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1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21화(217/675)
제221화
이후로도 백현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세운이 없어도 유서아의 지배 덕분에 아우터를 다시 봉인구에 집어넣는 것도 어렵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창석은 그 옆에서 운석을 이용하여 필요한 도구와 함께 검과 건틀릿을 만들어 냈다.
세운도 자신이 아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며 연구에 끼었지만, 곧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백현의 연구가 워낙 뛰어나 세운의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더 연구에 끼어봤자 별다른 도움이 안 될 지경.
그 때문에 연구는 백현에게 완전히 맡겨둔 채 세운은 다른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깡, 깡!
후두둑-
이동하는 중에 땅을 파고 바위를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래도 지하 벙커에서는 식량 재배나 공간 확장을 위해 땅을 파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얼른 흙 옮겨! 벌써 이만큼이나 쌓였다고!”
“이야, 어째 흙 옮기는 속도보다 땅 파는 속도가 더 빠르네.”
“우리는 아무리 해도 한나절에 수레 두세 번이 고작이었는데, 역시 그분의 동료들은 다른가 봐.”
벙커의 모든 사람이 삽을 들거나 수레를 옮기며 흙을 퍼 나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세운이 왕에게 부탁한 내용이었다. 병사와 시민들을 모두 이 발굴 작업에 동원해 주는 것.
이전이었다면 왕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기에 이것 역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해 주고 있었다.
‘그새 많이도 팠네.’
회귀 전, 여정의 지침표가 격한 반응을 일으키며 가리켰던 벽면.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단단하고 바위가 많아 지하 벙커의 시민들은 건드리지 않고 있던 곳이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느냐? 아쉽게도, 그건 세운도 알지 못했다.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킨다고 해도 당시 시민들에게 입지가 좁았던 세운이 마음대로 파헤칠 수는 없었으니까.
‘가능했다고 해도, 혼자서는 무리였겠지.’
지금 벽을 파고 들어간 깊이만 해도 엄청나다.
만약 회귀 전의 세운 혼자서 저 벽을 파헤치려 했다면, 최소 몇 년은 이곳에 머물러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시간 이전에 식량을 살 공적치가 부족해서 끝을 보기 전에 포기하고 다음 층에 올랐을 게 분명하다.
“오, 형님! 오셨습니까!”
“잘하고 있어?”
“물론입니다!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쭉쭉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부를 관리하고 있던 박정필이 세운을 발견하자마자 다급하게 다가와 손을 비볐다.
여기서 말하는 인부는 지하 벙커의 시민들이 아니었다.
처음 세운이 눈을 떴을 때, 임시 거주지 바깥에서 시비를 걸던 플레이어들. 그들이 직접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세운과 강한철에게 꼼짝없이 당했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탑의 30층까지 등반한 플레이어.
일반 시민들보다는 육체적 능력이 훨씬 좋아 땅을 파헤치는 속도 역시 월등히 빨랐다.
그런 놈들이 어째서 박정필의 말을 듣고 있나 싶었는데.
“히, 히익!”
“왔어! 그 악마가…….”
“쉿! 멍청한 놈아, 눈 마주치지 마! 못 들었어? 저 사람, 눈만 마주쳐도 손발톱을 모두 뽑아 버린다잖아!”
“사지를 부러트리고 방에 전시해 놓는다고도 했어…….”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박정필, 이 녀석이 세운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공포를 조장한 모양이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굳이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오해를 받는 게 조금 찝찝하긴 해도, 그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깊이는?”
“대략 400m쯤 파고 들어간 것 같슴다.”
400m.
얕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지하에서 이런 규모로 땅을 파며 나아간다고 생각하면 제법 깊다 할 수 있다.
회귀 전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킨 건 어디까지나 방향뿐이었기에 세운도 히든 피스와의 거리는 알지 못한다.
가깝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깊었다.
“터집니다!”
“하나, 둘!”
퍼엉!
가장 안쪽에서 귀를 울리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세운이 지원 명목으로 창고에서 챙겼던 폭발석이 터지는 소리다.
흙은 단단하게 굳어 있어도 곡괭이로 깎아내리면 됐지만, 바위는 그럴 수 없었기에 폭발석을 이용해 조각내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곳의 바위 중에서는 폭발석마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바위도 있었지만.
– 플레이어 강한철이 ‘격돌(激突)’을 사용합니다.
콰아앙!!
