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0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08화(204/675)
제208화
“꾸으-”
첫 번째로 얼음을 뚫고 나온 몬스터는 거대한 가오리형 몬스터였다.
다만, 실제 가오리와 다르게 하얀 복부가 통째로 거대한 입처럼 벌어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녀석은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가장 가까이 있던 청년을 덮치려 하였지만.
서걱-
“멈추지 말고 달리세요!”
“가,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10m 거리를 달려온 유서아가 쌍검을 휘둘러 가오리의 몸을 5등분 시켰다.
얼음이 한 번 뚫리자, 다른 몬스터들 역시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들 몬스터를 견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세운 덕분에 해일 걱정 없이 체력을 아끼고 있던 디아블로 클랜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했다.
몬스터들이 연이어 나타났지만, 타격 한 번 입히지 못하고 빠르게 죽어 나갔다.
거기에는 몬스터들의 특징 역시 한몫하고 있었다.
나가와 같은 수륙양용형 몬스터와 달리, 저들은 정말로 바다 내부에서만 살아가는 해양형 몬스터.
물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구경만 할 수는 없겠는데.’
회귀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일부 시민의 희생을 각오하고 몬스터를 막아냈다. 하지만, 이번의 목표는 뒤따라오는 모든 시민을 구해 내는 것이다.
백 명에 달하는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당 두 사람을 지켜야 한다.
디아블로 클랜이 잘 활약하고 있지만, 몬스터의 수가 워낙 많아 조금씩 빈틈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중 영창은 무리고.’
저서클 마법이라면 몰라도 6서클 마법인 문 라이트를 유지하는 중에 다른 마법을 새로 영창하는 건 세운이라 하더라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검을 들고 뛰어다닌다면 문 라이트의 범위가 바뀌며 자칫 해일이 다리를 덮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철컥.
세운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활, 불사궁을 꺼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그라드 제국의 사법’이 강화됩니다.
피융-
따로 화살을 걸지 않아도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얼음으로 된 화살이 만들어졌다.
어차피 상대는 수만 많을 뿐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다.
활시위를 짧게 잡아당기며 한 발, 한 발의 위력보다는 연사를 위해 화살을 쏘아댄다.
푹, 푸북!
“쉬이익-”
엄청난 연사 속도.
거의 일 초에 열 발에 가까운 화살이 쏘아졌다.
그라드 제국의 사법은 세운이 가장 처음 배워 지금까지 계속 사용해 온 궁술이었기에, 그 힘은 100%에 가깝게 적응하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본래의 힘을 추월한 위력이었다.
다만, 위력보다는 연사에 중시했기 때문에 두꺼운 갑각을 지니거나 높은 생명력을 지닌 몬스터 몇몇이 화살에 맞고도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까드득!
몸에 박힌 화살부터 시작해 녀석들의 몸이 서서히 얼어가는 중이었다.
불사궁의 고유한 능력, 공격에 얼음의 속성을 부여하는 ‘영빙’과 공격한 부위를 얼려 버리는 ‘동결’이었다.
강한 몬스터라면 신체의 극히 일부가 굳는 데 그치겠지만, 저런 하위 몬스터들 정도는 이 능력만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간만의 만찬을 기대합니다.
세운의 화살에 죽은 몬스터의 수가 늘어날수록 베엘제붑의 기대 역시 커져갔다.
어차피 능력치가 오르는 것은 세운 역시 환영할 일이었기에 곧바로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 폭식의 권능으로 ‘최후의 다리’ 전체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콰득, 콰득!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의 시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미 다리와 함께 무너져 저 심연 속으로 가라앉은 것도, 몸이 얼음으로 완전히 굳은 것도, 화살의 위력에 몸이 터져 나간 것도.
어떻게 찾아내는 것인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집어삼킨다.
“히익! 저, 저건!”
“아군이에요. 얼른 도망치세요!”
디아블로 클랜이야 익숙하게 보던 광경이었지만 시민들은 그 모습에 기겁하며 주저앉는 등 짧은 헤프닝이 생겨났다.
몬스터의 수준이 낮았기에 오르는 능력치의 양은 미미했지만, 모든 능력치가 200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이런 작은 능력치마저도 귀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띵 해 오는 머리를 붙잡으며 딱딱한 먹이를 까득까득 씹어댑니다.
세운이 본격적으로 활을 연사하기 시작하자 전투가 한결 편해졌다.
어느덧 다리의 절반을 건너와 하늘 높게 솟아 있는 ‘최후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종말에 도래하고 있음에도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
사람들이 괜히 저곳으로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저곳이라면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정체 모를 확신까지 생겨났다.
물론,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세운은 그 희망을 가뿐히 무시했지만 말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다들 힘내요!”
“헉, 헉! 드디어! 드디어!”
“살았어, 살았다고!”
성이 보이기 시작하자 숨을 헐떡이던 시민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이동에 몬스터를 상대하고 시민들까지 지키느라 체력이 쭉쭉 빠져나가던 디아블로 클랜 역시 한층 더 힘을 냈다.
그 순간.
“꾸-구루르르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에서 검은 액체가 쏘아졌다.
처벅, 철퍽!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검은 액체가 정확하게 다리에 명중했다.
다리가 시꺼멓게 물들었고, 그 충격으로 다리의 이음새 몇 개가 엇나가며 흔들림이 더욱 커졌다.
게다가 검은 액체는 미끄럽기까지 하여 안 그래도 급한 상황에서 이동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건 또 뭐야!”
