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8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92화(188/675)
제 192화
– 22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화산 끝의 풍경
– 시간제한 : 24시간
– 목적지의 방향을 잃은 당신은 화산의 정상에 오르기로 결심합니다.
– 동료와 함께 화산의 정상에 올라 다음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인하십시오.
발을 옮기자마자 다음 시련이 바로 시작되었다.
박정필이 ‘조금만 더 쉬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라며 중얼거리다 머리에 혹이 하나 더 생겨났다.
“여긴 지금까지의 시련이랑은 달라. 애초에 내가 안 끌었어도 휴식 시간은 곧 끝이었다.”
“형님, 일 안 해 보셨습니까? 원래 출근은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눈 질끈 감으면서 출발하는 법이란 말입니다!”
“다음 시련으로 튕겨 나가는 건 기분이 더럽거든.”
농담이 아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강제로 다음 시련으로 이동 당할 때는 누군가 억지로 등을 떠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귀 전에도 그 느낌이 싫어 어지간하면 휴식 시간이 끝나기 전에 바로 다음 시련으로 넘어가는 편이었다.
특히 그렇게 강제로 넘어갈 때는 보통 균형이 무너져 넘어지는 게 보통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정필 앞에서 그 꼴을 보이기는 싫었다.
“근데 형님, 너무 덥지 않습니까? 하루 전까지만 해도 설원이었는데 무슨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변해?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지. 그리고 그게 탑이야.”
“그래도 이 장비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진짜 쪄 죽을 뻔했는데.”
박정필이 자신이 입은 장비를 가리켰다.
세 번째 쉼터에서 고창석 어르신이 새롭게 만들어 낸 장비.
그 장비는 총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설인의 가죽 등, 몬스터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장비들로써 추위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 설원에서 활동할 때 필수적인 장비였다.
두 번째 장비는 세운이 가져다준 만년설과 만년빙으로 만들어진 장비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만큼 서늘한 냉기를 흘리는 장비였는데, 이는 세운이 직접 의뢰해서 만들어진 장비였다.
이유는 대충 둘러댔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시련을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시원할 뿐만 아니라 재료가 좋아 성능도 좋았으니 다들 바보짓만 안 하면 시련에서 떨어지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시원하긴 하네.’
세운의 장비 역시 마찬가지.
당장 화산이 눈앞인 데다가 주위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푹푹 올라오는데도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그것보다 저기 올라가야 하는 겁니까? 아니, 시련 내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미친X이 방향 알아보겠다고 활화산 꼭대기에 올라갑니까?”
“대답해 줄 사람 없으니까 닥치고 따라와.”
“넵.”
시련의 내용.
세운도 박정필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순 없지만, 회귀 전에 탑을 오르며 다양한 추측을 하고 들은 적은 있었다.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는 이 시련 자체가 ‘누군가의 경험’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필드가 다른 차원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거나 빌려 온 것이라는 첫 번째 추측에 연관되어 이어진 이차 추측이었다.
‘뭐, 어차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다양한 플레이어가 추측을 내놓았지만, 세운이 말한 것처럼 이에 정확한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없었다.
탑의 관리자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들려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플레이어가 관리자를 만날 일은 손에 꼽을 만한 일이니까.
이미 전담관까지 생겨난 세운이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푸화아앗-!
“우왓! 형님, 조심하십쇼! 이거 겁나 뜨겁네.”
“너나 조심하고 따라와.”
주변의 지형은 화산 지대 그 자체였다.
흘러내린 용암이 지표면을 따라 넓게 퍼져 물결 모양으로 식어 있었고,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지하에도 용암이 끓고 있던 덕분에 뜨거운 증기가 지면의 틈 사이로 불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증기라고는 하나 손을 대면 곧바로 화상을 입을 정도.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에는 먹이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아쉬워합니다.
‘하긴, 여기에는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었지.’
