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1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18화(214/675)
제218화
캉-
‘생각보다 단단하네.’
30층의 시련에서 운석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는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몰랐는데, 운석은 ‘바위를 쪼갠 검’이라는 이명을 가진 뒤랑달로도 일 검에 베기 힘들었다.
그나마 내공을 운용하여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적당한 크기로 쪼갤 수 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에게 들은 ‘미래’를 떠올리며 운석의 사용법을 강구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에게도 운석 일부를 바치라고 요구합니다.
마몬의 요구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하겠지만, 이번은 달랐으니까.
어차피 연구해야 할 운석이었는데 마몬이 선뜻 먼저 연구해 주겠다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마침 잘라낸 게 있었기에 그것을 바치려는 순간.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에게 ‘운석’을 상납하였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도 바로 연구에 착수할 테니 당분간 말을 걸지 말라며 등을 돌립니다.
세운이 당황한 이유는 간단했다.
마몬이 가져간 운석에 세운이 잘라내 들고 있던 운석이 아닌, 그 뒤에 남은 본체였으니까.
졸지에 운석 대부분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아…….”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지만, 딱히 문제는 없었다.
잘라낸 것만 해도 봉인구를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고, 그 커다란 파편을 운송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좋게 생각하면 오히려 짐이 줄어든 격이다.
그래도 다행히 양심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세운의 손 위로 아이템 하나가 툭 떨어졌다.
정과 망치.
주로 석공을 할 때 조각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데, 운석을 세공하려는 세운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피그말리온의 정과 망치 ]– 현실의 여성에게 환멸을 느낀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이상형을 직접 조각할 때 사용했다는 도구.
피그말리온의 정과 망치.
그 설명에는 조각했다는 것으로 끝이 나 있지만, 실제로는 저 이후로 여신의 힘을 빌려 조각상을 인간으로 깨웠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조각상과 결혼을 하여 자식까지 낳았다지.
무려 인간이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했던 도구인 만큼, 신화급의 힘을 가진 석공 도구였다.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이 도구가 세운이 운석을 세공하기 위해 사용하려고 미리 생각해 둔 도구였기 때문이다.
물론, 세운이 사용하는 탐욕의 권능은 실체 그 자체를 가져올 수 없었기에 어떤 매개체를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몬이 직접 꺼내준 도구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탐욕의 권능으로 머릿속에 설계도 같은 것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었다. 회귀 전 세운은 모험가였으니까.
탑에서 모험가란 단순하게 발을 놀려 주변을 돌아다니는 직업이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잡캐, 좋게 말하면 올 라운더(All-rounder).
당연하게도 탑의 멸망 직전까지 살아남았던 세운은 그 후자에 속했다.
도축이나 채굴, 장사는 물론 지금 하려는 세공까지. 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위치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에 가까운 기술을 획득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투보다 이쪽이 더 자신 있을 정도였다.
‘기본적인 설계는 생각해 뒀으니.’
깡!
운석 위에 정을 비스듬하게 가져다 대고 망치를 내려쳤다.
망설임 없는 휘두름.
그 한 번의 휘두름에, 뒤랑달로도 베기 힘들었던 운석이 깔끔하게 갈라졌다.
과연, 신화급의 힘이 담긴 ‘피그말리온의 정과 망치’.
비록 복제품이라고 하여도 마몬의 권능은 실제의 100%에 가까운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깡!
‘구멍 난 부분은 포기하고, 면을 모은다.’
지금 만들려는 건 아우터의 봉인구.
봉인구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운석의 구조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가장 합당한 부분만 골라 망치를 휘두른다.
깡!
‘면과 면을 잇기 위한 홈을 만들어 내고.’
조금이라도 틈새가 있으면 아우터가 삐져나올지도 모른다.
손에 쥔 건 정과 망치뿐이지만, 면과 면 사이의 틈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운석을 조각한다.
오랜만의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전투를 할 때보다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 눈꺼풀 위로 맺힌다.
정과 망치를 든 손에 집중을 멈추기 싫었기에 땀조차 닦지 못하던 찰나.
“힘내세요!”
유서아가 다가와 땀을 대신 닦아주었다.
덕분에 세운은 그대로 작업에 온 정신을 몰두할 수 있었다.
깡, 깡, 깡!
단조로운 망치질이 반복되었다.
울퉁불퉁한 겉면에, 불규칙한 구멍이 가득하던 운석이 다듬어지며 깔끔한 정육면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마신의 호출을 받고 운석을 조사하기 위해 이동하다 멈추고 당신의 망치질에 감탄합니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석공에 한한다면 자신의 계약자를 뛰어넘는 수준일 것 같다며 관심을 내비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병사의 이름을 외칩니다.
–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급하게 달려갑니다.
대망의 마지막 작업.
봉인구의 뚜껑이자 마개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다른 부분과 다르게 이 부분은 여닫기가 가능해야 하므로 다른 부분보다 만들기가 더욱 까다롭다.
여는 것에 집중하다가는 자칫 틈이 생길 수가 있었고, 닫는 것에 집중하다가는 결함이 생길 수도 있었다.
‘도구가 도구인 만큼, 최대한 각진 모습으로.’
시간을 들이면 둥글게도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디자인에 신경 쓸 만큼 시간이나 정신력이 여유롭지 않았다.
아우터가 안에서 발버둥을 쳤을 때를 대비해 잠금장치까지 생각하며 육각형의 뚜껑을 만들어 냈다.
