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0화(20/675)
제 20화
“놀랍군.”
혈랑의 어금니는 확실히 영웅의 목에 다다랐다.
하지만, 세운의 모든 힘을 담은 그 공격에도 영웅의 몸을 꿰뚫지는 못했다.
검기. 아니, 권기가 일렁거리는 영웅의 손에 검이 막혔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검을 막다니. 아무리 권기를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뛰어난 반사신경과 정확한 반응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파스스-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견뎌낸 부서진 검은 이름 그대로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모든 것을 담은 일격이었기에, 검마저 사라진 지금 세운의 몸은 빈틈투성이였다.
당장 영웅이 검을 회수하기만 해도, 세운은 반응도 하지 못한 채로 두 동강 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영웅은 그러지 않았다.
“정말 놀라워.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유검(柔劍)을 배운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의 말대로, 세운은 유검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마몬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여 꺼내 든 ‘태극검’을 통해 그 묘리를 습득했을 뿐.
탐욕의 권능을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다음 공격이야. 두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니. 그런 공격은 수많은 경험을 겪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인데.”
세운은 그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했다는 진실을 말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가던 그의 입이 멈출 때쯤에야, 세운의 입이 열렸다.
“시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물론, 합격이라네. 이 정도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면, 최소한 어디 가서 검을 빼앗기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영웅이 껄껄 웃으며 공동의 기둥을 향해 나아갔다.
그를 뒤따라가던 세운의 눈이 묘하게 반짝거렸다. 기둥에 꽂아 넣은 검의 칼자루가 금색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쥐어보게나.”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기억을 되짚으며 검의 정체를 예측하려 합니다.
그 과묵하던 마몬이 반응을 해 왔다.
그게 아니더라도, 세운은 칼자루를 보자마자 검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이 바로 ‘잊혀진 영웅의 수행처’의 보상.
잊혀진 영웅의 잔재가 자신의 시험에 합격하는 자에게 넘겨주기 위해 지켜온 힘이겠지.
척.
세운이 칼자루를 꼬나쥐었다.
바로 검을 빼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칼자루를 통해서 세운의 힘이 검에게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전의 내공, 서클의 마나. 근섬유가 머금고 있던 활력까지 가리지 않고 전부.
놀란 마음에 검을 놓으려던 찰나, 잊혀진 영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티게. 검이 주인을 인식하는 과정이니.”
주인을 인식하는 검이라.
탑에서 그러한 힘을 가진 검은 대부분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못 해도 A급 이상.
튜토리얼 단계에서 A급의 무기를 지니게 된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훨씬 쉽고 빠르게 당길 수 있었다.
꽈악!
세운이 이를 악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단전이 텅텅 비고, 서클의 회전이 멈추며 근육에 힘이 빠져나가도 악으로 버텼다.
악. 제대로 된 공격 능력 하나 없이, 오로지 ‘여정의 지침표’라는 고유 스킬 하나로 탑의 92층까지 오른 세운에게 가장 자신 있는 힘이었다.
이를 어찌나 꽉 물었는지, 잇몸에서 붉은 핏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온다. 활력에 이어 정신력까지 빼가는 것인지, 아찔한 두통과 함께 눈앞이 흐릿해진다.
드득!
기둥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묵직하던 칼자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금색 칼자루에 이어,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낡고 녹슬어 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힘이 부족한 듯하지만, 자네라면 금방 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지.”
아득해지는 정신 속으로, 잊혀진 영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손에 쥔 검에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작게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부디, 나에게 더 높은 곳을 보여주길 바라네.”
스스슷-
잊혀진 영웅의 형체가 부서지듯 녹아내렸다.
형체를 구성하고 있던 공동의 마나가 검을 향해 스며들어 간다.
그 순간.
채앵!
마침내 기둥에서 검이 빠지며 그 찬란한 몸체가 드러났다.
금색의 칼자루에는 성스러울 만큼이나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검은 다가오는 공기마저 가를 것처럼 날카로웠다.
-히든 던전, ‘잊혀진 영웅의 수행처’를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20,000point 상승합니다.
-잊혀진 영웅의 검,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을 획득하였습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탐스럽게 반짝이는 검, 뒤랑달을 바라보며 세운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 * *
[ 튜토리얼 첫 번째 장 – 적응 ]-여섯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십시오.
세운이 바위산을 올랐지만, 몬스터 웨이브는 세운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이번에도 역시 몬스터들이 캠프에 들이닥쳤다.
바위산 방향에서 튀어나온 회색의 원숭이들. 녀석들은 ‘브라운 몽키’에 비해 키나 덩치가 더 큰 것은 물론이고, 손에는 제법 그럴듯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원숭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다들 진형을 지켜 주세요! 진형도, 무기도 저희가 더 우위예요! 무서워할 것 없어요!”
유서아가 능숙하게 사람들을 지시했다.
어려운 것도 처음 한 번뿐이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그녀의 통솔력도 점차 발전하고 있었다.
서거걱-
사람들의 진형과는 별개로 유서아와 강한철은 원숭이들의 좌우를 찔러 들어갔다.
