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1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15화(211/675)
제215화
“그 말은, 지상으로의 통로를 열어주신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혹여나 감당하지 못할 재앙이 흘러들어 올까 금하고 있었지만, 자네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
세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으로의 통로.
회귀 전의 네 번째 쉼터에는 없었던 점이었다.
당시에는 플레이어들이 자선해서 나가겠다고 해도 그들이 결코 통로를 개방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사항이었다.
“물론, 우리로서도 기대가 큰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네. 장비, 식량, 인력 등. 가능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네.”
이 쉼터의 자본은 공적치를 내줘도 구입하기 힘들 정도로 귀하다.
그런 자본을 지원하겠다는 말은,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뜻.
결코 세운을 버리는 말 따위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일단은…… 식량이라네. 만약 자네가 저 위에서 식용 가능한 짐승 한 마리만 잡아 와도 자원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네.”
“당장 식량부족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희망’을 깨울 생각이시군요.”
“그렇다네. 지상에 식량이 있다면, 희망을 버리고 영혼 없이 움직이는 이들도 희망을 품을 수 있을 테니.”
너무나도 간단한 목표지만, 세운으로서도 장담하기 힘든 목표이기도 했다.
당장 운석에 대량의 방사선이라도 깃들어 있었다면 식량은커녕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어떤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
게다가, 운석의 파편에는 아직 아우터의 잔재들이 남아 있었다.
놈들이 생태계에 어떤 식으로 간섭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사막이나 얼음 호수에 봉인된 것들처럼 강한 몬스터를 숙주로 세력을 불려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종 목표는 역시…….”
“안전지대 확보라네.”
왕의 얼굴이 굳은 신념이 깃들었다.
안전지대.
역시, 그의 목표는 지하 벙커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잠시간의 침묵.
하지만, 세운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밖은 어떤 상황이 기다릴지 모르는, 회귀 전의 지식조차 통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였지만, 애초에 여기서 멈출 생각 따위는 없었다.
“왕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 지하 벙커의 히든 퀘스트, ‘불안정한 종말’을 수락하였습니다.
세운이 간단하게 격식을 차렸다.
지상에 무엇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웅-
운석에 붙어 잘게 나누어진 아우터들.
즉, 이번 여정은 녀석들을 포식하여 성흔의 세 번째 권능을 강화하기 위한 최적의 여정이었다.
* * *
지상으로 올라간다는 허락을 맡자마자, 세운은 지하 벙커의 창고로 이동했다.
이곳의 모든 자본이 잠들어 있는 곳.
플레이어는 물론 시민들에게조차 개방되지 않은, 지하 벙커에서 경계가 가장 삼엄한 곳이었다.
“폐하의 명이옵니다.”
“……알았다.”
하인에게 말을 전달받은 경비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왕의 선택과 세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명에 불응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왕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증거였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창고의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며 겨우 이게 ‘최후의 성’의 창고냐며 실망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겨우 이걸로 다 같이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냐며 경악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이곳은 어인들의 거처보다 살기 안 좋아 보인다며 시민들을 안쓰러워합니다.
마몬의 말대로, 이곳은 나름 ‘최후의 성’의 하나뿐인 창고였다.
한때 대륙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가장 살고 싶은 곳이라 평가받고 그만큼 각종 자본이 풍부하던 최후의 성.
성안에 존재하는 금은보화만 하더라도 드래곤의 레어와 비견될 정도라고 했었는데…… 현재 그 창고에 존재하는 건, 그야말로 형편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나마 관리는 잘 돼 있네.’
가장 먼저 보인 건 깨끗이 정비된 장비들이었다.
그래봤자 세운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것들이라 굳이 챙길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보인 건 식량.
육포들이 보물처럼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보관하기 용이한 보존 식품들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
아니, 쌓여 있다고 하기에도 초라하다.
지하 벙커의 인원수를 생각했을 때, 반년도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 양.
그나마 시민들이 지하에서 수확할 수 있는 소량의 작물을 통해 식량의 소모 속도를 줄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딱히 챙길 것도 없어 보이는데.’
차라리 벼룩의 간을 떼먹지.
아무리 세운이라고 해도 여기서 뭔가 가져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장 디아블로 클랜으로 가기만 해도 이곳보다 훨씬 좋은 장비와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했으니까.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창고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약초나 포션 등, 소모품들이 있는 장소.
어차피 회복품들은 이하늘이 만들어 낸 것보다 성능이 떨어졌으니 넘어가고, 소득 하나 없이 발을 돌려야 하나 싶던 중.
‘이건?’
창고의 가장 구석에 박혀 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고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 같았는데,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세운은 대충 입김을 불어 먼지를 털어내고 바로 그것들을 확인해 보았다.
[ 폭발석(爆發石) ]분류 : 소모품
등급 : B+
설명 : ‘최후의 성’의 의뢰를 받아 마탑이 직접 제작한 폭발석.
능력 : 1. 익스플로젼 – 일회성으로 5서클 폭발 마법을 발동한다.
익스플로젼이 새겨진 마나석.
쉽게 말해서 현대의 다이너마이트였다.
다른 마법도 아니고 5서클 마법을 새길 정도라면 마나석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고, 그만큼 제작 비용도 엄청날 터였다.
부유하기로 유명했던 최후의 성이었기에 의뢰할 수 있었겠지.
아무래도 이 지하 벙커를 만들기 위해 의뢰한 것인 듯했다.
‘이건 쓸 만하겠는데?’
세운이 6서클에 도달했다고는 하지만, 마나가 무한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곧 찾아 나서려 했던 ‘히든 피스’를 찾아내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 보였다.