작업을 마치고 집중력이 풀어지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업 도구를 내려놨다.
봉인구의 구멍 위로 뚜껑을 조심스럽게 얹으니 본래 그 모습이었던 것처럼 뚜껑이 구멍에 쏙 들어가 완벽하게 채워졌다.
– 탑 최초로 ‘운석’을 이용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겨우 십 분 만에 이런 걸 만드시다니!”
“이 정도는 아니지만, 회귀 전에도 비슷한 작업을 자주 했었거든.”
“정말요? 세운 씨는 분명 검사…… 아니, 마검사일 줄 알았는데.”
유서아의 말에 세운이 가볍게 웃었다.
마검사라니.
그랬으면 좋겠지만, 회귀 전의 세운은 검이나 마법에 대한 재능은커녕 제대로 된 성좌의 시선조차도 못 받은 몸이었다.
그저 노력.
남들보다 재능이 부족한 만큼, 이를 악물고 남들보다 더 험한 길을 택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었던 여정의 지침표로 각종 히든 피스를 찾아내 조금씩, 아주 서서히 강해졌다.
그 덕분에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항상 수많은 난관을 겪다 보니, 아우터라는 경악스러운 존재가 나타났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던 덕분에 말이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냐.”
“네? 이렇게 잘 만들었는데요?”
“눈으로 봐서는 모르지.”
[ ?? ]분류 : ??
등급 : ??
설명 : 미지의 힘이 깃든 운석으로 만들어 낸 상자.
능력 : ??
간단한 설명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이름이나 등급도 떠오르지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시스템에게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설명이 자세하지 않은 만큼 이런 물건은 그 능력을 확실히 검증해 볼 필요가 있었다.
세운이 봉인구의 뚜껑을 다시 열어 바닷물을 퍼담았다.
다행히 바로 물이 새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
뚜껑을 닫은 채로 그 안을 향해 마법을 발현하였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아쿠아 필러’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본래 밀폐된 내부에 마법을 발현시키는 건 어려웠지만, 뚜껑을 닫기 전 담은 바닷물에 마나를 주입해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봉인구 안에서 물기둥이 생겨나며 뚜껑을 밀어냈다.
드드드드-
얼음 위에서 봉인구가 진동했다.
당장에라도 터져 나갈 듯이 울려댔지만, 봉인구는 결코 열리지 않았다.
세운이 아무리 마나를 불어넣어도 무언가 꽉 막힌 것처럼 진동만이 커질 뿐이었다.
세운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뚜껑을 여는 순간.
콰아아아-!!
봉인구 속에서 억눌려 있던 마력이 수압으로 바뀌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상자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바닷물이 분출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바닷물이 소나기가 되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기껏 말린 몸이 다시 흠뻑 젖었지만, 세운은 한껏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샘플을 생포하러 가 볼까?”
* * *
아우터를 찾아내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아우터는 찾아낸 게 아니라 운이 좋아 만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넓은 바다에서 아우터의 흔적을 찾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하긴, 범위가 너무 넓으니.’
혼자서 바다 전체를 수색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니 세운은 계획을 바꾸어 바다 수색을 뒤로하고 곧바로 대륙을 향해 이동했다.
지상의 모습이 훤히 드러난 대륙이라면 바다보다 운석이 떨어진 흔적을 찾기도 수월할 거고, 그만큼 아우터를 찾아내기도 쉬울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벌써 십 분은 달린 것 같은데? 실력이 많이 늘었어.”
“세운 씨가 잘 알려주신 덕분이죠! 내공 운용이 익숙해지니까 몸이 더 가벼워진 기분이에요.”
세운이 ‘아이스 브릿지’를 사용하여 얼음을 만들어 달리는 중, 유서아는 그 옆에서 수면을 밟고 달리는 중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실력 향상을 위함이라며 자선해서 하는 행동이다.
아우터를 상대하러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 철저하게 내공 운용법만을 수련하는 모습이 꽤 그럴싸했다.
‘회귀 전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 보인단 말이야.’
물론, 세운이 보았던 유서아의 모습은 튜토리얼 때가 전부다.
첫 번째 쉼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음은 물론, 세운이 시련을 공략하는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감안하고도 유서아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아무리 바알의 사도가 되었다고는 해도 이건 엄연히 그녀의 재능이었다.
물론, 성장 속도로 본다면 다른 이들도 그에 대적할 정도였다.
강한철, 백현…… 심지어는 박정필까지.
모두가 평범한 플레이어의 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아직 동급의 플레이어와 대적해 본 적이 별로 없어 다들 자신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슬슬 보이네.’
다가오는 대륙의 모습은 시련에서 보았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대체로 지반이 크게 무너져 땅이 이곳저곳 불균형하게 들어가거나 튀어나와 있다.
지면 깊이 뿌리를 박아 간신히 지하로 추락하지 않은 나무가 기우뚱하게 서 있었다.
모든 게 엉망이지만,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 이 세계는 종말하지 않았다. 세운이 운석을 부순 덕분에.
그렇게 얼음 길이 끝나고, 지면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
“유서아, 전투 준비.”
“네!”
“크르르-”
둘을 맞이하듯이 한 무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제는 몬스터라 불릴 수 없는 것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입가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놈들이었다.
역시 바다를 뒤로 미루고 이곳으로 먼저 오길 잘했다.
귀찮게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이렇게 먼저 배웅까지 나서 줬으니, 놈들을 영광스러운 ‘첫 샘플’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