였다.
힘에 극도로 중시된 중검이기에 내공 이전에 인간을 초월한 수준의 근력이 없다면 펼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검법.
최근에 ‘블랙 오우거의 힘줄’을 사용하여 근력이 크게 증폭된 덕분에 사용할 수 있게 된 초식이었다.
콰과과과과!
절삭음 따위가 아니었다.
절벽에 대포를 난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칠고 투박한 효과음과 함께 돌벽이 양쪽으로 쩌억 갈라졌다.
단순히 돌벽만 그런 게 아니라, 세운이 서 있는 앞쪽의 대지부터 움푹 파여 들어 갔다.
지진이 아닌 오직 검법으로 만들어 낸 흉터.
그 사이로 볼캐닉 골렘의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거어어어어어-!!”
골렘답게 처음이랑 음색 하나 달라지지 않고 똑같은 외침.
아마, 저건 지성을 통해 내뱉고 있는 소리가 아니라 침입자를 쫓아내기 위해 입력된 음색일 뿐일 것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이었지만, 이를 가뿐히 무시하고 방금 만들어 낸 틈을 향해 달렸다.
쿵, 쿠구궁!
사방에서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볼캐닉 골렘이라는 이름을 증명하듯, 그 돌기둥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붉은 용암을 품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익힐 듯이 찔러오는 사이, 세운은 굳건하게 골렘을 향해 달렸다.
거리가 제법 있었기에 그사이에 수많은 돌기둥이 생겨났다.
돌기둥에서 흘러내린 용암으로 바닥은 이미 발을 내딛기가 불가능한 상태.
촘촘한 돌기둥이 길을 막고 있었지만, 그 모두를 부수가 나가기에는 힘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바닥의 진동을 느끼고 대각선을 향해 뛰었다.
그러자…….
쿠구구구!
세운이 자리 잡은 바닥이 급격하게 솟아올랐다. 돌기둥이 솟아오르는 위치를 예측하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골렘이 이를 눈치채고 돌기둥을 멈췄지만, 이미 늦었다.
세운이 눈앞의 돌기둥을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볼캐닉 골렘의 약점이 물이었나.’
녀석은 골렘답게 물리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엄청난 몬스터였다.
이전에 아이스 골렘을 상대했던 것처럼 틈을 찔러봤자, 오히려 그 사이로 용암이 분출되어 카운터를 허용하고 말 것이다.
그러던 중, 최근에 새로 얻은 무기가 하나 떠올랐다.
‘첫 데뷔전이네.’
세운이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 활, 불사궁을 꺼내 들었다.
얼음 호수에서 시범 격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습이나 확인을 위함이었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드득!
활시위를 힘껏 당기며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골렘이 세운을 노리며 투석기처럼 붉은 돌덩이를 날려댔지만, 소용없었다.
이카로스의 날개가 펄럭이며 세운을 더 높은 곳으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꿈틀대는 활, 녹카 ]– 반인반사의 일족이라 불리는 나가를 통치하는 왕, 나가라자(Nagaraja)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던 비보(祕寶).
불사궁의 주위로 물기가 감돌았다.
나가라자의 활, 녹카의 힘이 불사궁에 깃들며 평소와 같은 얼음의 화살이 아닌 뱀처럼 꿈틀대는 물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여기서부터는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에라도 먹잇감을 집어삼키고 싶다며 꿈틀대는 화살을 가볍게 놓아주면 그만이었다.
피융-
허공에서부터 거의 직각으로 쏘아진 물의 화살.
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크기를 더해가며 거대한 바다뱀의 형상을 띄었다.
그 모습이 마치 승천에 실패하여 지상으로 추락하는 이무기를 보는 듯했다.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한 분노를 뿜어낼 존재를 찾아냈고.
캬아악-!
그 흉포한 입을 벌려 목구멍 안에 존재하는 거친 소용돌이를 비추었다.
골렘이 공격을 막기 위해 두 팔을 교차하며 자세를 낮추었지만, 소용없었다.
골렘의 머리 위까지 내려온 이무기의 아가리는 이미 골렘의 크기를 뛰어넘었으니까.
쏴아아아아아-!!
21층의 시련.
흔들리는 대지 위로 폭포수가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