21층에는 그나마 볼캐닉 골렘을 포함하여 드문드문 몬스터의 출현이라도 있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몬스터가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탑은 현실이 아니기에 불과 연관된 몬스터가 있을 법도 한데,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도 이곳에서는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았다.
‘다 그곳에 박혀 있으니까.’
세운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층이 다르기 때문인지 베엘제붑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몬스터들은 바로 이 아래. 증기가 뿜어나오고 있는 이 화산의 지하에 숨어 있다.
불과 연관된 몬스터들인 만큼 놈들은 더욱 뜨거운 지형을 찾아가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형님, 왜 이렇게 여유롭습니까? 21층에서는 그렇게 뛰셔놓고서.”
“어차피 여기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
“넵?”
쿠르르-
목적지인 화산 끝에서 무언가 끓는 듯한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필도 그것을 들었는지 말을 멈추고 후다닥 세운의 등에 숨었다.
다행히도 폭발한 건 아니다. 대신 분화구에서 검은 구름이 뿜어져 나왔다.
“아, 폭발하는 줄 알고 쫄았네. 아니, 저거 진짜 터지는 거 아닙니까? 불안 불안한데.”
“아직은 아니다.”
“아직이요? 그거 대답이 좀 불안한데.”
“그리고, 저것도 꽤 귀찮거든.”
분화구에서 뿜어나온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가더니 하늘이 아닌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저건 단순한 구름이 아니었다.
화산회(火山灰).
흔히 화산재라 불리는 것들로, 화산 분화로 인해 짓이겨진 돌과 유리 조각 등을 말하는 것이다.
“켁, 퀙! 아니, 이게 뭔…….”
지면에 드리우는 검은 구름은 전부 그 화산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숨만 쉬어도 목이 갈려 나갈 것처럼 따갑고, 앞만 바라보고 있어도 눈알이 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눈을 감은 채로 숨도 안 쉬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사람을 서서히 죽게 만드는 검은 재앙이었다.
다만, 지금의 세운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정필이 충분히 화산재의 위험을 느낀 것 같았으니, 곧바로 익숙한 마법을 발현하였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윈드 커튼’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윈드 커튼’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세운을 주변으로 바람의 장막이 생겨났다.
화산재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밀려나며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이런 거 할 줄 알면 빨리 좀 해 주시지…….”
어깨에 잿가루 하나 없는 세운과 반대로 박정필은 이미 전신이 검은 가루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운이 마법을 늦게 사용한 건 단순히 녀석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이 시련을 겪는다고 해서 알아서 골칫거리를 다 해결해 주면 문제 해결 능력은 물론 위기감 역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최소한의 경험은 겪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계약자의 꼴을 보며 태운 소시지 같다며 낄낄거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소시지가 어디 있냐며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봅니다.
……뭐, 아주 조금은 속이 시원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빨리 가라앉네요. 얼른 갑시다. 형님!”
검은 구름에 섞인 화산재는 돌과 유리 조각 같은 게 대부분이었기에 주변을 맴돌지 않고 금방 바닥으로 흩어졌다.
시야가 걷히자 망설임 없이 화산을 향해 이동했다.
시야가 걷혔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기 중에 떠도는 화산재가 조금 남아 있었기에 호흡을 위해서라도 마법을 풀지 않았다.
화산재를 극복하는 게 주목적인 코스에서 화산재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쿠르르르!
“아, 저거 또 저러네. 형님, 이번에도 안 터지겠죠?”
“안 터지겠지. ‘화산은’.”
화산의 정상에서 다시 한번 위태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대지에서 21층의 시련에서 겪은 진동이 느껴지며 땅이 괴로운 듯이 드득거렸다.
“어? 형님, 왜 멈추십니까?”
“쉿.”
진동이 진정되자마자 세운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차분하게 화산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나타날 거다.’
세운이 찾고 있는 무언가는 곧 다가올 ‘현상’과 함께 나타난다.
