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9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96화(192/675)
제 196화
그 시각, 디아블로 클랜의 요리사, 김미정과 팀을 이룬 유서아는 한창 22층의 시련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쿠르르르!
화산의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검은 파도.
그것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크기를 불려 나가며 검은 해일이 되어 대지 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야말로 재앙(災殃) 그 자체.
“저, 저건 어쩌죠? 일단 피하는 게…….”
김미정이 저도 모르게 활을 내렸다.
스카베에서부터 활을 연습하기 시작하여 서리 요새에서는 그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전투에서도 자신 있는 그녀였지만, 저런 해일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기괴한 별자리’라 불리는 성좌인 서열 10위의 마왕, 부에르와 계약한 그녀는 전투계 플레이어가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숨는 것을 제안했지만, 유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대로 나아갈 거예요.”
단호하게 대답하는 그 모습은 마치 세운을 보는 듯했다.
뒷걸음질을 치던 김미정과는 달리, 유서아는 쌍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뒤에서 망설이고 있는 김미정을 위해 입을 열었다.
“믿어주세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몰라도, 여태까지 세운과 함께 디아블로 클랜을 이끌던 유서아의 말이었다.
김미정은 잠시 망설이면서도 곧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왔다.
“저도 도울게요!”
– 플레이어 김미정이 ‘붉은 별의 식사’를 사용합니다.
– 플레이어 유서아의 힘과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감사해요.”
유서아의 몸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김미정은 비록 대부분의 힘을 요리하는 데 사용하는 중이지만, 부에르의 권능은 타인의 힘을 강화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타앗!
유서아가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높게 치솟은 해일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은 무모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재앙을 상대로 한낱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누가 보아도 이다음 상황은 두 인간이 검은 해일에 잡아먹히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그때, 유서아의 쌍검이 섬광처럼 휘둘리며 해일에 닿았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화산의 토석류’를 지배합니다.
해일이 멈췄다.
시간이 멈춘 듯한 비현실적인 장면.
왼손등 위에 위치한 유서아의 성흔이 신성을 불태우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과연 사도의 능력과 자신의 힘은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본래 유서아의 잠재력인 ‘지배’는 어디까지나 베어낸 생명체를 대상으로 발동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서열 1위의 대마왕, 바알의 신성이 융합된 그녀의 잠재력은 눈앞의 해일과 같은 현상마저 지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서걱!
바로 이어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검이 수십 번 휘둘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우뚝 서 있는 해일의 중앙에 검흔이 쌓이고 쌓이더니 결국 기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먼저 통과하세요!”
“네!”
김미정이 신체를 강화해 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이렇게 거대한 해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건 불가능했다.
벌써부터 신성이 바닥까지 떨어지며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렇게 둘이 검은 해일을 통과하는 순간.
쿠르르르르-!!
멈춘 듯한 시간이 다시금 흘러가며 검은 해일이 화산의 아래를 향해 뻗어나갔다.
“와, 정말 대단하세요! 이 정도면 클랜장이랑 맞먹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 정도는.”
유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세운을 따라가기 위해 항상 노력을 반복하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었다.
따라잡지 못할지언정 방해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넘어,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설룡의 레어에서 미약하게나마 세운의 과거사와 그 심정을 들은 터라 그녀의 결심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방금의 토석류를 피하지 않고 맞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위기를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를 닮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얼른 이동해요!”
“네!”
쿠르르릉!
화산의 분화구에서 다시 한번 검은 구름이 크게 분출되었다.
* * *
– 23층의 시련 ‘용암 지대’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남은 시간 : 42시간 52분
– 히든 퀘스트 ‘화산의 주인’ 완료.
– 숨겨진 갈림길로 인한 공적치 추가.
…….
– 총 누적 공적치 35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23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분화구를 빠져나올 무렵, 23층의 시련이 종료되었다.
회귀 전에는 리빙 라바를 처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도망쳐 공동의 반대편으로 돌아갔었지.
시련 종료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동굴을 탈출하기만 하면 되는가 보다.
심지어, 이렇게 분화구를 통해 빠져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우에에에엑!”
분출된 용암과 함께 세운과 박정필의 몸이 높게 솟아올랐다.
아래에는 뜨거운 용암이, 주변에는 새까만 흑연이 가득했다.
골렘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마나도, 내공도 없는 지금 상태로 제대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쿠당탕!
그렇게 정점을 찍은 후, 둘은 골렘과 함께 바닥에 추락했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골렘의 품에서 빠져나오고, 뒤쪽에서 무언가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둘을 지켜주던 볼캐닉 골렘이 어느 한 곳 멀쩡한 부위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같은 속성이라 데미지를 덜 받는다고는 하나, 상대는 무려 리빙 라바였다.
애초에 저 숨겨진 갈림길은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공략할 수도 없는 곳이었고, 그나마 공략할 방법이라면 회귀 전의 세운처럼 도망가는 것뿐이었다.
리빙 라바는 그만큼 까다롭고, 또 강한 몬스터였으니까.
그런 몬스터와 마주한 채로 덤덤하게 공격을 맞으며 버티고 있었으니…….
볼캐닉 골렘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고했다.”
“수고…… 감사합…….”
빠직.
골렘의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골렘의 안광이 사그라들고, 핵을 중심으로 뭉쳐 있던 용암과 바위가 사라져갔다.
대충 살펴보니 핵이 색을 잃은 것은 물론 마지막 충격으로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수리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비록 감정조차 존재하지 않는 소환체였지만, 녀석 덕분에 드래곤 하트가 가진 속성을 치환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녀석의 핵 위에 손을 올렸다.