먼지가 쌓인 것만 보아도 지하 벙커에서 더 이상 폭발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망설임 하나 없이 폭발석을 모두 쓸어 담는 당신의 탐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운이 창고의 모든 폭발석을 쓸어 담았다.
그 외에도 지하 벙커를 만들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소모품도 전부 담았다.
어차피 폭발석 입장에서는 이런 창고에서 먼지나 쌓이고 있는 것보단…….
‘내가 훨씬 알차게 사용해 주지.’
본래 제작된 의도대로 화려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게 더욱 어울릴 것이다.
* * *
이후, 세운은 바로 지상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아우터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기에, 일단은 성흔을 비롯한 서클과 단전을 완전히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몸을 회복하며 지금까지 떠올린 것은 운석을 파괴할 때 사용했던 무공, ‘파극암검(破極暗劍)’.
‘겨우 일 초식인데도 단전이 터져 나갈 뻔했지.’
그마저도 시기의 권능과 폭식의 권능, 거기에 광란의 힘 등이 겹겹이 쌓여 신체 능력이 뻥튀기된 상태였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일 초식을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 한 번의 초식 발현으로도 얻은 깨달음이 많았다.
‘파극암검을 사용할 때 흘러가던 파극심공의 운용법.’
그것은 세운이 지금까지 운용하던 파극심공의 묘리하고는 달랐다.
더욱 위협적이고, 또한 패도적이었다.
이는 비단 파극암검뿐만 아니라 다른 무공을 사용할 때도 적응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깨달음은 단순히 세운의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고.
– 파극심공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파극심공의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 깨달음을 통해 단전이 머금을 수 있는 내공의 허용량과 질이 상승합니다.
시스템의 인정과 함께 실체적인 세운의 힘이 되었다.
그 힘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몸이 회복되고 나서 강한철과 유서아와 대련을 펼쳤다.
그렇게 대략 오 일.
지하 벙커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왕과 약속한 시각이 되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겠는가? 내 직속 호위 기사도 이미 승낙했다네.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니라.”
“괜찮습니다.”
왕의 호위 기사.
기세를 보아하니 상당히 강력한 듯했다.
플레이어만이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제외하고 순수한 전투력으로 따진다면 유서아와 비슷할 정도.
하지만, 이번 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우터를 상대해야 하는 이상, 아군의 수는 최대한 줄이는 게 좋았다.
“유서아, 준비됐지?”
“네!”
이번 여정의 동료는 유서아 한 명이었다.
그녀의 잠재력인 지배는 바알의 신성과 결합하여 잠시나마 아우터를 묶어둘 수 있다는 게 판명되었다.
그 힘이라면, 성흔이 과열된 상황에서도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다.
“이번에도…… 난 안 되는 건가?”
“널 못 믿는 게 아니야. 이번 여정에 안 어울릴 뿐이지.”
“…….”
강한철이 주먹을 꽉 쥐었다.
서리 요새에서 S급 의뢰를 수행할 때와 같은 반응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가레스의 신성을 내려받은 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지만, 아우터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세운과 함께한다면 언젠가 아우터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겠지만, 당장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말해 뒀던 것 좀 잘 부탁해.”
“그거라면 이미 진행 중이다. 네가 돌아올 때쯤에는, 이미 끝나 있을 거다.”
“그럼 좋겠네.”
강한철은 지상으로 데려가지 않는 대신 다른 일을 맡겨두었다.
바로, 세운이 회귀 전에 여정의 지침표로 발견했었던 무언가.
그라면 히든 피스를 완전히 공략하지는 못해도, 히든 피스로 향하는 길은 완전히 닦아둘 수 있을 테니까.
“저도 안 되겠습니까?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조용히 뒤따라가기만 하겠습니다. 분명 쓸 만한 실험체가 많을 텐데…….”
“백현 씨는 특히 안 됩니다. 상성이 너무 안 좋아요.”
“그거 아쉽군요……. 음, 그래도 가능하다면 샘플이라도 조금 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력해 보죠.”
“감사합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자신 역시 ‘그 존재’를 해부해 보고 싶다며 관심을 내보입니다.
백현이 눈을 반짝였지만, 얼음 호수 지하에 있던 골렘처럼 아우터는 무생물에조차 잠식이 가능한 놈들이기 때문에 언데드라고 잠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의미로, 질보다는 양에 특화된 그의 언데드 군단은 이번 여정에서 안 좋은 변수로 작용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샘플을 포획해 오는 건 괜찮은 생각 같은데.’
회귀 전에 아우터에 대해 밝혀진 정보는 거의 없었다.
놈들은 가장 먼저 성좌들을 집어삼키며 내려왔기에, 그 존재를 알아차린 상황에서는 플레이어가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놈들을 해부하고 조사할 수 있다면?
백현이 무언가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 아우터를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세운의 성흔이 아니더라도 아우터를 상대할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부디 성공하길 바라네.”
“폐하, 어찌 고개를 숙이십니까…….”
“그는 우리의 희망을 짊어진 채 목숨을 걸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네. 체면이 뭐가 중요한가?”
왕이 세운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선왕이라는 사실은 들었어도, 회귀 전에는 왕이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자일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심성이 올바른 사람이었다.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드르륵-
지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열렸다.
여기부터는 세운조차도 아는 정보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유서아, 가자.”
“네!”
쿠궁!
지상과의 연결을 차단하듯 하나뿐인 문이 닫히고, 어두운 통로가 위로 이어졌다.
불조차 모두 꺼진 계단을 모두 오르자.
– 네 번째 쉼터의 새로운 필드, ‘불안정한 종말’에 입장하였습니다.
종말한 세상.
아니, 가까스로 종말만을 피해 낸 위태로운 세상이 그 참담한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