회귀 전에는 여정의 지침표 덕분에 길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한다.
그런 만큼 지금 이 순간을 통해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곳’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곧.
쿠구구구!
쿠르르르릉!
“혀, 형님?”
진정된 줄 알았던 지진이 더욱 강한 기세로 발산되었다.
그와 함께 화산의 정상에서부터 검은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우연의 일치인지, 정확하게 세운을 향해 덮쳐오는 돌덩어리.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가볍게 검을 휘둘러 굴러오는 돌덩어리를 두 동강 냈다.
갈라진 바위가 양분되어 눈앞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세운은 눈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쿠르르르릉!!
그리고 마침내, 이번 시련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방금 굴러온 돌덩어리는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뿐이었다.
“으아아악! 형님, 저거 뭡니까! 도망쳐요! 아니, 그렇게 움직이던 사람이 왜 가만히 있어? 도망가자니까요!”
“닥쳐라.”
“흡.”
시커먼 화산재가 밀려 내려온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돌덩어리나 화산을 구성하고 있던 지질이 뒤섞여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마치 검은 파도 같았다.
해일은 아래로 내려오며 주변의 화산재까지 집어삼키며 덩치를 더욱 키워나간다. 화산의 약한 부위가 무너지고, 그 위로 검은 파도가 채워지길 반복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 파도에 휩쓸릴 게 분명하다.
“아이씨! 저 형님만 믿습니다. 진짜!”
박정필이 세운의 뒤로 숨으며 외친다. 21층의 시련에서 말한 것처럼, 적어도 이제는 혼자 도망갈 생각은 없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검은 파도는 벌써 화산의 중턱까지 내려왔다.
아니, 그것은 이미 파도가 아니라 해일이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려 보였다.
해일이 화산의 중턱을 지나고, 가까워진 해일이 하늘을 뒤덮을 듯이 커지는 순간.
‘찾았다.’
세운은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해일의 충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려 만들어진 검은 입구를. 회귀 전에 여정의 지침표를 통해 발견했던 숨겨진 동굴을.
“가자.”
“넵! 어…… 어? 아니, 그쪽입니까아아!”
당장 뒤로 돌아 도망치려던 박정필은 세운이 검은 해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도망치기에는 해일이 코앞이다.
아무리 순발력이 뛰어나고 회피 능력이 뛰어나다고 저 해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녀석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세운을 뒤따랐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세운을 믿는 것뿐이었으니까.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 월’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발견한 입구 위로 화산의 바위로 만들어진 돌벽이 세워졌다.
그러나 검은 해일은 먹잇감을 삼키듯이 돌벽을 가볍게 집어삼키며 입구를 뒤덮으려 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세운이 아니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 월’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 월’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황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 월’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 월’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다섯 마탑의 묘리를 응용하여 다시 한번 돌벽을 일으켰다.
아니, 한 번이 아니었다. 마법이 연속적으로 발현되며 순식간에 열 개가 넘는 돌벽이 입구 주위를 둘러쌌다.
대략 다섯 개의 돌벽을 무너트리던 해일은 이내 몸집이 커진 돌벽을 삼키지 못하고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이 돌벽을 두들겨 그 수가 하나둘 줄어가고 있었다.
쿠구구구!
쿠콰콰콰!
끝없이 부딪히는 검은 해일과 끝없이 생겨나는 검은 돌벽.
오 서클에 달하는 세운의 마나가 순식간에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박정필!”
“넵? 어? 으아아악!”
마나가 모두 동나자마자 뒤따라오던 박정필의 뒷목을 잡아 던졌다.
익숙한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가는 녀석. 녀석을 뒤따라, 세운 역시 온 힘을 다해 최후의 도약을 펼쳤다.
콰르르르륵!!
결국, 마지막 남은 하나의 돌벽까지 쳐부순 해일이 세운이 있던 자리를 포악하게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