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2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33화(229/675)
제233화
몬스터를 마주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방의 갈림길을 지나치기도 전에 타닥거리는 미세한 소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땅강아지처럼 생긴 몬스터가 천장에 붙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세운을 기습하려는 듯했다.
다만, 감각이 인간의 수준을 벗어나 있는 세운에게 기습이 먹힐 리가 없었고.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체인 라이트닝’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검붉은 뇌전이 몬스터 사이를 휩쓸었다.
후두둑.
노릇노릇하게 익은 몬스터의 사체 열 몇 개가 우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까부터 베엘제붑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기에, 세운은 곧바로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 ‘대형 땅강아지’를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민첩이 0.5 상승합니다.
– ‘대형 땅강아지’를 포식하였습니다.
…….
당연하게도 능력치 상승은 극히 미약했다.
처음부터 1도 안 되는 수치가 상승하더니, 그 이후에는 0.05 수준까지 내려갔다.
권능의 대상이 워낙 약했던 탓도 있지만, 세운의 능력치가 강화되면서 폭식의 권능으로 오르는 수치가 많이 줄어든 듯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땅강아지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 순간만큼은 이 땅강아지가 산해진미와 다름없게 느껴진다며 눈물을 흘리며 감동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격한 반응.
어쩐지 흐뭇한 마음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전진해 나갔다.
그렇게 몇 걸음 걸어 나가자, 세운의 감각이 전방의 수상한 부분을 알려왔다.
나무뿌리가 구불구불 튀어나온 지면이었는데, 다른 곳보다 흙의 색이 조금 더 밝았다.
신경 써서 확인하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찾아낸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별생각 없이 건넜을 법한 지면이었다.
‘함정인가.’
다만, 세운의 눈치를 속이지는 못했다.
비단 발달한 감각뿐만 아니라, 세운은 회귀 전에 모험가로서 온갖 던전에서 이보다 더한 함정을 수없이 마주쳤으니까.
‘자연적으로 생겨난 함정인가 본데.’
아마, 저기 드러난 뿌리가 아슬아슬하게 흙을 받쳐주고 있는 모양이다.
저 위를 건너는 순간, 뿌리가 힘을 다해 뚝 끊어지며 지면에 구멍이 생겨나겠지.
이렇듯이 함정 중에서는 인공적인 것만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함정 역시 존재했다.
물론, 구멍함정쯤이야 걸린다고 해도 이카로스의 날개로 바로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리무브 트랩(Remove trap) ]– 무색의 마탑에서 고안한 마법으로써, 마나를 이용하여 함정의 구조를 파훼한다.
세운은 그보다 더 간단한 방법을 찾았다.
리무브 트랩.
1서클의 간단한 마법으로써 설명에는 함정을 파훼한다고만 나와 있지만, 이는 응용법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뚜둑.
주변의 나무뿌리를 잡아당겨 지면에 안정성을 추가해 흙을 받쳐주는 것처럼 말이다.
함정의 해제, 발동, 지연 등.
리무브 트랩은 사용자의 마나 컨트롤 실력이나 마법의 이해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함정을 다루는 게 가능하다.
이게 아니더라도 눈앞의 함정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32층을 거닐다 보면 다양한 함정을 마주칠 테니 미리 이 마법을 배워두었다.
그리고 도착한 첫 번째 공동.
겨울잠이라도 자듯이 커다란 두더지 한 마리가 중앙에 떡하니 몸을 말고 누워 있었지만, 녀석은 잠에서 깨 눈을 뜨기도 전에 세운의 검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폭식의 권능을 통해 사체를 정리하고,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여기도 통로가 있었네.’
세운이 손을 뻗어 축축하게 젖은 벽면을 짚었다.
힘을 주니 흙이 퍼석하고 무너지며 새까만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습한 공간이었는데, 습기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게 딱 봐도 지상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 ‘축축한 지하도’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 해당 통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32층의 시련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힌트는 오로지 시스템 메시지에 적힌 다음 시련의 이름뿐.
난이도라든지 시련의 유형 같은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세운은 탑을 오른 경력이 있었기에 이름만 보아도 시련의 유형이 대충이나마 파악되었다.
‘지하수랑 연결된 곳인가.’
아마 물 속성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곳이겠지.
난이도가 그리 어렵진 않겠지만, 헤엄을 못 치는 플레이어라면 들어가자마자 난관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수영 실력이라면 포르네우스와 계약한 최수창에게도 뒤지지 않는 세운이였지만…….
“아니.”
– ‘축축한 지하도’의 선택을 취소하였습니다.
– 해당 입구가 소멸합니다.
33층의 시련은 잘만 고르면 시련 자체가 통째로 히든 피스에 가까웠다. 온갖 보물상자를 발견할 수도 있고, 보상 하나 없이 강적을 상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곳을 별 보상도 없어 보이는 지하도 같은 곳으로 고를 생각은 없었다.
후두둑.
세운이 거절하자마자 ‘축축한 지하도’로 통하는 통로가 무너져내렸다.
명색이 미로인 만큼 길을 헷갈리지 않도록 공동의 구조를 머리에 새겨두고서 곧바로 다음 통로를 찾아 움직였다.
‘본격적으로 찾아볼까?’
회귀 전에는 그저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통로를 선택했을 뿐이다.
