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1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14화(210/675)
제214화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쉬시는 게…….”
“진짜 괜찮다니까.”
왕의 호출이 있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세운은 병실을 빠져나왔다.
성흔이나 서클, 단전의 상태를 생각하면 이하늘의 말처럼 휴식을 더 취하는 게 좋겠지만 이런 변수를 미뤄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휴식을 취해 봤자 궁금증 때문에 뒤척일 게 분명하다.
“와, 혈랑 오빠다!”
“오빠, 일찍 일어났네?”
병실을 나가자마자 쌍둥이 자매가 세운을 반겨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회귀 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지하 벙커의 모습이 보였다.
흙으로 이루어진 벽과 천장, 그나마 천장에 박힌 발광석들이 태양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실제 태양의 밝기에 비하면 절반도 못 미쳐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말이다.
‘잘 지어놨네.’
과연, 쌍둥이 자매의 실력은 뛰어났다.
쉼터에 도착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존에 지하 벙커에 존재하던 건축물에 못지않게 완벽한 임시 거주지를 꾸려놨다.
이곳에서의 휴식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면 조금 더 쉬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빠, 그 운석 부쉈다면서요?”
“와, 사람이 어떻게 운석을 부수지?”
“한철 오빠가 혈랑 오빠 들고 왔을 때는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맞아. 그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데!”
“고생했다.”
세운이 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둘은 쉼터의 임시 거주지뿐만 아니라 30층의 시련에서도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가장 큰 공을 세웠으니까.
지하 벙커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왕이 있다는 곳으로 움직이던 중, 임시 거주지의 출구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너희가 뭔데 여기에 자리를 잡아? 어?”
“말했듯이, 이곳의 왕에게 허락을 받았다.”
“왕은 왕이고. 여긴 우리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머물고 싶으면 공적치를 내놓든가!”
대충 들어도 무슨 문제인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서리 요새에서 텃세를 부리던 리암 일행과 똑같은 놈들.
탑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정착한 겁쟁이들이 똘똘 뭉쳐 소수에게 공적치를 뺐어 내 살아가고 있는 기생충들이다.
그들의 앞에서 단 한 명. 강한철이 수문장처럼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세운이 다가오자 그가 가볍게 고개를 돌렸다.
“왔나.”
“고생하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됐어. 어차피 몸이라도 좀 풀 생각이었거든.”
신체가 전부 회복됐다고는 해도, 무려 이틀간 침상에 쓰러져 있던 몸이다.
관절이 굳은 것처럼 뻑뻑한 게, 가볍게 달리기라도 할까 싶었는데 마침 딱 알맞은 상대들이 나타났다.
“넌 또 뭐야? 보아하니 환자 같은데 조용히 안에서 누워 있지 그래? 괜히 나섰다가 험한 꼴 보지 말고.”
“이 클랜의 장이다.”
“뭐? 하! 난 또, 이 커다란 놈이 지키고 있길래 어떤 괴물이 있나 싶었더니 이런 약골이었어?”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녀석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녀석은 방금 세운의 외양만을 보고 전투력을 판단하였다.
상대의 기세는 물론, 마나와 같은 전투력 판단 자체를 못 하는 놈들인 것이다.
저따위 수준이라면 다음 층에 올라가자마자 시련에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할 게 뻔하다.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를 통해 기다란 봉 하나를 꺼냈다.
딱히 별다른 능력 없는 평범한 봉.
“하하하! 겨우 그딴 걸로 우릴 상대할 생각이냐? 여기까지 와서 그딴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보니…….”
“그만 닥치고 움직이지 그래?”
빠악!
“커헉!”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린 봉에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남자가 허공에 떠 올라 몇 바퀴나 회전하다 바닥에 내리꽂혔다.
말했듯이, 현재 세운의 단전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
이깟 놈들을 상대로 덜 회복된 단전을 움직일 생각이 없었던 터라, 이번 공격은 내공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신체 능력과 기술의 조합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위력.
