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9화(19/675)
제 19화
“바위산의 하단부인가.”
바위산의 꼭대기에서 던전에 진입한 후, 동굴의 바닥은 쭉 내리막길이었다.
바위산 내부에 만들어진 던전이고 그 꼭대기에서 진입했으니 당연히 아래로 향할 것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그 심부에 이런 공동이 존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공동의 크기를 보아하니, 절벽의 모습을 한 외벽을 제외하고는 내부는 전부 던전인 듯했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동굴은 몰라도 이런 공동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졌을 리 없다.
던전의 이름을 보았을 때 ‘잊혀진 영웅’이라는 자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영웅 한 명이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긴, 던전에서 상식을 바라면 안 되겠지.’
탑의 내부에 존재하는 수십, 수백 개의 던전들. 그중에는 지금 보이는 공동처럼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형태를 지닌 곳들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하늘을 떠다니는 고대 던전이었던 ‘천공 섬’이나 죽은 용의 배 속에 형성된 ‘고룡의 심연’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이것들은…….”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묘한 눈빛으로 공동을 내려봅니다.
공동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바닥과 벽에 칼자국으로 보이는 자국이 가득했다. 베이거나, 찔리거나, 심지어는 무언가 터져 나간 듯이 움푹 파인 자국까지 존재했다.
이 모든 흉터를 낸 게 ‘검’이라니. 어지간한 검으로 돌을 공격했다가는 금방 이가 나가 버리고 말 텐데 말이다.
그 증거로 공동의 바닥에는 수많은 종류의 도검이 박혀 있었다.
멀쩡한 것도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날이 상해 있었다. 마치 도검의 무덤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공동의 중앙.
홀로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굳건히 세워져 있는 기둥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세운은 이곳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일종의 연계 퀘스트였구나.”
기둥의 중앙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
공동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이 저 구멍의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은.
푹.
세운이 들고 있던 ‘잊혀진 영웅의 검’에 딱 들어맞았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워 넣은 것처럼 검이 가볍게 밀려 들어갔다.
-잊혀진 영웅에게 도전할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드드드득-
공동에 가득하던 마나가 집약되며 바닥의 돌이 뭉치고 뭉쳐 인영의 형태를 이루었다.
자연스럽게 바닥의 검을 빼 드는 녀석을 보고 세운 역시 기둥에 박아 넣은 검을 빼내려 하였지만, 그토록 가볍게 들어가던 검은 기둥과 한 몸이라도 된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운의 표정이 찌푸려지자, 시스템이 친절하게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다.
-잊혀진 영웅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에 존재하는 ‘부서진 검’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무기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공동의 마나가 마법의 사용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부서진 검’을 쥐는 순간, 잊혀진 영웅과의 대련이 시작됩니다.
마법도, 기존의 장비도 사용하지 않고 잊혀진 영웅을 상대하라니.
부서진 검이라 하면, 이름 그대로 주변에 보이는 다 부러져 가는 무기들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배려는 해 준다는 것일까?
-1분 동안 ‘부서진 검’을 쥐지 않으면 대련 자격이 취소됩니다.
-대련 자격이 취소될 시, ‘잊혀진 영웅의 검’이 회수되며 던전 입장 자격이 박탈당합니다.
자신이 없는 자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게 설정되어 있었다. 물론, 도망친다면 던전의 첫 발견 혜택이나 ‘잊혀진 영웅의 검’도 빼앗기게 되겠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세운은 이대로 물러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주변을 넓게 둘러본 후, 그나마 상태가 좋아 보이는 장검 하나를 빼 들었다.
이가 두 군데쯤 나가 있었지만, 공동의 검 중에서는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잊혀진 영웅과의 대련이 시작됩니다.
챙!!
세련이 검을 쥐는 순간, 대각선으로 검을 내리고 있던 영웅이 재빠르게 달려들었다.
곧바로 검을 내려치지 않았다면, 일격에 중상을 입고 말았을 것이다.
“간만의 도전자로군.”
돌로 이루어진 회색의 영웅이 입을 열었다. 단순히 보스 몬스터로 설정된 적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아마도 녀석의 정체는, 영웅의 잔재.
이 공동에서 수련하던 영웅의 정념이 뭉쳐서 만들어진 존재겠지.
“간만이라면, 저 말고도 도전자가 있었나 봅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 명 있었지.”
“당신이 살아 있는 걸 보면 그 도전자들은 전부 실패했겠네요.”
“정답이다.”
횡으로 휘둘러 오는 영웅의 검.
실체도 아닌 잔재 따위가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니, ‘영웅’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세운이 검을 정면으로 막아보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째앵!
세운의 검이 부러졌다.
아무리 ‘부서진 검’이라 하여도 영웅이 들고 있는 검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부서져도 같이 부서질 줄 알았는데.
그런 예상은 가뿐히 빗나갔다.
세운의 검을 부러트렸음에도, 영웅이 들고 있는 검은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한 바퀴 굴린 세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의 부서진 검을 집어 들었다.
곧바로 세운을 향해 따라오는 영웅을 보고 있자니, 검의 상태를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지만,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군. 이상해.”
캉, 카앙!
쨍!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고작 검을 두 번 받아쳤을 뿐인데, 세운의 검이 부러지며 날이 튕겨 오른다.