물론, 여정의 지침표가 선정해 준 만큼 선택된 시련은 쉬운 난이도와 뛰어난 보상을 지닌 알짜배기였다.
‘거기서 쓸 만한 무기도 얻었으니까.’
이렇다 할 전투 스킬도 없고, 성좌의 관심도 못 받았던 그때의 세운에게 당시에 얻은 무기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로프를 달 수 있는 석궁이었는데, 활용력이 뛰어나 50층을 넘어서도 계속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지금은 그걸 쓸 이유가 없으니까.’
지금의 세운은 그 석궁보다 강력한 무기가 많았다.
당장 주력으로 사용하는 검과 창, 활만 해도 전부 S등급 이상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 당시 얻었던 석궁을 다시 얻는다고 해도 쓸모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회귀 전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로를 찾아내야만 했다.
세운은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벽을 짚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고, 조잡한 함정 몇 개를 발견해 리무브 트랩으로 해제하며 통로 몇 개를 통과하자.
“츠스스슷-”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감히 건방지게 당신의 앞을 막아서는 땅 뱀을 한심하게 내려봅니다.
처음 발견한 곳과 비슷한 공동이 나왔다.
그곳에는 공동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뱀이 세운을 반겨주고 있었는데, 결과는 한결같았다.
녀석은 세운에게 이빨을 드러내기도 전에 까맣게 타죽었고, 베엘제붑의 한 끼 식사가 될 뿐이었다.
– ‘깊게 꼬인 뱀굴’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 해당 통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번 통로도 꽝이다.
딱 봐도 뱀 타입의 몬스터가 계속해서 나오는 시련이었다.
난이도가 제법 높은 편이겠지만, 그에 비해 나올 보상은 형편없겠지.
이후로도 세운은 수많은 통로를 발견해 나갔다.
전직 모험가였던 만큼 길 한번 헤매지 않고 숨겨진 통로까지 척척 찾아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 ‘더러운 하수구’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 ‘질척거리는 늪지’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 ‘땅속 거미줄’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 해당 통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개중에는 회귀 전에 발견했던 것과 비슷한, 괜찮아 보이는 시련도 몇 군데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통로의 모습이나 이름만 보아도 대략적으로 판단이 되었다.
어차피 세운에게 난이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33층 수준에서 최상의 난이도라고 해 봤자 공략하지 못할 수준은 아닐 테니까.
다만, 세운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분명 뭔가 더 있을 텐데…….’
기왕 33층을 통과할 거, 어중간한 시련으로 대충 넘어가기는 싫었다.
그런 식으로 탑을 등반한다면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쓸 만한 통로를 찾아야만 한다.
대략 열 곳의 통로를 발견한 세운은 땅굴 미로의 구조에 익숙해져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쉴 새 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도중에 마주친 몬스터는 꼼짝없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못해도 50곳이 넘는 통로를 찾아내었을 때쯤.
‘음?’
갈림길 사이에서 흙의 질감이 묘하게 다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습도의 차이라기보다는, 흙에 금이 섞인 것처럼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디그 마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고 벽면을 향해서 일 검을 내뻗었다.
– 내공을 통해 태극십팔반검의 제오 초식, 태산압정(泰山壓頂)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쿠궁!
태극십팔반검 특유의 강검이 흙벽을 강타했다.
초식의 이름처럼 큰 산을 찍어 누르는 듯한 힘이 가미되자, 벽면이 견디지 못하고 부들거렸다.
‘역시, 뭔가 있어.’
부들거린다고는 해도, 벽은 분명히 세운의 공격을 견디고 있었다.
평범한 벽면이었으면 곧바로 무너졌을 테지.
이만큼 버틴다는 건, 누군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이러한 벽면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르르-
벽면이 태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무너진 흙 사이로 사금이 드러나 반짝이며 빛났지만, 챙기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 흩어졌다.
아무래도 진짜 사금이 아니라 마력적으로 만들어 낸 재질인 모양이다.
그리고 보인 것은.
‘문?’
사방이 흙색으로 가득한 땅굴 미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석문이었다.
무엇보다 세운의 눈에 띈 것은 석문의 중앙에 그려진 무늬였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딱정벌레.
분명, 어디선가 보았던 문양이었다.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세운이 그 위로 손을 올리자, 성흔이 웅웅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 성흔이 익숙한 기운을 만나 공명을 시작합니다.
– 성흔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태양의 기운이 드러납니다.
석벽에 그려진 딱정벌레 무늬,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태양의 기운.
세운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드러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이 숨겨진 통로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성흔의 빛에 반응한 석문이 주인을 반기는 것처럼 활짝 열리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그 중앙에 존재하는 것은 거대란 딱정벌레.
금과 은으로 점칠 된 것처럼 반짝이는 녀석의 주인은 안 봐도 뻔히 짐작되었다.
–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갑작스러운 알람에 황급히 지하를 들여다봅니다.
–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활짝 열린 석문을 보고서는 경악을 내지릅니다.
–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가 대체 자기에게 왜 그러는 거냐며 이유라도 알려달라며 비명을 내지릅니다.
성좌, 태양을 굴리는 자 ‘케프리’.
헬리오폴리스의 주신급 성좌이자, 일출의 신이라고도 알려진 성좌.
그가 이 통로의 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