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2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31화(227/675)
제231화
세운이 마지막에 추가한 보상은 간단하다.
아우터를 처단할 때마다, 합당한 공적치를 보상으로 내어줄 것.
후보자로서의 역할이 아우터를 처치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내건 제안이었다.
이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겠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튜닝은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에 본 사항을 추가하였다.
다만, 세운의 지적에 ‘본 시간부로’가 아닌 이미 처치했던 아우터에 대한 보상까지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에휴. 비록 튜토리얼이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플레이어를 보아왔는데. 정세운 플레이어님은 정말이지 못 당하겠습니다.”
노이즈가 잔뜩 낀 벽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이어서 뒤쪽의 벽면에 반듯한 문이 하나 생겨났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서를 챙기며 허리를 숙이는 튜닝.
그의 모습을 보며,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 * *
– 탑의 관리소가 계약을 이행합니다.
– 현재까지 소멸시킨 아우터의 총 질량만큼 공적치를 배분합니다.
– 공적치 계산 중…….
– 10층의 시련 ‘다가오는 모래폭풍’, 세 번째 쉼터 ‘서리 요새’, 네 번째 쉼터 ‘지하 벙커’에서의 공적이 인정됩니다.
– 총 보상으로 2,702,300point를 획득합니다.
‘생각보다 통이 크네.’
27만 포인트가 아니다. 무려 270만 포인트.
거의 시련 열 개가량에서 1위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야 얻을 수 있는 정도의 포인트였다.
추가로 기재한 사항이라서 형식적으로 쪼잔한 보상을 내리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은 수치다.
‘공적치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네 번째 쉼터에서야 공적치의 사용처가 식량을 확보할 정도의 수준일 뿐이지만, 다섯 번째 쉼터부터는 달랐다.
그곳에는 본격적으로 플레이어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으니까.
이곳처럼 먹고 살기 바쁜 겁쟁이들이 아닌, 다음 시련을 위해 준비하는 플레이어들 말이다.
공적치는 거주민은 물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화폐의 개념으로 사용되니, 다섯 번째 쉼터부터 본격적으로 공적치가 빛을 발한다.
시스템 메시지를 치우고 주변을 돌려보기도 전에, 세운의 앞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떠 올랐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관리소의 관여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아사하기 직전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혹시 협박이라도 당한 거라면 자신들이 정식으로 나서주겠다며 당신을 편듭니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관리소에 불려간 세운을 걱정한 모양이었다.
아, 물론 베엘제붑은 예외로 하고.
지상에서 아우터 사냥에만 몰두하다 보니 폭식의 권능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요즘 들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벌써 해가 졌네.’
관리소에 불려 나간 지 기껏해야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았는데. 관리소와 네 번째 쉼터의 시간 흐름이 다르기라도 한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안 그래도 희미했던 햇빛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뚝딱뚝딱.
그런데도 사람들의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쌍둥이 자매가 미리 자재들을 준비해 둔 덕분에 이미 거주지의 태가 드러날 정도가 되었다.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이어갔음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 보였다.
‘마나도 다 채워졌고.’
분명 마나를 모두 소모한 채로 관리소에 불려갔는데, 서클 가득 마나가 차올라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또한 관리소에 다녀온 영향이겠지.
‘하던 일부터 마저 해 볼까?’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퀘이크’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퀘이크’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쿠구구구!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섬 외곽 부분의 땅을 뒤집어 두었다.
거주지가 건설 중인 중앙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조절하였지만, 이런 대범위 마법을 사람들이 그걸 못 느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금방 세운의 복귀를 확인하였고.
“클랜장 오셨다!”
“형님, 얼른 오십쇼! 기다리고 있었슴다!”
“우리 밥 먹으려는 거 어떻게 알고 딱 오셨데? 얼른 오십쇼!”
거주지의 사람들이 일제히 세운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 * *
거주지는 금방 완성되었다.
세운의 마법 덕분에 오염됐던 땅도 회복이 되어 사람들은 곧바로 그 위에 다양한 씨앗을 심었다.
기존에 창고에서 보물처럼 귀하게 모셔지던 씨앗들은 물론, 고대인들이 마련해 둔 것들까지.
노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 차 보였다.
“이게 다 자네 덕분이라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며, 세운과 디아블로 클랜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미 퀘스트가 끝난 시점에서 재건을 도운 건 순전히 봉사에 가까운 일이었다.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었으니, 이곳에 머물수록 손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일은 끝내고, 성의 사람들이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후에야 이렇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미안하네. 마음 같아서는 금은보화를 한가득 안겨주고 싶네만…….”
“괜찮습니다.”
시작의 성, 호펜.
시작이라는 말답게, 호펜은 이제야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주고 싶어도 줄 보상이 없다는 사실은 호펜의 재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세운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운이 간단하게 예를 갖추며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의 힘찬 트럼펫 소리가 호펜을 가득 울리며, 밭을 일구던 사람들이 땀을 쓱 닦으며 이곳을 돌아보았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돌아와 주세요!”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돕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주위 사방에서 사람들의 축복이 들려왔다.
처음 지하 벙커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시민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모두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침울해 보였는데. 지금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보이는가.”
그런 시민들을 보며, 왕이 자랑스러운 듯이 읊조렸다.
