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19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03화(199/675)
제203화
눈을 감았다가 뜨자 거짓말처럼 주위의 환경이 바뀌어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환경은 25층에서 보았던 숲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스모크는 없었지만, 검은 구름과 잎사귀에 쌓인 잿가루로 인해 광합성을 하지 못해 죽어가는 풀과 나무들.
동물들도 모두 도망간 듯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건 오직 둘.
세운과.
– 26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아기 새 구출
– 숲을 탈출하던 중, 당신은 아직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기 새를 발견하였습니다.
– 그 안쓰러운 모습에 당신은 숲 밖으로 아기 새를 데리고 나가기로 결심합니다.
“삐약?”
세운의 품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전부였다.
‘이런 걸 보면 진짜 누군가의 경험을 토대로 시련이 만들어진 것 같단 말이지.’
아기 새를 구출하라니.
생사를 걸고 싸워나가는 플레이어들에게 내거는 시련치고는 꽤 귀여운 내용의 시련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시련이 쉽다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몸, 또는 동료와 함께 부딪히기만 하면 되던 여태까지의 시련들과 달리 이번 시련은 아기 새라는 보호 대상이 존재했으니까.
보이는 것처럼 아기 새는 아무런 전투력도 없었기에, 조금만 방심해도 큰 상처를 입고 만다.
단순히 난이도로 치면 꽤 어려운 시련 중 하나였다.
‘슬슬 시간제한도 없어졌네.’
하긴, 이제부터는 시간제한이 의미 없는 시련이 대부분이었다.
빨리 공략에 성공하면 보상으로 얻는 공적치가 늘어나기야 하겠지만, 시간보다는 과정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26층의 시련 역시 마찬가지.
솔직히, 이곳의 시련은 시간이고 뭐고 의미 없었으니까.
“뺙, 삐약! 삐약!”
세운이 시련을 준비하던 중, 아기 새가 반대편을 향해 열심히 짹짹거렸다. 마치 위험하다며 세운에게 경고라도 해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기 새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26층의 시련을 알리는 화마(火魔)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화르륵!
햇빛을 받지 못해 죽어가던 나무가 처량하게 타올랐다.
수분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삐쩍 말라 있었기에 불길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며 숲을 집어삼켰다.
이게 바로 이번 시련의 본격적인 난관.
21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테마는 여전히 자연재해. 이번 시련 같은 경우에는 ‘산불’이라 할 수 있겠다.
불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아기 새의 몸은 솜털처럼 약했다.
불에 닿으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매연을 마셔도 위험하고 열기에 오래 노출되더라도 죽을 수 있다.
“삐약! 삐약! 삐약!”
아기 새가 작은 부리로 세운의 팔을 건드린다. 어서 도망치지 않고 뭐하냐며 재촉하는 듯했다.
시야 끝에서 일어난 산불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중이었으니까.
‘예전에는 제법 고생했었지.’
회귀 전에는 아기 새를 귀여워할 틈도 없이 곧바로 내달렸다.
어차피 산불로부터 도망가는 시련이었기에 여정의 지침표고 뭐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쭉 달렸었지.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세운이 산불이 일렁이는 쪽으로 손을 들어 올리며 심장 주변의 서클을 회전시켰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갑작스러운 홍수처럼 엄청난 양의 물을 생성하여 적을 쓸어 버리는 청탑의 대범위 마법.
쏴아아아-!
플래쉬 플러드.
그 이름 그대로, 세운의 앞에서 홍수가 일어났다.
잿가루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땅에서 물이 콸콸 뿜어나오는 장면은 비현실적이기 그지없었다.
“삐약……?”
6서클 마법인 만큼 서클에서 마나가 쑥쑥 빠져나갔다.
화마(火魔)와 수마(水魔)의 혈투.
숲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던 산불이 거세게 저항해 보지만, 플래쉬 플러드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애초에 상성으로 밀릴 뿐만 아니라 홍수가 인근 대지와 나무를 적시자 더 이상 태울 게 사라진 산불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마나를 엄청나게 소모하긴 했지만, 덕분에 산불을 깔끔하게 꺼트렸다.
도망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여유롭게 아기 새를 데리고 목적지를 향하면 될 뿐이다.
이게 바로 6서클 마법의 위력.
세운의 경지가 26층의 시련 따위를 가뿐히 뛰어넘었다는 증거였다.
– 히든 퀘스트, ‘산불 진압’을 완료하였습니다.
– 시련 ‘아기 새 구출’에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이것도 히든 피스로 인정되나 보네.’
여정의 지침표로는 알아내지 못했던 히든 피스다. 아니, 만약에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회귀 전의 세운에게 산불을 꺼트릴 능력은 없었다.
“삐이…….”
“많이 놀랐지?”
“삐!”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아기 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크기가 어찌나 작은지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 두 개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야 할 정도였다.
“그럼, 가 볼까.”
세운이 여유롭게 다리를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회귀 전에는 산불에 쫓기느라 여정의 지침표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26층에서 발견한 히든 피스 역시 없었다.
어차피 시간제한도 사라졌으니 느긋하게 이동하며 히든 피스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낼 예정이다.
여정의 지침표는 없지만, 탐욕의 권능으로 강화된 감각과 6서클에 이르는 마나 감응도라면 어지간한 요소는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 새는 무슨 종이지?’
“삐이?”
세운이 아기 새를 내려보았다.
회귀 전에는 관찰할 틈도 없었는데, 느긋하게 보니 생각 이상으로 귀여운 녀석이었다.
녹림을 떠올리게 하는 영롱한 초록빛을 띠는 날개와 푸른 부리. 눈은 또 어찌나 큰지 그 안에 세상이 다 담겨 있는 듯했다.