“끝인 줄 알았더니!”
“아오, 진짜 이놈의 시련들은 쉽게 끝나는 일이 없어!”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새로 등장한 몬스터를 못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몬스터의 크기가 어지간한 함선만 했기 때문이다.
‘크라켄.’
바다의 악마라고도 불리는 괴물.
방금 쏘아진 검은 액체는 크라켄이 내뱉은 먹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거리가 너무 멀어 먹물을 통한 원거리 공격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저 녀석이 가까이 다가왔으면, 다리를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다리는 금세 무너졌으리라.
본래는 여기서 크라켄의 먹물을 피하거나 막아내며 어떻게든 성으로 재빨리 달려가는 게 정석적인 공략이다.
하지만, 세운은 녀석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잡다한 몬스터들은 디아블로 클랜에게 맡겨두고, 불사궁으로 크라켄을 겨눈다.
– 내공을 통해 ‘그라드 제국의 사법’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활대가 부서지기 직전까지 활시위를 잡아당기며, 1,000m도 넘는 거리의 크라켄을 조준한다.
남은 내공을 쥐어 짜내 이 한 발에 모조리 담아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일 테지만, 바다의 악마라 불리는 크라켄을 죽이기는 부족하다.
그러니 세운은 여기서 또 하나.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천년뇌수(千年雷樹)의 화살 ]– 천둥산의 꼭대기에서 천 년 동안 벼락을 맞으며 자라온 나무를 깎아내 만들어 낸 화살.
얼음으로 만들어진 화살에 벼락의 힘이 깃들었다.
이미 활대가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에, 세운은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다.
우르르릉-!
벼락의 힘을 담아 노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화살.
단순히 화살이 날아갈 뿐인데, 그 소리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웅장했다.
이러니 당연히 크라켄 역시 눈치챌 수밖에.
녀석이 먹물을 뿜어보았지만, 화살은 먹구름을 통과하듯 가뿐하게 먹물을 뚫고 나아갔다.
수면 아래로 도망치기에는 늦은 상태.
크라켄이 문어를 닮아 둥그런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여덟 개의 다리를 뻗어 올렸다.
화살의 힘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채고 치명타를 피하고자 다리를 희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화살의 속도가 일순간 빨라졌다.
벼락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아간 화살이 지그재그로 꺾이며 크라켄의 다리를 피해 그 머리통에 꽂히는 순간.
쾅, 콰과광!!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쉴 틈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크라켄의 다리는 피뢰침이 되어 번개를 흡수했고, 순식간에 새까맣게 타들어 간 다리가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말려들어 갔다.
다음은 머리 차례였다.
머리에 박힌 화살을 통해 벼락이 내려치자, 그 힘이 온전히 크라켄의 머리에 집중됐고.
“꾸윽-구루륵, 꾸륵-”
물 끓는 소리와 함께 크라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고도 벼락이 멈추지 않고 수면 위를 강타한 탓에, 바다 위로 뇌전이 파직거리며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 히든 퀘스트, ‘바다의 악마’를 완료하였습니다.
– 시련 ‘다가오는 종말’에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크라켄의 사체는 물론, 주위에 포진되어 있던 수백의 몬스터 시체까지 함께 수면 위로 둥둥 떠 오르며 전투의 막을 올렸다.
“쉬이잇!”
“케륵, 케엣-”
크라켄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다리 위의 몬스터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성흔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도망치는 꼴을 보니 권능도 뭣도 아닌 순수한 ‘공포심’에 잠식당한 모양이다.
아마, 이 다리를 건너는 것보다 무너지는 대지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게 오히려 살 가능성이 클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바싹하게 구워진 전기 문어구이를 신나게 씹어댑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짭짤한 게 간까지 완벽하다며 당신의 요리 방식을 찬양합니다.
애초에 폭식의 권능을 이 다리. 아니, 그것을 넘어 이 바다 주변으로 설정해 두었기에 죽은 크라켄의 사체는 곧바로 폭식의 어금니에 뜯어 먹혔다.
바로 이전 시련에서 심갑충이 사건 때문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폭식의 마신답게 폭식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저건 나도 좀 탐나긴 하네.’
전기로 한순간에 구워낸 문어 통구이라.
평소에 마신에게 먹이던 ‘괴식’과는 달리, 저건 제법 먹을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것도 아주 잠깐.
“지금이에요!”
“뛰어!”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어!”
더 이상 몬스터가 공격해 오지 않았기에 디아블로 클랜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 앞으로 달렸다.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성을 향해 달렸다.
크라켄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건지 하늘 높이 치솟던 해일도 조금 잔잔해져 무리 없이 끝에 도달할 수 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밟아보는 듯한 흙 땅에 발을 내미는 순간.
– 28층의 시련 ‘다가오는 종말’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바다의 악마’ 완료.
– 시민 전원 생존
…….
– 총 누적 공적치 30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28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떼놓은 당상처럼, 세운은 당연하게도 랭킹 1위로 시련을 통과했다.
“헉, 헉! 살았다! 살았다고!”
“도착했어! 이곳이라면 살 수 있을 거야!”
뒤쪽에서 시민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디아블로 클랜 역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중 한 명.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시민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보이는 거지?”
최후의 성.
그 이름처럼, 종말에도 끄떡없을 거라고 알려진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그곳에는 그 흔한 경비병은커녕, 개미의 숨소리마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