“짐은. 아니, 우리 호펜은. 시간이 지나고 그 어떤 역풍이 불더라도, 결코 그대들을 잊지 않겠네.”
그 말을 들으며 디아블로 클랜의 모두는 가슴 한편에서 뿌듯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마치, 한 이야기의 영웅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네들은 이 호펜의. 아니, 이 세상의…… 구원자라네.”
– 시작의 성, 호펜의 역사에 디아블로 클랜의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 디아블로 클랜의 위업이 최대 수치를 뛰어넘었습니다.
– 디아블로 클랜의 격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클랜의 격상 조건. 이 말은 곧, 디아블로 클랜이 클랜의 수준을 벗어나 그다음 단계인 길드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본래 대부분의 클랜은 클랜원을 모아 그 수와 자잘한 업적을 이용해 길드로 성장한다.
하지만, 디아블로 클랜은 단 하나의 업적만으로 그 조건을 충족했다.
그것도 고작 네 번째 쉼터에서.
‘생각보다 이르네.’
본래는 다섯 번째 쉼터에서 길드화할 생각이었는데, 조건을 벌써 달성할 줄은 몰랐다.
클랜에서 길드로 성장하면 기본적인 버프나 효과 등도 한 단계 상승하니 나쁠 건 없었다.
다만, 세운의 시선을 빼앗은 건 또 다른 메시지였다.
– 호펜의 시민들이 당신을 따릅니다.
– 해당 행성을 담당하는 성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신성의 자격으로서 ‘시작의 성, 호펜’이 플레이어 정세운에게 귀속됩니다.
– ‘시작의 성, 호펜’이 발전할수록 성흔의 힘이 더욱 강해집니다.
‘귀속?’
메시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호펜이 세운에게 귀속되었다는 것.
이는 결코 간단하게 볼 내용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드물기는 하지만 탑에서 신성 자격을 얻은 플레이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대부분 랭커인 만큼 하나의 길드를 통솔하거나 쉼터에서 세력을 넓혀 지배하다시피 활동하기도 하지만 필드를 완전히 귀속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우웅!
전보다 더욱 진하고 선명해진 성흔이 시스템 메시지에 반응을 해 왔다.
그 울림을 통해, 성흔이 이전보다 한 단계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완전히 성좌의 영역 같은데.’
그런 세운을 증명하듯 성좌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성좌, ‘신성한 암소’가 고작 떠오르는 별에게 너무 과분한 치사가 아니냐며 관리소에 항의합니다.
– 성좌, ‘작은 돌무덤’이 땅은 떠오르는 별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끝을 잇는 뿌리’가 저 땅은 자신에게 딱 어울려 보인다며 그 대신 작은 보상을 제안합니다.
대체로 세운에게 호펜이 귀속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분위기.
프레이야에게 심심한 축하 인사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녀 같은 반응은 거의 없었다.
마몬이 나서 메시지를 차단하기도 전에, 세운이 먼저 나서 시스템을 조작했다.
미리 튜닝에게 배운 대로, 상태창에 추가된 메뉴를 조작하여.
– 성좌, ‘신성한 암소’의 채널을 차단합니다.
– 성좌, ‘작은 돌무덤’의 채널을 차단합니다.
– 성좌, ‘끝을 잇는 뿌리’의 채널을 차단합니다.
불만을 토로하던 성좌들의 채널을 차단한다.
이로써 저들은 세운에게 메시지를 못 거는 것은 물론, 세운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중에는 디아블로 클랜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운의 행보를 파악하려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역시 튜닝과 대화를 마친 사항이다.
전에 얘기를 끝낸 올림포스와 지금 채널을 차단당한 성좌들은 세운의 행보를 일절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제법 높은 격을 지닌 성좌의 채널을 차단한 당신의 당당한 태도에 만족해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주린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집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후폭풍은 자신들이 막아주겠다며 당신을 에워쌉니다.
이제 굳이 마몬이 보물을 사용하여 채널을 차단할 필요도 없었다.
상황을 파악한 성좌들이 본보기로 차단당한 이들을 보며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세운이 관리소의 훌륭한 일 처리에 만족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자네의 성공을 기원하겠네.”
클랜의 강화가 남았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조건은 충족되었으니 시련을 끝내고 클랜 거주지로 돌아가 제대로 건드리면 될 일이었다.
왕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세운이 디아블로 클랜을 바라보았다.
뭐라 말하지 않아도 유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출발 신호를 알렸다.
마지막까지 들려오는 호펜 사람들의 축복을 들으며 다음 시련을 선택하는 순간 주변이 기묘하게 일렁였고.
– 31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땅굴 파기
– 당신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삽을 주워 들었습니다.
– 단단한 땅을 파헤치고 지상을 향해 올라가십시오.
31층의 어둑한 풍경이 세운을 맞이해 주었다.
* * *
네 번째 쉼터인 지하 벙커와 연결된 듯한 땅속 터널.
회귀 전에는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네 번째 쉼터가 지상으로 바뀌어 31층의 시련은 너무 철 지난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새로 바뀌려나.’
바뀌어 버린 네 번째 쉼터로 인해 다음 시련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관리소를 생각하며, 세운이 삽 대신 손을 들어 올렸다.
우웅!
마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흙이 부드럽게 파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