그럴 때면 어김없이 강한철이 찾아와 주먹을 휘둘렀다.
폭발석에도 꼼짝하지 않던 바위가 그 강렬한 주먹에 거미줄처럼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이 조각났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한 세운이 등을 돌리려던 찰나.
퍼엉!
폭발석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강한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이건 지금까지 본 것들 이상인데?”
“바위 수준이 아니잖아, 이건.”
“이건 부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피해서 돌아가야겠는데?”
고개를 돌리자, 들려오는 소리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바위. 폭발석이 터졌음에도 작은 그을음만 남았을 뿐, 그 어떤 파괴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적당히 바위를 피해 돌아가려 주변에 곡괭이질을 하던 사람들이 곧 침음성을 흘렸다.
“이거 얼마나 큰 거야?”
“이건 안 부수고는 안 되겠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강한철이 바위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쥐었다.
이어지는 ‘격돌’.
아가레스의 신성까지 꽉 움켜쥐고 바위를 강타한다.
쿵!!
강한 힘에 의한 진동과 아가레스의 권능으로 인해 생겨난 지진의 힘이 만나 파동이 되어 퍼져나간다.
바닥의 흙먼지가 짜르르 울리고, 심지어 그 진동이 다리를 타고 올라올 지경이었다.
다시 보아도 어마어마한 위력.
그 괴력과 정면으로 충돌한 바위는…….
“……어?”
“실패……했어?”
아무런 이변도 나타나지 않았다.
폭발석이 터지며 생겨난 그을음 한가운데 선명한 주먹 자국이 생겨났을 뿐, 균열은커녕 작은 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인 터라 다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강한철 본인.
그는 변명하는 대신 반대쪽 주먹까지 움켜쥐고 주먹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진군(進軍)’을 사용합니다.
쿵, 쿵, 콰앙!
여진의 힘이 담긴 주먹을 연타한다.
저 기술은 한 방, 한 방의 위력은 적어도, 연타라는 특징 때문에 약한 적을 연이어 처치할 때 유용한 기술이다.
바위를 깨트릴 때 사용하기엔 안 어울리는 기술이지만, 세운은 금세 강한철이 저 기술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동을 쌓는 건가.’
주먹이 닿을 때마다 바위의 진동이 강해지고 있었다.
바위의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천장마저 흔들려 주변의 사람들이 빠르게 대피했다.
기껏 파둔 통로가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위력.
여진에 여진이 겹치고, 그 여진에 또 여진이 겹쳐 그 진도가 극에 달했을 때쯤, 강한철이 지진을 터트릴 일격을 준비했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격돌(激突)’을 사용합니다.
격돌.
현재 강한철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 가장 강력하다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거기에 자세를 보니 세운에게 배운 강권의 묘리까지 뒤섞은 듯하다.
다리에 힘을 싣자 땅이 움푹 파이며, 그 힘이 허리를 타고 온전히 주먹까지 이어진다.
그 두꺼운 주먹이 바위에 닿는 순간.
콰아아아앙-!!
폭발석의 폭음 따위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 귀를 울렸다. 바위에 쌓여 있던 여진이 방금의 공격으로 일제히 터져 나간 것이다.
진동이 어찌나 큰지, 귀를 막아도 피부를 타고 진동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몇몇은 그 진동만으로 달팽이관이 흔들려 자리에 주저앉아 구역질을 내뱉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괴력.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린 탓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바위의 상태로 똑바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공격의 당사자인 강한철과 시각을 키우고 바위에 집중하고 있던 세운이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헛웃음을 흘리며 바위의 강도에 감탄합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방금의 일격은 자신마저도 만족할 법한 공격이었다며, 충격을 버텨낸 바위의 정체를 의심합니다.
바위의 상태는 여전했다.
진동으로 인해 표면의 흙먼지와 주변의 자잘한 바위들이 말끔하게 떨어져 나가 오히려 전보다 더욱 깨끗하고 선명해 보였다.
그 모습에 세운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바위 건너가 바로, 회귀 전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키던 히든 피스라는 것을.
“강한철, 같이 하자.”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고집부리지 마. 나도 혼자서 힘들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강한철을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방금의 공격은 세운이라도 쉽게 내기 힘든 일격이었으니까.
힘을 모두 끌어 올린다면 방금의 위력을 넘길 수도 있겠지만, 잘해 봤자 바위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게 끝일 터다.
무엇보다.
