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3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43화(239/675)
제243화
블루 크리스털.
세운이 그 존재를 아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것 때문에 꽤 귀찮았으니까.’
회귀 전, 34층의 시련에서 왕국을 지날 때 소인들은 저 푸른 보석을 들어 플레이어들을 막아섰다.
소인의 키와 비슷한, 플레이어의 주먹만 한 그 보석의 능력은 간단하다.
플레이어를 멈추게 하는 것.
한 명만 멈추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보석의 빛이 닿는 적의 움직임을 모두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그 사기적인 능력 때문에 성벽을 눈앞에 두고 꼼짝없이 소인들의 공격에 당해야만 했었다.
“소, 송구하오나 블루 크리스털은 대대로 저희 다몬드 왕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국보(國寶)인 터라…….”
“괴물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더 이상 블루 크리스털의 힘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직 아래에 괴물이 더 남아 있을 수도…….”
“괴물의 근원지는 부쉈습니다. 신의 이름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세운이 이름을 걸 만한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좀비들의 근원지를 부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시스템까지 인정해 줬으니, 적어도 그 좀비들이 다몬드 왕국을 다시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운이 노린 게 바로 이 점이었다.
“설마 국왕께서 약속을 어기시려는 겁니까?”
“그, 그건…….”
왕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아래에서 신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운의 말의 진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예언을 들은 성직자를 불러내기도 하였지만, 이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 관점에서 나라를 구해 준 세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대들 수도 없는 노릇.
“폐하, 아무리 그래도 국보를 넘기는 것은…….”
“나라를 구해 주신 분들이다. 저분들이 오시지 않았다면, 국보는커녕 우리 왕국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맞사오나…….”
“그리고 신의 사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중간에 어떤 착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자께서 거짓말을 했을 리 없지 않은가?”
왕과 신하들이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나누었다.
크기가 작은 만큼 그 소리도 극히 미약했지만, 강화된 청각 덕분에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왕이 긍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
“물론입니다! 약속대로, 저희 왕국의 국보를 바치겠습니다.”
결국, 왕은 세운의 의견에 따랐다.
성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이 끙끙거리며 푸른 보석을 들고나왔다.
블루 크리스털.
비단 그 능력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움만으로도 최상급 보석에 들어갈 법한 보석이었다.
영롱한 푸른빛이 일렁거리는 모습은 마치 그 안에 바다가 담겨 있는 듯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34층에 저렇게 아름다운 보석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눈을 반짝입니다.
“대대로 블루 크리스털은 저희 다몬드 왕국을 지켜주는 국보로 내려왔으나, 제가 그 뜻을 잘못 이해한 모양입니다.”
왕이 블루 크리스털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긴,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왕국이 생겨나면서 쭉 내려오던 보석인 듯하니 애틋할 만도 하다.
“블루 크리스털은 그 능력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신의 사자님들께 바치는 보답이자 약속이었던 거군요.”
어딘가 아련한 목소리.
거짓말을 한 게 조금 찔리긴 했지만, 어차피 세운의 말대로 괴물의 침공이 사라진 지금 그들에게 블루 크리스털은 필요 없다.
다행히도 다른 이들도 블루 크리스털을 내주는 것을 나름 수긍하는 분위기다.
“비록 괴물들은 사라졌지만, 저희 다몬드 왕국은 영원토록 사자분들을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세운이 블루 크리스털을 챙겼다.
가까이서 보니 정교한 세공 탓인지 안에서 일렁거리는 빛의 물결이 더욱 아름다웠다.
마몬이 자신에게 내놓지 않겠냐며 찔러댔지만, 무시했다.
유서아의 지배만큼은 아니지만, 이건 시련에서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
“감사합니다.”
다몬드 왕국의 소인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수백의 병사들이 힘을 합쳐 북쪽 끝에 세워진 성벽의 문을 열었다.
회귀 전에는 그렇게 힘들게 넘었던 성벽이었는데, 이렇게 편하게 시련을 통과하게 되니 기분이 색달랐다.
혹여나 목소리가 닿지 않을까 최대한 목청을 높여 작별을 인사하는 소인들에게 팔을 흔든 후.
“가자.”
“네!”
세운을 선두로, 디아블로 클랜이 성벽을 넘었다.
* * *
– 34층의 시련 ‘소인국’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소인국에 다가오는 멸망’ 완료.
– 히든 퀘스트 ‘멸망의 근원지’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40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34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연하게도, 시련에서의 성적은 랭킹 1등으로 끝이 났다.
여기까지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총 50만에 해당하는 공적치는 충분히 기대 이상이었다.
유서아가 30만의 공적치를 얻었다고 하니 좀비들의 근원지를 터트린 게 제대로 한몫했나 보다.
“형니이임! 저 다음 시련도 형님이랑 하고 싶습니다! 제바아알!”
시련이 끝나자마자 엉겨 붙는 박정필을 대충 떼어놓았다. 아쉽게도 다음 시련도 함께할 테지만 말이다.
“다음 시련은 뭘까요?”
“소인국을 거쳐왔으니 거인국이라도 나오는 거 아니겠나?”
“걸리버 여행기처럼 말이죠? 그럴 수 있겠네요.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장난으로 말한 건데 진지하게 받아주니 민망하구먼. 허허.”