시련 내용을 보자면 숲에서 주운 아기 새일 뿐일 텐데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세운의 손길을 받으며 기분 좋게 삐약거리고 있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알고 있는데. 새끼라서 그런가, 얘는 잘 모르겠네.’
세운이 상대했던, 또 공부했던 몬스터는 대부분 성체의 모습이었다. 새끼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공부할 여력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래도 특징을 통해 유추되는 몬스터가 하나 있긴 했는데.
‘설마.’
세운이 곧 고개를 저었다. 그 희귀한 몬스터가 시련에서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존재할 리 없었으니까.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던 중, 뒤쪽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어딘가 끄지 못한 불씨가 남아 있던 것일까?
그럴 리가. 만약 불씨가 남아 있었다고 해도, 불에 탈 만한 풀과 나무들이 세운의 마법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이 상태로 산불이 재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삑! 삐익!”
아기 새마저 다급하게 뒤쪽을 향해 삐약거렸다.
고개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처음 숲을 불태우던 것보다 더 큰 산불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니, 산불이 아니었다. 숲을 모두 아우를 정도로 거대한 불의 날개를 가진 새.
그것도 정상적인 불이 아닌 매캐한 연기로 점칠 된 것처럼 새까만 불의 날개를 가진 놈이었다.
“흑괴조(黑怪鳥)?”
세운도 회귀 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공부했었던 몬스터지만, 실제로는 처음 본다.
본래는 제대로 된 형태가 없이 검은 구름처럼 세상을 헤매다 재앙이 닥치는 곳에 도래한다는, ‘재해의 발현’이라고도 불리는 놈.
주변의 재앙에 따라 자신의 속성을 바꾸는 놈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불의 속성을 머금은 듯했다.
‘이게 이번 시련을 주도하는 몬스터였다.’
세운은 순간 지금까지 겪었던 시련들을 떠올렸다.
2층의 시련서 보았던 강바닥 메기, 5층 시련의 스톤 라바, 6층의 모래 귀신 등.
시련에는 해치워야 하는 정식적인 보스 몬스터 이외에 숨겨진 보스 몬스터가 꽤 많았다.
그중에서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흑괴조나 화산에서 보았던 골렘과 리빙 라바처럼 시련 그 자체의 주인 성격을 띠는 몬스터 역시 존재했다.
어쩌면, 층마다 그 시련을 담당하는 몬스터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발견하지 못한 층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어딘가 숨어서 시련을 일으키고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시련이라는 건 세운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체계적인 구조일 수도 있었다.
“삐익!”
아기 새가 부리로 세운의 팔뚝을 푹 찍었다.
도망치든 싸우든 어서 흑괴조에게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곤란한데.’
26층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건 세운도 예상하지 못한 사항이었다.
산불로부터 아기 새를 지키는 게 끝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마나를 퍼부어 ‘플래쉬 플러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단전 가득히 내공이 넘실거리고 있다지만, 흑괴조는 물리 공격으로 타격을 입히기가 까다로운 몬스터.
안 그래도 강한 몬스터인데 이런 페널티까지 입고 싸우면 세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도망가야 하나.’
사실, 이게 가장 현명한 대처법. 마나도 없는 상황에서 흑괴조를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그때.
피요오오-!!
어디선가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단순히 소리를 넘어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 흑괴조를 공격했다.
서거걱.
바람이 흑괴조의 날개를 가르고 불길을 잘라냈지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잘린 불길은 다시금 검게 타오르며 본래의 형상을 되찾을 뿐이었으니까.
“삐익!”
아기 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통통 튀어 올랐다.
그 방향을 보니, 진녹색의 새 두 마리가 저 멀리 높은 상공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녹풍(綠風).’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비취색의 날개가 검은 구름을 갈랐다.
날개를 파닥일 때마다 주변의 기류가 거세게 휘청이며 구름과 스모크가 저 멀리 퍼져나갔다.
녹풍.
자연의 바람이라고도 불리는 몬스터다. 아니, 몬스터라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의 힘을 한껏 머금고 있는 정령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 두 개의 돌풍을 보며, 세운은 아기 새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녹풍의 새끼였구나.’
녹풍은 정령에 가까운 존재인 만큼 생태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알을 낳거나 새끼를 키우는 모습은 탑의 대도서관에서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가 드물었다.
그래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녹풍의 새끼였다니.
회귀 전에는 어미가 등장하기는커녕 시련이 끝나자마자 아기 새가 사라졌기에 상상도 못 한 정체였다.
“피요오오-!”
“피이이이-!!”
“삐! 삐삐!”
시야 끝자락에 있던 두 녹풍이 순식간에 세운의 양옆으로 다가왔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
혹시 먼저 공격해 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세운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기 새가 제대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녹풍. 정령에 가까운, 영수(靈獸)라 불리는 존재가 둘이나 아군이 되었다.
비록 흑괴조에게 바람을 이용한 공격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데미지는 세운이 입히면 그만이다.
양옆에서 녹풍이 견제만 해 줘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시련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아기 새만 대신 보호해 주어도 충분했다.
– 시기의 눈초리가 ‘흑괴조’를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는 건 오랜만이지 않냐며 기분 좋게 혓바닥을 날름거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저건 또 처음 먹어보는 먹이라며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해합니다.
“잠깐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겠지?”
“삐약! 삐삐!”
조심스럽게 아기 새를 품에서 내려둔 후,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며 흑괴조를 노려보았다.
숲을 둘러싼 흑괴조의 검은 날개는 화마(火魔)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하지만, 이미 앞서 지진과 산사태, 화산 분화 등을 거쳐온 세운이었다.
목적 없는 불길 따위.
“얼른 진압해 주마.”
“그르아아아-!!”
전혀 무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