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9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94화(190/675)
제 194화
리빙 라바.
이름 그대로 살아 있는 용암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정령형 몬스터라 물리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으며, 불 속성 공격은 완전히 무시한다.
흔히 불 속성 몬스터의 상극이 물 속성이라고는 하지만, 녀석의 열기가 워낙 강해 어지간한 물 공격은 녀석에게 닿기도 전에 증발하고 만다.
뛰어난 실력은 물론 녀석을 상대할 속성 공격이 가능해야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 그게 바로 리빙 라바라는 몬스터였다.
“혀, 형님. 저놈은 진짜 위험해 보이는데, 이번에야말로…….”
“그래, 저놈을 찾으러 여기에 왔지.”
“‘그래’는 무슨, 도망칩시다. 형님! 아, 왜 굳이 힘든 일을 찾아서 하십니까아!”
“아, 그리고 너한테도 부탁할 게 있다.”
원래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 했는데, 동료가 박정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역할이 있었다.
이내 저런 놈을 상대로 자기가 뭘 할 수 있냐며 뒷걸음질 치는 녀석에게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놈은 내가 상대할 거야.”
“헤헤, 역시 그렇죠? 전 저기 구석에서 가만히 짱박혀 있겠습니다!”
“대신, 내가 저놈을 상대하는 동안 저것들이 날 방해하지 못하게만 해 주면 돼.”
“저것들…… 말입니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리빙 라바 한 마리.
용암 호수의 열기는 여태까지 보았던 것들과 차원이 달라 다른 몬스터라도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는데, 무슨 말인가 싶어 박정필이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세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크르르르-”
“샤아-”
용암 연못을 중심으로 사방에 뚫린 통로를 통해 다양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세운과 박정필이 지나쳐 온 통로에는 그 수가 적었지만, 다른 통로에서는 한 곳당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나는 중이었다.
마치, 왕을 지키기 위해 성의 기사들이 등장하는 듯한 상황.
“무, 무, 무, 무, 무, 무립니다!”
“일단 시선만 끌고 있어. 내 상황만 끝나면 바로 정리해 줄 테니까.”
“형님 상황은 언제 끝나는데요?”
“삼십 분쯤 걸리려나.”
“무리! 무리! 무립니다아아!”
어느덧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수는 50 이상. 소형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라 용암 안에서 유영하던 시 서펜트 같은 대형 몬스터도 기어 올라왔다.
당연하게도 박정필이 저것들을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 강한철이나 유서아라도 꽤 고전하지 않을까 싶은 수였다.
하지만.
“쓰러트리라는 게 아니잖아. 시간만 끌고 있어.”
“무리! 무리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제가 어떻게 시선을…….”
“시선은 이미 끌린 것 같은데?”
이제 와서는 정말 궁금할 지경이다.
저건 선천적인 재능일까, 아니면 고유 스킬인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발레포르가 내려준 권능 중 하나일까?
자기는 절대 못 한다며 비명을 지르는 박정필을 향해 공동의 모든 몬스터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심지어는 리빙 라바 역시 마찬가지.
“정 위험해 보이면 내가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좀 버티고 있어 봐.”
“형니이이임!”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드디어 하이라이트라며 관람을 준비합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배꼽이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사수합니다.
세운도 박정필이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누군가 시간을 끌어줘야만 했으니까.
만약 박정필이 정 버티지 못하고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면, 세운도 나서서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럼, 잘 부탁한다.”
“으아아아악!”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박정필을 떼어내고, 세운이 리빙 라바를 향해 움직였다.
녀석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몬스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하이라이트가 너무 빨리 끝나면 아쉽지 않겠냐며 계약자를 도와주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과연 그렇겠다며 마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만약, 박정필이 도망치자마자 몬스터에게 포위되어 먹히게 된다면? 발레포르 역시 한껏 기대했던 하이라이트가 순식간에 끝나고 만다.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게 내버려 두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마계의 생활에서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던 발레포르에게 박정필이라는 존재는 최고의 웃음거리였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발레포르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자신의 계약자를 정식으로 사도로 임명합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자신의 계약자에게 자신의 신성을 불어넣습니다.
“으악, 뜨거워어! 뭐하는 겁니까! 맨날 비웃기만 하면서!”
치이익!
박정필이 다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갑옷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안으로 발레포르의 성흔이 새겨지고 있었다.
이어서 차오르는 성흔.
울먹거리며 소리를 내지르던 박정필도 곧 그 힘을 깨달았다.
“어, 어어……?”
한층 더 가벼워진 다리.
마침 저 멀리서 몬스터가 기습적으로 쏘아낸 용암을, 박정필이 너무나도 가볍게 피해 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이제 준비는 완벽하다며 어서 자신을 웃겨주라며 자리를 잡습니다.
– 마계의 마왕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아, 씨, 몰라! 저 죽으면 죽어서라도 형님 따라다닐 겁니다! 잡을 테면 잡아봐라, 이놈들아으아아악!!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오오!”
* * *
‘잘 버티고 있네.’
리빙 라바를 향해 달리던 세운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수십의 몬스터가 박정필을 노리고 있었지만, 그 어떤 공격도 녀석에게 닿지 않았다. 체계적인 움직임도 아닌데 어떻게 저리 잘 피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발레포르의 사도로 인정받을 정도면 이제 알아서 하겠지.’
박정필의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발레포르의 신성.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사도로 인정받고 말았다.
중간에 레비아탄의 입김이 조금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권유일 뿐이었고 발레포르가 마신의 눈치를 보고 사도를 임명한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사도를 임명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신성까지 나눠줬다면 박정필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세운은 뒤쪽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새까맣게 타들어…… 녹아내려라…….”