길드 단위로 다음 시련에 넘어가는 중이기 때문일까? 다들 다음 시련이 무엇일지 예측하며 시련이 넘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현기증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정말 거인국인 모양이군요.”
“오, 영감님! 재능 있으신 거 아닙니까?”
“허허, 이거 당황스럽구먼.”
거인국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지형이었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는 고개를 90도로 꺾어도 그 끝을 보기 힘들었고, 옆에 난 잡초 같은 풀은 성인 키만 했다.
바닥의 흙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주먹만 한 크기의 돌멩이 정도로 느껴졌다.
사방이 거대한 것 천지.
이런 경우,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자신들이 작아졌거나, 주변이 과도하게 큰 것이거나.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시련이었기에, 세운은 그 정답이 후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35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거인국
– 세계 각지를 탐험하던 당신은 이세계(異世界)를 넘어 또 다른 이세계에 도착하였습니다.
– 이곳에서 당신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협을 맞이하였습니다.
– 거인들이 향하는 곳으로 이동하십시오.
– 현재 ‘디아블로 길드’에 소속 중입니다. 시련이 길드 합동 유형으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이세계를 넘어 도착한 또 다른 이세계. 당연하게도, 이곳 ‘거인국’을 뜻하는 말이었다.
시련의 목표는 이번에 역시 목적지로 향하는 것인데 특이하게도 목적지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거인들을 따라가거나, 그 경로를 예측하여 움직여야만 한다.
물론, 세운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인들이 향하는 목적지라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100%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대충 짐작이 간다.
“거인들이 향하는 곳?”
“거인들이 목적지까지 안내라도 해 주는 건가?”
“그럼 저 거대한 위협이라는 건…….”
사실, 이번 시련 역시 34층과 마찬가지로 굳이 길드 단위로 시작될 이유가 없는 시련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시련은 어디까지나 ‘도주’였으니까.
길드원들이 시련에 대해 궁금해할 무렵, 금방 시련의 주체가 나타났다.
쿵, 쿵, 쿵, 쿵!
귓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발아래의 지면이 요란하게 떨려왔다.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이 굉음의 정체를 금방 예상할 수 있었다.
“거인이다!”
박정필이 가장 먼저 거인을 발견하였다.
저 멀리에서, 거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거대한 인간이 달려오고 있었다.
비율은 소인국 때와 비슷했다.
대략 10배 정도의 크기?
즉, 거인의 키는 20m가 조금 안 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게? 왜 저러는 거야?”
거인은 디아블로 길드가 있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눈을 까뒤집고 침까지 질질 흘리며 다리를 쭉쭉 뻗는데, 덩치가 커서 그런지 속도 역시 어마어마하다.
문제는 거인의 수가 하나가 아니라는 거였다.
쿵쿵쿵쿵쿵쿵-!!
“저, 저거!”
귀를 울릴 정도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거리가 심각하게 멀었지만, 거인들의 체구가 워낙 컸기 때문에 선명하게 보였다. 선두의 거인을 따라 수십의 거인이 달려오고 있음을.
그들 전부 첫 번째 거인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안내해 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안내고 뭐고, 도망쳐!”
디아블로 길드가 거인들에게 쫓기듯이 내달렸다.
거인의 수가 적었으면 양옆으로 퍼지기라도 했을 텐데, 거인들은 마치 포위 진형을 이루듯이 좌우로 빼곡하게 자리 잡고 달리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 반대 방향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것들 대체 뭐야! 왜 저래!”
불평하며 뒤를 돌아볼 때쯤에는 이미 거인들이 바로 뒤까지 달려와 있었다.
숨 막히는 추격전.
……이라고 생각한 건, 플레이어들뿐이었다.
쿵, 쿵, 쿠웅!
“……어?”
선두의 거인이 디아블로 길드를 무시하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애초에 거인들은 디아블로 길드를 쫓아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위험성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공격할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플레이어들에게는 극도로 위협적이었으니까.
예를 들자면, 평야를 뛰노는 들소 사이에 쥐새끼가 된 격이다.
“산개!”
“뭉쳐 있어봤자 불리해! 떨어져서 도망쳐!”
“으아아아악!”
방법은 다양하다.
거인들도 부러트리지 못할 만큼 두꺼운 나무 기둥이나 돌덩이 뒤에 숨어 있든지, 실력을 믿고 거인의 발걸음을 피하든지.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세운은 회귀 전과는 다른 색다른 방법을 선택하였다.
우웅!
세운이 블루 크리스털을 꺼내 들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보석의 영롱한 모습에 눈을 반짝입니다.
마나를 살짝 불어넣자, 블루 크리스털이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내뿜었다.
그 효과는 세운이 회귀 전에 보았던 것과 그대로.
“으어……?”
빛에 닿은 거인들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비록 빛이 닿는 범위가 그리 넓은 편은 아니라 전부는 아니고 겨우 다섯만 멈추었지만, 이걸로도 충분하다.
세운은 가볍게 도약하여 거인의 몸을 타고 어깨 위로 올랐다. 그러고는 아래를 보며 외쳤다.
“뭐 해? 안 타고.”