유서아의 검이 돌풍이 되어 원숭이들을 휩쓸고, 강한철의 주먹이 원숭이들을 짓뭉갰다.
그 모습이 마치 항상 별도로 몬스터를 상대하던 세운을 보는 듯했다.
“우끼익!”
“끼엑!”
세운의 도움이 없는데도 캠프는 훌륭하게 웨이브를 상대하고 있었다.
처음 이 세계에 도착해서 벌벌 떨기만 하던 모습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몬스터가 대부분 정리되자 강한철에게 다가온 유서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운 씨가 아직 안 돌아왔어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
정세운.
항상 무심한 눈초리로 캠프를 바라보며, 감정이 메마른 것처럼 차가운 말을 내뱉던 남자.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캠프는 이미 처참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아니었다면 유서아는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거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유서아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안 되겠어요. 세운 씨를 찾으러 가 봐야겠어요. 이번 웨이브가 끝나면 저와 함께 가주시지 않겠어요?”
“됐다.”
“……당신은 걱정도 되지 않나요? 세운 씨가 없다면 저희는 이미…….”
“우리가 걱정할 정도로, 그는 약하지 않다.”
강한철이 원숭이 한 마리를 거칠게 휘두르며 대답했다.
동방을 다스리는 지옥의 귀공자, 아가레스의 축복이 깃든 그의 힘은 이미 인간의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강한철의 대답에도, 유서아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정세운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번 웨이브는 무사히 막아 냈지만, 다음 웨이브도 막아 낼 수 있을까?
만약 네 번째 웨이브 때처럼, 세 종류의 몬스터가 한 차례씩 돌아갈수록 더욱 강해진다면 과연, 그들만으로 일곱 번째 웨이브를 막아 낼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이 머릿속을 채워 나갔다.
강한철은 그런 그녀를 슬쩍 내려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허공을 가리켰다.
“위를 봐라.”
“……위요?”
갑자기 위를 보라니.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늘 떠올라 있던 웨이브에 관련된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라 있었다.
그중에서도 강한철이 가리킨 것은 개인 공적치 랭킹이었다.
정리가 끝나간다지만, 아직 웨이브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기에 변동이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의문을 가지던 그녀는 금방 단 하나의 변동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운 씨의 점수가……!”
[ 1위 : 정세운 28,660point ] [ 2위 : 유서아 1,680point ] [ 3위 : 강한철 1,600point ]이만팔천육백육십.
애초에 세운의 점수가 자신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유서아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세운의 공적치는 대략 7,000point. 즉, 그들이 웨이브를 벌이는 사이 갑작스럽게 공적치가 네 배 가까이 뛰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즉.
“분명 어디선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짓을 벌이고 있을 테지.”
강한철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굳은 얼굴 속에서는 경쟁심인지 질투심인지 모를 묘한 투쟁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도착하기 전까지 웨이브를 막아 내며 최대한 힘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네!”
콰앙!!
강한철이 숨이 끊긴 원숭이를 대포알처럼 내던지자, 마지막 발악을 위해 무기를 휘두르던 원숭이들의 진형이 와르르 무너져 갔다.
* * *
“크윽…….”
세운은 눈을 뜨자마자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공복감. 배가 고픈 게 아닌, 마나에 대한 공복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던전의 최종 보상을 획득하기 위해 마나와 내공, 활력까지 전부 검에 밀어 넣어야 했었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최소한의 기운은 차렸지만, 아직 단전과 서클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당장 검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일단은 몸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우웅!
힘을 다한 근육이 움직임을 거부했지만, 이대로 누워 있어 봤자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
세운은 몸을 일으키며 가부좌 자세로 앉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외부의 작용에 초점이 맞춰진 서클과 달리 내부의 기운을 다스리는 힘이 강한 단전을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삼재공의 묘리에 따라 주변의 기운이 세운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웅!
우우웅!
흡수되는 기운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현존하는 모든 심법 중에서도 내공을 쌓는 속도가 가장 느리다고 알려진 삼재공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공이 흡수되는 속도가 캠프 때의 5배. 아니, 10배에 가까웠다.
“이게 무슨…….”
단전의 내공이 급속도로 차오르고, 몸을 조금 회복하자마자 세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 사태의 중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둥의 중심.
뒤랑달이 박혀 있던 자리에서부터, 농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용맥인가?”
용맥(龍脈).
풍수설에서 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 또는 그 정기가 모인 장소를 말한다.
탑에서는 이 의미가 ‘정기’가 아닌 ‘마나’의 의미로 통용된다.
그리고 이 장소는 단전과 서클을 단련하기 최적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었다.
씨익-
세운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전설의 검, 뒤랑달을 얻은 것만으로도 생각 이상의 수확을 얻은 셈인데, 아무래도 히든 던전의 보상은 이게 끝이 아닌가 보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파극심공(破極心功) ]– 마가(魔家)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의 심법. 마가의 비전인 만큼 익히기가 극도로 어려워 마가에서도 익힌 자가 극히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후우우웅!
세운의 주위를 둘러싼 기운이 거친 바람처럼 빠르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