리빙 라바가 손을 뻗자 용암이 쭈욱 뻗어졌다.
살아 움직이는 용암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녀석은 이 용암 호수 그 자체다. 단순히 호수 중앙에 있는 형체뿐만 아니라, 이 호수 전체가 녀석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콰륵!
부그르-
세운이 있던 자리로 거대한 용암의 손이 닥쳐왔다.
공격이 빠른 편은 아니었기에 피하는 건 문제 없었지만, 그 파괴력이 엄청났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방어구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열기.
과연, 화산을 다스리는 주인에 걸맞은 힘이었다.
“익어라……. 잿더미가 되어 허공에 흩날려라…….”
용암으로 이루어진 손바닥은 시작일 뿐이었다.
용암 호수의 용암이 부르르 끓어오르며 온갖 형태로 세운을 공격해 왔다.
하나하나가 빠르지는 않지만, 그 수가 워낙 많기도 하고 바닥에 닿자마자 풍선처럼 터져나가는 바람에 범위 역시 엄청났다.
‘역시, 까다로운 놈이야.’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공격을 쏟아내는데, 공격을 피해 낸다고 해도 용암 위를 걸어서 다가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다가간다고 해도 근거리 공격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드래곤 하트의 속성을 치환하려면 놈에게 딱 붙어야 하는 것은 물론 놈의 움직임을 막아내야만 한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난이다.
그리고 세운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21층에서 미리 ‘그것’을 준비해 둔 것이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레이즈 골렘(Raise golem) ]– 흑탑(黑塔)의 네크로맨서를 대표하는 마법 중 하나로 주변의 물질을 이용하여 골렘을 일으킨다.
레이즈 골렘.
소환계 마법 중에서도 5서클에 달하는 강력한 소환 마법이다.
설명에서는 간단하게 소환할 수 있는 것처럼 쓰여 있었지만, 실제로 골렘은 이렇게 쉽게 소환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바로 골렘의 핵.
어지간한 마나석으로는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주로 상위 몬스터의 마석 등을 가공하여 만들어 내는데, 핵을 만드는 과정만 해도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가 바로 설계.
골렘의 형태는 고정된 게 아니다. 소환사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소환이 가능하다.
자칫 설계에 실패하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약점이 주목받는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기니 엄청난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 볼캐닉 골렘의 핵 ]분류 : 마나석
등급 : A
설명 : 자연적으로 형성된 볼캐닉 골렘의 핵을 이루고 있던 마나석.
능력 : 1. 불의 거인 – 본 핵을 매개체로 ‘볼캐닉 골렘’ 소환 시 자동으로 최적의 형태 설정
2. 불의 전사 – 본 핵을 매개체로 ‘볼캐닉 골렘’ 소환 시 전투력 대폭 상승
3. 굳은 용암 – 불 속성 공격에 대한 저항력 대폭 상승
이게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줄만 알면, 따로 설계하지 않아도 본 모습을 찾아간다.
물론 마몬의 보물을 통해 골렘의 설계에 대한 지식도 차오르는 중이었지만, 어지간한 설계도를 적용해 봤자 21층에서 보았던 볼캐닉 골렘의 힘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쿠구구구!
슈르르륵!
핵을 중심으로 주변의 대지와 용암이 모여든다.
뜨거운 대지가 핵을 지키기 위해 내갑을 이루고, 그 주위로 용암이 회로를 포함한 유동적인 신체를 만들어 낸다.
가슴이나 주먹, 골반과 같은 핵심 부위에 바위로 이루어진 단단한 외갑이 생겨난다.
정확하게 21층에서 보았던 볼캐닉 골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저놈에게 돌진해라.”
“돌진하라.”
철퍽!
세운의 지시를 재창한 골렘이 용암 호수에 뛰어든다.
다른 곳의 용암과는 비교도 안 되게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용암이지만, 이 볼캐닉 골렘은 바로 그 용암으로 만들어졌다.
외부인의 침입을 극도로 꺼리는 호수였지만, 골렘은 마치 제집 드나들 듯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호수가 꽤나 깊었지만 골렘을 완전히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었다.
“허락 없이 만들어진…… 끓어오르는 존재여…….”
골렘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리빙 라바의 공격도 거세졌다.
주변의 용암이 넘실거리며 골렘을 밀어붙이고, 용암으로 이루어진 창칼과 도기가 날아온다.
하지만, 같은 용암으로 이루어진 골렘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걸음에 가속도를 붙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두 손은 어깨 위의 세운을 보호하기 위해 올린 채로 말이다.
“끓어오르는 존재여……. 어찌 고향을 배반하는가…….”
리빙 라바가 말을 걸어보았지만, 골렘은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하게 앞으로 전진하다 얼마 안 가 그 앞에 도달하였다.
용암 호수의 중앙에 이르자, 세운은 엄청난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숨이 막히는 수준이 아니라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얼음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속박해.”
“속박하라.”
콰득!
골렘이 양손으로 리빙 라바의 양팔을 붙잡았다.
본래 물리적인 속박 따위 통할 리가 없었지만, 같은 용암으로 이루어진 골렘이었기에 속박의 효과는 뛰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골렘의 어깨 위에서 설룡의 드래곤 하트를 쥔 채로 대기하고 있던 세운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목적지는 리빙 라바의 왼쪽 가슴.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장과 같은 위치에 있는 녀석의 핵을 향해.
콰직!
설룡의 드래곤 하트를 쑤셔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