“재능의 영역보다는 경험으로 내 공격을 알아채고 있어. 하지만, 몸의 움직임은 경험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세운의 눈이 반짝였다.
고작 검을 몇 번 섞었을 뿐인데, 영웅은 세운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숙련된 경험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약한 몸뚱어리.
지금의 세운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었다.
“튜토리얼의 첫 번째 장에서 검기를 사용하다니. 애초에 시험을 통과시킬 생각이 있긴 한 겁니까?”
“호오, 검기를 알아챈 건가?”
영웅의 검이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검기(劍氣).
검을 매개체 삼아 내공을 불어넣어 눈에 보일 정도로 기를 발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검기를 불어넣는 순간 검의 절삭력과 내구도가 대폭 상승하기에 검기를 다루는 자의 손에 막대기만 들려도 훌륭한 살상 무기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검에 통달한 고수가 아니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게 바로 ‘검기’였다.
그런 검기를 튜토리얼의 첫 번째 장에서 선보이다니. 지금까지 아무도 통과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 애초에 위치부터가 말도 안 되긴 했다.
바위산의 절벽을 맨몸으로 오를 수 있는 신체 능력과 던전을 찾아낼 정도의 탐지 능력이 없는 자라면 이곳에 도착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것도 통과하지 못하는 자라면 차라리 통과하지 않는 게 나을 테니까.”
“이곳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건 나를 먼저 쓰러트리면 알 수 있을 거라네.”
타앗!
영웅의 공격은 한결같았다.
오로지 공격.
실력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기에 행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막아 볼 테면 막아 보아라,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보아라, 반격할 수 있으면 반격해 보아라.
자신의 검술에 대한 자신이 있기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이에 세운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회피밖에 없었다.
십로담퇴의 보법을 살려 최대한 공격을 피해내며, 상대의 검술을 지켜본다.
하지만, 영웅은 검술은 물론 능력치까지도 전부 세운을 뛰어넘고 있었다. 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어쩔 수 없을 때마다 검을 희생시키며 몸을 사려야 했다.
“계속 피하기만 할 텐가? 몬스터도 아니고, 얌전히 공격 패턴을 파악 당할 생각은 없다만.”
과연, 그 말 그대로였다.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라면 일정한 공격 패턴이 보이고, 그에 따른 공략을 준비하기 마련이지만, 영웅의 공격은 수십, 수백 가지의 변수를 낳고 있었다.
같은 상황, 같은 자세에서도 때마다 다른 공격이 날아왔기에 공격을 어림짐작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면.’
세운이 하나의 무공을 떠올린다.
태극권.
그 묘리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영웅의 검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가오는 영웅의 검에 또 하나의 검을 희생시킨 후, 세운은 눈빛을 바로잡으며 탐욕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태극검(太極劍) ]– 무당파의 기초검법으로써 태극권과 마찬가지로 태극의 묘리를 갖추고 있다.
마몬의 보물이 있는 이상, 태극권의 묘리를 검으로 가져오기 위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보물창고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도, 태극검의 묘리가 머릿속에 스며든다.
“눈빛이 달라졌군. 이제 조금 기대해도 되겠지?”
영웅이 어김없이 세운에게로 도약해 온다.
태극권과 마찬가지로, 세운이 검을 느릿하게 회전시킨다.
두 눈은 ‘밤 올빼미의 눈’까지 발동되며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영웅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그렇게 검이 다가오기 직전.
‘사선 올려 베기!’
영웅의 검 끝이 아래로 기울어지며, 오른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포착되었다.
멈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느리게 회전하던 세운의 검이 영웅의 검을 따라 움직인다.
“호오?”
츠츠츠츳!
단순히 검을 받아치던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영웅의 검결을 따라 움직이며, 아주 천천히 그 방향을 다른 곳으로 인도한다.
이것이 바로 태극검의 묘리.
검을 밀어붙여도, 급격하게 방향을 비틀어도, 다급하게 검을 빼내어도 허점이 생기고 만다.
다만, 상대는 이대로 당황하여 허점을 드러낼 자가 아니다.
검기를 발현할 정도의 실력자답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왼발을 내뻗어 세운이 그리던 태극의 범위에서 완전히 빠져나간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움직임인데, 영웅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반대로 세운의 검을 휘감아 온다.
궤도가 비틀어지며, 손목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검을 놓치고 만다.
“좋은 한 수였다만, 그것만으로는…….”
여유롭게 조언을 내뱉으려던 영웅이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분명 이대로 한발 물러서 재정비에 나서리라 생각했던 세운이, 되레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법이나 각법을 사용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이 정도 대련했으면 그게 자살 행위라는 것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영웅이 가볍게 한 발을 빼며 검을 휘두르는 순간, 세운의 몸은 두 동강 나고 말 테니까.
그리고 영웅은 볼 수 있었다. 세운의 반대쪽 손에 들린 부서진 검을 말이다.
“어느새!”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세운의 내공이 거칠게 휘몰아쳤다.
부서진 검에 내공이 둘러싸이며 붉은 송곳니가 되었다. 검기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이번 공격으로 검이 부러지고 말 테지만, 상관없었다.
오로지 한 방. 한 번의 공격이면 충분하다.
콰아앙!!
세운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공동에 늑대의 울부짖음이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