선두가 공격을 당하자 다른 놈들 역시 곧바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애초에 놈들이 원한 것 자체가 정당방위를 끌어내 전투를 일으키는 것이었을 테니까.
세운은 망설임 없이 그들의 계획에 넘어가 주었다.
“죽여!”
“애들 다 불러와! 이 불법 거주자 새끼들 다 조져 버리자고!”
대충 봐도 수십 명.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추가 인원을 보니 백 명에 달해 보인다.
나름대로 30층의 시련까지 통과한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그들에게서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인 순간부터, 놈들은 더 이상 ‘등반자’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왼쪽.”
“내가 오른쪽을 맡겠다.”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강한철 역시 몸이 근질거려 보였기에 영역을 나누었다.
둘은 누가 더 많이 쓰러트리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재빠르게 적을 쓰러트려 나갔다.
파바박!
“꺽!”
“뭐가 이렇게 빨라!”
“잡아! 저런 놈은 다리 한쪽만 잡아도 아무것도 못…… 커헉!”
세운은 아무렇게나 봉을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개방의 독문 비전, 타구봉법.
내공은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타구봉법이 지닌 묘리를 머릿속에 새기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미친개를 두들겨 팬다는 무공의 이름에 걸맞게 개처럼 나가떨어지는 놈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놈들이 수십 명이 세운을 포위해 한 번에 몰려들었다.
어차피 한 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는 제한적이니 한꺼번에 덤벼들 작정이었다.
그 가운데, 세운이 봉의 중간을 움켜쥐고 자세를 낮게 잡았다.
놈들이 봉의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몸을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시켰다.
– 타구봉법의 제일 초식, 악견난로(惡犬攔路)를 사용합니다.
퍼버버벅!
“커허억!”
팽이처럼 회전하는 봉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나가떨어졌다.
개중에는 봉의 사정거리를 피해 몸을 숙이고 달려오는 놈들도 있었지만, 미친개를 팬다는 뜻을 가진 무공이 그런 공격을 허용할 리가 없었다.
빈틈을 노리던 이들이 바로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회전에 처음 놈들보다 더욱 멀리 날아갔다.
그렇게 몇 번 날뛰다 보니 입구 앞에 서 있는 건 강한철과 세운, 둘뿐이었다.
“오십이다.”
“나도 오십. 동점이네.”
세운이 무공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강한철 역시 지형 때문에 지진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지하 벙커에서 그런 힘을 사용하다가 자칫 벽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처치한 수가 같다는 건, 그만큼 강한철이 성장했다는 뜻이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괜히 덤빈다며 혀를 찹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대련은 나중으로 미루겠다.”
“난 상관없는데?”
“내가 싫다. 그 상태를 이겨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던지.”
“이놈들은 어쩌지?”
“박정필한테 맡겨. 알아서 할 거야.”
“그놈이?”
“그놈 천성이 딱 이쪽이거든.”
어깨를 빙빙 돌리며 몸이 적당히 풀린 걸 확인한 세운이 곧바로 왕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강한철은 박정필이 영 못 미더운 눈치였지만, 곧 세운의 말에 따랐다.
부름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박정필은.
“크흐흐. 너희들이 감히 우리 형님을 건드렸다, 이 말이지? 우리 다 같이 ‘교육’을 시작해 볼까?”
“교, 교육?”
“크흐흐흐. 그래, 아주 즐거운 교육이 될 거다!”
지금까지 세운에게 당했던 화풀이…… 아니, ‘교육’을 사람들에게 퍼트리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박정필의 정신 교육을 받은 놈들이 고개를 숙인 채 절뚝거리며 자신들의 거주지로 돌아갔다.
* * *
왕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풍경은 회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비쩍 말라 있었고, 하루 종일 땅을 파느라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피곤함에 전 듯 얼굴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대로인가?’
어쩌면 30층의 시련이 연결되어 종말이 빗겨나가지 않았나 싶던 세운이 아쉬움을 느꼈다.