‘뭐길래 이런 바위로 지켜지고 있는 거지?’
저 안에 숨겨져 있을 히든 피스가 궁금했다.
바위는 결코 자연적인 게 아닐 것이다. 뭔지는 몰라도 히든 피스를 지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치된 방어막 같은 개념이 분명하다.
강한철의 공격으로 인해 드러난 바위의 모습만 봐도 무언가를 지키듯이 넓게 둘려 있었으니까.
“……알겠다.”
강한철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지금 연구실에서 자신을 위한 대아우터용 건틀릿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여기서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걸 그도 알기 때문이다.
“튜토리얼 때 기억나?”
“멧돼지 말인가.”
“맞아.”
강한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운과 반대편에 자리 잡았다.
튜토리얼의 멧돼지.
첫 번째 장의 마지막 웨이브 때, 멧돼지들의 보스 몬스터였던 ‘붉은 어금니, 파그’를 말하는 거다.
당시 세운과 강한철은 놈을 앞뒤로 공격해 충격을 흡수할 틈도 없이 터트려 버렸다.
지금, 그때의 공격을 다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말이다.
“간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진군(進軍)’을 사용합니다.
강한철이 다시금 바위에 여진을 쌓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진도를 쌓아 세운과 함께 그것을 한꺼번에 터트리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운도 강한철이 진동을 다 쌓을 때까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비록 아가레스의 권능인 지진은 다루지 못하지만, 흉내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다.
– 내공을 통해 진주언가권의 제일 초식, 강시권(僵尸拳)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진주언가권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권, 강시권.
강한철의 반대편에 서서 시퍼렇게 물든 주먹을 앞으로 내지른다.
다만, 그 주먹은 평범한 주먹이 아닌.
– 흑탑의 묘리에 따라 ‘그라운드 웨이브’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그라운드 웨이브’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그라운드 웨이브’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대지의 물결을 일으키는 황탑의 공격 마법, 그라운드 웨이브를 담은 주먹이었다.
쿵!
주먹에 닿은 바위가 웅웅 울려댔다.
강한철이 하는 것처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쳐보고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연타.
쿵, 쿵, 쿵!
습득한 지 오래된 만큼, 진주언가권의 일 초식 정도야 충분히 응용이 가능하다.
본래 정자세로 일격을 날리는 정권이지만, 그것은 세운의 머릿속에서 한 단계 응용되어 연격으로 바뀌었다.
그라운드 웨이브의 힘이 깃든 주먹이 연속으로 바위를 울려댔다.
쿵, 쿵, 쿠웅!
반대편 역시 마찬가지.
강한철이 주먹에 여진의 힘을 담아 착실하게 바위 내부에 진도를 쌓고 있었다.
그 혼자서 쌓을 때는 바위 바깥으로 진동이 흘러나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세운이 쌓는 그라운드 웨이브가 강한철 쪽에서 막히고, 강한철이 쌓는 여진의 힘이 세운 쪽에서 막혔다.
두 진동이 바위 내부에서 충돌하며 격렬하게 진동하였다.
강한철 혼자서 쌓은 진동이 대략 진도 4의 ‘중진’ 상태였다면, 지금은 족히 진도 6의 ‘열진’.
아니, 산이 무너지고 단층이 올라온다고 알려진 진도 7의 ‘격진’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대피해, 얼른!”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니야!”
“진짜 무너지는 거 아니야? 이거, 땅 파놓은 게 문제가 아니라 쉼터가 통째로 무너질 판이라고!”
눈치 보던 사람들마저 전부 도망가고, 바위 앞에 남은 건 세운과 강한철, 둘뿐.
바위가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웅웅 울리며, 진동을 더 이상 쌓지 못하고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아챈 둘이 눈빛을 교환한다.
– 내공을 통해 진주언가권의 제사 초식, 야차강림(夜叉降臨)이 강화됩니다.
– 플레이어 강한철이 ‘격돌(激突)’을 사용합니다.
콰아아앙-!!!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듯이 퍼져나가는 충격.
바람 하나 없이 늘 평온하던 지하 벙커에 태풍이 몰아치듯 풍압이 몰아치고,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이 지축이 흔들렸다.
주변도 이 지경인데 바위는 어떠할까?
내부에 쌓인 진동이 일제히 폭발한 것은 물론, 양쪽에서 휘두른 주먹 탓에 진동이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쩍, 쩌적!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바위가 차츰 갈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