나름의 애도 방식.
그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이 깨어납니다.
세운의 성흔이 빛을 발했다.
게다가 그 힘은 세운이 평소에 주로 사용하던 공포나 광란의 힘이 아니었다.
아우터를 집어삼킬 때 사용하던 정체 모를 세 번째 능력.
‘이게 어째서?’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우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빛을 억제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성흔을 다루는 연습을 해 왔음에도 이번만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세운은 곧 성흔의 목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스-
반으로 갈라진 골렘의 핵. 그 핵이 가루처럼 잘게 부서지며 성흔에 흡수되고 있었다.
‘골렘의 핵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그 이름조차 알아내지 못했지만, 성흔의 세 번째 능력은 어디까지나 아우터를 소멸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이 골렘의 핵과 아우터가 무언가 관계가 있는 것일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이 노리고 있던 잔반이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허무하게 포크를 떨어트립니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여태까지의 반응으로 보아, 베엘제붑의 후각은 절대적이었으니까.
만약 이 골렘의 핵과 아우터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었다면 베엘제붑이 먼저 악취를 느끼고 코를 쥐어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식사 준비까지 하고 있었던 것을 보아, 아우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골렘의 핵이 성흔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 성흔이 ‘볼케닉 골렘의 핵’에 남은 자아를 흡수하였습니다.
– 성흔의 깊숙한 곳에 에고(Ego)가 생겨납니다.
‘에고?’
에고란 곧 자아를 뜻한다.
그 예로 에고 웨폰처럼 무기에 자아를 깃들게 하여 힘을 키우거나, 반대로 물건에 에고를 봉인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에고의 존재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탑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그 자아가, 세운의 성흔에 깃들었다.
– …….
혹시나 했지만, 그 이후로 성흔에서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신성을 끌어 올려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 아직까지는 그 힘을 알아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성흔에 에고가 깃들다니…….’
성흔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신의 흔적.
세운의 경우에는 ‘목신, 판’의 신성을 흡수하여 강제로 만들어 낸 것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신의 힘이 담긴 고유의 그릇이었다.
그곳에 자아가 깃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세 번째 능력…….’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흔의 세 번째 능력은, 단순히 아우터를 소멸시키는 능력이 아닐지도 몰랐다.
“와, 완전히 박살이 났네. 저 진짜 아까는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무슨 진짜 화산이 폭발해?”
어느덧 정신을 차린 박정필이 가까이 와 말을 걸었다.
하긴, 세운도 그 상황에 화산이 폭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부글부글-
화산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열기가 확연히 강해지고, 분화구에서 회색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안을 가득 채운 용암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이 들끓고 있었다.
세운과 박정필이 겪은 폭발은 본격적인 화산 폭발에 앞선 사전 징후였을 뿐이리라.
곧, 본격적인 폭발.
즉, 24층의 시련이 이어질 것이다.
“그만 여유 부리고 저기나 봐라.”
“에? 이번에는 진짜 좀 쉬면 안 되겠습니까? 저 진짜 고생했는데! 형님은 안 보였겠지만, 그 몬스터들이 얼마나 사나웠는지 아십니까?”
세운이 아래의 광경을 내려보았다.
세상의 모습은 흔히 등반 후에 보는 아름다운 광경과는 전혀 달랐다.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었고, 바닥은 화산재로 뒤덮였다.
왼쪽은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메말라 쩍쩍 갈라져 있었고, 오른편은 폭설에 화산재가 뒤섞여 검은 눈이 대지를 채우는 중이었다.
흡사 멸망 직전의 세상을 보는 듯한 기분.
“특히 머리 두 개 달린 똥개 새끼! 와, 진짜 팔 하나 뜯기는 줄 알았다니까요? 제가 멋지게 뙇! 몸을 비틀어서 놈의 머리를 박찼기에 망정이지!”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꼴이 딱 그랬을 거라며 뒤늦은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 사이, 아직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숲이 하나 있었다.
그 숲을 따라 길이 이어지며, 성벽이 반쯤 무너진 도시가 보였다.
저곳이 바로 30층의 시련이 진행되는 마지막 필드.
22층의 시련에서 말한 ‘나아갈 방향’이란 바로 저곳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 이것도 들으셔야 합니다! 형님이 나오기 직전에 웬 도마뱀 머리가 불을 내뿜었는데, 하마터면…… 형님? 듣고 계십니까?”
“슬슬 다 쉬었겠지?”
“네? 아니, 아직 십 분도 안 됐는데 쉬긴 뭘 쉽니까? 그러지 말고 저희 조금만 더 쉽시다. 진짜!”
박정필이 이번에는 진짜 못 움직이겠다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세운 역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당장만 해도 드래곤 하트의 속성을 치환하느라 마나와 내공은 물론 신성까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게다가 이곳은 열기가 가장 강한 화산의 정상.
불 속성의 마나를 머금은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여섯 번째 서클을 만들어 내기 가장 어울리는 장소였다.
그런 이점이 있음에도 세운이 떠날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부글부그르르-
“미안하지만 이번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거든.”
“넵?”
콰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징후를 보인 지 얼마나 됐다고, 결국 화산이 폭발했다.
이번에는 처음 겪은 것처럼 용암을 한 번 토하고 끝내는 정도의 폭발이 아니었다.
화산이 활화산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본격적인 대폭발.
“가자.”
“같이 갑시다. 형니이임!”
제대로 숨 고를 틈도 없이 24층의 시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