다들 외부인을 경계하며 길을 피해 주었기에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멈춰라!”
두 명의 병사가 창을 들어 앞길을 막아섰다.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무장에 흙먼지가 쌓여 있는 게 딱 봐도 관리 수준이 엉망이었다.
나름 위압적인 말투였지만 목소리에 힘도 없고 얼굴은 귀찮음과 피곤함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앞은 폐하의 거처다. 외부인의 출입은 불가능하다.”
“왕의 초대를 받고 왔다.”
“초대? 폐하께서 외부인을 초대하실 리가…….”
“잠깐. 설마 그 사람 아닌가? 이틀 전에 들어온 사람들이 말한.”
“아, 그 운석을 부쉈다는 헛소리 말인가. 그런 망상을 믿어주시다니. 폐하께서는…….”
다행히 세운이 초대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괜한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세운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자 병사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돌았다.
무언가를 확인하듯 하더니, 하인으로 보이는 이 하나가 찾아와 안내를 해 주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러지.”
“그런데, 정말입니까? 운석을 부쉈다는…….”
“맞다.”
“……정말입니까? 그럼 지상은 멸망하지 않은 겁니까?”
“그건 모른다.”
“그렇군요……. 이 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폐하께서 기대가 크십니다.”
문은 그리 고급스럽지 않았다.
왕의 거처라고 해서 따로 거창한 건 없고, 그저 다른 곳에 비해 더 안전하고 견고해 보이는 정도였다.
끼이익.
문 안쪽의 방 역시 마찬가지.
무쇠로 이루어진 벽면에는 어떤 장식도 보이지 않았고, 발광석이 은은한 불빛을 밝혀줄 뿐이었다.
유일하게 왕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방의 끝에 존재하는 왕좌.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왕좌였지만,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탓인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왕을 뵙습니다.”
“자네로군. 혈랑……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세운이 고개를 숙였다.
혈랑. 디아블로 클랜에서 그렇게 불릴 뿐만 아니라, 시스템 메시지로도 항상 보던 터라 이제는 익숙해진 이명이다.
“몸은 무사히 회복한 모양이로구나. 고개를 들어라. 어차피 이름만 남은 직위일 뿐이다. 외부인에게 격식을 받을 생각은 없다.”
고개를 드니 그제야 왕의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운 금빛 용이 그려진 용포를 입고 있었지만, 그 역시 흙먼지에 덮여 빛을 잃고 있었다.
금룡이라기보다는, 토룡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한 모습.
왕이라 해서 몸 상태가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볼이 홀쭉 들어간 게, 오히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보다도 말라 보였다.
‘선왕이라더니, 정말인가 보네.’
회귀 전, 네 번째 쉼터의 왕을 목격한 적은 없지만, 소문은 들었다.
애초에 최후의 성은 사람들이 가장 꿈꾸던, 행복의 성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그곳의 왕은 선왕으로 유명했다.
시민을 제 자식처럼 아끼고, 왕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저 용포 역시 시민들이 왕을 위해 바친 선물이라고 들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운석을 부쉈다는 게 사실인가?”
세운이 알기로, 이곳의 시민들은 모두 운석이 떨어지기 이전에 지하 벙커로 피신했다.
운석뿐만 아니라 태풍이나 해일 등, 이미 세상은 종말이 도래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지상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습니다.”
세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증명할 길은 없지만, 사실을 말할 뿐이다.
“그렇다면, 지상은 멸망하지 않은 것이더냐?”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왕의 질문은 자신을 이곳에 안내해 준 하인과 같았다.
지하 벙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이 어두운 지하에 적응하여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사람들.
다른 하나는, 이 시궁창 같은 상황에서도 지상을 향한 미련이 있는 사람들.
눈앞의 선왕은 후자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곧, 엄숙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한 왕이 세운을 향해 차분하게 읊조렸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지상의 수색을 부탁해도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